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토마스 렘케의 글에 이어 이번에도 심성보 선생님의 푸코 관련 번역 글을 하나 올립니다.^^ 「통치성」이라는 글이고, ‘통치성’이라는 푸코의 개념이 1970년대 말부터 영어권에서 확산되는 과정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 준 글입니다. 출처는 Nikolas Rose, Pat O’Malley, and Mariana Valverde, “Governmentality”, Annual Review of Law and Social Science, 2006, 2: 83~104입니다. 번역과 관련해 문의하실 점이 있으신 분들은 심성보 선생님의 메일(500miles@hanmail.net)로 연락해 주세요!

통치성

니콜라스 로즈, 팻 오맬리, 마리아나 발베르데
심성보(번역)

통치술

미셸 푸코는 1970년대 정치권력에 관한 일련의 연구에서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푸코가 1977~1978년 강의 『안전, 영토, 인구』의 개요에서 밝힌 것처럼, 통치성은 “개인이 행하고 그에게 일어난 일에 책임을 지는 지도하는 권위에 개인을 종속시킴으로써, 삶 전체에 걸쳐 개인을 통솔하는 임무를 띤 활동”이었다.1 혹은 푸코가 1979~1980년 강의 『삶의 관리에 관하여』에서 요약한 대로, 통치성은 “대략적인 의미로 인간 행위를 통솔하는 테크닉과 절차, 즉 아동의 관리, 정신과 양심의 관리, 가계의 관리, 국가의 관리, 자기 자신의 관리로 이해되었다”.2 푸코는 이들 강연을 비롯해 1978-79년 강의 『생명정치의 탄생』3에서, 또한 프랑수아 델라포르테, 프랑수아 에발드, 알레산드레 폰타나, 파스콸리 파스키노와 같은 콜레주 드 프랑스의 동료 작업자들과 수행한 작업, 그리고 미국에서 진행된 여러 세미나와 강연에서, 이 같은 통치술의 연속적인 형성을 분석하기 위한 특수한 접근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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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퍼, <Nighthawks>

이러한 관점은 정치권력이 특정한 합리화의 견지에서 항상 작동하고 그러한 합리화 안에서 생기는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렇다면 통치성에 관한 분석은 이런 상이한 사유 양식[즉, 합리화], 그것의 형성 조건, 그것이 빌려 오고 창조하는 원칙과 지식, 그것을 구성하는 실천, 그것이 수행되는 방법, 그것과 다른 통치술의 경쟁과 연결을 식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각각의 통치술 형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체화한다. 누가 혹은 무엇이 통치되어야 하는가? 누가 혹은 무엇[즉, 통치대상]은 왜 통치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어떻게 통치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통치되어야 하는가? 따라서 통치받는 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양육되거나 도태되는 무리의 구성원이고, 자신의 행실이 법률에 의해 제한받는 사법적 주체이며, 훈육받은 개인 혹은 정확히 말해 자유로운 사람이다.

게다가, 국가와 같은 어떤 단일한 조직이 시민의 행실을 관리하는 책임을 진다고 이해하는 대신에, 이런 관점은 온갖 다양한 권위가 상이한 장소에서 상이한 목적에 관여해서 통치한다고 본다. 따라서 두번째 일련의 질문이 출현한다. 누가 무엇을 통치하는가? 어떤 논리에 따라서 통치하는가? 어떤 테크닉을 가지고 통치하는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통치하는가? 그렇다면 하나의 분석적 관점으로써 통치성은 권력이나 권위나 심지어 지배governance의 이론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통치성은 이해하고자 하는 현상에 관한 ‘특수한’ 질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서 ‘경험적 조사’를 통해 정확한 답변에 도달할 수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통치성: 전략, 테크놀로지, 프로그램

1980년경 푸코의 작업은 다양한 국가와 학문적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흡수되었다. 영국의 맥락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1970년대 후반, 많은 급진적 좌파 지식인은 맑스주의의 비판적 분석을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법률적 실천으로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실천을 단순히 경제적 관계, 즉 생산양식의 표현이나 생산양식이 결정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분석 방식을 찾아내려고 했다. 일부는 안토니오 그람시에게로, 특히 관념의 층위에서 일어나는 지배 혹은 헤게모니를 쟁취하는 지배의 행사라는 그람시의 명제로 눈길을 돌렸다.4 그렇지만, 그람시의 생각은 특수한 실천에 대한 경험적 조사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실마리를 거의 주지 못했다. 다른 일부는 루이 알튀세르의 작업,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통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이데올로기적 조건을 도입하여 생산관계를 재생산함으로써 자신을 재생산한다는 알튀세르의 주장에 주목했다.5 하지만, 알튀세르의 작업 역시 기능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이라고 판명되었다. 왜냐하면 사회 체계, 종교, 문화적 인공물의 모든 측면이 현존하는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해 작동한다고 주장되었기 때문이다.

푸코의 작업은 이미 이러한 사유 방식을 재정향하고 있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축약 번역한 『광기와 문명』은 반정신의학의 광범위한 문화 운동에 차용되었으며, 비록 암묵적으로 맑스주의 사회학의 리얼리즘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사물의 질서』와 『지식의 고고학』 같은 책은 역사적 작업이 아니라 철학적․인식론적 개입으로 널리 수용되었다.6 한편으로, 권력에 대한 푸코의 접근은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감시와 처벌』은 1977년에 영어로 옮겨졌고, 푸코가 1972~1977년에 행한 권력에 관한 일부 강연과 인터뷰가 콜린 고든의 폭넓은 후기와 함께 1980년 영어로 번역 출판되었다.7 이러한 이슈를 분석하는 상당수 사람은 이들 연구가 국가를 권력의 기원, 제작자, 수혜자, 종착점으로 보는 통상적 시각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이해했다. 이들 연구는 제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맑스주의에 비해 훨씬 감지가능하고 물질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가시화했다. 심지어 통치성 에세이가 영어로 출판되기도 전에, 이 접근은 개인성을 창조하고 관리하기 위한 많은 장소에 관한 경험적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는 정신병원 건축술, 교실의 발달,8 심리학과 심리치료와 같은 정신-과학의 규제적 역할,9 식민지의 관리에 관한 연구 등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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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사무소 Nendo가 인테리어를 설계한 정신보건 전문병원. 벽의 ‘보통’ 부분이 새로운 공간으로 열린다.

『권력/지식』의 후기에서 고든은 전략, 테크놀로지, 프로그램 개념의 관점에서 푸코의 권력/지식에 관한 접근의 특징을 찾았다.10 우리는 단일하게 프로그램된 세계가 아니라 보통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세계를 살아가며, 테크놀로지가 자기 자신만의 특성과 요구조건을 가지듯이 프로그램도 단순히 [미리 주어진 대로] 집행되지 않는다. 고든은 또한 통치성에 관한 연구를 영어로 최초 번역하는 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푸코의 1978년 2월 통치성 강의 영역본은 단명했지만 영향력이 컸던 독립 저널 『이데올로기와 의식』Ideology & Consciousness에 실렸다.11 푸코의 세미나 가운데 두 강의가 같은 저널에 실리기에 앞서, 파스키노와 프로카치의 글은 이런 접근의 유용성을 경찰과학과 사회 경제(학) 각각의 정치적 합리성에 대하여 보여 주었다.12 두 글은 ― 아카이브 원자료를 상세히 검토하여, 정치철학의 거대한 텍스트들이 아니라 정치 사상가, 논객, 프로그램 입안자, 행정가의 보다 사소한 텍스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만들어 낼 수 있는 ― 정치권력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관심 사항이 경제이든지 도덕 질서이든지 간에, 각각은 위와 같은 [다양한] 통치자들이 인식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이에 따라 개입되었다. 또한 이 분석들은 어떻게 각 통치술이 자신의 신민, 즉 통치받는 사람의 본성과 의무에 관한 특정 개념을 수반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푸코의 통치성 에세이에 따르면, 그가 통치성이라고 명명한 특정한 사유방식mentality이 정치적 사유와 행동의 모든 근대적 형태에서 공통 토대가 되었다. 푸코의 주장에 따르면, 통치성은 “이처럼 매우 특유하면서도 복잡한 권력 형태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절차․분석․반성․계산․전술이 형성하는 앙상블”이었다.13 푸코는 18세기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던 통치술에서 양극단, 즉 주권과 가족을 대조했다. 주권의 측면에서 권력을 사유하는 방식은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이고, 경직”되었으며, 가족 모델은 “너무 작고, 취약하고, 공허했다”. 전자는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영토에서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에 관심을 가진 반면에, 가족 모델은 이 작은 단위의 풍요에만 관심을 가졌다. 반면에, 통치는 단순히 법률이나 행정적 명령으로 통제될 수 없으며 일종의 확대 가족으로 인식될 수도 없는 인구에 관심을 가진다.

인구에 대한 이런 강조는 푸코가 이 일련의 강연 가운데 초기에 제시했던 구체적인 분석에 근거 했다. 예를 들어, 18세기 전염병의 정치와 관련해서, 푸코는 인구가 고유한 현상reality을 가진다는, 즉 출생․질병․사망에 관한 고유한 규칙성이 있으며,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만 [한편으로] 정부 개입을 요구하는 고유한 내적 과정이 있다는 것을 권위자들이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검토했다. 이때부터, 한 영토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권적 권위가 공표하는 법률에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사법적 주체나 자신의 행실이 조형되고 훈육되는 고립된 개인으로 단순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관계의 장 속에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통치는 자연적 과정과 외부적 압력에 종속되어 있는 이 같은 관계에 개입해야만 했고, 이런 과정과 압력은 [인구] 각각과 전체의 복리/안녕을 보장하는 모든 전략과 전술을 사용해서 파악되고 관리될 필요가 있었다. 이제 권위자들은 인구에 고유한 과정 ― 인구의 부, 건강, 수명, 전쟁 및 노동 등을 수행하는 인구의 능력을 조정하는 법칙 ― 을 알아내고 규제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므로 가계를 통치하든, 선박을 통치하든, 인구를 통치하든 간에, 통치하기 위해서는 통치되는 것을 아는 것과 그런 지식의 관점에서 통치하는 것이 필수적이게 되었다.

국가를 통치의 기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통치화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국가의 공식 기구들이 영토를 가로지르는 사람과 사물의 삶과 활동을 알아내고 관리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는가? 비록 전통적인 권력 개념이 통치의 책무를 국가의 본질로 이해했지만, 국가가 항상 이러한 관점에서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제 명확해졌다. 그리고 18세기 서구에서 시작되었던 정부에 대한 정치 기구의 점증하는 중심적 역할은 국가 통제 기구의 확장을 바탕으로 중앙 권력이 사회 곳곳에 자신을 관철시키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과 같은] 정반대의 가설에서 출발하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 특수한 역사적 시기에 국가는 자신을 잡다한 세력과 집단에 연결해야만 했다. 이들 세력과 집단은 여러 방식을 통해 다양한 목적을 추구하는 개인의 삶을 조형하고 관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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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치란 사는 것, 사는 것을 넘어서서 공존하는 것이 국력의 구성과 배가에 실제적으로 유용할 수 있도록 확보해 주는 개입과 수단의 총체를 말한다." -『미셸 푸코의 휴머니즘』에서 재인용, 109쪽

푸코의 강연이 번역되기 전에 『이데올로기와 의식』에는 이 같은 접근의 정치적 함의를 고려하기 시작했던 자크 동즐로의 글이 실렸다.14 이 글은 원래 푸코의 통치성 강의가 있던 해인 1978년 『새로운 정치 문화를 위하여』로 출간되었으며, 여기서 동즐로는 정치 분석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로부터 국가를 상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8년 학생 봉기 이후 프랑스 정치에서 나타났던 정치적 저항은 자본으로부터 국가권력으로 목표가 변했다. 동즐로에 따르면, 권력 자체가 역사의 새로운 동력으로 간주되는 현상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용어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권력이 없다거나 권력을 견디는 사람들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푸코가 보여 주었듯이, 테크놀로지전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언제나 국지적이고 다양하고 얽혀 있는 인구를 관리하고 활동하게 하는 일관되거나 모순적인 방법을 가리키고, 전략은 통치 원칙, 다시 말해 특정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다는, 즉 행위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다루는 이론을 말한다. 테크놀로지와 전략은 통치 프로그램이 방향을 전환할 때 일관성을 가지고 교정 개입할 수 있는 (즉, 개입 가능한) ‘실천 대상’을 제공한다.15

이런 분석 전략의 한 가지 효과는 국가를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후원자”로 혹은 “통치 전략의 한 효과”로만 이해하고자 한 것이었다.16 동즐로는 보험의 발달과 함께 “사회적인 것”의 출현이 보험과 맺는 연계를 준거로 삼아 자신의 분석을 예증했다. 보험은 상해나 무능력과 관련된 특정 범주에 대한 보상비용을 “계산된 분포를 바탕으로 모든 사회적 [계약] 당사자”에 걸쳐 분산하는 “매우 일반적인 테크놀로지”이자 “수리적 해결책”으로 묘사된다. 계속해서, 보험은 생산[영역] 보다는 오히려 [사회] 보조에 관한 19세기의 접근법으로, 즉 안전 예방 쪽으로 정치적 상상을 변화시키는 데 적합한 배경을 제공했다. 사회 안전이라는 이런 새로운 통치 전략상에서, 사회복지 같은 통치의 새로운 실천과 행위자가 출현하고, 가족 수당 같은 새로운 통치 도구가 발명된다. 그러므로 테크놀로지와 전략은 서로를 형성하고 따라서 어느 정도 일관되게 접합된다.

비록 이러한 생각들이 동즐로의 책 『가족 관리하기』에서 발전되었고,17 또 당시에는 영어 번역이 없었던 에발드와 다니엘 드페르 같은 동료들의 보험 연구를 따라 전개되었지만,18 이런 기본 얼개는 이후 분석을 정교하게 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1980년대 동안, 핵심 요소들은 심리-과학과 경제생활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일단의 영국 사회 이론가들에 의해 발전되었고 보다 정교해졌다.19 또한 이런 연구들은 특정 역사 시기에 프로그램들이 일반적으로 유사함을 보여 주었다. 프로그램은 크든 작든 간에 공유된 문제설정, 즉 문제 형성의 양식 속에서 작동했고, 공유된 합리성 혹은 사유 양식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통치성 분석 방식이 많은 사람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역사적이고 동시대적인 통치 실천에 관한 자세한 경험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중요한 기여는 프로그램에서 언어가 단순히 부수 현상, 다시 말해 지배 실천의 겉치레로 간주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반대로, 언어 자체가 지적인 테크놀로지, “특정 종류의 행동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메커니즘”이었다.20 여기서 발전된 언어에 대한 접근은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 비판” 접근과 날카롭게 대비된다. 한편으로, 이는 1990년경 유행한 비판적 관점, 이른바 담론분석과도 갈라진다. 미국에서, 푸코의 초기 작업에만 익숙했던 대다수 푸코 독자는 푸코의 작업을 담론분석과 동일시했으며, 보통은 담론의 내적 조직이 현실과 주체성을 직접적으로 형성하거나 조형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섹슈얼리티의 역사에 관한 미국의 논쟁에서, 푸코의 이름은 그와 같은 [담론분석] 접근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통치성 연구는 문화연구의 일부 판본에서 유행하고 있듯이 담론 자체가 현실과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대신에 언어와 기타 의미작용 체계는 현실을 통치 가능하게 하는 많은 요소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다.

미셸 칼롱과 브뤼노 라투르의 번역 개념을 채택하고 재가공하면서, 밀러와 로즈는 언어란 설득․수사․줄거리를 통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핵심 요소로 분석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트워크의 집합 속에, 권위자․집단․개인․제도가 등록되고 [이것들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 열망을 다른 것들의 욕망과 열망과 동일시하게 되며, 그 결과 이들은 통치 동맹을 형성할 수 있었다. 특히나, 그러한 네트워크는 밀러와 로즈가 부르는 원격 통치government at a distance, 다시 말해서 정부 사무실이나 비정부 조직의 본부와 같은 계산의 중심에서 공간적․조직적으로 상이한 자들의 욕망과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었다.21

영국의 통치성 접근 역시 자아self의 테크놀로지가 훈육과 같은 지배의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형성되었다는 푸코의 의견에 의존했다. 따라서 만들어진 주체는 단순히 순종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만족시키면서 통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로즈의 표현에 따르자면 특정한 방식에 따라 자유롭도록 강제된다.22 이 접근에서 핵심적인 것은 판옵티콘과 같은 거대 테크놀로지에 주목할 뿐만 아니라, 이런 [자아] 창조 과정에서 중요했던 면담, 병력, 일기, 소책자, 매뉴얼과 같은 평범하고 사소한 통치 테크닉과 도구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까지, 이런 작업의 결과 덕택에, 통치성 분석틀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다.

주체의 통치

푸코는 1980년대 초에 응했던 많은 인터뷰에서 통치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교화했으며, 특히 윤리에 관한 독창적 접근을 전개함으로써 실제 작업에서는 자아의 통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23 통치와 윤리의 내밀한 관계는 푸코의 주장을 주체의 문제에 관한 논쟁에 연결시켰다. 1970년대에는 주체성의 구성은 중요한 정치적 이슈였고, 또한 자본주의가 — 자기 자신을 자율적이고, 자기 통제적이고, 독립적인 행위능력을 지닌 개인으로 상상하는 — 주체의 생산을 요구하므로, 사람들은 기호학이나 특정 (프랑스) 정신분석 판본을 수단으로 삼아 급진적 사유가 이런 상상적 관계에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주체성의 구성은 맑스주의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분석에서, 특히 독립된 법적 주체라는 가상과 관련해서, 중심 논제였으며, 이 논제는 알튀세르의 주장에 의해 다시 강조되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의 핵심 작용은 자기 스스로 자율적인 주체를 떠맡는 개인을 구성하고, 마치 예속이 자신의 자유 의지의 문제인 양 스스로 알아서 예속되는 개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푸코의 초기 작업은 자신이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비생산적인 인간주의라고 취급한 것과 거리를 뒀고, 무엇보다도, 이런 [주체성] 이슈를 계보학적으로 설명했으며, 주체 중심성의 출현을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했고, 말하는 주체를 우선시하지 않는 담론분석을 제안했으며, 잘 알려진 대로 이런 인간주의의 핵심 이미지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진 그림처럼 곧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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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의 인식에 제기된 가장 오래된 문제도 아니며 가장 항구적인 문제도 아니다. (…) 우리 사유의 고고학이 그 연원을 쉽게 보여 줄 수 있듯이 인간은 최근의 산물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종말이 임박한 것 같다."
─디디에 오타비아니 지음, 『미셸 푸코의 휴머니즘』, 심세광 옮김, 열린책들, 12쪽

통치성에 관한 작업을 한 이후에, 푸코는 이런 이슈들을 윤리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윤리는 자아의 테크놀로지 — 특정한 권위와 지식의 체제 내에서 특정한 자아 함양 테크닉을 수단으로 해서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에게 명령하는 방식 — 의 견지에서 파악되었다. 이런 방향을 쫒아, 고든은 신자유주의에 관한 푸코의 강연 일부를 검토하여, 개인이 자신의 삶을 마치 사업처럼 통솔하는,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주창자의 목표에 주목했다.25 이런 주장은 니콜라스 로즈의 많은 논문에서 경험적인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특히나 1989년 출판된 『정신을 통치하기』는 여러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지식과 전문기술expertise이 오늘날 통치의 근거, 실천, 테크놀로지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주목했다.26 비록 로즈의 분석은 그 접근에 있어서 이전 저자들과 많은 부분을 공유했지만 한 가지 중요하고 전향적인 방식에서 달랐는데, 로즈의 분석은 사회 비판의 레토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했다. 이전 저자들은 통제 도식으로 윤리와 통치를 연결하려 했고, 통치에 저항하는 장소로서 자유와 자기 표현의 실정적 공간을 인정하고자 했다. 반면에, 로즈는 정신을 통치하는 현대적 전략이 자유의 창조를 핵심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주체는 자유롭도록 의무 지어졌고, 자신의 자유의 관점에서 책무를 지도록, 스스로를 통솔하고 자기 자신의 삶과 우여곡절에 책임지도록 요구받았다.27 한편으로, 선택, 자율, 자기 책무로서 자유와 일종의 사업으로서 자기 삶[의 이윤]을 극대화할 의무는 로즈가 후기advanced 자유주의 통치라고 부른 것의 주요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코헨이 『사회 통제의 시각』에서 묘사하는 선구자처럼, 자유는 더 이상 단순히 사회 통제를 비판하는 토대로 취급될 수 없다.28 왜냐하면 자유의 윤리 자체가 자유 사회를 통치하는 특수한 방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복지주의, 후기 자유주의

비록 이러한 분석틀이 한 층위에 속한 일련의 특정 문제에 한정되지 않았지만, 이는 영국과 미국, 정도는 약간 덜하지만 여타 서양 국가들에서 진행되었던 통치술의 변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특수한 과업에 대한 부분적 응답으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변형은 복지국가, 사회 안전 메커니즘, 국가 계획, 국영기업, 특히 20세기에 걸쳐 형성되었던 사회국가의 모든 기구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의 형태를 띠었다. 비록 대다수 좌파가 계속해서 복지국가의 실천을 비판하면서, 그 실천이 온정적이고, 직업 전문가의 재량권을 착근시키고, 사회 통제를 확장하고, 실제로는 불평등을 유지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보통 신자유주의로 명명되는 것의 부상에서 실정적인 어떤 것도 탐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맥락에서 통치성의 새로운 시기 구분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통치성은 정치적인 것의 한계를 강조했고, 사람들의 습관을 통치하는 데 있어서 의사, 종교 조직, 자선가, 사회 개혁가 같은 비정치적 행위자와 권위 형태의 전반적 배열이 지닌 역할을 중요시했다. 그런 [의사 등의] 테크닉이 억제되지 않는 시장의 개인주의와 그것의 여파로 나타나는 아노미 ― 즉, 시장 개인주의가 수반하는 가장 큰 위험인 사회 혁명 ― 라는 두 가지 위협 모두를 떨쳐 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주장으로부터, 사회 통치의 전략이 시작되었다. 이 시점 이후로 통치는 사회적 관점으로부터 수행될 필요가 있었고, 정치 기구 자체가 이런 의무를 져야만 했다. 이 관점은 프랑스의 사회적 권리 선언, 사회적 유대와 사회적 시민권의 윤리적 원칙, 복지국가와 사회보험의 테크놀로지에 체화되어 있었다. 국가를 사회와 주민의 복리의 지휘자이자 파수꾼으로 요구했던 이런 접근은, 유럽의 대처 영국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서 신자유주의적 비판가들에 의해 문제화되었다. 급진 좌파 비판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사회적 통치가 큰 정부, 재정 위기, 의존, 경직을 만들어 낸다고 간주했다. 하지만 [좌파] 비판가들과 달리, 그들은 자유의 명분으로 통치하기 위한 또 다른 합리성을 창출했고, 국가가 자신의 많은 의무로부터 벗어나서 그런 의무를 자율을 주는 동시에 책무를 지게 하는 — 예산, 감사, 표준, 기준, 기타 테크놀로지를 통해 원격으로 통치되는 — 준자율적인 단체들로 양도하게 했던 일련의 테크닉을 발명하거나 활용했다. 이러한 테크놀로지 다수는 사회 민주주의적 전략, 특히 제3의 길로 불렸던 프로그램에서 채택되어 유지되었다. 자유의 통치를 사유하고 실행하려는 이런 새로운 방식이 후기 자유주의의 문제[설정] 공간을 특징지었다.

자유주의, 복지주의, 후기 자유주의의 이런 삼각 분할은 처음에는 위와 같은 새로운 통치술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한 임시적 장치였다. 나중에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하나의 유형 체계와 연대표로 정형화되었고, 이런 일반적인 포괄적 법칙에 따라 모든 프로그램, 전략, 테크놀로지를 분석하려는 설명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석 방식은 융통성과 생산성 역시 보여 왔다. 이는 후기 자유주의 통치술에 체화된 새로운 권력 형태를 가시화하고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자유를 통해 통치하고자 하는 합리성과 테크놀로지의 복잡한 공과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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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oucault M. 1997. Ethics: Subjectivity and Truth. Essential Works of Michel Foucault, 1954~1984. Vol. 1. New York: New Press, p. 68.
2 Ibid., p. 82.
3 Ibid., p. 73 ff.
4 Gramsci A. 1971. Prison Notebooks: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Quaderni del carcere], ed. trans. Q Hoare, GN Smith. London: Lawrence & Wishart.
5 Althusser L. 1977.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notes towards an investigation)”. In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pp. 127~186. London: New Left Books.
6 Foucault M. 1967. 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 London: Tavistock; Foucault M. 1970. 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 London: Tavistock; Foucault M. 1972.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London: Tavistock.
7 Foucault M, Gordon C. 1980. Power/Knowledge: Selected Interviews and Other Writings, 1972~1977. New York/London: Harvester Wheatsheaf.
8 Jones K, Williamson K. 1979. “The birth of the schoolroom”. Ideol. Conscious. 6: 59~110.
9 Rose N. 1979. “The psychological complex: mental measurement and social administration”. Ideol. Conscious. 5: 5~70; Miller P. 1980. “The territory of the psychiatrist: review of Robert Castel’s L’Ordre Psychiatrique”. Ideol. Conscious. 7: 63~106; Miller P. 1981. “Psychiatry—the regulation of a territory: a review of F. Castel La Societe Psy-chiatrique Avancee”. Ideol. Conscious. 8: 97~122.
10 Foucault & Gordon, 1980.
11 Foucault M. 1979. “Governmentality”. Ideol. Conscious. 6: 5~21.
12 Pasquino P. 1978. “Theatrum politicum: the genealogy of capital—police and the state of prosperity”. Ideol. Conscious. 4: 41~54; Procacci G. 1978. “Social economy and the government of poverty”. Ideol. Conscious. 4: 55~73.
13 Ibid., p.20.
14 Donzelot J. 1979b. “The poverty of political culture”. Ideol. Conscious. 5: 73~86.
15 Donzelot 1979b, p. 77, 강조는 원문.
16 Ibid., p. 79.
17 Donzelot J. 1979a. The Policing of Families. New York: Pantheon Books(프랑스어판은 1977년 출판).
18 Ewald F. 1986. L’Etat Providence. Paris: Grasset; Defert D. 1991. “‘Popular life’ and insurance technology”. See Burchell 1991, pp. 211~233.
19 Miller P. 1986. “Accounting for progress national accounting and planning in France a review essay”. Account. Org. Soc. 11: 83~104; Miller P, O’Leary T. 1987. “Accounting and the construction of the governable person”. Account. Org. Soc. 12: 235~265; Miller P, O’Leary T. 1989. “Hierarchies and American ideals, 1900~1940”. Acad. Manag. Rev. 14: 250~65; Miller P, Rose N. 1988. “The Tavistock program—the government of subjectivity and social life”. Sociology 22: 171~92; Miller P, Rose N. 1990. “Governing economic life”. Econ. Soc. 19: 1~31; Rose N. 1988. “Calculable minds and manageable individuals”. Hist. Hum. Sci. 1: 179~200; Rose N. 1989. Governing the Soul: The Shaping of the Private Self. London: Routledge; Burchell G, Gordon C, Miller P, Foucault M. 1991.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With Two Lectures by and an Interview with Michael Foucault. London: Harvester Wheatsheaf; Gordon C. 1991. “Governmental rationality: an introduction”. See Burchell 1991, pp. 1~51; Rose N, Miller P. 1992. “Political power beyond the state: problematics of government”. Br. J. Sociol. 43: 173~205.
20 이 글에서 밀러와 로즈는 특히 잭 구디Jack Goody의 작업, 예를 들어, 구디의 고전적 논문 「무엇이 명부에 있는가?」에 의존하고 있다(Goody, 1977을 참조). Miller & Rose 1992, p. 7; Goody J. 1977. The Domestication of the Savage Mind. Cambridge, UK: Cambridge Univ. Press.
21 이런 “원격 통치” 개념은 라투르가 가공한 “원격 작용”action at a distance 개념에 의존했다. 원격 작용의 가능성은 과학 내부에서 ― 예를 들어 중력과 같이 어떤 직접적이거나 인접적인 접촉선이 없지만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실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에 관한 초기 논의에서 논쟁 초점이 되었다. 라투르와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으로 알려진 접근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에 관해 많은 예시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다음 글을 참조.] Callon M, Latour B. 1981. “Unscrewing the big Leviathan: how do actors macrostructure reality”. In Advances in Social Theory and Methodology: Toward an Integration of Micro andMacro Sociologies, ed. KDK norr, A. Cicourel, pp. 277~303. London: Routledge; Latour B. 1986. “Visualization and cognition thinking with eyes and hands”. In Knowledge and Society: Studies in the Sociology of Culture Past and Present, ed. H Kuklick, E Long pp. 1~40. Greenwich, CT: JAI; Law J. 1986. “On the methods of long-distance control: vessels, navigation and the Portuguese route to India”. In Power, Action and Belief: A New Sociology of Knowledge? ed. J Law, pp. 196~233. London: Routledge; Latour B. 2005. Reassembling the Social: An Introduction to Actor-Network-Theory. Oxford: Clarendon.
22 Rose N. 1989. Governing the Soul: The Shaping of the Private Self. London: Routledge.
23 Foucault M. 1982. “The subject and power”. In Michel Foucault: Beyond Structuralism and Hermeneutics, ed. H Dreyfus, P Rabinow, pp. 208~226. Chicago: Chicago Univ. Press.
24 Foucault 1970, p. 387.
25 Gordon C. 1987. “The soul of the citizen: Max Weber and Michel Foucault on rationality and government”. In Max Weber: Rationality and Modernity, ed. S Lash, S Whimster, pp. 293~316. London: Allen & Unwin.
26 Rose N. 1989. Governing the Soul: The Shaping of the Private Self. London: Routledge.
27 Rose N. 1992. “Towards a critical sociology of freedom”. Inaug. Lect., Goldsmiths Coll., London, May 5.
28 Cohen S. 1985. Visions of Social Control. Cambridge, UK: Po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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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난장

2012/02/29 09:00 2012/02/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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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위묘 2012/03/05 02:04

    "통치성이라는 이론적 기획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응답들 중 하나로서 예시되기 좋은 논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들이 통치성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고, 때문에 government+mentality라는 관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저는 이런 해석과 활용이 통치성 개념의 폭을 더 넓히고 특히 인류학적 접근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그린비 2012/03/05 09:35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계속 묻고 또 다시 묻는...그런 과정과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홍위묘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