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오리 노리나가에서 전쟁기 ‘국체론’까지 일본 내셔널리즘을 해부한 책

소녀시대와 카라를 비롯한 일본 내 한류 열풍 이면에는 한국의 걸그룹을 비하하는 ‘혐한류’(嫌韓流)가 있다. 한국 문화산업의 유입에 대해 ‘무조건 싫다’는 식으로 반응하며 조롱거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심지어는 테러리스트 취급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최근에는 김태희가 독도수호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막 시작한 후지TV드라마를 반대하는 시위가 조직되는 등 점차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한감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 주변국들을 무시‧배척하며 자신의 내셔널리티를 강화한 것은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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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둘러싼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 분쟁 속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 유래는 에도시대에 ‘일본’을 만든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는 일본의 옛 문헌을 한국과 중국의 흔적을 지우고 일본 중심의 세계관에 맞추어 읽는 작업을 하여 일본인의 언어관과 국가관의 토대를 세웠다. 예컨대 『니혼쇼키』(日本書紀)와 『고지키』(古事記)에는 신(神), 사람, 물건, 장소, 언어 등 수없이 많은 ‘한’(韓)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일본의 신 중 하나인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신라에 강림했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에도의 학자 후지이 데이칸(藤井貞幹)이 『쇼코하쓰』(衝口發)라는 고증학적 저술에서 이런 영향관계를 밝혔을 때,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격분하여 “미치광이의 말”이라고 비난했다. 노리나가에게 그러한 한의 흔적은 오히려 왜(倭)의 흔적이었다. 일본의 신의 위세가 이국땅에 미친 영향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성립했다.

이 책은 이러한 일본 내셔널리즘의 담론적 기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를 비롯하여 메이지 시기 문명론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윤리학자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 철학자 다나베 하지메(田邊元) 등의 내셔널리즘적 담론을 분석하여 일본 사상사상의 주요 맥락을 조목조목 짚어 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윤곽을 그릴 수 있고, 주변국들에 적대적인 일본인의 심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족 개념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못지않게 민족 문제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줄 것이다.

제국의 좌절 이후 이런 이중화 의식도 좌절되었을까. 다시 대국화한 전후 일본은 이중성을 변용하면서 재생한다. ‘국어’가 사멸하고 ‘일본어’가 생긴 것이 아니다. 내부 ‘국어’과 외부 ‘일본어’의 병존은 현대 일본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이러한 내부 ‘일본’의 재생에 대한 집요한 요구일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적 해독은 지금 우리에게 부과된 실천적 과제이다.
─고야스 노부쿠니, 『일본 내셔널리즘 해부』, 136쪽

광기에 사로잡힌 민족 담론

내셔널리즘의 극한은 바로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이다. ‘가미카제’(神風)로 잘 알려진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책은 이런 논리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학자들 중 다나베 하지메(1885~1962)라는 교토학파 철학자를 다룬다. 『종(種)의 논리의 변증법』으로 유명한 그는 1943년 「사생」(死生)이라는 강연에서 국가를 위해 죽을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생물학적 죽음이나 추상적인 죽음과 달리 실천적 입장에서 “실제 우리가 죽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의 숭고함을 말하여 학생 청중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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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에 공격을 받은 영국 군함의 모습. '가미'(神)는 일본어로 '신'을, '카제'(風)는 '바람'을 뜻하며,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는 생의 의지나 본능보다 제국(국가)의 의지가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다나베는 국가는 신과 인간 사이에 있기 때문에 그 죽음은 신성성을 띠며 신과 연결되는 실천이라고 말하며 죽음의 현실적인 의미를 피력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족은 ‘종의 논리’로 근거가 마련되는데, 그것은 이성적 근거를 지닌 국가의 성립을 이끌어 내는 매개로서 기능한다. 그리하여 다나베는 이 종의 논리에 따라 일본인은 몸을 바침으로써 “국가가 신의 도에 일치하도록 행동하는 것, 즉 국가로 하여금 진실과 정의를 잃지 않게 하는 것”(181쪽)이 본분이라며 지금 보면 궤변 같은, 잔인한 철학의 논리를 내세운다.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저문 듯하지만 아직도 곳곳에서는 이런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전쟁과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다. 멀리 가 볼 것도 없이 우리의 일상에서 혹은 인터넷 공간에서 보이는 민족의 논리, 한국인의 논리는 손쉽게 사람을 매장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내셔널리즘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강력한 사상적 도구였는지 잘 보여 주는 한편 민족 관념의 이러한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성격 또한 잘 보여 준다. 일본 내셔널리즘의 발생부터 최극단에 이르는 시기까지 사상가들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이 책은 내셔널리즘이 그 내부에 품고 있는 비이성과 광기를 고발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것'이란 내셔널리즘의 극단적 테제입니다. 후진적 국가의 내셔널리즘도, 선진적 국가의 내셔널리즘도 그 점에서는 다름이 없습니다. 일본의 옛 천황제국의 내셔널리즘에서도, 민주적 국가를 자칭하는 미국의 내셔널리즘에서도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것'을 극단적인 테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름이 없습니다. (…)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것'의 다른 한 측면은 '국가를 위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테제는 표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내셔널리즘이 극단적으로는 이 두 테제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지금 냉정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제가 하는 '해독' 작업은 내셔널리즘에 대한 그러한 시각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 고야스 노부쿠니, 『일본 내셔널리즘 해부』, 「책머리에」 중, 9~10쪽

지은이 소개 |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1933년생. 근현대 일본에 관한 저명한 사상가로서,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윤리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오사카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담론에 관한 고고학적인 방법론에 영향을 받아 모토오리 노리나가, 오규 소라이, 히라타 아쓰타네, 후쿠자와 유키치 등에 관한 사상사적 검토를 행해 왔고, 근래에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등 폭넓은 사상사적 논의를 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건’으로서의 소라이학』(‘事件’としての徂徠学), 『귀신론』(鬼神論),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일본 근대사상 비판』(日本近代思想批判), 『방법으로서의 에도』(方法としての江戸), 『히라타 아쓰타네의 세계』(平田篤胤の世界), 『한자론』(漢字論),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福沢諭吉『文明論之概略』精読),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누구인가』(本居宣長とは誰か), 『‘근대의 초극’이란 무엇인가』(‘近代の超克’とは何か), 『소라이학 강의 : 『변명』을 읽는다』(徂徠学講義: 『弁名』を読む), 『사상사가가 읽는 논어』(思想史家が読む論語)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 송석원
1964년생.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교토대학 법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법학박사, 정치학 전공). 일본정치학 및 일본정치사상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일본학술진흥회(JSPS) 특별연구원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발표한 논문으로는 「신문에서 보는 제국 일본의 국가이상 : 메이지 시대를 중심으로」, 「메이지 민족주의에 관한 연구 : 시가 시게다카와 오카쿠라 텐신을 중심으로」, 「사쿠마 쇼잔의 해방론(海防論)과 대 서양관 : 막말에 있어서의 <양이를 위한 개국>의 정치사상」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21세기 한국의 정치』(공저), 『정치과정의 동학 : 한미일 사례연구』(공저), 『미국의 결사체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NPO와 시민사회-결사(Association)론의 가능성』, 『일본문화론의 계보』, 『논단의 전후사』, 『폭력의 예감』(공역) 등이 있다.
일본 내셔널리즘 해부 - 10점
고야스 노부쿠니 지음, 송석원 옮김/그린비
2011/11/01 09:00 2011/1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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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_-;;; 2011/11/01 11:45

    일본 사람들은 조금 광기어린면이 있는듯. 이지메부터 시작해서 가미카제니, 사무라이니 하는것들을 보면...대체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음. 너무 폐쇠적인 인간유형.

    • 그린비 2011/11/01 12:08

      이 책은 어떻게 광기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도 광기가 없다고 하기는 어려운 거 같아요.)
      우리와 일본인의 일상이 다르듯, 문화가 다른 것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어떤 태도를 갖는가 하는 질문 전에 이런 '다름'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 주리니 2011/11/01 11:47

    조금은 그들의 시각에서 볼 수가 있겠네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던 일본였기에...

    • 그린비 2011/11/01 12:14

      주리니님 안녕하세요.
      말씀처럼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사상의 한 부분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류 열풍과 다르게 우경화되는 모습을 보면, 당최 이건 뭔가 싶기도 한데, 그러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분들께는 재미있는 책이 될 것 같아요. ^^

  3. 초아 2011/11/01 13:12

    좋은 책 추천감사합니다.
    역사에서 배웠던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의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겠네요

    • 그린비 2011/11/01 14:07

      초아님 반갑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요! ^^
      이런 말씀을 들을때 무척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4. 최근엔 2011/11/02 01:28

    일본의 극우를 미제가 이용하려 든다는 얘기도 있답니다.
    미제가 중국과의 피치못할 대결을 펼쳐야하는데 직접적으로 하긴 힘드니, 일본을 끌어들여 대리전을 하려고 일본의 극우를 이용한다는 얘기도 있습죠!
    그 가운데 한국도 일본의 몸빵용으로 이용당하게 만들려고 미제랑 일제가 도모하고 있단 얘기도 같이 들리고 있는 상황이구요!

    최근의 일본 극우는 바로.. 이런 걸 바탕으로 커가고 있다는 게 더 맞을 거 같습니다!

    • 그린비 2011/11/02 10:09

      미국이 여러 나라에서(특히 아시아 지역) 여러 가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은 꽤 설득력있게 다가오네요. ㅎㅎ;;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피치못할 대결을 왜 펼쳐야하는 걸까요? 음...
      아직 의문은 풀리지 않는군요~ ^^;

    • 미국과 중국이 왜 피치못할 대결을 해야하냐구요? 2011/11/02 16:15

      ^^

      아니, 시사에 완전 눈을 감고 사시나?
      ㅋㅋㅋ
      쫌만 보시면 명확히 눈에 들어오실텐데 말이죠...
      좀, 안타깝네요! ^^

      조금만 말씀드리자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건, 미국도 중국도 전세계 패권을 잡고 싶어한단 겁니다. 미국은 놓치고 싶어하지않고, 중국은 자국이 인구나 역사나 뭐.. 이런 것들로 더 나은(?) 나라인데다 자국 인구빨도 있으니 세계 패권을 잡아야한다 생각하고 잇단 것이죠!
      양보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양보하면 어느 쪽이든 다른 국가에 이끌려다니게 되니깐 말씀이죠~

      다음으론, 지구에 인구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게 매우 심각한 문제인 것이, 이대로 인구가 유지되거나 더 늘어나게 된다면, 인류고 뭐고 자연이고 다른 동물들이고간에 멸종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어느 누구든 이기는 쪽이 더 많은 지분.. 살아남을 수 있는 수를 더 가지게 된단 것이죠!
      최근에 여성들을 사회진출.. 직장에 더 많이 진출시키여한단 사회적, 국제적 압박도 바로 그 인구문제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암튼, 이 인구문제가 생각보다 파급되는 문제들이 상당하죠!
      아니, 최근엔 이 인구문제가 모든 국제문제에 앞서서 감안되고 있다던데...

      다른 이유들도 많지만, 위 2가지 정도가 가장 큰 이유일테니 넘어가죠~

    • 그린비 2011/11/02 17:08

      유추할 수 있는 것 외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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