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커피밭 사람들』을 다 읽고 나서, 조금은 엉뚱하게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운명, 인연, 기적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몇 개의 징한 인연의 역사에 대한 징한 보고서입니다. 이런 인연, 이런 우정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기록입니다. 저자 임수진 선생님은 거듭 말합니다. ‘운명’이었다고. 왜 하필 코스타리카이며 커피밭 일꾼들이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운명이 이끈 인연이었다고 말할 뿐. 운명, 이라고 하면 퍽 로맨틱한 느낌도 듭니다. 커피와 운명이라니 더욱 로맨틱한 조합이지요. 하지만 책장을 한 번 닫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책장을 열었을 때 만난 단어 ‘운명’은, 제게 또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사진 한 장이 발단이었다. 박사과정에 들어온 후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를 시작하겠다고 맘먹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던 즈음이었다. 라틴아메리카 관련 수업에서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고 그 사진이 그만, 내 마음 깊이 들어와 버렸다. 커피를 따는 사람들이라 했는데, 그들의 하루 임금이 우리가 즐겨 마시는 커피 한 잔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했다. 운명이랄까…….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를 한다 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어찌 그 먼 곳을 연구지역으로 택했느냐며, 호기 부리지 말고 차라리 가까운 동남아시아 쪽으로 대상지역을 바꾸라 종용하던 차였다. 그런데 사진 한 장,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와 '커피'라는 이 두 단어가 섞이면서 내 마음속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21쪽)

이 '운명'이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다시 읽었을 때, 과연 그렇다고 납득하게 된 것입니다. 운명이라는 것은 딱히 기적도 아니며 단지 그리 될 수 있어서 그리 된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리 될 수 없는 데 그리 되는 것, 그건 기적이겠지요. 반대로 그리 될 수밖에 없어서 그리 된다면, 그건 예정론이겠습니다. 아마 임수진 선생님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서 그들과의 인연이 있을 수 있겠다는 운명을 읽었던 게 아닐까요. 즉, 그 인연이 지금 여기 없다고 해도, 그것의 있음직함에 기대어 떠난 행로. 그리고 과연 운명인 모양입니다. 그들은 이웃에 마실 온 사람을 맞아들이듯, 우선 있는 살림과 없는 살림으로 밥부터 차려냅니다. 커피밭 주인 도냐 베르타와의 만남이 그랬고 두 살부터 커피를 땄다는 새댁 엘레나와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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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방법으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

데이비드 하비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모든 시공간이 마치 ‘지금 여기’의 지평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오늘날을 ‘시공간 압축’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이 말을 곳곳의 시공간에 흩어져 있던 우리 운명의 매듭인 인연들이 점점 더 한 점으로 응축되어 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 봅니다. 과거라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혹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결국 헤아릴 수 없었을 인연을 만날 수 있게 된 세상, 그런 운명은 분명 충일감의 운명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같이 ‘지금 여기’에 모여 있을 터인 인연인데, 그 중 어느 인연은 설명 없이 쉽사리 이해되질 않습니다. 잘 이어지질 않습니다. 그 또한 우리 운명에 속하는 인연인데 말이지요.

그들이 따는 커피는 유럽으로 미국으로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아는 세상은 중국제 소형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의 범위를 넘지 못하였다. (134쪽)

‘커피’를 매개로 만나고 있지만 그 커피의 쓰디씀을 음미하는 한 쪽이 있고, 그 쓰디씀을 자기 몸의 고된 노동으로 견뎌내야 하는 한 쪽이 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혹은 너무 딱 맞아 떨어지는 현실. 쓰디씀을 견디는 쪽은 쓰디씀을 음미하는 쪽을 ‘북쪽’이나 ‘저쪽’이라 부르며 자기가 지금까지 일군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으로 꿈꾼다지만, 쓰디씀을 음미하는 쪽에게 그들은 외계인처럼 낯선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 운명은 편도 운행만 하고 인연들은 인수·합병되거나 통폐합됩니다.

늦은 저녁 카페 로스산토스 천장 모서리 한켠에서 루이 암스트롱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냐고, 얼마나 아름답냐고 절규하듯 노래를 부른다. 아름다운 세상, 그래 아름다운 세상. 그런데 우리들 세상만이 아니고, 그들의 세상도 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좀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타라수 커피를 마시는 사람뿐 아니라, 타라수 커피를 따는 사람들의 세상도 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내가 사는 동안 언제라도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이곳 타라수에서의 시간을 아름다운 시간으로, 이곳 타라수를 아름다운 세상으로 같이 추억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정말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타라수 카페 로스산토스에서 마지막 노래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를 주문처럼 외워 본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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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하고 고된 세월 속에 웃음을 잃지 않고 시린 삶의 마디마디 눈물까지도 웃음으로 살아 내는 그들 삶의 내공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살아 준, 커피밭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 임수진, 「에필로그」 중, 『커피밭 사람들』, 2011,
그린비

미국으로 넘어가 연락두절이 된 프레디와 남겨진 가족. 뼈가 부러져 다시 일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예르모와 둘째를 가졌다는 그의 아내 엘레나. 우리에게 운명은 더 좋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려 한없이 친절하기만 한데, 그들 운명에는 하다못해 기적 한둘쯤은 있어야 조금이나마 공평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온갖 신산고난으로 삶의 내공은 저보다 갑절은 쌓았을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니, 택시기사 후안이 “그를 잊지 말라고” 했다는 말만 머릿속을 맴돕니다.

- 편집부 김효진
커피밭 사람들 - 10점
임수진 지음/그린비
2011/09/22 09:00 2011/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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