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된 목소리에 접근하는 논픽션의 상상력

‘트랜스라틴 총서’의 일곱번째 책 『과거 침묵시키기』(Silencing the Past: Power and the Production of History)가 출간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낯선 아이티혁명 당시 어떻게 진정한 혁명군 지도자가 암살당하고, 그에 대한 기억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분석하면서 출발하는 책인데요. 저자 미셸-롤프 트루요(Michel-Rolph Trouillot)는 아이티혁명에 대한 이러한 화두를 라틴아메리카 식민화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기념행사가 19세기를 전후로 해서 어떻게 발명되었는지를 밝혀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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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떤 입장으로 어떤 목적으로 서술하는가에 따라 다른 사건이 된다. 역사가 '객관적이며 사실적'이라는 가치 판단 역시 재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미국에서는 매년 10월 12일에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기념행사를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한다고 하더군요. 1492년 10월 12일이 콜럼버스가 바하마에 도착해서 신대륙에 문명을 전파하게 되었다는 걸 축하하는 건데요. 트루요는 정말 1492년 10월 12일에 콜럼버스가 바하마에 도착했는지,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에 대한 오늘날의 거국적 기념의식이 신대륙이 발견되었던 15세기 말엽부터 이미 존재했는지를 의문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아마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전통의 발명’이라는 표현을 종종 들어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에릭 홉스봄과 테렌스 레인저 등이 책을 엮으면서 표제로 사용한 표현인데요. 우리에게 ‘전통’이라고 인식되었던 것들이 사실은 겨우 한두 세기 이전에 사회적 규제와 억압을 위해 발명되었다는 것을 함의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발명된 전통은 여러 지역에 산재했던 인구들을 하나의 문화적 범위로 통합해 내는 역할을 하지요. 근대의 한 범주 중 하나인 국민(nation)은 이 전통을 매개로 탄생합니다. 상황은 아이티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사례가 나옵니다.

‘상수시’라는 이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혁명 당시에 아이티에는 장-밥티스트 상수시(Jean-Baptiste Sans Souci)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혁명군의 지도자였는데요. 군 내부의 지위상 그보다 위에 앙리 크리스토프(Henri Christophe)와 장-자크 데살린(Jean-Jacques Dessalines) 등이 있었습니다. 혁명운동이 한창일 때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지배하게 되면서 아이티에 대한 탄압도 거세어지게 됩니다. 이 거센 탄압으로 혁명지도자들 상당수가 프랑스와 일시적으로 손을 잡게 되는데요. 그들이 크리스토프와 데살린 등의 핵심지도자들이었습니다. 상수시는 이들을 변절자라 부르며 계속해서 투쟁을 하는데요. 투쟁이 점차 힘을 얻으면서 프랑스 식민군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프랑스와 제휴했던 크리스토프와 데살린도 혁명군으로 돌아와 아이티독립의 순간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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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8월 프랑스 식민지 산도밍고(아이티)의 노예들이 노예제 폐지 혁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독립 정부가 아이티에 세워진 뒤에도, 아이티 사회에서는 프랑스 식민 지배 아래서 나타났던 현상이 그대로 지속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요.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앙리 크리스토프는 흑인노예들의 지지를 얻고 있던 상수시를 살해하고 독립국 아이티에서 왕으로 등극하게 되지요. 왕으로 등극한 크리스토프는 노예들을 동원해 궁전을 하나 짓습니다. 이름은 장-밥티스트 상수시를 연상시키듯 ‘상수시’(Sans Souci). 불어에서 ‘Sans Souci’는 ‘근심(souci)이 없는(sans)’을 뜻한다고 하네요. 상수시를 살해함으로써 그는 ‘근심이 없는’ 공화국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 아래에 식민지 해방과 노예해방을 외쳤던 혁명군 상수시의 이름이, 그리고 거대한 궁전을 만들기 위해 착취된 흑인노예들의 고통스러운 노동이 있습니다.

콜럼버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기념행사는 1792년 미국의 ‘콜럼버스 기사단’(Columbian Order)이라는 단체에 의해 처음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300여 년의 시간 동안 콜럼버스라는 이름은 기념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죠. 1792년 첫 기념행사는 한 단체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지만, 100년이 지난 후에는 그 규모와 주체 자체가 변하게 됩니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행사는 미국과 스페인에서 정부의 주도하에 국가기념행사로 진행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기록 속에 콜럼버스의 바하마 착륙일을 명시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10월 12일에 정말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을 디뎠을까요? 그러나 그 날짜의 정확성 여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10월 12일이 국가기념행사를 위해 발명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400주년 기념행사와 500주년 기념행사는 거대하게 치러집니다. 500주년은 미국의 거대기업 디즈니사가 개입하며 세계적인 축제의 장이자 소비의 장으로 만개하게 됩니다. 기념행사의 출발을 알린 19세기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트루요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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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에 대한 관심은 1800년대에 늘어났다. 유럽과 미 대륙에서 출간된 콜럼버스에 대한 간략한 전기물들의 수는 1830년대 이후로 크게 증가했다. 1880년대에는 400주년 기념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 역시 늘어났다. 카노바스는 이와 같이 콜럼버스에 대하여 높아져 가는 관심을 하나의 화려한 쇼로 바꾸어 놓았다. 다시 말해서, 콜럼버스에 대한 관심을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성전(聖戰)으로, 경제적인 사업으로, 그리고 스페인과 세계가 소비하는 순전히 화려한 흥행을 위한 하나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미셸-롤프 트루요 지음, 김명혜 옮김, 『과거 침묵시키기』,234~235쪽

콜럼버스는 처음(19세기)에는 혁명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정치적 문화적 통제 전략으로 소환됩니다. 그의 이름으로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서구문명의 전파자로 자기우월성과 자기동일성을 얻게 되고, 미국의 이민자들은 콜럼버스와의 동일시를 통해 서구문명의 계승자로 자기 자신을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20세기)에는 자본의 자기축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이렇듯,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면서 당대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게 되는데요. 저자는 이러한 전통의 발명과정이 아이티인(혹은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침묵을 수반한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전통의 발명은 노예상태와 식민상태로부터 해방되고자 했던 아이티 흑인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킨다는 것인데요. 그 침묵의 기억에 장-밥티스트 상수시가 있습니다.
이미 두 세기가량 지나버린 이 긴 침묵의 과정을 되밟아가기 위해 트루요는 다양한 사료들을 읽어내고, 역동적인 상상력을 펼쳐나갑니다. 아마도 이 책이 제게 추리소설과도 같은 흥미를 안겨 준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싶군요. 물론 추리소설이라는 것은 비유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사료와 사료 간의 긴밀한 맥락을 읽어 나가는 저자의 날카로운 상상력은 픽션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말의 진실을 던져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편집부 고태경
과거 침묵시키기 - 10점
미셸-롤프 트루요 지음, 김명혜 옮김/그린비
2011/12/19 09:00 2011/12/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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