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원본은 질베르 시몽동의 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Paris, Aubier, 1989)이다. 이 책은 초판이 1958년에 나온 이후, 1969년, 1989년, 2001년에 재출간되었다. 1989년판은 그 이전 판본들과 달리 John Hart의 서문과 Yves Deforge의 발문이 덧붙여진 증보판이다. 시몽동의 딸이자 현재 시몽동 저서의 저작권자인 나탈리 시몽동(Nathalie Simondon)은 초판본에 충실하게 저자인 시몽동의 글 이외에 다른 사람의 서문이나 발문, 어떠한 주석이나 해제도 덧붙이지 말 것을 번역의 조건으로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따라서 이 번역본에서는 John Hart의 서문과 Yves Deforge의 발문이 생략되었고, 애초에 기획했던 옮긴이 해제도 넣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저서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되는 상황에 대한 양해를 구하여, 번역으로 인한 오해를 줄이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옮긴이 주를 덧붙이고, 시몽동과 이 책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 정도로 해제를 대신한 옮긴이의 말을 싣는다.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사유하기 위한 현대 기술철학의 고전
옮긴이 김재희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는 기술적 대상들 고유의 존재 양식, 기술적 대상들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기술성 자체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몽동은 기술을 대하는 문화의 편견, 문화로부터 소외된 기계들의 열등한 지위를 문제적 상황으로 지적하고, 기계의 본성, 기계들 사이의 관계, 기계들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기술과 문화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계들은 마치 이방인처럼 인간의 문화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적인 것과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기술과 기술적 대상들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보면, 사실 기계들도 인간처럼 발생과 진화를 겪는 자기 나름의 존재 방식이 있고, 기계들이야말로 인간의 동등한 협력자이며 기술적 활동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위 아래로 소통시키고 조절할 수 있는 문화적 매개자라는 것이다.

시몽동에 따르면, SF 영화의 단골 주제인 기계와 인간의 대립, 인간을 위협하는 기계라는 표상은 허구적인 것이며 거짓이다. 이는 자연 대 문화, 자연 대 기술, 문화 대 기술이라는 잘못된 대립들에 근거한다. 전통적인 이 대립들은 인간과 기계의 진정한 상호협력적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및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기술적 활동의 본질이 규명됨으로써 해체된다. 시몽동은 특히 당시 망각한 위력을 과시하며 로봇공학과 인간공학에 잘못된 기초를 제공한 노버트 위너(Nobert Wiener)의 사이버네틱스를 비판한다. 그 대신, 오직 로봇만이 아닌 모든 종류의 기술적 대상들을 포괄하는 보편적 기술공학과 기계학(mécanologie)의 창설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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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기술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기계 사이에 세워진 대립은 거짓이며 근거가 없다. 그건 단지 무지나 원한만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대립은 값싼 휴머니즘을 표면에 내세우면서 인간의 노력들과 자연의 힘들로 풍부한 실재를 감추고 있는데, 이 실재야말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매개자들인 기술적 대상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김재희 옮김, 그린비, 2011, 10쪽

생명체와 기계를 동일시하고 자동 로봇만을 특권화했던 사이버네틱스적 관점과 달리, 정보 소통 역량에서 생명체와 기계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또한 자동화를 완전한 결정성이 아닌 비결정성을 지닌 준안정적 상태로 보는 시몽동의 관점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주종관계가 아닌 상호협력적 관계로 보게 한다. 이는 인간적 문화 속에서 기계가 겪는 소외와 노예화를 극복하게 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대체하며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오해된 기계들 가운데서 오히려 인간 고유의 역할을 확보하게 하는 의미를 갖는다.

 제 1부
기술적 대상들의 독특한 개체화, 그 발생과 진화 과정, 기계들의 본성과 고유한 존재 방식을 해명한다. 기술적 대상은 물리적・생명적・미학적・종교적 대상 등과 구분되는 자기 고유의 독특한 존재 양식과 개체화 작용을 갖는다. 기술적 대상의 발전은 인간의 필요, 노동, 사용,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닌 자기 고유의 내적 필연성을 변화의 원천으로 갖는다. 기술적 대상은 내적・외적 환경(기술적-자연적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추상적 기계(구성요소들의 부정합적인 조합)에서 구체적 기계(구성 요소들의 상호협력적 정합성을 갖춘 기계)로 ‘구체화’의 과정을 거쳐 개체화하며, 또한 ‘요소 → 개체 → 앙상블 → 다시 요소’의 방식으로 세 수준들 사이의 불연속적이면서도 연속적인 역사적 ‘이완의 법칙’을 따라 기술성을 운반하며 진화 발전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발명과 조직화 작업은 기술적 대상들 고유의 발전과 ‘공 - 진화’하며, 인간과 기계가 동등한 위상에서 상호협력적으로 만나는 ‘인간 - 기계’의 앙상블이 구현되어 간다. 마치 기계학을 예시하기라도 하듯이, 다양한 기계들에 대한 놀랍도록 전문적이고 섬세한 현상학적 분석이 돋보이며, 시몽동의 독창적인 개념들을 통해 지금껏 의식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 보지 못했던 기술적 대상들 특유의 존재 양식이 드러나고 있다.  

제 2부
기술적 대상들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한다. 장인과 엔지니어로 대표되는 기술의 소수적 지위와 다수적 지위 사이의 대립, 이에 근거한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 시골인과 도시인, 아이에 대한 기술교육과 어른에 대한 기술교육, 실천적 지식과 이론적 지식 등의 대립과 차별을 지적하고, 이를 넘어서 양자를 통합하고 문화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새로운 ‘반성적 기술공학’의 필요성이 제시된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발전해 온 역사적 양상들에 대한 기술론적 해석, 인간을 대체한다고 간주된 기계 앞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감의 허구성, 비결정성과 정보 감수성을 지닌 기계의 열린 본성, 정보와 변환의 관점에서 본 인간과 기계의 정도 차이와 본성 차이, 인간과 기계의 상호 동등한 협력적 관계, 자동성과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비판 등 중요한 테제들이 다루어진다.

제 3부

앞의 논의들과 수준이 달라진다. 앞에서는 개체로서의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방식과 그들의 인간에 대한 관계가 다루어졌다면, 여기서는 그러한 기술적 대상들로 현상하는 기술성 자체의 본성을 전체론적・관계론적・발생론적 관점에서 밝힌다. 기술은 인간과 세계가 관계 맺는 여러 양상들 중 하나로서, 비-기술적인 다른 관계 양상들, 즉 마술, 종교, 미학, 과학, 윤리, 철학 등과의 전체적인 관계 속에 자리매김되면서 그 발생적 본성이 설명된다. 여기서 핵심은 문화의 ‘위상들’과 ‘위상변이’에 대한 이론이다. 원초적인 마술적 위상의 위상변이로부터 기술과 종교가 동시에 발생하고, 다시 기술과 종교가 각자 위상변이하면서 과학과 윤리의 발생을 조건짓는다. 미학은 기술과 종교의 대립을 중화하고 양자를 소통시키며, 철학은 이 모든 분화와 변이의 발생적 관계들을 총체적으로 직관하면서 기술과 종교 이후의 모든 대립들(과학과 윤리, 이론과 실천, 자연에 대한 기술과 인간에 대한 기술 등)을 새롭게 통합할 의무를 갖는다. 기술은 종교와 대립적이지만 동등한 수준의 위상에 속하며, 과학과 윤리의 발생적 조건으로서 선행한다. 위상과 위상변이의 존재론적 문화론적 의미, 인간과 자연의 관계 및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기술이 갖는 매개적 역할, 기술적 사유와 비-기술적 사유들 간의 상호 관계, 그리고 기술론에 근거한 개념・이념・직관의 인식론적 차이 등 깊이 있는 형이상학적 통찰들이 가득하다.

결론
총괄적인 정리보다는 새로운 논의들이 더해진다. 기술적 조작의 본질을 은폐하는 노동 개념의 불충분성에 대한 지적, 경제적 소외를 넘어서는 새로운 소외 양상으로서의 기술적 소외와 그 극복 방안, 기술적 대상들을 매개로 기술적 활동에 입각해서 조직화될 수 있는 새로운 집단성과 기술적 연결망, 사회적인 것과 개체심리학적인 것을 넘어서는 개체초월적 집단적인 것 등, 맑스주의의 혁명성을 뛰어넘는 매우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사유들, 우리 시대의 테크놀로지 문화를 예견하고 그 이후의 방향성까지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놀라운 통찰들이 덧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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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인간의 존재, 그리고 이 인간의 세계 내 존재 방식, 이 모두의 앙상블과 관련해서 기술적 대상들의 발생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김재희 옮김, 그린비, 2011,
같은 책, 220쪽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는 생태주의적 기술공포증이나 테크노크라트적 기술만능주의의 양극단과 거리를 두면서, 또한 사용과 노동 중심의 인간학적 경제학적 이해를 넘어서, 기술성과 기술적 대상들을 그 고유한 존재론적 본성대로 사유하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 맺음을 상호 동등한 위상에서 고려하며, 기계들의 해방과 인간 해방을 동시에 숙고하는 놀라운 철학을 보여 준다. 보편적 기술공학을 창설하고 불균등한 사회의 내적 공명과 문화의 조절 능력 회복을 자신의 임무로 떠맡는 이런 철학의 등장은 그야말로 어두운 밤하늘의 혜성과 같다. 유비쿼터스적 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로 특징지어지는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 기술과 기계들을 사유의 대상으로 정면에서 다룬 본격 기술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기술사회학자들이 주도하는 기술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들은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이들은 크게 ‘기술결정론’(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변화를 결정한다), ‘기술중립론’(기술의 가치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엔지니어와 같은 인간이든 기술적 인공물과 같은 비인간이든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행위자 개념을 통해서 사회가 인간-비인간의 행위자 네트워크로 구성된다는 입장)을 포함한 ‘기술의 사회구성주의’(기술과 사회의 상호규정과 동시적 변화를 강조) 등으로 구분되는 입장을 취하며 주로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논의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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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1889 ~1976)
존재론적 기반 위에서 기술에 관한 강도 높은 철학적 논의를 전개한 이는 아마도 하이데거 이후 시몽동이 유력할 것이다. 그것도 인간을 닦달하고 부품으로 전락시키면서 비인간화와 존재 망각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기술을 비판한 하이데거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오히려 기술과 공존하는 현대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철학자로서 말이다. 적어도 이 책은 기계들의 발전과 진화가 어떻게 오늘날의 연결망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지, 또한 이 연결망이 어떻게 개체화된 주체들의 개체초월적인 역량을 일깨워 사회 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집단화의 가능성이 될 수 있는지, 나아가 철학이 왜 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바로 세워야 하며 이를 통해서 기술적 문화를 갱신하고자 애써야 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공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기계들에 대한 정밀한 분석에서부터, 기술 문명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이해, 예술과 종교의 본질을 꿰뚫는 깊은 시선, 전체를 아우르는 형이상학적 직관과 정치적 통찰에 이르기까지 시몽동이 이 책에서 보여 주고 있는 역량은 실로 놀랍다. 비록 50년대 말의 기술적 상황에서 쓰긴 했지만, 시몽동은 이 책을 통해서 ‘오히려’ 기술이 존재와 정치의 주요 변수로 등장한 우리 시대에 제기된 물음들, 즉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존재 전체를 기술과 더불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존재론적인 물음, 그리고 “기술은 과연 구체적인 정치적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물음에 대해,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 책의 영어번역본이나 일어번역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시몽동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서 이 책의 번역에 대한 수정도 요구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번역의 오류와 관련된 독자 여러분의 제안은 언제든지 환영한다(twitter : @Jnooroo).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 10점
질베르 시몽동 지음, 김재희 옮김/그린비
2011/10/12 09:00 2011/10/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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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eopord 2011/10/17 19:38

    책이 기대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

    • 그린비 2011/10/18 11:21

      이 책을 계기로 시몽동과 그의 철학이 좀더 알려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 leopord 2011/10/26 02:24

    1주 전쯤 사놓고서는 표지만 만지작거리고 있다지요. 언제 읽을 수 있을지... :)

    • 그린비 2011/10/26 10:26

      leopord님 천천히 읽는다고 쇠고랑 차는거 아닙니다잉~ 경찰서 가는거 아니에요잉~
      찬찬히 꼭꼭 씹어먹는다는 느낌으루다가(!)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잉~. 지금 이렇게 정한겁니다~ ^^;;;

    • leopord 2011/10/26 17:22

      아니, 애정남이! (!!) 아니, 그린남인가... ㅎㅎㅎ

    • 그린비 2011/10/26 18:08

      뇨호호호~! 그린비 애정남으로 불려주세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