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 편집 후기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 우리 삶은 왜 위기에 빠지는가?
다시 만난 ‘삶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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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는 대출금을 먹는 포식자!, IMF는 국가 차원의 사채!

사실 저는 영문자 이니셜 셋의 조합으로 말해지는 무슨 단체나 기구, 협정이나 조약 같은 것들이라고 하면 지레 거부감부터 느끼게 됩니다. 1997년, 그때 사춘기 문턱에 있던 저를 ‘I’, ‘M’, ‘F’ 세 글자가 꿰뚫고 지나간 이래, 적어도 저는 확실히 그리 되었습니다. 95년 처음 ‘마이홈’을 마련하고서 우리 집에도 이제 볕들기 시작했다고 피어나던 부모님의 표정이 가물거리고, 평수가 반으로 동강난, 그나마도 남 소유인 집에서 매일 밤 건물 지하 단란주점의 쿵작거리고 왕왕거리는 소리에 시달리며 잠 설치던 고등학생 시절 기억도 가물거리는 2011년의 오늘. 이제 저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IMF가 어쨌다느니 WTO에서 무슨 회의를 했다느니, 혹은 FTA니 ISD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일단 어딘지 꺼림칙한 기분부터 들고, 되도록 그런 것들과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걸 ‘편향’이라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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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2000년 일본에서 『공황·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간행되었던 이 책에는, 당시 ‘잃어버린 10년’이라고까지 불리던 일본 장기불황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책의 구성도 1부의 이론 정리를 거쳐 2부에서는 일본의 현실을 공황 이론을 통해 분석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기도 하지요(3부는 세계자본주의와 공황의 관계를 다룹니다). 아마 저자 하야시 나오미치(林直道,사진)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재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동기로 이 책을 쓰셨던 게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만났을 때 정부의 정책 실패를 지적하고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공황‧불황의 원리를 사람들이 알고 함께 대처법을 고민해 나갔으면 한다는 바람이, 하야시 선생님으로 하여금 난해하기로 소문난(^^;) 맑스주의 공황론을 알기 쉽게 풀어 쓰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편집자로서 내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작업을 마치고 난 후 제겐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책이 좋아 편집자가 되었고 또 나를 감동시킨 책들을 낸 출판사를 찾아와 일하게 된 이래 편집을 맡은 몇 권의 책 중 하나. 이렇게 말하면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엔 역시 이렇다 할 동기가 없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떠올리게 된 것이 저 1997년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체감했던, 그리고 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그 경제위기 말이지요. 그해 이래 지금까지 저희 가족은 전셋집을 전전하고 있고, 또 그해 이래 틀어지기 시작한 가족들 사이도 악화일로입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이런 일상과 비일상의 자리바꿈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저희 집엔 운명론적 체념의 정서가 떠돌게 되었죠.

1997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휩쓸었던 경제위기는 미국과 일본의 재정정책, 헤지펀드라는 국제적 투기세력 등을 아우르는 매우 광범위한 시야 속에서 조망해 보지 않으면 그 전모가 잘 파악되지 않는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또 시간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자본주의의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어 온 과정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제 기억 속에서는 IMF라는 영문자 조합에 대한 거부감 정도를 남기며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이 책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한편(3부 4장이 이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답니다), 자본주의에서 반복되는 경제위기 메커니즘의 규명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위기’ 또한 이미 제가 제 삶의 ‘거대한 변환’으로 기억하는 ‘위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사실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를, 대략 15년 전 제 삶에 던져졌던, 그러나 대답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잊어가고 있던 문제들(경제위기와 내 삶이, 내 세계관이, 내 가치관이, 그리고 내가 돌아보기 싫어하는 내 마음의 어떤 면들이 맺고 있는 관계)과 다시 마주하라는 요청이자 기회로서 만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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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하고 조금 더 전, 그린비출판사의 회의실에서 사장님은 ‘너는 왜 책이 좋으냐?’는 물음을 던졌었고 저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내가 살면서 겪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책을 읽으면 이해되는 데서 감동을 느꼈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편으로 ‘이런 두루뭉술한 대답이 또 있을까, 나 이러다 미끄러지겠구나’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쨌거나 내 안에서만큼은 이게 맞는 답이다’라며 마음을 놓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와 들은 여러 좋은 말(^^) 중에 가장 제 마음에 깊이 남은 말이 ‘삶의 문제들에 대답해 주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2011년 11월 23일. 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 어제 미국의 월스트리트 시위대가 한국에 실패한 금융시스템을 이식시키는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연대의 뜻을 밝혔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뿌듯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말이지요. 십수 년이 걸려 다시 만난 ‘삶의 문제’는 이제 대답이 늦어진 만큼 더 긴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의 제 편집자로서의 활동 속에서, 그 대답을 이어 나가려 합니다.

- 편집부 김효진

2011/12/06 09:00 2011/12/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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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2011년 12월 1주 - 새로 나온 책

    Tracked from 행간을 노닐다 2011/12/06 22:30  삭제

    글을 아는 새로운 인민이 개화기에만 있있던 것은 아닐진데 비약이 아닐까. 방영하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의 내용과 통한다. 글을 반포하고 500년후에야 적용된다는 것은 이해가 어렵다. 책을 봐야겠다. * 성리학을 기반으로 500여 년간 강력한 통치 체제를 유지했던 조선이 무너진 이유를 분석한다. 송 교수는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새로운 인민’의 출현에서 조선이 무너지게 된 근본 원인을 찾는다. ’인민은 통치의 객체이자 교화의 대상’이라는 조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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