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푸코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푸코가 한창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좀더 생각해 보면, 대학 신입생도 그 이름을 들을 정도였으니, 유행은 지나간 지 꽤 됐고 어느덧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사상가 중 한 명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학과(여기에 글을 쓸 때마다 하는 얘긴 거 같은데……)여서 역사학의 새로운 실천에 푸코가 미친 영향을 특히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책을 전혀 읽어 보지 않았습니다. 괜히 유행 따라 가는 것 같았고, 진중한 주제가 아니라 ‘섹슈얼리티’, ‘광기’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푸코란 사람이 왠지 경박해 보였으며, 또 ‘권력’에 대한 그의 생각이 암울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이 모든 게 주워들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흔히들 푸코를 ‘권력의 철학자’라 불렀습니다. 모든 곳에 권력 관계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건데,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에게 긍정적인 가능성이란 존재할 수 없지 않겠냐는 소박한 의심을 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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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도박편집증 환자」, <미친 사람> 연작
_ 사람들은 광인을 치료하기 위해 감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막기 위해 감금한 것이다.

그 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꿋꿋하게 푸코를 읽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 번도 푸코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들도 있지만, 사실 푸코 말고도 읽을 만한 책들이 많았고, 또 어떤 책에서 푸코가 등장하더라도, 어깨너머 풍월이 있어 다 아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푸코를 읽지 않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최근에 푸코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린비에서 2월 22~23일푸코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심포지엄 담당(전문) 편집자로서, 주인공의 저작을 하나도 안 읽고 심포지엄을 준비하는 게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일처럼 느껴져, 얼마 전부터 틈틈이 그의 책을 들춰 보고 있습니다.

이런 (그다지 아름답지도 극적이지도 못한) 사정으로 만나게 된 푸코는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 또 독특한 사상가인 것 같습니다.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독특함은 푸코가 ‘정상’에서 벗어난 범주들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광인(과 의학적 담론)과 범죄자(와 사법 담론) 그리고 (어쩌면) 여성 및 성소수자(와 성 담론)까지, ‘규범’이 배제하거나 유폐하려 한 존재들과 그 배제․유폐의 논리가 푸코 저작의 주인공들입니다. 이런 존재들을 다룬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고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이른바 ‘비정상인들’이나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큰 해방감을 안겨주었을지 이제야 약간 이해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20대 초반의 평범한 한국 남자 대학생’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던 그 시절 제게는 이런 독특함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이런 특수한(?) 존재들을 다룬다는 게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외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거꾸로 ‘정상적’이라 간주되는, 하지만 실제로는 ‘예속적’인 ‘주체들’을 생산하는 ‘권력 메커니즘’을 추적하는 것 역시 푸코 사상의 목적인 것 같습니다. ‘권력은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방식․시공간은 시대마다 다를 겁니다. 푸코의 권력 분석이 지닌 매력은 그가 ‘권력의 편재성(遍在性)’이라는 시답잖은 주장을 펼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라는 시기에 고유한 권력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에 있다는 걸, 그의 책을 조금씩 읽으며 느껴 가고 있습니다(이 구체성이 푸코의 진짜 매력일 텐데, 예전에 제가 그랬듯 그의 책을 직접 읽지 않으면 그 매력을 확인할 수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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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여졌다가 적당한 시약을 바르면 종이 위에 나타나는 비밀문서처럼 그렇게 홀연히 나타났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단어였다." -『미셸 푸코, 1926~1984』에서 재인용

미셸 푸코라는 철학자가 한국에 소개된 지 거의 25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짧지 않은 이 기간 동안 푸코의 사상‘만’을 다룬 심포지엄은 아직 개최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1984년에 사망했지만 푸코의 사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고, 나아가 사후 발간되고 있는 유고집들을 통해 푸코 사상의 전모가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고 말이죠. 익숙하면서도 낯선, 낡은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사상가가 바로 푸코 아닐까요? 그리고 이번 심포지엄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저항하는 자유의 철학자, 푸코를 다시 읽는다의 개최 의의가 바로 이런 데 있는 게 아닐까요?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낡은 듯(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권력’과 ‘담론’의 철학자로서의 푸코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통치성’이나 ‘사목 권력’ 같은 새로운 개념의 창안자로서의 푸코의 모습을 밝혀 보고,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처음으로 푸코 사상의 전반적 지형도를 그려 보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 말이죠.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여덟 분의 선생님들께서 발표를 맡으셨습니다. 모두 푸코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이시고, 뿐만 아니라 푸코에게서 새로운 이론적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신 분들입니다(^^;;). 푸코에게 ‘근대성’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역사의 유명론(唯名論)자’ 푸코에게 ‘주체성’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최근 회자되고 있는 ‘통치성’ 개념은, 특히 ‘(신)자유주의 통치성’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현실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요? 푸코의 이론은 ‘민주주의’를 새롭게 사고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요? 역사가와 철학자 그 사이 어디엔가 위치했던 푸코에게 ‘역사’란 무엇이었고 또 이는 ‘정치’와 어떻게 연결될까요? 푸코의 ‘장치’론은 사회과학의 방법론에 어떤 의미를 던져 주는 이론일까요? 권력과 예속의 철학자 푸코가 간직한 ‘해방의 철학자’의 면모는 대체 어떤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푸코는 ‘사회를’, ‘사회적인 것’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이번 ‘푸코 심포지엄’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함께 이야기해 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준비한 자리입니다. 이를 위해 발표자 선생님들께서 힘을 다해 발표문을 준비하고 있고, 그렇게 공들여 작업하시고 있는 만큼 좋은 발표가, 그리고 열띤 토론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2주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그날 한자리에 모여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정말 반갑고 좋겠습니다.

- 편집부 김재훈

☆ 편집자가 밑줄 그은 푸코의 문장들

결국, 시대와 목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표상은 군주제의 마력 아래 머물러 왔다. 사유와 정치적 분석에서는 아직도 왕의 목이 잘리지 않았다. 그로 말미암아 권력의 이론에서는 여전히 권리와 폭력, 법과 위법성, 의지와 자유, 그리고 특히 국가와 주권의 문제에 중요성이 부여되고 있다. …… 아마 법의 표상으로 환원될 수 없을 새로운 권력 기제들이 점차로 군주제에 침투해 왔기 때문이다. 그 권력 기제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18세기 이래 사람의 생명, 바꿔 말해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떠맡은 그것들이다.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 이규현 옮김, 나남, 1990, 103~104쪽

규율메커니즘 역시 허용과 금지, 아니 차라리 의무화된 것과 금지된 것으로 [모든 것을] 끊임없이 코드화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규율메커니즘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입니다. 적절한 규율은 매 순간 우리가 해야 할 바를 말해줍니다. …… 규율적인 규칙체계에서 결정된 것은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나머지 것들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금지된 상태에 놓입니다.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84쪽

근대 서구에서 이성과 광기가 맺은 관계를 검토하며 수용과 격리의 일반적 절차를 문제 삼으려고 정신병원·치료법·분류의 배후로 들어갔듯이, 감옥과 관련해서 권력의 일반경제를 찾고자 좁은 의미의 감옥제도 배후로 들어가려고 했듯이, 국가에 대해서도 똑같이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까요? 밖으로 나오는 것이 가능할까요? 근대 국가를, 근대 국가의 변이·발전·기능을 확보했다고 하는 일반적 권력테크놀로지 안에 재배치시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신의학에서 격리기술, 형벌체계에서의 규율기술, 의학제도에서의 생명관리정치처럼 국가와 '통치성'의 관계를 말할 수 있을까요?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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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클릭하면 심포지엄 소개글로 이동합니다.
안전, 영토, 인구 - 10점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난장
성의 역사 - 제1권 앎의 의지 - 10점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나남출판
2012/02/08 09:00 2012/0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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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other 2012/02/08 10:59

    푸코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솔직한?) 좋은 글이네요. 푸코 심포지엄 엄청 기대됩니다!

    • 그린비 2012/02/08 11:43

      네! 준비하는 동안도 엄청엄청 설레이고 기대됩니다~!!!
      푸코 심포지엄에서 만나뵙길 바랍니다!!! ^^*

  2. 이윤일 2012/02/17 11:19

    과거에 나왔던 그 책을 바꿔주는 이벤트라도 해 줬으면,
    그책 실은 읽기 무지 힘들었어요

    • 이윤일 2012/02/17 11:23

      급했었다고나 할까요,
      요번 책은 차분할 것같아 의미있어 보입니다.

    • 그린비 2012/02/17 13:54

      하하하;; 절판된 책은 또 그만큼의 소장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
      그때와 지금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도, 지금 저희에겐 복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미셸 푸코 평전,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