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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이김천 作

연암 박지원은 영조 13년(1737년) 서울 서소문 밖 야동(冶洞)에서 노론 명문가 박사유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열 여섯. 이팔청춘에 진주 이씨와 결혼한 후, 장인어른(이보천)과 처남(이양천)의 지도 하에 학업에 정진했습니다. 처가 역시 노론 학통을 계승한 명문가, 한마디로 출신성분은 '빵빵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쪽 집안 모두 '청렴'을 가문의 영광으로 내거는 바람에 평생 가난이 떠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연암은 젊은 시절부터 시대의 주류를 빗겨가는 삶을 선택합니다.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코스에서 스스로 탈주해 버렸던 것이죠. 그가 과거를 포기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개입했을 것입니다. 당쟁으로 얼룩진 정국, 아수라장으로 변한 과거시험장, 절친한 친구들의 정치적 희생 등등. 그리고 아마 체질적으로 격식에 갇히는 삶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과거를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연암의 젊은 날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말 그대로 한량에 백수인 셈인데, 집안이 가난하기까지 했으니 제대로 '놀' 팔자도 못 된 셈이죠.

이렇게 부도, 명예도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그의 30대를 생애 가장 빛나는 시절로 만들어 준 결정적인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언제나 함께 웃고 함께 울어주는 벗들을 만나게 된 것이죠. 이름하여, '백탑白塔에서의 청연淸緣'! 백탑은 파고다 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말합니다. 당시 연암과 그의 친구들이 이 근처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생긴 명칭입니다. 북학파의 핵심 멤버인 박제가와 이덕무, 천재 과학자이자 음악가인 홍대용, 괴짜 발명꾼 정철조, 조선 최고의 창검술을 자랑한 백동수 등이 그의 자랑스러운 친구들이었습니다. 삼십대 중반 즈음, 연암은 전의감동에 혼자 기거하면서 이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연암과 거의 친구들은 매일 밤 한곳에선 풍류를, 다른 한편에선 명상을 ,또 한쪽에선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모임을 이어갔습니다. 벗이 있었기에 진정 행복했고, 벗이 있었기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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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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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하지만 백탑에서의 빛나는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776년, 우여곡절 끝에 정조임금이 즉위하게 되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홍국영의 세도가 시작되면서 자신의 반대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갔는데, 그 불똥이 급기야 연암에게도 튀게 된 것이죠. 때마침 집안의 사정으로 먹고살기도 막막해진 연암은 도주하듯 개성 부근에 있는 '연암골'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마흔 두 살 즈음이었습니다. 2년 뒤, 홍국영의 실각과 더불어 연암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지만, 옛 친구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벗과의 교류도 세월의 무상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인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둔다고 했던가요. 바로 이 시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열하일기』가 탄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780년, 울울한 심정으로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를 염원하던 차,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축하 사절로 중국으로 가게 되면서 연암을 동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정식 수행단이 아니라 일종의 '꼽사리' 여행자인 채로 말이죠. 그의 생애 가장 큰 행운이자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인 '중국 여행'은 이렇게 우연하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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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에 수록된 『열하일기』

열하일기는 총 26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7권은 여정을 시간 흐름에 따라 정리하는 편년체 방식으로 쓰여져 있고, 8~26권은 여정과는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쓰여진 기사체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질」이나 「허생전」, 그리고 '오천 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이라 일컬어지는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같은 글들이 바로 후자에 속하는 글들입니다.

책을 내자, 천고에 드문 문장이라며 열광하는 '폐인'들도 많았지만, 책을 불태워버려야 한다며 난리를 떠는 '안티 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1792년, 정조는 문체반정을 주도하면서 문체를 어지럽힌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지목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는 그저 중원천지에서 마주친 '말과 사물'들의 웅성거림을 세상에 전달한 전령사였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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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13:26 2008/02/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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