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이란 무엇인가』편집후기
현상학, 인간의 존재가능성에 대한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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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루앙 성당> 연작 _ "현상학은 말 그대로 주어진 것, 현상을 특권화한다. 주어진 것 배후에 더 무엇이 있는지,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현상학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직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의 생생한 의미가 현상학이 문제로 삼는 주제인 것이다." - 「옮긴이의 말」,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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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테브나즈(Pierre Thévenaz, 1913~1955)의 현상학 고전 해설서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후설에서 메를로퐁티까지』(De husserl à merleau-ponty: Qu'est-ce que la phénoménologie?, 1966)가 출간되었습니다. 테브나즈는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 주목받았던 현상학 연구자라 합니다. 영어번역판이 영어권 연구자들에 의해 원본인 프랑스어판보다 4년이나 빨리 출간되었다고 하니, 영미권에서의 영향력도 상당했다는 것을 짐작할 만하네요.

이 책은 후설로부터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에 이르는 현상학 연구의 흐름을 개괄하며 우리가 ‘현상학’이라 부르는 것이 무엇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그것이 고전 형이상학이나 실존주의 철학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현상학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기반으로 현상학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합니다. 저는 현상학이라 하면 사실 수년 전에 하이데거의 저술들을 몇 편 읽은 게 전부라 ‘현상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떤 체계 속에서 움직이는지 설명하는 데 매우 어려움을 느낍니다. 다행히도, 짧지만 핵심적인 내용들이 이 책에 담겨 있어 참고할 수 있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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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이데거(사진)를 통해서,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며 느끼는 현상학의 핵심은 무엇보다 그것이 인간의 존재방식을 문제 삼는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서두에서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이 ‘존재’를 자명한 사실로 간주하면서 정작 존재방식을 물음에 넣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요. 여기서 그의 아주 흥미로운 두 가지 논리가 전개됩니다. 하나는, 현존재(Dasein)라는 개념과 관련된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칸트의 “‘존재’(있다, Sein)는 실질적 술어가 아니다”는 명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한글에서는 보통 현존재라고 번역해서 낯선 감이 있지만, ‘dasein’은 분철하면 ‘거기-있음’(da-Sein)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때 ‘거기’는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현존재의 존재지반 자체를 가능케 하는 것, 혹은 인간 현존재가 현존재들 사이에서 존재하게 되는 일종의 의미론적 장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특정하게 가능케 하는 존재조건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하이데거의 두번째 흥미로운 논리는 칸트의 명제 “‘존재’(있다, Sein)는 실질적 술어가 아니다”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칸트가 이 명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예컨대, 두 개의 명제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1) 나는 존재한다.
2) 나는 노동자이다.

술어라는 뜻의 독일어 ‘Prädikat’은 술어라는 뜻 외에도 넓은 의미에서 ‘속성’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술어는 주어에 속성을 부여한다는 것이지요. 1번 명제를 보겠습니다. ‘존재한다’의 주어는 ‘나’인데요. 여기서 술어가 주어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없는 듯합니다. 그냥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지요. 사실상 ‘나’라는 실체에 대해 말하려면 이미 ‘나’가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반면, 2번 명제는 조금 다릅니다. ‘노동자이다’라는 술어는 ‘나’가 누구인지, ‘나’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나’라는 단어에 ‘노동자이다’가 술어로 연결되면서 ‘나’의 존재방식을 알려 주는 것이지요. 칸트는 앞의 것을 ‘분석판단’이라고, 뒤의 것을 ‘종합판단’이라고 하는데요. 하이데거는 이 종합판단에서 존재방식의 문제설정을 발견합니다.

“‘존재’는 실질적 술어가 아니다”라는 명제는 사실상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바로 그 분석판단에 그칠 뿐이며, 인간의 인식가능성의 조건 자체를 물음에 부치지 않는 명제라는 것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종합판단에서 나오는 서술격 조사 “이다”는 “노동자”라는 보어를 주어 “나”에 연결하면서 이 문장에서 새로운 의미를 산출해 냅니다. 서양어권에서는 이 서술격 조사 “이다”(ist, is)를 보통 주어와 보어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계사(繼辭)라고 하는데요. 하이데거는 이 계사에 대한 성찰이 부재했던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이 근본적으로 존재방식에 대한 물음을 망각한 것이었다고 해석합니다.

하이데거를 대표로 해서 말했지만, 현상학 일반은 바로 이렇듯 인간의 인식가능성과 존재가능성이란 무엇인가, 즉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테브나즈는 이러한 현상학의 근본물음으로부터 현상학 고유의 방법인 ‘현상학적 환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나아가 현상학이 어떤 의제와 개념들을 제기하며 전진해 나갔는지 설명해 줍니다. 현상학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는 후설과 하이데거, 그리고 프랑스 현상학의 대표 주자들이라 할 수 있는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사실 이름만 들어도 난해함에 부담이 느껴지는 이들이고, 주요 저작들 또한 방대한 분량을 갖추고 있어 읽을 엄두가 잘 나지 않는 사상가들입니다. 이 짧은 책은 아마도 이 네 명의 거장들을 아우르며 우리에게 현상학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지 않을까 합니다. 현대사상에서 현상학이 한 역할이 상당하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 책으로 현상학에 도전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 어떠신지요?

- 편집부 고태경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10점
피에르 테브나즈 지음, 김동규 옮김/그린비
2011/11/23 09:00 2011/1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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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iss 2012/07/11 09:18

    편집후기 잘 읽었습니다.
    최근 현상학에 관심이 생겨 입문서들을 찾고 있는 중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요,
    (상하게도 마땅히 현상학에 관해선 괜찮은 입문서 찾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알아보기 위해 국 아마존과 프랑스 아마존을 살펴봤는데,
    도서표지 이미지도 없고, 독자 리뷰나 별점 평가도 없고 그렇라구요.
    다른 현상학 입문서들은 표지나 리뷰, 평가 등이 많았음데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그래서 이 책을 사는 것이 주저되는데, 왜 그런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