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슬럼프> 저자 인터뷰1
경제위기상황에서 '진보'가 할 일은?

이 인터뷰는 『글로벌 슬럼프』의 옮긴이 강수돌 고려대 교수가 지은이 데이비드 맥낼리를 만나 진행한 인터뷰의 축약본 입니다. 『글로벌 슬럼프』에서 인터뷰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낙중 선생과 맥낼리 간의 인터뷰 축약본은 다음주 금요일(11.25)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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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맥낼리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학교 정치학 교수이자 사회운동가.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제, 현대 사회운동, 맑스주의와 여성주의, 반인종주의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시장에 저항한다』(Against the Market, 1993),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 2001, 개정판 2006) 등이 있다. 온타리오 빈곤 추방 연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어느 누구도 불법이 아니다’, 신사회주의자그룹 등 여러 사회단체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슬럼프』는 어떤 책인가?
강수돌
  맥낼리 선생님, 먼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좀 자세히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데이비드 맥낼리(이하 맥낼리)  두 가지 계기가 있지요. 우선 2008년 미국 금융 공황을 설명하는 흐름들에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로 주류 경제학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탓했습니다. 돈도 많이 없는 사람들이 주택융자 신청을 많이 해서 금융위기가 왔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실제로는 금융권이 비우량 주택융자를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구 팔았던 겁니다. 주택담보부증권 같은 금융파생상품을 만들어 대면서 거품을 키웠죠. 바로 이런 사실은 숨기면서 가난한 사람을 탓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보았지요.

또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은행 등 금융권의 탈규제화가 문제라고 보는 그들의 시각을 편협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들은 금융권만 잘 규제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켰죠.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각국이 금융권 탈규제를 하기 전부터 이미 금융권에서는 그런 식의 거품을 키우고 있었어요. 오히려 탈규제 정책은 거품이 부풀던 현실을 사후적으로 더 가속화한 것에 불과하죠. 그러니 규제 정책으로 간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금융 탈규제가 금융 공황의 원인이었다고 보는 견해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제너럴모터스나 크라이슬러 등도 역시 위기에 빠졌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이런 제조업 위기는 금융 탈규제화와 무관한 사태죠. 그러니 문제의 원인은 더 깊은 뿌리를 더듬어야만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강수돌  아, 그렇군요. 보수 진영이든 비판 진영이든 뭔가 문제의 뿌리를 잘못 보고 있다는 판단하에, 좀더 근원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면 또 다른 한 가지 계기는 무엇인가요?

맥낼리  『글로벌 슬럼프』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나 금융권 탈규제론과 달리, 금융위기의 심층적·구조적 원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2008년 금융 공황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팽창의 과잉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전 지구적 저항운동을 돕기 위해서 쓰였죠. 현재 국면을 좀더 체계적으로, 지구적 차원에서 설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강수돌  그러면 이제 책 제목인 ‘글로벌 슬럼프’부터 왜 그렇게 지었는지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 용어는 혹시라도 다른 분이 이미 쓴 건가요, 아니면 선생님이 처음으로 만드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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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낼리
  아마 1930년대에 누군가가 분명히 썼을 겁니다. 물론 그때는 대공황이라고 쓰지만요. 하지만 저는 2008년 이후의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글로벌 슬럼프’라는 용어를 제안합니다. 많은 이들은 이번 위기를 ‘대침체기’라고도 하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침체기는 좀 지나면 다시 호황기를 맞기도 하거든요. 이번 위기는 그렇게 일회적인 것이 아니에요. 10년, 20년 더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경기 침체기를 겪었다가, 다시 회복한 듯하다가, 또 다른 종류의 문제들, 예를 들어 실업률이 높아지고, 사회복지가 삭감되고, 어느 시기에는 국가 부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는 겁니다. IMF는 얼마 전만 해도 경기 침체의 ‘10년’이라고 말했지만, 곧 긴축의 ‘시대’라고 하더니, 얼마 전에 영국의 신문을 보니 경기침체의 ‘수십 년’이라고 또 말을 바꿨더군요.

다음은 ‘글로벌’이란 것인데, 비록 이러한 위기가 범지구적 차원에서 나라별로, 업종별로 불균등하게 진행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위기가 서로 연결된 세계적 현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미국 다음으로 유럽연합의 여러 나라들도 공황에 빠질 수 있지요. 그리고 최근 『뉴욕타임즈』특집 기사를 보니, 중국도 내일 당장은 아니더라도 1~2년 안에 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더군요.

지금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듯하지만, 그 성장의 70% 이상이 과잉 투자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한이라는 도시를 보면, 공항·박물관·철도·공장·마천루·아파트 등을 엄청나게 지어 대고 있지요. 그런데 이 건물의 상당 부분이 텅텅 비었다고 해요. 이렇듯 과거엔 일본에서, 최근엔 미국에서, 또 한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나중엔 중국에서 경제위기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글로벌’한 차원을 말해 주는 것이죠. 이런 뜻에서 ‘글로벌 슬럼프’라는 명제로 제 의견을 집약했는데, 1930년대 분명히 누군가 썼을 겁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슬럼프라는 단어를 쓴 것은 제가 처음이죠.

'유럽 복지 국가' 모델은 대안인가?
강수돌  이제 약간 주제를 바꾸어 유럽 복지 국가 모델을 한번 보죠. 한국 독자들이나 세계 곳곳에서도 유럽의 복지 국가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범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맥낼리  정말 중요한 질문이군요.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체제 자체의 변화는 어려우니 좀더 인간적인 자본주의를 하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요. 그래서 한편에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되,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가 공공 서비스를 직접 시민들에게 제공하자, 바로 이게 사회복지국가 모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형은 자본주의 팽창 국면에서 국가가 공공 분야를 축소할 필요가 없을 때에만 가능해요. 만일 요즘의 현실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부문이 위기에 처하면 지속되기 어렵죠. 오히려 민간 부문이 구제금융의 경우처럼 국가에 의존하게 되고 공공자금을 민간에 투입하게 되죠. 국가는 부채 더미에 오르고……. 구제금융 이후에 사적 자본에 그 돈을 다시 되돌려 달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적 자본의 힘이 더 세기 때문이죠. 그러면 국가는 공공 부분을 축소할 수밖에 없어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수십 년에 이르는 긴축의 시대도 그래서 오는 겁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복지국가 모델이 가진 내재적 모순이죠.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이윤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면 사회복지에 비해 이윤 추구가 더 앞서죠. 결국 우리는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이윤을 사람보다 우선할 것인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합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이 사람에 우선하고, 반자본주의 사회정의 운동은 사람이 이윤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전 둘 다 추구하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캐나다의 앨버타 주 북부엔 타르샌드라는 엄청난 석유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역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자는 환경운동가와 개발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개발주의자가 있다고 할 때, 불행하게도 ‘아주 조금만 개발하자’라는 식의 타협안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이분법 논리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글로벌 슬럼프, 진보가 할 일은?
강수돌  중요한 지적이십니다. 아마도 한국의 진보적 독자들이 가장 흥미롭게 읽을 부분은 후반부의 ‘거대한 저항’ 이야기일 듯합니다. 선생님은 거대한 민중 저항이 일시적 점거나 파업을 넘어 지속적인 사회구조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 했지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민중이 운동을 통해 열어 낸 새로운 공간에 어떤 내용을 채워야 할지 미리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선생님의 제안을 듣고 싶군요.

맥낼리  쉬운 문제는 아니죠. 제가 가장 염두에 두는 건 급진적이고 직접적인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누군가 미리 설계도를 제시하고 세부 사항을 정해 주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물론 비판적인 사회과학자들이 커다란 방향을 설정한다는 뜻에서 일종의 ‘기본 원칙’ 같은 걸 제시하는 건 필요하지만, 세부 내용들은 민중이 직접 토론하고 결의해야 옳다고 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이런 걸 만들 역량이 있는 건 아니기에 부단한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사람들은 실천적인 과정 속에서 배우고 또 스스로 개선해 나갈 역량을 구축해 갈 겁니다. 이런 민주적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지요.

강수돌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한국의 쌍용자동자 사태나 한진중공업 사태 등에 대해 알고 계시겠지만, 그런 부분을 포함해 한국의 노동운동 전반에 걸쳐 선생님의 시각에서 좋은 제안이나 아이디어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맥낼리  제가 아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과의 인연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한국에 관한 여러 가지 책도 읽고 또 2008년 봄 촛불시위 국면 때 한국을 직접 방문해 여러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참 좋았던 기억이죠. 한편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당시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세 가지 운동을 손꼽으라 하면, 대개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한국의 노동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대개 신흥공업국이었고, 노동운동도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거든요. 이 나라들의 노동운동은 독재 권력에 저항하면서도 불법을 무릅쓰고 기업이나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민주 노도 운동을 지향하면서 대단한 전투성과 대중성을 보였지요. 한국 민주노총의 투쟁을 보면서 ‘야, 대단하다. 정말 이거다’ 싶었거든요. 파업에 돌입하고 탄압하는 경찰에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노동조합을 더 이상 파괴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깨닫고, 협상 전술로 바꾸고 노조도 합법적으로 인정해 준 후에는 노동조합들이 단체협상 과정에서 노사 타협주의로 점점 더 경도되었습니다. 즉 자기 조합원들의 권익 향상에만 몰두하고 전 사회적인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어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한국, 세 나라 모두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을 방문한 2008년 촛불시위 때 만났던 한국의 많은 활동가들은 여전히 급진적 민주화를 통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추구하는 등 저와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더군요. 이것이 희망의 근거죠. 1997년의 IMF 위기는 한국의 경제 모델에게도 위기였지만 사회운동 진영에도 분기점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그 후로 진보 정당도 만들어졌다가 2개로 나뉘었다고도 들었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는 활동가들을 볼 때 힘이 솟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마치 자본가들이 가장 경쟁력이 높은 ‘최고의 작업 방식’을 찾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요.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연대 방식, 새로운 형태의 사회 변혁을 위해 가장 올바르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무엇일지 모든 조직, 모든 운동, 모든 그룹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자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면 진리, 남이 하면 엉터리’ 식의 오만함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겸손함’이 필요하지요. 때로는 고통스런 과정일 수도 있고 때로는 배움의 기쁨이 넘치는 과정일 수도 있어요. 그런 면에서 노동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환경운동 등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지속적인 대화를 하면서 크게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좌파의 역사는 항상 새로운 좌파의 역사였다”
글로벌 슬럼프 - 10점
데이비드 맥낼리 지음, 강수돌.김낙중 옮김/그린비

2011/11/18 09:00 2011/11/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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