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 미래로부터 오는 것

“의식은 기투다. 의식은 자신 앞에 있는 미래로 자신을 내던진다. 우리는 앞으로 있게 될 것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 피에르 테브나즈 지음,『현상학이란 무엇인가』, 김동규 옮김, 18쪽

피에르 테브나즈(Pierre Thévenaz, 1913~1955)의 현상학 고전 해설서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후설에서 메를로퐁티까지』(그린비, 2011)에서 테브나즈가 사르트르의 현상학을 설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데카르트적 의미에서의 코기토가 가정하는 의식의 실재성을 모두 지워 버렸을 때(이것이 사르트르적인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입니다) 완전히 무화된 의식에게 남겨진 것은 자기 앞에 남겨진 미래일 뿐이라는 것. 테브나즈는 사르트르가 이 미래로 우리의 의식을 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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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 - 6월 항쟁을 통해 우리는 '지금'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미래'는 그렇게 열린다. "우리는 앞으로 있게 될 것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조금 모호합니다. 미래로 의식을 던진다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테브나즈의 다음 문장은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하기도 합니다. “기투는 현재를 향한 미래로부터의 운동이다.”(84쪽) 미래(未來)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인데 미래로부터 오는 운동이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르트르의 다음 문장을 더 보겠습니다. “인간은 미래를 기반으로 해서 자신에게 도래하는 존재”이다.(같은 곳에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재인용) 이 문장이 낯설다면 아마도 우리가 연대기적이고 기계적인 시간관에 익숙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지 않은 시간이라는 게 단순히 내일이나 앞으로 올 언젠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루의 일상을 지배하는 24시간의 리듬, ‘진보’나 ‘발전’이라는 용어에 담긴 선형적인 시간 리듬에는 사르트르가 말하는 존재론적 차원의 ‘미래’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르트르는 내일이 아니라 우리를 지배하는 삶의 조건 속에서는 나타날 수 없었던 시간의 질서, 혹은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는 어떤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의 인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순간을 바로 ‘미래’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거대한 사회변동을 초래했던 사건들은 말 그 자체처럼 예상 못했던 사건처럼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4․19가 그랬고, 87년 투쟁이 그랬고, 2008년 촛불시위, 2011년 희망버스가 그랬지요. 이 사건들, 이 사건의 순간들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오지 않은 시간, 즉 미래를 구현하는 시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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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_ 세계 곳곳에서, 한국에서 열리는 '미래'들은 어떤 '지금'을 만들어 낼 것인가?

그런데, 사르트르는 말하지요. “인간은 미래를 기반으로 해서 자신에게 도래하는 존재”라고. 인간은 주어진 것으로부터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사건처럼 내게 다가와 내 전 존재감을 사로잡는 것. 어쩌면 미래로부터 도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군요. 내 존재감을 사로잡는 그 사건은 내 사고와 행위의 틀을 깨고 내 삶을 무언가 다른 지평으로 안내합니다. 달리 말한다면, 내 삶을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사건과 만났을 때를 사르트르는 미래로부터 도래했다고 말했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그 사건이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뉴욕에서 월스트리트 점거가 이루어지듯 우리에게도 일상을 옥죄어 오던 틀에 정면으로 도전할 시간이 오겠지요. 어쩌면 지금 당신 곁에서 그런 움직임이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그것을 못 듣고 있는 것인지도.

- 편집부 고태경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10점
피에르 테브나즈 지음, 김동규 옮김/그린비
2011/11/29 13:00 2011/11/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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