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민족』추천의 글

윤미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 대표)

‘젠더와 민족’.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을 하기 시작한 지난 20여 년 동안 늘 내 머릿속에 ?(물음표)처럼 맴돌던 말이다. 한마디 명쾌한 문장처럼 내 활동에 대한 정의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젠더’와 ‘민족’ 혹은 ‘민족주의’ 가 들어간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해외인터넷서점에서 영어책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 이 『젠더와 민족』이라는 책이 내 검색키에 들어왔다. 내 머릿속에 물음표로 맴돌던 주제와 딱 맞는 그런 내용인 듯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숨 가쁘게 활동해야만 하는 현장 활동가가 우리말로 된 책을 읽기도 빠듯한 시간에 사전을 옆에 놓고 단어를 찾아가며 영어책을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책을 한글로 출간하는 일을 맡은 박혜란 선생님으로부터 어느 날 같이 활동하는 SNS공간에서 추천의 글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사실 전혀 고민이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던 고민의 주제였고, 내 삶의 영역에 늘 친숙하게 함께 있었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추천의 글을 쓰려고 시작했을 때부터 몇 날 동안 이 글을 내가 쓰는 것이 맞는가를 가지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가장 기다려 온 사람이 바로 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국가와 나’
그런데 쓰기를 시작하려 하자 주마등처럼 ‘나’를 둘러싸고 흘러온 역사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60년대 말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70년대 말에 중학교를 졸업했고, 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가사의 노래가 마을회관 방송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했고, ‘국민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는 박정희 정권이 마치 국가를 향해 정신 총동원령을 내리듯이 내린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고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교장과 교사들,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에 집합하여 부동자세로 선 상태에서 한 목소리로 외우며 하루를 시작했었다. ‘국가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며 >, < 기호로 그 중요 순서를 매기는 교육을 받으며 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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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와 혈통을 민족 집단체의 주요 조직 원리로 주목하는 민족주의 기획은 다른 민족주의 기획보다 더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 오직 출생을 통해 특정 집단체에 들어가야 그 집단체의 완벽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니라 유발-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 『젠더와 민족』, 52쪽

길을 가다가 애국가 노래가 방송에서 흘러나오면 자동적으로 부동자세를 갖추고 손을 가슴에 대고 섰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굵고 낮은 남자목소리로 녹음된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방송에서 흘러나오면 태극기를 향해 선 내 마음은 태극기 너머에 있는 국가라는 존재, 그 국가를 통솔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향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전교생 전체가 공공 체육시설 운동장에 집합한 상태에서 짚으로 허수아비 모양을 만들어 세우고, 북측 김일성 주석의 이름을 시뻘건 글씨로 써서 붙이고 화형식을 했다. 그때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여성과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이 “때려잡자! 김일성!”이라 외치면 우리 모두 한목소리로 그대로 따라 외치며 우리의 적은 바로 북한이라며, 북을 물리치자며 다짐하게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일이고,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렇게 나는 바보국민 제조회사 리모컨 조종에 쉽게 조종되고 있었고, 집단적 국가폭력에 순응하는 ‘국민’으로 길러지고 있었다.

‘민족과 나’, ‘사회와 나’, ‘공동체와 나’
그러던 내게 대학은 ‘국가’ 대신 ‘민족’이라는 것, ‘공동체’라는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제도교육이 아닌 ‘사회와 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 갔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를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숙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사회 안에는 억눌림도, 억압도, 가난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스스로 이를 위해 싸워야 하는 ‘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때 내게 ‘민족’이라는 개념은 ‘나라’, ‘영토’ 의 개념이 아니라, 여전히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강에 속박되어 있는 우리의 역사, 분단된 현실 등 사상적인 의미로 채워졌다. 강대국에 맞서야 하는 공동체로서의 민족, 미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에 저항해야 하는 민중공동체로서의 민족, 민주화를 만들기 위해 독재자들에게 저항해야 하는 ‘우리들’의 개념으로서의 민족이었다. 그 민족은 내게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빌붙어 살며 민중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독재자에게, 독재정치에 저항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여성과 나’
‘여성’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여성단체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80년대 후반, 내게 던져진 숙제는 ‘여성인 나’였다. 또한, ‘여성인 내 친구들’, ‘여성인 노동자들’ ‘여성인 농민’, 그리고 역사의 주체였으면서도 주체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그 인식은 나로 하여금 기생관광에 희생되고 있는 여성들과 나의 관계를 보게 만들었다.

나와 동시대에 태어난 농촌의 여성들에게 딸은 돈 들여 공부시킬 가치도 없으며, 공부해 봤자 팔자만 세지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딸들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 도시로 나가 공장에 취직을 했다. 어린 나이에 힘들었지만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벌어 집에 보내면, 그 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그 돈으로 아들들을 중학교, 고등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내 벗들은 어린 나이에 가정을 떠나 ‘여공’으로 살다가 결국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유무형의 ‘폭력의 덫’에 우여곡절 걸려들게 되고, 마침내 성매매 현장으로 들어와 기생관광에 이용되고 있었다.

그 여성들의 이야기는 바로 내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내 청년 시기에 내 열정을 더 뜨겁게 덥혀 주었던 ‘민족’, ‘공동체’라는 말 속에 포함될 수 없었던 ‘낙인’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내 어린 시절, 가난한 농촌이던 우리 동네에 나타났던 화려한 차림새의 한 여성을 향해 어른들은 ‘양색시’ 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 어른들의 세계에 동조했던 자신을 발견했고,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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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거리의 풍경-양색시>, "전쟁 중 강간이나 성폭력, 성매매 또는 위안부의 경우처럼 국가 기획 수준에서 제도적으로 성착취가 발생할 경우, 이러한 문제들은 피해자 당사자의 생명과 권리의 수준에서 처리되거나 논의되기 보다는 집단체의 명예와 실리를 명분으로 다뤄진다." -같은 책, 「옮긴이 후기」, 272쪽

일본군‘위안부’와 나
그리고 그것은 나를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되었다. 내가 만난 일본군‘위안부’는 ‘민족’이라는 범주 속에도, ‘국가’라는 범주 속에도, ‘공동체’라는 범주 속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어쩌면 ‘여성’이라는 범주 속에도 포함되지 못했던 여성들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간사로 활동을 시작했던 해에 마침 ‘정신대 신고전화’가 개설되었다. 그 전화통을 자주 울리며 호통 치던 할아버지들의 목소리, “민족의 수치야!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렇게 떠들어!” 어느 해 8월 15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내게 폭력을 휘두르며 폭언을 해대던 어떤 할아버지의 목소리, “저리 가!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 수치스런 일을 이렇게 내세워!”

그런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게 되고,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자 이런 할아버지들의 목소리가 우리 앞에서 사라져 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현재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세계의 전쟁과 무력갈등 속에서 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여성들의 이슈와 연계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UN과 ILO, 세계 곳곳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일본 우익들의 협박전화를 빼고는 더 이상 정대협 사무실에 초기와 같은 전화를 거는 할아버지들이 없었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판단할 정도였다.

또 다시 제 자리
그런데, 일본 우익도 아닌 한국의 광복회와 순국선열유족회 등 일제 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과 그 유가족들의 조직이 다시금 우리 사회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기억하고,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평화를 위해 연대하며 활동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건립하려 하자 이를 두고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위안부’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은 몰역사적인 행위로서 독립운동을 폄하시키는,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하고, 정대협 사무실에 대여섯 명이 방문해서 협박과 으름장을 놓던 할아버지들. 그 모습은 20년 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우리의 싸움은 일제의 과거만행을 청산하는 싸움이기도 했고, 전쟁에 대항하는 싸움이기도 했으며,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군국주의자들과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하는 싸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부장제적인 체제 아래서 ‘선별받은’ ‘민족’처럼 군림하던 사람들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렇게 민족, 사회, 우리 등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진보적인 여성운동가들과 여성연구자들이 함께 시작한 것이 바로 정대협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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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송신도 할머니. '전쟁'에 있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군인들과 위안부였던 그녀들 모두가 피해자였다는 것이 송신도 할머니의 외침이다.

그러나 이 운동이 5년, 10년 안에도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면서, 한쪽에서는 정대협 운동에 대해 ‘여성’을 억압한 ‘민족주의’ 운동이라고 비난했고, 또 한쪽에서는 ‘여성주의’에 치우쳐 ‘민족’이 처한 문제는 등한시한다고 비난했다. ‘여성’이라는 범주에도, ‘민족’이라는 범주에도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이야기를 싸안기를 거부했던 양쪽의 사람들이, 그들의 관심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민족주의 목적에, 여성주의의 목적에 이용했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그런 비난이 일자 처음에는 “우리의 운동은 그렇지 않다”며 무시하고 묵묵히 활동해 나가다 보면 역사가 증언해 줄 것이라는 자위를 하며 지내 왔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사실은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저 ‘민족주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말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남북 두 개의 나라로 분단되어 있고, 일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을 한 나라, 그러다 보니 여전히 식민 청산이 되지 못해 여기저기서 아우성치고 있다. 일본에 가면 재일동포들이 설움을 당하고 있고, 중국에 가면 연변 조선족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고, 러시아에는 사할린동포들이 고통 받고 있는 이 현실, 일제식민지 이후 이렇게 갈가리 찢겨져 여러 가지 아픔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서로 잊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고, 힘을 내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민족’이라는 개념. 이제는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겁이 났다. 그런 의식들 때문에 내 머릿속에 늘 ‘젠더와 민족’, ‘민족과 젠더’ 에 대한 물음을 갖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나도 도움을 받고 싶다. 내 이 물음에 길잡이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젠더와 민족』을 빨리 만나고 싶을 뿐이다. 한국의 현대역사 속에서 ‘여성’으로, ‘나’로 살아온 지난 시절 경험을 더듬어 보니 그 기억 자체가 바로 추천의 글이다 싶다. 이 책은 나뿐만 아니라, 50~60년대에 태어나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전두환 군사독재정권과 민주화운동 과정을 거쳐 지금을 살며, 여전히 ‘민족’과 나, 군대와 나, 국가와 나를 놓고 갈등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집단의 유무형의 폭력에 저항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여성의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여성운동가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결국 지난 시기, 우리의 고민의 범주에도 포함될 수 없었던, 그래서 지금 우리 가슴에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안겨 있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기지촌 여성들이었던 할머니들, 그리고 지금 계속 그 길에서 주홍글씨 낙인이 찍힌 채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좋은 에너지로 투사되길 빈다.

윤미향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정대협) 상임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개최하고 있다. 1992년 정대협이 처음 결성되었을 당시, 간사로 활동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찾아 증언을 녹취하고 이를 세상에 알렸다.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할머니의 소원을 받들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위해 노력하고, 유럽 연합 의회의 결의안을 이끌어 내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이기도 한 그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미래 세대들에게 물려줄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오늘도 수요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젠더와 민족 - 10점
니라 유발-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그린비
2012/01/31 09:00 2012/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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