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전날 특별히 먹고 잔 것도 없는데, 울다가 잠든 것도 아닌데 얼굴 전체가 퉁퉁 부어 있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출근하자마자 인사말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미선 씨 어제 뭐 먹고 잤어요?(혹은 미선 씨 어제 울었어요?)”라는 말이다. 그런 내게 죽기 전에(읭?) 소원이 있다면 바로 ‘남부럽지 않은 v라인의 얼굴을 가져보는 것’이랄까.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생전에 당뇨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고모할머니 역시 당뇨로 고생 중이신데, 틈날 때마다 당뇨에 좋다는 질경이풀을 뜯곤 하신다. 내가 허리 뒤쪽이 아프다고 할 때 부모님께서 가장 많이 걱정하시는 것이 바로 ‘신장’이다. 나는 몸 상태가 조금만 나빠져도 몸이 퉁퉁 붓고, 얼굴색이 (리얼!) 흙빛으로 변하는데 부모님 말씀으로는 다 신장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장 조심해라’라는 말을 하도 듣다 보니, 나도 들은 풍월로다가 “제가 원래 신장이 좋지 않대요, 가족 병력이 신장 쪽으로 많아요”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그런데, 나 ‘신장’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는 하는 걸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보야, 문제는 신장이야!

신장의 수(水)기운은 공포를 주관한다. 신장은 겨울의 기운이고, 겨울은 극도의 응축력이다. 사람이 공포에 질릴 때 신장의 기운을 쓰게 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임상의학적으로도 우(右)신에는 성호르몬이, 좌(左)신에는 극단적 상황에서 헐크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아드레날린이 저장되어 있다. 신장이 약하면 작은 두려움에도 중심을 잃게 된다. 현대인을 지배하는 정체 모를 불안의 정서 역시 신장기운의 저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거꾸로 신장이 튼실하면 인생에 대한 성찰적 능력이 커지게 된다. 그것이 심장의 ‘신’으로 이어지면 그게 바로 심신 혹은 정신의 축이다 ― 유형과 무형 사이의 능동적 교섭! 그리고 그것이 곧 존재의 무게중심이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56~257쪽(강조는 인용자)

신장이 위축되면 심장에 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심장의 불은 물이 공급되어야 정미롭게 타오를 수 있다. 만약 신장이 물 공급을 중단해 버리면 불은 제멋대로 타버린다. 열이 위로 뻗치고 정신줄을 놓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킨 건 심장인데, 알고 보면 신장이 키를 쥐고 있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43쪽

처음엔 ‘신장’에 대해 공부를 해보려고 했던 것인데, 자연스레 내 ‘존재의 무게중심’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겁 많고, 주변의 말에 중심을 잃고 잘 흔들리고, 깊게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바보야, 문제는 신장이야!”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정말이다. 문제가 신장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틈만 나면 ‘왜 이렇게 겁이 많은 걸까, 눈물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중심 없이 왜 이렇게 흔들리기만 하는 걸까’ 생각하기 바빴다. 그게 문제에 대해 ‘깊게’ 성찰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했을 때 내 삶의 무게중심도 함께 커질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결과적으로 내 ‘삶’의 무게보다는 ‘살’의 무게만 점점 커져갔지만……;;;). “신장이 키를 쥐고 있다”는 말은 이런 나를 두고 하는 얘기인 것만 같다.

만약 신장이 약하면 불안증세가 늘 따라다닐 테니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기가 어려워진다. 상사병으로 드러눕거나 눈동자에 얼이 빠진 상태가 이런 경우일 터.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58~259쪽

상사병을 비롯한 마음의 병은 심장이나 뇌에서 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는 또 신장이라고 한다. ‘화르륵’ 불타오르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쉬이 꺼져 버리는 나의 연애 패턴(그래, 나 ‘가벼운’ 여자다).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기는커녕, 혼자 길길이 날뛰다가 끝나버리곤 한다. 이차저차, 여차여차해서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일상과의 무게 조절에서 크게 실패한다(기우뚱). 사실 따지고 보면 연애뿐만이 아니다. 길길이 날뛰거나(조증), 한없이 우울해하거나(울증). 잔잔한 가운데 오는 기쁨, 평온한 가운데서 느끼는 즐거움 같은 게 내 일상에는 통 없었던 것 같다. 아, 참을 수 없는 나란 존재의 가벼움! 지긋지긋하다. ‘고작’ 신장 하나가 내 삶의 무게중심을 관장한다는 말이 조금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밑지는 셈 치고 신장을 한번 잘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의보감』에 나오는 신장의 모습.

‘신장’은 나의 새로운 ‘화두’

“신장이 안 좋대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정작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얼굴 붓는 불편’ 정도야 평생 감수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병원 갈 일만 없으면 다행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심지어 보험도 들었다. 나중에 큰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비싼 보험료마저 감당하게 만들었다. 그놈의 신장!

당뇨로 고생한다거나, 이식수술을 받을 일이 있지 않고서야 통 신경 쓸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신장’이 이젠 나에게 꽤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고작’ 신장 하나가 내 몸의 중심을 좌우하고, 내 삶의 중심을 좌우한다고 하니, 쉽게 넘길 수가 없다. 또 한 번 그놈의 신장!! 그나저나 내 몸속 깊은 곳에 있는 신장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 것일까?

요즘 사람들, 특히 10대·20대는 대체로 하체가 약하다. 하체를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적으로도 허벅지가 얇은 8등신이 기준이 되다 보니 더더욱 하체빈곤이 심각하다. 자연스럽게 신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불은 상체로 치성한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달아오르면서 망상 속을 헤매게 된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50쪽

몸에서 물을 관장하는 신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 물이 올라가지 못해 아래에 고이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처럼) 자주 붓고 관절염이나 자궁질환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때때로 생리통 때문에 아주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신장이 약한 나에게 딱 맞는 ‘양생’의 테마는, 동의보감에 따르면 ‘수승화강’이다. (신장으로부터) 물을 끌어 올려서 (심장의) 불이 활활 타게 만드는 것.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일단 하체를 많이 쓰면 된다. 제기차기, 자전거타기, 달리기, 108배 등등. 제일 좋은 건 ‘걷기’다. 걸음아, 날 살려라!는 말이 이 경우엔 참으로 적실하다. 규칙적으로 등산을 하는 것도 좋고, 아니면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주변 공간을 걷는 것도 좋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51쪽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굵기만 굵었지, 제대로 쓰는 일 없는 하체를 단련하라는 처방이 나에게 주어졌다. 사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신장이 안 좋으니, 이렇게 해보시오”라고 답을 정해 준 것도 아니다. 책에 적혀 있는 대로 나를 관찰하다 보니(신장이 안 좋았을 때의 증상이 지금의 내 상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신기할 따름이다. 신장이 안 좋으면 잘 넘어지고 이도 잘 썩는다는데 내가 정말 그렇다), 그냥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와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이 말하는 ‘치유본능’이라는 것이 정말 내게도 일어나게 된 것일까. 내 삶에 어떻게든 책임을 져 보고 싶다는 마음,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데 남들은 오죽하겠냐는 마음, 그렇지만 어떻게든 한번 ‘잘’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 이런 게 ‘치유본능’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그런 본능 같은 것이 일어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438쪽

- 편집부 김미선
2011/10/28 12:00 2011/10/28 12:0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576

  1. Subject: discount on Solid Proxies

    Tracked from discount on Solid Proxies 2014/10/10 03:05  삭제

    그린비출판사 :: 몸이 자주 부으면 신장 때문? - 나도 V라인이 되고 싶다!

  2. Subject: Read A lot more

    Tracked from Read A lot more 2014/10/14 02:15  삭제

    그린비출판사 :: 몸이 자주 부으면 신장 때문? - 나도 V라인이 되고 싶다!

  3. Subject: get A Promo code for solid proxies

    Tracked from get A Promo code for solid proxies 2014/10/16 03:05  삭제

    그린비출판사 :: 몸이 자주 부으면 신장 때문? - 나도 V라인이 되고 싶다!

  4. Subject: Solid Proxies coupon code

    Tracked from Solid Proxies coupon code 2014/10/21 00:29  삭제

    그린비출판사 :: 몸이 자주 부으면 신장 때문? - 나도 V라인이 되고 싶다!

  5. Subject: Solid Proxies Promo code

    Tracked from Solid Proxies Promo code 2014/10/25 15:05  삭제

    그린비출판사 :: 몸이 자주 부으면 신장 때문? - 나도 V라인이 되고 싶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마선아, 2011/10/28 15:00

    일단 야근을 좀 끊어... 아 그리고 책상에 엎드려서 장시간 자지도 말지어다..

    • 그린비 2011/10/28 22:03

      저도 둘다 찬성입니다~~ ㅎㅎ
      마선님과 조만간 맛난 걸 먹으러 가야겠네요~ ㅋㅋㅋ

    • 그렇다면 2011/10/28 22:09

      맛있는 걸 드시러 저기 어디 멀리까지 가야겠군요. 홍대니까 적어도 신촌까지는 왔다갔다 하셔야겠어요!

    • 그린비 2011/10/28 22:14

      엌. 하체단련을 위해 막 뛰어가야 하려나......요. 크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