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를 다시 읽자!

『알튀세르 효과』가 목표로 하는 것은 단순히 알튀세르 사망 20주기를 기리는 것도 아니고, 그의 사상의 위대함, 그의 맑스주의의 독창성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 논문집의 목표는, 그의 사상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고 여전히 현실적인 효과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고, 알튀세르 사상과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 독자적인 이론 세계를 구축한 현대 사상가들의 작업에 알튀세르 사상이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그 작업들 속에서 어떤 식으로 변용되거나 지양되고 있는지 검토해 보는 것이다. (…)

엮은이가 보기에 철학자로서, 맑스주의자로서 알튀세르의 가장 비범한 측면은 그의 비교조적인 사유양식, 가장 이단적인 방식으로 맑스주의를 쇄신하고 구원하려고 했던 그의 사유 양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공산당의 정치적 사상 통제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던 시대에 그는 대담하게도 비맑스주의적인 사상의 요소들을 동원하여 맑스 사상의 핵심을 복원하고 맑스주의를 개조하려고 했다.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하여(더욱이 그의 스피노자 해석은 당대의 맥락에서 볼 때 가장 이단적이고 가장 특이한 해석이었는데, 놀랍게도 오늘날 그의 해석은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헤겔 변증법과 구별되는 맑스주의 변증법을 사고하려는 시도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및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을 통해 맑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론을 구성하려는 시도, 가스통 바슐라르나 조르주 캉길렘에 근거하여 맑스주의 인식론을 쇄신하려는 시도 등이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그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사상이 지닌 이러한 이단적 성격, 개방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 진태원, 「서론」, 『알튀세르 효과』, 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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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간된 『알튀세르 효과』의 기획자이자 엮은이, 저자이신 진태원 선생님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알튀세르 효과』는 2010년에 진행했던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의 결과물이기도 하지요. 무려 872쪽의 엄청난 두께! 일년에 가까운 준비 기간은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지금 알튀세르를 다시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진태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시죠!

진태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스피노자, 알튀세르, 발리바르, 데리다 관련 연구서들을 집필하고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선생님께서 『알튀세르 효과』라는 책을 기획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선생님 개인으로선 알튀세르의 어떤 점이 현재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알튀세르는 1918년에 태어나서 1990년에 사망했습니다. 작년(2010년)이 사실 사망 20주기가 되는 해였죠. 개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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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철학을 공부했고, 거기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망 20주기를 맞아 의미 있는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알튀세르의 『자본을 읽자』를 번역 출간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번역이 한 번 되긴 했는데,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글만 실린 영역본이 출간되었죠. 『자본을 읽자』는 원래 다섯 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저술을 한 책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은 알튀세르의 두 편의 글과 발리바르의 글만 묶어서 출간된 영역본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번역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영향력을 별로 못 미치고 사라져버렸죠. 그래서 첫 번째 계획을 『자본을 읽자』를 번역 출간하는 것으로 세웠습니다. 

(기획 의도의) 다른 하나는 국내에 알튀세르의 영향을 받은 연구자들이 상당수가 있으니까 공동 논문집을 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획을 하게 된 것이 2009년 초였는데, 그때 (그린비) 사무실에 와서 사장님과 주간님과 같이 의논을 하게 된 거죠. 두 분이 굉장히 흔쾌하게 받아주셔서 추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알튀세르의 사망 20주년을 맞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알튀세르가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히던 때가 80년대 말, 90년대 초인 것 같아요. 그때는 ‘맑스주의’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알튀세르의 책을 한 권씩은 갖고 있었고, 과잉결정·중층결정·호명·이데올로기·맑스주의 위기·토픽 이런 얘기를 누구나 하던 시기였죠. 알튀세르는 4~5년 동안 읽히다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알튀세르의 영향이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대신 푸코나 들뢰즈, 최근에는 지젝, 아감벤 이런 사람들이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알튀세르가 남겨놓은 문제들이 많이 있고, 또 알튀세르의 주요 개념들이 현실의 문제와 구조를 분석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알튀세르 철학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통찰을 제시해 줄 수 있는데 그냥 이대로 묻어 둬도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바디우, 랑시에르, 지젝, 라클라우, 무페, 발리바르 등 현대에 유명한 철학자·이론가들은 다 알튀세르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에요. 나중에는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경로를 개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부정하고 나서도 보면 다 (알튀세르의) 영향력이 살아있죠. 그러면 이 이론가나 철학자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들의 이론적인 원천의 역할을 하는 알튀세르 철학이나 이론, 개념을 잘 알아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알튀세르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그 사람들이 어떻게 변용시켰고, 어떻게 넘어서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어떤 의미에서 (알튀세르 철학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평가할 수 있을 테지요. 그래야 우리가 바디우 얘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랑시에르, 지젝, 라클라우, 무페, 버틀러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튀세르가 굉장히 비극적으로 부인을 목 졸라 죽이고 10년 동안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했지만, 그가 생전에 남겼던 이론들, 개념들, 문제들이 여전히 현재에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효력이 어떻게 발휘되고 있는지 다른 말로 하면 현대 철학자나 이론가들이 알튀세르의 이론이나 개념을 가져다 어떤 식으로 변용하고 비판적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고 있는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겠다는 것이 『알튀세르 효과』의 두 번째 기획 의도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알튀세르 효과』를 보면 많은 연구자들이 알튀세르의 작업이 현대 이론가들 및 철학자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밝히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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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가 붕괴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연쇄적으로 몰락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20여 년 동안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적인 금융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경험했지요.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이제 “자유주의의 최종적인 승리가 됐다”고 선언했죠. 그런데 저는 자유주의가 승리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만약 자유주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쳐도 이것이 승리한 세계가 더 좋은가 하면, 또 그렇지 않죠. 전 세계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분쟁과 갈등이 생겨나고 있고, 또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갈등과 재해로 인해 사망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전에는 (부의 독점 현상이) 20 대 80 그랬는데, 요즘은 1 대 99죠. 엄청난 부의 독점현상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아마 금융자본의 전형적인 특징일 텐데, 엄청난 부의 독점이 이루어지면서 소수의 부자 말고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의 근거랄까 토대 자체가 무너지는 현상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죠.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인 나라들에서는 예외없이 (극심한 부의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인데 영미와 우리나라가 특히 그렇습니다. 흔히 ‘중산층의 몰락’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으로는 금융자본주의에 의한 부의 독점이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죠. 중산층이 몰락하는 것 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되고, 사회적 안전망을 상실해가는 수많은 빈민들이 탄생하고 엄청난 수의 비정규직들이 신자유주의의 현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해 자본주의 내부에서 어떤 대안들을 갖고 있나 보면 막상 대안이 너무 없다는 것 또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지난 2007년, 2008년의 금융위기에 미국정부가 하는 일, G20에서 세계 정상들이 모여서 하는 일을 봐도 그렇고, 최근 유럽 금융위기로 인해 유럽 정상들이 대처하는 방법을 봐도 자본주의 자체에는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이나 폐해를 막을 만한 또는 해결할 만한 어떤 내적인 능력(여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우리가 어떻게 사고할 수 있을지를 좀 본격적으로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맑스로 돌아가야죠. 맑스로 돌아가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맑스로 단순하게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맑스에서 유래했던 백 년 동안의 정치적·사회적 체제가 역사의 시험을 견뎌내지 못하고 붕괴해 버렸잖아요.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해 버렸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그냥 맑스로 돌아가자고만 얘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말 맑스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70년 동안의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로 돌아가되 비판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맑스로의 비판적인 복귀를 찾기 위해 중요한 거점 중의 하나가 알튀세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알튀세르는 처음부터 맑스를 비판적으로 읽었기 때문이죠. 알튀세르는 자기 작업의 의미는 맑스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계속 얘기했지요. 그런데 알튀세르가 이야기한 맑스로의 복귀는 처음부터 굉장히 비판적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이단적입니다. 알튀세르는 비(非)맑스적인 사상·이론을 통해서 맑스를 재해석하고, 심지어 맑스를 개조하고, 맑스의 모순을 드러내고, 맑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이론적인 작업이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맑스로 비판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가를 사고하기 위해서, 오늘날 알튀세르 철학과 이론이 우리가 우회할 수 없는 중요한 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알튀세르 만으로 자본주의의 대안을 사고할 수는 없죠. 알튀세르 철학 속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적어도 알튀세르가 의미가 있는 것은 맑스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나 반대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맑스를 비판적으로 읽되 동시에 맑스의 고유한 정신과 이론적 핵심, 통찰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하면 ‘맑스로의 비판적인 복귀’!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바로 알튀세르가 아니었나, 그런 의미에서 알튀세르가 ‘맑스로의 비판적인 복귀’를 수행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에 알튀세르가 소개가 된지 25년 정도가 되었을 텐데, 그동안 국내에 나왔던 (알튀세르에 관한) 숱한 책들, 논문들과 견줄 수 없는 알튀세르에 관한 다양하면서 풍부한, 또한 상당히 수준 높고 통찰력 있는 글들을 담고 있는 게 『알튀세르 효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엮은이로서 이런 이야기 하기가 좀 창피하고 쑥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책이 국내에서 알튀세르를 비롯해서 맑스주의 또는 현대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우회할 수 없는 중요한 참고자료·준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알튀세르 효과 - 10점
진태원 엮음, 강희경 외 옮김/그린비
2012/01/11 09:00 2012/0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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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영 2012/01/11 16:08

    알찬 인터뷰 잘 보고 갑니다~ 책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그린비 2012/01/11 17:31

      한영님 반갑습니다~! 책도 꼭 읽어봐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