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 석동연의 『그녀는 연상』을 구입했습니다. 석동연의 만화를 구하기 위해 틈틈이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 왔는데 드디어 재고를 발견했던 것이죠. 석동연이라는 만화가를 처음 알게 된 이후, 만화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책 모두가 절판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헌책방에서 『그녀는 연상』을 발견했을 때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출간된 석동연의 만화책 중 유일하게 소장하지 못했던 책이기 때문이죠. 혹시라도 누가 먼저 주문할까봐 급하게 결제까지 완료하고 난 후,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출간된 석동연의 모든 책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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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연상』>

석동연의 4컷 만화를 처음 접했던 것은 월드컵의 ‘광기’가 한국을 휩쓸고 있던 2002년이었습니다. 아마 기억하시겠지만, 당시 월드컵과 함께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것이 ‘메트로’라는 무가지 신문이었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선전과 함께 ‘메트로’도 지하철을 완전 도배했었습니다. 저도 학교를 오가며 ‘메트로’를 종종 챙겨봤었습니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메트로’를 펼쳐드는데 ‘명랑만화 풍’의 4컷 만화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바로 석동연의 만화였습니다. 당시 ‘메트로’에서는 석동연의 만화들이 연재되고 있었는데(새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시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는 만화들을 연재했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 ‘석동연식’ 4컷 만화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 만화에서는 4컷 만화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물론 인터넷에 올라오는 만화들의 경우, 4컷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칸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4컷 만화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4컷 안에 만화의 내용을 함축시켜 표현해야 하는 특성상, 4컷 만화는 어지간한 '센스쟁이'가 아니면 도전하기 힘든 분야였습니다. 그래서 신문의 시사만화작가들만이 한국 4컷 만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시점에 만난 석동연의 4컷 만화는 일단 반가웠습니다. 어릴 때 어린이 신문에서 재미있게 봤던 4컷 '명랑만화'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석동연의 만화에는 매력이 풀풀 넘쳐흘렀습니다.

석동연 만화의 첫번째 매력은 패러디의 힘입니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엄지공주와 같은 동화를 명랑만화의 공식으로 패러디해 놓은 한편, 우리에게 익숙한 순정만화의 공식들을 하나씩 부각시켜서 웃음을 선사해줍니다. 가령 1980년대 순정만화에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꽃을 배경으로 사용한다’는 일종의 ‘공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석동연의 만화에서 ‘순정만화풍’ 인물들은 등에 꽃을 달고 다닙니다. 가끔 등에 달려 있는 꽃들에게 물도 주고, 소독약도 뿌려줘야 하는 등, 꽃을 돌보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합니다.

두번째 매력은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재배치'함으로써 우리를 웃게 만드는 힘에 있습니다. 익숙한 이야기들을 새롭게 구성하고 재배치하는 데 있어 석동연은 탁월한 감각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석동연은 왕자와 결혼한 후 신데렐라가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우리의 '희망사항'을 재치 있게 뒤집습니다(슈렉의 등장으로 동화 뒤집기가 익숙해져 있긴 하지만, 석동연의 ‘재배치’는 명랑만화의 성격이 짙습니다). 신데렐라와 파티장에서 춤 한번 추고 결혼한 왕자는,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처럼, 신데렐라와 결혼 후에도 춤에 매진, 이제는 '스텝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신데렐라의 속을 썩입니다(『얼토당토』). 신데렐라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이 석동연 만화의 소재가 됩니다. 토끼를 탐정으로 내세운 『명쾌! 사립탐정 토깽』에서는 동물을 소재로 한 속담과 속설들이 주요 소재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추리만화의 공식들도 '석동연 명랑만화식'으로 코믹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석동연 만화의 세번째 매력은 사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작가의 능력입니다. 채소와 과일을 등장인물로 설정한 만화에서는 각 과일과 채소들의 특징을 잘 포착합니다. 얼굴이 오돌토돌해 고민인 ‘오이’에게 친구들은 얼굴 마사지 비디오 테입을 사다 줍니다. 친구들의 진심어린 선물을 받고 감동한 ‘오이’는 비디오 테입을 보면서 마사지를 합니다. 그런데 비디오 테입에서 얼굴 마사지를 위해 오이를 강판에 갈아 팩으로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오돌토돌한 오이와 마사지용을 사용되는 오이를 잘 엮어 웃음을 선사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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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연은 4컷 만화의 형식을 고집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지금도 『씨네21』에 4컷 만화를 연재중입니다. 석동연의 4컷 만화는 한국 만화계에서 독특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4컷 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축적인 재미를 석동연만큼 유연하게 풀어내는 작가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석동연의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석동연의 만화가 80년대 한국 명랑만화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꺼벙이', '오성과 한음'과 같은 한국 명랑만화는 지금의 일본 만화와는 다른 이야기 서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 수입되기 시작한 일본만화의 영향으로 지금은 한국의 모든 만화가 일본만화화 되어 버렸지만, 일본만화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한국 만화 특유의 웃음 포인트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석동연의 만화는 이런 한국 명랑만화의 서술방식과 장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10년쯤 지난다면 석동연의 만화책의 가치가 많이 올라가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모두 초판본이니(2쇄를 찍지 않은 모양입니다-_-),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어 가치가 더욱 높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깐 많은 돈을 받고 팔 수 있을지도……^^ 석동연의 만화를 읽다보면 이런 '얼토당토' 하지도 않는 상상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편집부 진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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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4 16:48 2008/02/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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