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럼프’의 시대, 더 이상 호황은 오지 않는다!
1%가 아닌 99%를 위한 저항을 시작하라!!


“We are 99%.”
2011년 가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이 간결한 구호 속에서는 두 가지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첫째,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익숙하던 ‘80대20’이라는 숫자가 (무려) ‘99대1’로 바뀌었다는 점, 둘째, 선택받은 소수를 꿈꾸었던 이들 스스로가 ‘99%’를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는 이 숫자쌍을 지식인들의 레토릭에서 집회장의 구호로 바꾸어 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자기 삶의 구체적인 불만들을 가지고 스스로를 깨우쳐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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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이 2008년 세계를 휩쓴 금융 공황에 대처한 방식은 이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주문하고,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볼모로 경기지표가 나아지면 위기의 종료를 선언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노래하는 것. 하지만 “회복되는 경제통계와 후퇴하는 인간의 삶” 사이의 심화되는 괴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배층의 낡은 전략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이 위기는 정말로 일시적인 것일까?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대다수의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이런 경제가 스스로 잘 굴러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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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요크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데이비드 맥낼리(사진, 인터뷰 보러가기)는 이러한 질문들에 단호히 ‘No’라고 대답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경제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불황도 아니고 체제의 일시적 일탈도 아니다. 그것은 만성화된 전 지구적 경기침체, 즉 그가 만들어 낸 표현으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글로벌 슬럼프’이다. 포드주의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신자유주의도 이제 ‘약발’이 다하고, 그 모태인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 즉 과잉 축적과 이윤율 저하에 다시금 대면하게 되었다. 월스트리트로부터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점령 운동과 그리스의 구제금융을 둘러싼 논란은 모두 이 만성화된 위기에 대한 반작용의 형식들이다

맥낼리는 우리에게 이 슬럼프의 본질을 꿰뚫어 볼 것을,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숙고하고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이 책 『글로벌 슬럼프』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을 위한 경제위기 교과서이자 실천의 지침을 담은 팸플릿이다. IMF 구제금융 시기에 『세계화의 덫』을 번역·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당시의 경제 현실을 범지구적 시각에서 통찰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강수돌 교수가 2011년에 소개하는 새로운 정치경제학 도서로서, ‘신자유주의 시대 위기와 저항’의 동학을 파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책이다. 권말에는 옮긴이들이 직접 진행한 저자와의 인터뷰를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경기침체, 끝이 아닌 시작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 공황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6,350억 달러의 파산을 기록한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하여 세계 굴지의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천문학적인 규모의 구제금융을 통해 겨우 회생했다. 하지만 (특히나 한국의) 보통 시민들은 반복해서 들려오는 ‘상황이 어렵다’나 ‘경제가 위험하다’는 식의 말 이외에,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연유로 그 문제가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불성실하거나 혹은 불친절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뮤추얼펀드, 주택담보부증권, 신용부도스왑 등의 단어가 줄줄이 나열되는 데에 주눅 들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책은 이러한 용어들을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함으로써 신자유주의 호황기의 주인공인 ‘채무’가 어떻게 증식하면서 거품을 형성해 왔는지, 그리고 그 파국적 결과는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그려 낸다.

하지만 이 위기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탐욕의 흔적보다 우리에게 더욱 유의미하고 아픈 부분은, 언론의 희망 섞인 선언과는 달리 이 위기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은행·기업·정부·개인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열심히 따르고 있는 긴축 정책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번 돈의 상당 부분이 소비 지출이 아니라 낡은 빚을 갚는 데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주요 7개국에서의 통화 및 신용 공급 축소는 현실이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른바 스태그네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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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좀체 회복되지 않는 경기침체. 이는 금융 부문의 철저한 몰락 때문만도 아니고 구제금융이라는 미봉책의 한계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되어 있던 ‘과잉 축적에 따른 이윤율 하락 경향’의 바닥과 맞닥뜨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근원적’ 위기는 이윤율이 반등할 수 있는 질적 차원의 계기를 찾기까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전시 군수산업과 전후 복구의 덕을 봤던 1930년대의 대공황이 그랬고, 노동의 유연화와 산업의 구조적·지리적 재편을 통해 (신자유주의로 거듭남으로써) 극복된 1970년대의 장기 불황이 그랬다. 그리고 이제 그 세번째의 시기다. 한계에 닥친 이윤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실재하지 않는 장부상의 돈(가공자본)까지 끌어들였던 신자유주의의 투기판이 엎어진 ‘글로벌 슬럼프’의 2010년대인 것이다. 위기는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경기침체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빚을 내고, 지시에 따르고, 가진 것을 내놓아라!
이러한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서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제금융’이다. 이미 ‘우등생’으로 IMF 체제를 졸업한 우리로서는 구제금융 조치를 착실히 이행하여 위기를 극복한다는 도식이 낯설지 않다. 분명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구제금융이 거시 경제지표의 상승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실업과 사회복지 서비스의 축소 등 시민의 희생을 대가로, 그리고 국가 재정의 위태로움을 담보로 한 결과다. ‘대마불사’라는 말처럼, 대기업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망하는 것은 정리해고당하는 개인과 디폴트를 선언해야 하는 주권국가다. 맥낼리의 표현대로, 악성 은행 채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민중과 국가에게 ‘이전’된 것뿐이다(23쪽).

자본은 항상 이런 식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쉬운 예로 2008년 금융 공황기에는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주제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빌린 돈으로 집을 사고 차를 사더니 결국 이런 상황이 야기되었다며 비우량 주택융자 대출자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맥낼리가 반복해서 주장하듯이, 미끼 금리를 제시하고 신용 심사의 문턱을 낮추면서 대출자를 유치하느라 혈안이 되었던 것은 바로 그들 금융회사들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녀야 하고(그렇다고 졸업 후 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주택융자금을 빌려 집을 사야 하며(그렇게라도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운아다), 소비 패턴이 신용카드 결제일에 맞추어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는 것도 순식간이다. 맥낼리는 이처럼 자본주의가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어 온 세 가지 주요 전략을 폭로하는데, 그것은 5장의 제목에 압축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채무(debt), 규율 및 처벌(discipline), 소유권의 박탈(dispossessi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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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지지 않고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파업 노동자, 걸인과 노숙자, 신호대기에 걸린 자동차의 유리닦이를 닦아 주고 푼돈을 받는 아이들, 국경을 넘는 이주노동자 등 노동시장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존재들은 법과 도덕의 질타를 받아야 한다. 서울 곳곳의 재개발 사업, 인도의 대규모 댐 건설, 아프리카의 경작지 해외 매매 등 21세기판 인클로저는 사람들의 생활 터전을 박탈한다. 이 세 가지 메커니즘은 함께 맞물려 작동한다. 개도국에 대출되는 외채는 외국의 천연자원을 박탈하는 훌륭한 수단이고, 땅·물·나무·광물 등의 생활수단을 박탈당한 이들은 절망에 내몰려 몰래 국경을 넘는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리지 않고 사채가 성행한다. 이러한 총체적 과정을 통해 “저항의 토대”를 제거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공고화해 간다. 하지만 그만큼 뚜렷해지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먹고 유지되는 체제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주의와 연대로 거대한 저항의 물결을!
이처럼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오직 1%의 탐욕만을 위해 99%의 미래가 희생당하는 잔혹한 체제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 현재의 글로벌 슬럼프가 “세계경제사에서 질적인 구조 변화를 가져오는 한 국면”이며, 따라서 “이 국면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려면 적어도 향후 한 세대 동안 정치와 경제를 재구성해야 한다”(18쪽 제사)는 점에서 이 질문은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맥낼리 스스로 밝히듯, 그 재구성의 방향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영악한 자본이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 ‘신-신자유주의’로 진화해 갈 수도 있고, 복지에 대한 민중의 요구가 일부 받아들여져 ‘신케인스주의’가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맥낼리의 관점에서 이 두 방법은 모두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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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맥낼리는 시종 ‘급진적 저항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볼리비아 코차밤바 주, 카리브 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과 과들루프 섬, 멕시코 오아하카 주 등에서의 대중 봉기에서부터 그리스 급진좌파연맹(SYRIZA)과 프랑스 반자본주의 신당(NPA), 나아가 점점 더 급진화 경향을 보이는 미국 각지의 노동운동에 이르기까지, 맥낼리가 그려 내는 다양한 저항의 사례들(6장)은 노동자 대중의 직접적인 이해에 기반을 두고 조직화된 강력한 운동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본은 언제나 손쉽게 국경을 넘나들었고, 위기는 이에 발맞추어 세계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노동은 언제나 발이 묶여 있었고 저항은 국지적인 동시에 개별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저항운동들은 개별 이해관계를 넘어 전 지구적 전망을 공유하면서 조직화되어 가고 있다. 2011년 가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세계 수십 수백 개의 도시에 대한 점령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체제의 본질을 직시하기 시작했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동력임을, 그 과정을 스스로 즐길 수 있게 하는 에너지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전 지구적 관점에서 저항이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저항운동은 신자유주의가 보여 주지 못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바로 지금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 이러한 대안적 비전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308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그리고 연대이다. 그들은 더 많이 점거하고,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더 많이 함께 외쳐야 한다. 선거로 환원되지 않는 대화와 토론의 민주주의를 통해 나의 의지가 내 삶에 관철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혁명과 개혁의 이분법을 넘어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세상을 향한 가장 구체적이고 바람직한 길일 것이다.
- 편집부 태하
글로벌 슬럼프 - 10점
데이비드 맥낼리 지음, 강수돌.김낙중 옮김/그린비
2011/11/28 09:00 2011/1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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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출판사 :: 이제 ‘슬럼프’의 시대, 더 이상 호황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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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nnyrosy 2011/11/29 15:15

    월러스틴의 최근작들을 봐도 항상 마지막엔 저항하고, 나서서 이야기하고, 그보다는 함께 이야기하라는 메시지가 반복되더군요. 맥낼리나 월러스틴이나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이 똑똑한 사람들... 또 자본주의의 대안에 평생을 천착한 사람들인데 그 노학자들이 부르짖는건 결국 거리로 나와 낯선 이와 말을 트고 저항하라는거죠. 얼핏 단순한데, 날마다 날마다의 생활에서 실천하기란 정말 어렵네요... 대체 어떻게 하란거지 싶어 일단은 내일 여의도 공원으로 나갑니다 ㅎㅎ

    • 그린비 2011/11/29 17:23

      아... 그렇죠. '결론은 참 쉽네'라고 말하기 쉽지만, 그 결론이 사실은 가장 어렵죠. 타자와 언제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런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으면, 결정적인 '투쟁'은 차라리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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