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식(韓食/韓式)을 노래하는가?

『젠더와 민족』을 편집하는 동안, 김윤옥 대통령부인이 낸 한 출판물(『김윤옥의 한식 이야기』) 때문에 여론이 뜨거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많이 이슈화되었던 터라 자세한 얘기를 붙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김윤옥 씨가 낸 이 책은 ‘G20 정상회의’ 당시 한국을 찾았던 외빈들에게 한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배포되었던 것으로, 사건의 발단은 이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출판사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무리한 요구들을 한 것에서 기인했습니다. 출판사 측 인터뷰 기사를 보니, 5천만 원 가까운 손실에, 제작 과정에서 받아야 했던 정신적 스트레스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더군요. 정작 지난해에는 ‘G20 정상회의’ 개최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배포되었던 이 책에는 별 신경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막상 이 사건이 불거지고 나니, 대체 왜 비싼 세금을 들여 그런 책을 만들어야 했는지부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게 느껴집니다.

또한 실상 그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뭐였는지가 우리 앞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과 영부인인 자신을 강조하는 미담이 주였고, 한식은 들러리일 뿐이었죠. 저는 특히 김윤옥 씨가 재현하고 있는 여인상이 아주 불편했습니다. 김윤옥 씨는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귀여운 손자들을 위해, 청와대에 방문하는 귀빈들을 위해 직접 음식을 챙기는 안주인의 모습으로 재현되고(혹은 스스로 재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국=한국 전통=한식=한국 전통의 여인상……’이라는 연쇄 고리를 발견했던 건, 저의 과장된 해석 때문이었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가 이번엔 편집한 책 『젠더와 민족』은 젠더와 민족/국가라는 범주가 현실에서 어떻게 교차하며, 서로를 강화시켜 나가는지를 보여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편집하고 있던 제가 다른 분들보다 이 사건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특히 3장 「문화 재생산과 젠더 관계」는  여성들이 민족/국가의 문화적 경계를 재생산하는 재현체로서 기능하는 메커니즘을 그리고 있는데, 왜 국가가 ‘국민 어머니’로서 영부인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에서 ‘국민 어머니’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범주를 벗어난 여성들, 심지어 민족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여겨지는 여성들도 존재하게 됩니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여성들(바로 저출산율의 주범!), 프리섹스를 즐기는 여성들,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을 위해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지 않는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지요. 여성들은 여성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민족/국민으로서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더 통제되고 억압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화가 났던 건, 여성들이 민족 문화의 재현체로서 맡는 역할들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한식의 장점엔 어떤 것이 있는가, 한식을 어떻게 세계화시킬 것인가’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그 좋다는 한식을 못 먹고 있는 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의 태도가 저를 더 화나게 합니다. 그 잘난 국가의 ‘명예’가 뭔지, 우리의 밥과 맞바뀌고 있는 명예라면 필요 없습니다.

다시 『젠더와 민족』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책을 통해 저는 민족/국가 담론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이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라는 울타리가 뭔지, 그리고 우리의 ‘정통성’과 ‘명예’가 뭔지, 실체도 없는 그 경계 때문에 추방되고 불안정한 삶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불완전한 국민’에 다름 아닙니다), 시민권을 얻지 못해 추방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선진국의 온갖 가사노동과 위험노동을 도맡아 하고 있는 제3세계의 시민들, 그리고 장애인들……. 더욱이 젠더 권력 안에서 거의 항상 주변부에 위치한 여성들은 이 구조 안에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 참수 후의 유디트와 하녀> _ "대를 잇는 존재이자 국민 재생산자로서의 역할이 종교와 민족의 이념들을 기반으로 문화적으로 또는 국가 정책적으로 강요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나 건강 상태, 경제활동, 사회참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젠더와 민족』, 「옮긴이 후기」 중)

김윤옥 씨를 둘러싼 사건, 정부의 밥 정책(!)에 대한 생각들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지는 대로, 내 분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젠더와 민족』의 저자 니라 유발-데이비스식으로 풀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니라 유발-데이비스가 동일한 ‘여성’과 ‘민족’이라는 범주를 해체하고, 차이를 가로지르는 연대를 주장했듯 말입니다). 한국 영토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한식’을 먹고 있지는 않습니다. 혹자는 최고급 한우를 먹고 있고, 혹자는 패스트하기 그지없는 정크푸드를 먹고 있습니다. 한국에 잠시 머물며 고강도의 노동을 묵묵히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기 민족식대로 음식을 해서 먹고 있겠지요. 그리고 그마저도 먹지 못하는 결식아동들도 있습니다. 제게 ‘한식의 세계화’는 이런 차이들을 은폐하는 시끄러운 노래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식’으로 재현될 수 없는 우리의 생존권, ‘국민 어머니’로 재현될 수 없는 다양한 여성들의 처지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작은 목소리들이 합쳐져 저 시끄러운 노래 소리(‘민족’과 ‘국가’를 노래하는 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합니다. 그 험난한 여정에 동참하실 분들께 이 책 『젠더와 민족』을 추천합니다.

※ 이 글의 제목은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집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 편집부 김미선
젠더와 민족 - 10점
니라 유발-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그린비
2012/02/03 09:00 2012/02/03 09:0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674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