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의 공황과 경기침체의 원인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반복되는 '위기'의 메커니즘을 말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혼!' 21세기 자본주의의 핵심부 월스트리트에서 내려진 이 선고는,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거쳐 2011년 유럽 국가채무위기에 이르며 그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세계불황의 성격을 더없이 잘 드러내 준다. 특히 두 '위기'의 사이에 열린 2010년 제5차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세계 주요국의 정상들이 대형 금융기관 구제와 대기업 융자에 막대한 재정자금 투입을 결의한 반면, 곳곳에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서 복지 지출을 지목하고 나섰던 일은 오늘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더 이상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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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담 _ 위기의 원인은 복지에 있다?

세계시장망이 처음 형성된 182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경제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상품화시키며 무서운 속도로 팽창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현기증 나는 발전상도 공황과 불황이라는 경제위기의 그림자를 떨쳐내지는 못했고, 대중은 반복되는 경제위기의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강요받아 왔다. 심지어 경제학계에서는 만성적으로 공황을 초래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려 "공황에도 장점이 있다"고 하는 말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호황기에 지나치게 오른 임금을 삭감하고 불어난 잉여인원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일본의 원로 경제학자 하야시 나오미치(林直道) 교수는 이런 관점들을 '인간 부재의 경제학'으로 일축하면서, 실업과 임금 삭감 등 대중이 겪는 생활 불안의 고통을 함께하며 경제위기의 원인과 타개책을 끈질기게 강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제학의 역할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자본주의의 근원적 모순을 탐구해 온 맑스주의 경제학이 가혹한 경제위기 현상과 '인간 부재의 경제학'을 넘어서는 데 긴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하야시 나오미치 교수의 『恐慌 不況の經濟學』(2000)을 완역한 이 책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는, 맑스주의 공황, 불황 이론의 핵심 주장을 간명한 언어로 짚어 주고, 일본 장기불황의 분석을 통해 신자유주의하에서 심화되는 공황 불황의 양상을 규명하는 한편, 세계 공황사를 개관하며 자본주의의 성장과 위기 발발 메커니즘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 줌으로써 책의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하야시 교수는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와 현재 진행 중인 유럽 국가채무위기에 대한 분석을 추가하여, 오늘의 경제위기를 과거 경제위기들과의 연속선상에서 조망하는 시야를 제공한다.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는, 공황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초래하는 대표적 인재(人災)이므로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공황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가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일례로 대형 헤지펀드 '론스타'는 2003년 논란 속에서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래 받아 챙긴 배당금만 3조 원에 이른다는데, 그들 헤지펀드야말로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주범 중 하나였음을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공황 대책은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닌, 바로 공황과 불황으로 고통받는 대중들의 손으로 세워져야 한다. 이렇게 이 책은 나날이 착취와 불평등을 더해 가는 자본주의 경제의 근원적 모순을 이해하고 이 상황 속에서 가능한 실천적 대안은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황과 호황이라는 동전의 양면
맑스가 약 1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경제위기('주기적 공황') 현상을 이론화한 이래, 맑스주의 경제학은 숱한 검증과 논쟁을 거치며 경제위기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하야시 나오미치 교수 스스로 "수십 년에 걸친 경제위기론 연구의 결론을 개괄적으로 정리했다"고 말하는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는, 오랜 맑스주의 경제위기론의 전통인 '과잉생산공황론'의 입장에서 경제위기를 분석하고 있다. 즉, 물건이 잘 팔리고 이자율도 싼 호황기에 기업이 생산 투자(생산설비의 확장과 갱신)를 과도하게 집중시키는 것이 공황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경기순환'(business cycle) 속에서 호황은 항상 공황을 부르고, 공황은 다시 불황으로 이어지며, 이후 찾아오는 정체 국면에 경기회복이 시작되어 새로운 호황으로 이어진다. 공황과 호황은 시기에 따라 서로 자리를 바꿀 뿐이라는 점에서 동등한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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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폭락'이라는 낯설지 않은 키워드는 자본의 무정부성, 무정부성의 노출된 경제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개개의 자본에게 호황 시기의 투자는 합리적인 판단일 테지만, 그것이 한 시기에 집중됨으로써 거대한 무질서, 시장의 무정부적 상태를 초래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발전된 금융 기술은 말 그대로 지렛대(leverage)가 되어 이 무질서의 기하급수적 팽창을 돕는다. 생산물은 넘쳐 나는데 대중은 빈곤에 허덕이는 이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자본주의 경제가 사적 이윤 추구와 자유경쟁을 최대 가치로 삼는 이상 피할 수 없는 비극이다.

위에서 보았듯 호황 시기에 생산에는 과도한 투자가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라는 문제가 함께 작용하면서 경제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즉 생산과 보조를 맞춰야 할 소비에 대해서는 "이윤 확대의 손쉬운 수단을 임금 절약에서 구하고, 되도록 고용을 늘리지 않으려 하며, 구조조정을 강요"(28쪽)함으로써 상품의 최종 구매자인 대중의 소비구매력을 제한하는 터무니없는 모순이 자본주의를 경기순환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고 있다는 것이다.

공황, 불황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누구인가?
'crisis', 'panic', 'crash'. 이것들은 모두 공황을 나타내는 표현로서, 하나같이 공황이 얼마나 자본주의 체제에 치명적인 사건인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치명적'인 사건을 대하는 태도라고 보기에는 자본주의 체제와 주류 경제학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는 미심쩍기 짝이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대 미국에서 도입된 '통화주의'(monetarism)이다. 통화주의는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불황 시기에 물가 상승을 부르는 인플레이션이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대책으로서 출현했다. 이들의 주장은 통화 공급량을 줄이고 고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지 지출은 줄이고 고소득자의 소득세와 기업에 대해 투자 감세를 시행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조치들이 반드시 함께한다. 결국 실업과 도산의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가, 자영업자들의 몫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고금리는 필연적으로 채무국인 발전도상국들의 경제위기를 유발, 세계경제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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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공황이 일어날 때,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이들은 불황의 원인(?)으로 지목된 '복지'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처럼 불을 보듯 뻔한 파국에 대해 자본주의는 너무나 무방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국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인다. 하야시 교수는 "공황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 즉 공황의 사회적 기능"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즉 공황은 생산부문 간의, 그리고 생산과 소비 사이의 박자가 어그러지며 발생한 불균형을 강제로 회복하는 "폭력적 조정" 과정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다"라는 말과 함께 이 사실을 간파했다고 한다. 자본의 맹목이 빚어낸 현상인 공황은 분명 자본주의의 한계를 나타내 보이지만, 그러나 이 한계가 곧 자본주의 붕괴로 이어지기는커녕 자본주의의 탈출구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혹독한 공황과 불황이 지나가기를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던 자본은, 다음 호황이 돌아오면 또다시 앞다투어 이윤을 탐하고 새로운 공황의 씨앗을 뿌린다.

세계불황의 신호탄, 일본의 장기불황
맑스주의 경제위기론과 공황사에 대한 명료한 설명만큼이나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일본 장기불황의 분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출발한 일본은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던 일본이 1991년 4월의 버블붕괴에 따른 공황 발발을 기점으로 '잃어버린 10년'(여전히 이어지는 장기불황으로 이제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표현도 쓰이게 됐다)이라고까지 불리는 기록적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것이다.

불황의 장기화에는 일본 정부의 정책 실패가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80년대 중반 엔고불황의 타개책으로 시행한 저금리 정책을 지나치게 오래 유지하면서 증권과 부동산의 버블을 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 실패의 이면에는 당시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의 입김이 있었다. 미국은 엔저·고달러 상황이 일본에 의한 미국 국채 매입을 촉진하기 때문에 일본이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게끔 압박했고, 이로 인해 불황이 시작되자 대자본들이 구조조정과 생산거점 이전에 매진하면서 실업과 영세 하청업체의 도산을 양산, 본격적인 공황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후 시행된 정부의 위기 탈출 전략은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특히 대형 공공사업에 대한 재정자금 살포, 경영파탄을 맞은 대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법인세 인하와 구조조정 지원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강렬한 기시감을 안겨 준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단지 한 국가가 겪은 사태에 그치지 않는다. 전후 미국 중심의 세계자본주의가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맡았던 역할(미국 국채의 매입자이자 동아시아 경제의 투자자)이 바로 일본 호황의 모태였고 보면, 20세기 끝자락에서 시작된 일본의 장기불황은 다가올 21세기 세계불황의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일본의 장기불황은 동아시아 경제위기로 직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투기 행위로 악명을 떨쳤던 글로벌 투기자본 '헤지펀드'가 이번 유럽 국가채무위기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 역시 증거가 된다.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 나가는 민주적 경제 체제
시장이 확장될수록 대다수 민중이 발 디딜 곳은 점점 좁아져 간다. 그리고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우리들에게 이웃과 동료를 밀어낼 것인지 자신이 밀려 떨어질 것인지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21세기 세계불황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그 어떤 폭로의 도움 없이도 피부에 와 닿는 한기와 함께 이 사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양자택일을 넘어설 수 있을까?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에서 하야시 나오미치 교수는 성마른 목소리로 현 경제 체제의 전복을 외치거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사회주의 실현 같은 손쉬운 해결책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자본주의 경제의 공황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리고 실업자가 연대한 대중의 힘으로 뭉쳐 자본주의 체제를 내부에서부터 바꿔 내는 개혁 운동을 해나갈 때 공황과 불황의 고통도 경감,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 운동 속에서 보다 민주적인 경제 체제의 실현도 한걸음씩 이루어질 것이다.

- 편집부 김효진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 - 10점
하야시 나오미치 지음, 유승민.양경욱 옮김/그린비
2011/12/05 09:00 2011/1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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