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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에 '못말리는 간호사'를 보면서 사사키 노리코(SASAKI NORIKO)를 처음 알게 되었죠. 그 때부터 사사키 노리코의 팬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월관의 살인』이 나오자마자 책을 구입했습니다. 추리만화라는 장르 속에서도 사사키 노리코 특유의 유머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화의 주인공인 소라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차를 한 번도 타 본적이 없습니다. 기차뿐만 아니라 전철과 같은, 기차 형태의 '탈것'은 전혀 타보지 못한 것이죠. 이유는 어머니에게 있습니다. 어머니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라미가 기차 타는 것을 막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소라미는 혼자가 됩니다. 쓸쓸해하고 있는 소라미에게 어느날 외할아버의 변호사라는 분이 오셔서 '월관'이라는 곳으로 초청합니다. 단 하나뿐인 혈육인 외할아버지가 소라미를 보고 싶어 하신다면서요. 근데 월관을 가기 위해서는 '겐야'라는 기차를 타야 합니다. 처음 타보는 기차라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소라미. 그런데 이 기차 안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기차 안에서의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열차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만화 안에서 나오는 기차는 바로 그 '특급열차'입니다. 열차광인 외할아버지가 구입해 온 것이죠. 그리고 만화의 결론 부분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소설을 연상케 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트의 작품뿐 아니라, 이 만화에서는 추리소설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패러디 해 놓았습니다. 『소년탐정 김전일』로 인해 우리에게 익숙한 '다잉 메시지'도 이 만화에서는 재미있는 패러디 요소로 작용합니다. 죽은 사람이 손에 쥐고 있던 목제 플라레일(모형 열차)은 순식간에 여러 명을 범인으로 몰고 가는 다잉 메시지가 됩니다. 가령 플라레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모형 철광'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가, 다시 기관사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플라레일이 삼(杉)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는 '스즈이'(杉津)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던지, 다잉메시지가 얼마나 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패러디라고 할까요… 이 외에도 수많은 패러디가 있습니다. 김전일의 레이아웃에 잘 등장하는 '범인 얼굴 단독 박스 처리' 기법도 활용되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추리만화의 패러디를 찾는 것도 이 만화를 읽는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화에서 가장 재미있게 묘사되는 것이 '철광', 바로 '철도 오타쿠'입니다. 철광은 이 만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소재입니다. 열차에 탄 사람들 중 소라미를 제외하고는 모두 철광입니다. 이들은 철광으로서 아주 '우수한 활동'(?)을 하였기에 소라미의 외할아버지(킹 오브 철광)의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가령 수집 철광은 철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합니다. 겐야 안에서도 계속 뭔가를 훔쳐서 가방에 넣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시각표 철광은 일본 철도 전 구역의 시각표를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모형 철광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30평짜리 단층 집 안에 디오라마 선로를 550Km나 깔아놓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철광이 등장합니다. 

'오타쿠'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우리는 만화에서 묘사된 철광들의 모습에서 오타쿠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철광들은 모두 자신들이 철광이라는 것을 부정합니다. 아마도 오타쿠에 대한 사회의 시선 때문이겠죠. 그들이 자신이 철광이라는 것 부정하면서 사용하는 예들이 재미있습니다. 수집 철광은 "철광은 엄마가 사준 싸구려 옷 밖에 안 입는데 내가 입은 것은 메이커"라고 하면서 자신이 철광임을 부정합니다. 사진 철광은 "철광은 결혼은커녕 여자친구도 없는데 자신은 결혼을" 했다 라면서(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줍니다) 철광임을 부정합니다(결국 이혼 ‘당했’더군요). 우리가 흔히 오타쿠 하면 떠올리는 것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친구도 없고, 아무렇게나 입은 오타쿠의 모습. 사시키 노리코는 오타쿠의 모습을 코믹스럽게 묘사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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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노리코의 모든 만화들이 그렇지만, '월관의 살인'은 배경 처리 컷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가령 사진 철광이 이혼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사진을 시기 순으로 나열해 배치하면서 아내의 표정이 점차 달라짐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화사하게 웃던 아내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짜증내는 표정으로 바뀝니다. 철광 생활과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죠. ^^

그러나 『월관의 살인』에 나오는 오타쿠는 보통의 음울한 분위기와는 다릅니다. 사시키 노리코는 철광을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보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헤븐』때에도 그랬고, 『못말리는 간호사』 때에도 그랬지만,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거침없이 하지만, 불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인생의 유머스러움이 묻어난다고 할까요? 평범한 삶과는 약간 다른 길을 택한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철광은 우리가 애써 참고 있는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철광. 사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월관의 살인』은 사사키 노리코 작품을 압축해 놓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적은 분량이기도 하고, 사사키 노리코의 원숙한 연출력과 코믹함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갈수록 풍부해지는 묘사와 원숙미는 사시키 노리코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 편집부 진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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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8 12:09 2008/01/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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