─ 『러시아 문화사 강의』 편집후기

하나의 책을 편집하기 전에 관련된 책을 읽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란 사실은 꼭 편집 일과 관련이 없는 분이라도 쉽게 짐작하실 겁니다. 러시아 문화에 대한 종합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 문화사 강의』의 편집에 들어갈 즈음 뭐라도 하나 읽어야겠다 싶은 찰나에, 요네하라 마리라는 일본의 저널리스트가 쓴 『러시아 통신』이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었기에 별 망설임 없이 그 책을 골라 읽었지요. 물론 학술서와 에세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과연 ‘러시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감을 잡는 데에 있어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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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철역의 모습. 우리가 말하는 '러시아적인 것'은 어떤 이미지로 표상되는가?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꽉 짜인 틀 속에서 언제나 ‘합리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암묵적 규율을 내면화한 이 세상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모할 정도의 비합리성을 고집스레 밀고 가는 러시아인들의 ‘기분파적 기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나름 애주가 소리를 듣지만 저 같은 건 골방 샌님 축에도 못 들 만큼 주당이 넘쳐 나는 그곳, 마리 여사의 표현을 빌리면 “손질이나 개량처럼 쩨쩨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선에 이르렀을 때 큰 도끼를 과감히 휘둘러 정리한다”는 호쾌한(?) 성정……. 물론 저한테 그런 사회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져서 죽어 버릴 가능성이 태반입니다만, 무언가 ‘반항적인 것에 대한 낭만’은 존재할 수 있는 법 아니겠어요?

이 책 『러시아 문화사 강의』는 그 낭만(?)의 실체를 파헤치는 책입니다. 러시아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키예프 루시 시대부터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난 최신의 정보들까지 아우르면서요. 러시아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학은 물론이거니와 미술‧음악‧연극‧영화뿐만 아니라 러시아어와 러시아 정교의 역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지요. 이 스펙트럼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 낼 수 있겠습니다만 ― 예를 들면 차르 전제정 속에서의 핍박과 그 현실을 견디게 했던 종교적 열정, 두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 안에서 방황하는 정체성, 서구 유럽과 비교되는 후진성 속에서도 끊임없이 길을 모색했던 지식인들 등 ―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러시아 문화, 특히 ‘문학’이 가지고 있는 어떤 독특한 기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기질이 바로 위에서 말한 ‘수많은 이야기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사실 그전부터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동경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국가나 지역의 이름을 넣어 ‘어디 문학’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시나요? 개인적인 느낌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씀드리자면, (물론 한 나라의 무수한 문학작품들의 경향을 그렇게 압축해 버리는 것도 못할 짓이긴 합니다만) 한국 문학, 일본 문학, 미국 문학, 프랑스 문학…… 이런 단어들을 들어 봐야 몇몇 작가들이나 떠오르지 어떤 공통적인 이미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설령 떠올린다 해도 경쾌하다, 현학적이다, 심리적이다 등 ‘스타일’적 특성에 가까운 단어만 맴돌았고요. 하지만 ‘러시아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으음, 저기, 뭐랄까… 인간 본성에 대한 천착이랄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쉼 없는 탐구랄까… 이런 녹록찮은 것들이 떠올랐거든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제가 읽은 러시아 문학의 양적 수준은 그야말로 초라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교양수업 리포트 쓰느라 허겁지겁 읽어서 잘 생각도 안 나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읽다가 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 그나마 읽은 단편집 몇 권과 아직 시작도 못한 채 책장에서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톨스토이나 나보코프도 모두 희한하게도 이러한 러시아 문학의 이미지에 부합한다는 말이죠. 물론 어느 나라의 어느 작가든 좋은 작품은 모두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해 궁구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려 한 나라의 문학, 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압도적인 무게감! 이 미칠 듯한 존재감!! (이쯤에서 제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다 만 것도 절대 재미가 없거나 질려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 두어야겠군요. 예정에 없던 바쁜 알바를 급하게 시작하게 되는 바람에 차분히 읽을 여건이 안 되었거든요.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심오한 소설을 그렇게 허투루 읽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포기한 게 아니라 꾹 참고 ‘킵’해 둔 거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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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친필 원고
_ K2와 에베레스트 산과 맞먹는
19세기 문학계의 존재: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그리고 이 책 『러시아 문화사 강의』는 이러한 제 이미지가 (다행히) 그렇게 뜬구름 잡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8장 「문학」을 쓴 데이비드 베데아는 러시아 문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영성(靈性), 사회적 양심의 기능, 작가의 성자(聖者)적 성격 등을 꼽으면서,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이 얼마나 높은 미학적 수준을 통해 이를 성취해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니까 러시아에서 문학은 단순한 유흥거리라기보다는 삶의 진실과 윤리에 관한 부단한 탐구의 기록이었던 겁니다. 제가 그린비에 입사해서 처음 편집했던 책 『해체와 파괴』에서 구소련 출신 철학자인 미하일 리클린은 이렇게 말하죠. “러시아에서는 거의 한 세기 반 이상 문학이 형이상학의 기능을 대신 수행해 왔고, 모든 경우에 있어 문학이 윤리적 문제들을 전적으로 도맡아 사유”해 왔다고요.

책을 편집하는 도중에 인터넷에서 하나의 글을 읽었습니다. ‘죽어가는 나라를 봤습니다.’ 이것은 박노자 선생님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오셔서 6월에 블로그에 쓰신 글의 제목입니다(☞ 글 읽으러 가기). 아무런 안전판 없이 자본주의에 노출된 후 십수년이 지난 지금, 황폐해져 버린 사회의 모습을 목도한 박노자 선생님의 충격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었지요. 이토록 유구한 문화적 전통마저도 초라하고 하릴없게 만들어 버리는 이 거친 현실 앞에서 『러시아 문화사 강의』를 읽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는 제깟 놈이 답 찾을 재간은 없고, 괜히 3년 전 여름에 트랜스퍼를 위해 네 시간 정도 머물렀던 모스크바 공항의 석양과 계단에 걸터앉아 마신 캔맥주만 떠올랐지만…… 그래도, 그래도, 러시아 문화사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기 위한 우리의 끝없는 성찰에 대한 요구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쯤 위로를 받아 봅니다.

그 허구성과 상대성에도 불구하고 미학적인 언어를 중시해 왔고, 그것을 사회적 현실에 맞서는 지속적인 방법으로 간주해 온 러시아의 전통은, 얄팍한 유흥성과 무분별한 이미지의 범람이 하나의 문화적 규범이 된 시대에 역설적으로 문화의 구성적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가령, 겸손의 가치와 보편적 책임감을 강조한다든지,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것, 삶의 불완전성 앞에서 절망하지 않는 태도나, 심지어 삶의 기괴한 굴곡에 직면해서도 일관된 순진할 정도로 진득한 자세 등은 회의주의나 문화의 쇠퇴를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 러시아 문화는, 서로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세워졌던 과거의 이데올로기들이 남겨 둔 다양한 문화적 이미지들을 고찰함에 있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성찰하는 주요한 참조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_ 『러시아 문화사 강의』, 37쪽.

- 편집부 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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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공항의 석양을 맞으며 러시아 문화의 향기에 흠뻑 빠져 졸다가 셔터가 눌렸다나 어쨌다나…….
러시아 문화사 강의 - 10점
니콜라스 르제프스키 엮음, 최진석 외 옮김/그린비
2011/09/20 09:00 2011/09/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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