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이 책은 타이먼 스크리치의『江戶の身體を開く』(Opening the Edo Body; 高山宏譯, 作品社, 1997)를 번역한 것이다. 제목만 언뜻 보면, 18세기 에도 시대의 해부학사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주제는 ‘여는 것’(opening), 특히 몸의 엶(opening), 절개이며, 에도 시대의 난학(蘭學)과 의학에 의한 ‘해부’(解剖)다. 유럽과 일본, 미술사와 도해(圖解), 도상학(iconography)과 문헌학, 칼과 가위, 해부의사와 화가와 조각가, 신체지리학, 해부도와 풍경화 등 다양한 시점에서 풍부한 문헌과 도판을 비교하며 에도 사람들의 신체관과 해부도의 관련성을 해부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에도 시대 일본인들이 서양의 기술이나 도구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에도 문화의 심부에 있는 것을 열어 나간 다양한 경위를 탐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마디로 18세기 에도 시대의 해부학을 통해 본 에도의 문화사다.

저자의 에도 문화론은 ‘전체로서 살아 있는 것’을 그대로 인식하려는 일본의 전통적 지식과 ‘열어서 안을 드러내고 구석구석까지 빛을 비추려는’ 유럽의 근대 지식의 만남, 즉 ‘해부’를 통해 전개된다. 저자에 따르면, 1632년에 렘브란트의 저 유명한「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해부 그 자체를 그린 것도, 해부학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도 아니다. 인체를 열어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신을 탐구하는 행위를 상징하며, 툴프 박사가 지금 막 절개하려는 손 그림은「이사야서」의 “야훼께서 만국 앞에서 그 무서운 팔을 걷어붙이시니”라는 순간의 메타포라는 것이다. 하지만 100년 후인 1732년에 요한 쿨무스가 저술한『타펠 아나토미아』(당시 일본에 수입됨)의 속표지 그림에는 분명히 해부실이 그려져 있다. 스탠드 위에는 해부도구가 놓여 있고 높은 책장 옆에는 해골이 전시되어 있으며 메스를 든 레이디 아나토미아와 하녀가 미소를 짓고 있다. 해부실 앞쪽에는 인간의 뇌와 장기를 담은 스탠드도 그려져 있어, 이 시기에 해부는 이미 신의 손에서 인간의 손으로 거의 완벽하게 이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듯 유럽 사회가 내세운, 신의 섭리에 의거한 인체 해부의 사상과 기술을 에도 시대의 일본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시 일본 사회에는 수많은 부처와 신들은 있었으나 신의 섭리와 같은 것은 없었고 ‘합리성’이 신과 인간을 연결한다는 사고방식도 없었다. 따라서 ‘과학의 메스를 휘두르다’는 말로 집약되는 합리성에 의한 자연과 인체에 대한 탐구심은 희박했다. 그런 일본 사회에서 야마와키 도요에 의해 해부 기술을 향한 분위기가 싹텄으며, 스기타 겐파쿠에 의해 해부 기술은 거의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일본 사회는 왜 그렇게까지 급속하게 인체 해부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것은 단순히 의술의 발전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난학의 근저에 깔린 서양 학술의 과학적 인식 때문이었는가? 아마도 저자는 이 점에 호기심을 발동하여 인체 해부를 둘러싸고 일본인들이 보인 이상한 열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하고 검증한 것 같다.

어쩌면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터이다. 일본인들,특히 근세의 무사들에게는 하라키리(切腹), 즉 할복이라는 특이한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배를 절개하여 내장을 꺼내는 일 따위가 각별한 행위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것이다. 할복은 에도 시대 초기까지는 분명히 무사에게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방식이었을 테지만, 에도 중기 이후에는 거의 의식적인 작법으로 변해 갔다. 할복은 영주나 상관이 내리는 판정이기 때문에 할복이 결정되면 그 작법에 따라 죽어야 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도 중기 이후에는 단도 끝으로 배를 찌르는 순간에 가이샤쿠닌이라는 사형 집행관이 등 뒤에서 날쌔게 목을 쳤다. 시대가 좀더 내려오면 단도조차 사용하지 않고 부채가 사용된다. 이른바 오우기바라(扇腹)다. 저 유명한 18세기 초의 아코 의사(赤穗義士)들조차도 사형 의식을 감독한 모리한(毛利藩) 영주로부터 처음 전해 받은 것은 쥘부채였지만, 이번은 특수한 사정이 있으니 단도를 사용하라는 명령이 처형 직전에 내려져 단도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요컨대 할복은 에도 시대의 일본 사회에 해부학을 수용하게 하는 선도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의술은 어떠했으며, 특히 외과는 어떠했는가? 그러한 것이 일본 사회에 있기는 했는가? 그것은 없지는 않았지만 외과라 말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로 내과와 외과의 구별이 없었다. 내과는 ‘본도’(本道), ‘ 본과’(本科)였으며 외과는 보조 의술로 취급되었다. 데라지마 료안의『화한삼재도회』에는 의술에 관계되는 여러 직종이 열거되었는데, 외과의사는 침술사, 안마사 등과 같이 준-의료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 요컨대 마취를 몰랐던 당시 일본인들은 어지간한 호걸이라면 몰라도 몸을 절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실은 사람들은 사체를 절개하고 살아 있는 인간을 ‘절개하는 의사’에게 스플래터 영화를 보는 호기심과 공포심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인체 내부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지옥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저 유명한『고마치 변상도』(小町變相圖)에서와 같이 아무리 아름다운 처녀라 해도 늙어 빠지면 그 자태가 기괴해지고 이윽고 백골이 된다는 데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그러나 거기에는 괴기함은 있어도 합리성은 없다. 죽은 자로 모습이 변해 가는 것은 아귀나 요괴가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사태는 난학이 일본에 전래됨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에도 시대의 일본 사회에 난학이 끼친 영향은 실로 여러 방면에 걸쳐 있지만 처음부터 인체나 신체에 관한 관심이 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1774년에 스기타 겐파쿠, 마에노 료타쿠, 가쓰라가와 호슈와 같은 난방의(蘭方醫)들이 ‘해부란 사람의 몸을 절개하여 조사하는 것’이라 크게 선전하며『해체신서』를 내기에 이르렀을까?

16세기 말기에 일본인들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감탄했다고 하는, 유럽에서 들어온 지구의와 세계 지도를 통해 일원적 세계관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시바 고칸은 평면의 세계가 입체로 된 데 이상하리만치 강한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지구의를 만들었다. 1788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세계 지도는 지구의가 되었을 뿐 아니라 지도 작법에 따라 지도 주변에 각지의 인종을 그리는 형식이 있었다. 이는 유럽이 노예무역을 개시하며 대(大)항해 시대를 연 무렵부터 나타난 습관으로 일종의 유럽형 중화 사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일본인은 이를 보고 놀랐다. 물론 서양의 세계 지도에 그려진 인종이 페르시아 사람인지, 투르크 사람인지, 아프리카 사람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산해경』과 지옥도, 옛날 이야기 등에서 일본인들이 들어온 선계나 봉래산과 여인국에 사는 인물들이었다. 『화한삼재도회』나 니시카와 조켄(西川如見)의『사십이국인물도설』(四十二國人物圖說)이 그런 인종들을 그렸지만, 거기에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다. 특히 슌코엔 하나마루(春光園花丸)가 1799년에 찍어낸『회본이국일람』(繪本異國一覽)에는 ‘시베리아’(伯齋亞)나 ‘실론’(錫蘭島)의 인종을 쌍두인(雙頭人)이나 식석인(食石人)과 같은 인종으로 변형해서 그렸다. 스기타 겐파쿠와 함께『해체신서』번역에 참가한 오쓰키 겐타쿠조차도『육물지고』(六物志稿)에서 인어국을 여전히 확신했던 것이다.

이윽고 이러한 이인(異人)의 세계가 현실의 일본 사회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나가사키에 온 네델란드상관원들과 많은 네델란드인, 그밖의 외국인들이 에도에도 찾아왔다. 1776년 에도에 들어온 스웨덴 출신의 의사이며 식물학자인 카를 툰베리는 니혼바시 근처 객관에 체류할 때,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핥듯이 쳐다보았다고 고백했다. 이인들이 눈에 익숙해짐에 따라 일본인들의 관찰과 추리도 점점 그럴싸해져 갔다. 사토 주료의『주료만록』은 기후의 차이로 인한 신체의 변화에 주목했고, 혼다 도시아키(本田利明)의『서역 이야기』(西域物語)는 런던과 에조지(蝦夷地, 홋카이도)의 위도가 같은데도 런던 사람들이 야만이 아닌 문명을 만들어낸 것은 대단하다고 크게 평가했다.

그러한 가운데 남만인(南蠻人)·홍모인(紅毛人)들의 눈빛, 피부색, 팔다리 길이, 머리카락을 분석하기 시작하며 점차 서양인들의 몸짓이 이상하다는 점에 주목해 갔다. 예컨대 서양인들은 소변을 보는데 한쪽 발을 든다든지 구두를 신는 것은 그들의 뒤꿈치가 말처럼 지면에 붙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리하여 일본인들의 관심은 마침내 인체 내부를 ‘여는 것’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에는 도판이나 기구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일본인들이 나이프나 서양의 가위와 메스에 어떻게 놀랐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예컨대 고토 리슌이『오란다 이야기』에서 네덜란드 칼은 “무엇이든 잘라낸다”라고 쓴 것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점에 주목한 사람은 아마도 저자가 처음일 것이다. 저자는 절삭력이 있는 기구의 모양이나 날카로움을 본 일본인들이 서양에서는 ‘신체를 여는 것’이나 ‘의술은 절개하는 것’이 중시된다는 점을 이해해 갔으리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에도의 몸’은 일본인들의 신체 관념과 함께 여기서 일제히 열려 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에도의 몸’이 어떻게 오픈되었는지 하는 시각에서 에도 시대의 일본을 ‘해부’하는 저자의 방법은 참으로 참신하다.


타이먼 스크리치는 1961년 영국의 버밍엄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현재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연구원(SOAS) 교수로서 일본 미술사·에도 문화론을 담당하면서 신미술사학(New Art History)의 방법론과 광학·기계·신체론이라는 시점에서 새로운 에도 문화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大江戶異人往來』(1995),『 大江戶視覺革命』(1998)『, 春畵』(1998),『 The Western Scientific Gaze and Popular Imagery in Later Edo Japan』(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등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영어판으로 출판하지 않고 일본어 역자의 도움을 받아 일본어판으로 먼저 출판한 것이다. 그 연유를 알고서, 역자는 일본어판을 원본으로 삼아 번역하면서 저자가 제공한 영어 원고를 대조하고 참조했다. 역자가 일본어판을 원본으로 삼은 이유는, 이 책에서 인용된 에도 시대의 수많은 문헌과 도판을 설명하는 데, 역설적이지만 영어 원고의 ‘중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에도 시대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저자 자신이 일본어 역자의 “번역문은 내 원문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책의 맺음말에서 고백한 점도 역자가 일본어판을 원본으로 삼은 이유 중 하나다. 역자는 한국 독자의 편의를 위해 상세한 역주를 달고 여기에 등장하는 에도 시대 인물들의 간략한 인물사전을 덧붙였다. 번역 과정에서 의문스러운 부분은 일일이 저자에게 확인을 거쳤으며, 일본 전통 시나 고문은 되도록 체제를 맞추면서도 문학적인 맛을 살리려고 애를 썼다. 또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난학의 수용이나 그것이 일본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일본 근현대사 연구자인 박환무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번역상의 모든 책임은 역자에게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끝으로 어려운 편집과 교정을 맡아준 그린비 편집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07년 12월 12일
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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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표지 +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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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_접근의 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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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_드러나는 신체

인간은 하나의 프로세스 | 서양의 충격 | 그들은 정말로 베었던 것일까 | 해부와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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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옮긴이의 글


에도 시대 인물 사전 + 찾아보기 +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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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몸을 열다
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도서출판 그린비 | 갈래 : 인문, 역사

발행일 : 2008년 1월 15일 | ISBN : 978-89-7682-502-5
신국판 변형(149X220mm)|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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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14:19 2008/01/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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