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딱히 가고 싶었던 강의는 아니었습니다. ‘장 조레스’와 ‘리오넬 조스팽’은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맨날 ‘조스팽’을 ‘조레스, 조레스’했던 저로서는 가는 날까지 ‘조레스 강의 들으러 간다’고 했지요~ 아 창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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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 사회당 시절 연설 중인 모습, 右 강연 중>

 조스팽이 어떤 사람이냐~~다들 아시겠지만, 1995년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가서 1차 투표에서 47%를 얻어 돌풍을 일으켰다가, 나중에 시라크한테 패배했죠. 그러고 나서 97년부터 좌파 연합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주35시간 노동제(말만 들어도 황홀하죠?), 유례없는 저실업으로 “행복했던 30년”(Trente Glorieuses)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지요. 어쨌든, 이 아자씨 좌파 분열로 2002년 극우파보다 덜 득표해서 정계 은퇴를 했답니다. 원래는 교수님하던 분이어서, 프랑스에서도 정치인 스탈보다는 학구적인 스탈로 어필했다는 소문도 있답니다~

 자자, 강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미래’ 주제는 요거였습니다. 지금 프랑스도 난리가 아닌가 봅니다. 중국에서 저임금으로 치고 올라오지, 미국 중심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기업을 장악하고 있지, 사르코지는 그 와중에 재혼한답시고 여친이랑 놀러다니지. 뭐 거기도 우리랑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전 그래서 더더욱 궁금했습니다. 조스팽이 집권하던 시기에 ‘방리유 문제’가 터졌고, 조스팽은 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아주 강경하게 방리유 청년들을 진압했던 사르코지는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결국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죠. 강의 시작 전에 전 기대했습니다. 사회민주주의가 그래도, 아니 그나마 배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체제는 아닐 것이라구요.

 하지만, 이 아저씨는 그래도 사회민주주의에 희망은 있다면서, 유럽 중심의 경제 블록화(한국에선 아시아 블록화를 하라고 하더군요)를 말하더군요. 게다가 안보(안전)와 테러리즘에 집중할 수 있는 체제를 구성(물론 말로는 테러를 근절하기 위한 테러리즘 대응이라고 하더군요)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는 세계화를 받아들이되, 스웨덴과 핀란드처럼 기술개발과 새로운 산업에 집중하자 요런 아주 프랑스의 총리치고는 평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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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외곽 '방리유', 2006년 소요사태를 비롯한 프랑스 내부 모순을 드러내는 빈번한 갈등의 진원지>

제가 생각했던 방리유 문제는 하나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강연 내용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안병직 교수의 ‘도전과 응전이란 단어로 꽤 오랫동안 말하기’와 ‘김수행 할부지의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김수행 교수님은 조스팽의 강연에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첫째, 조스팽 너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니 너는 자꾸 좌파가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그게 과연 사회민주주의 의미냐? (실제로 조스팽은 공기업을 사영화하는 방향으로 국내 경기를 부흥시켰다고 합니다)

둘째, 사르코지 이후, 프랑스는 당췌 어디로 가고 있냐?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보더라도, 요새 선진국이 안보를 중심으로 한다고 애들 괴롭히고(방리유 문제보다는 미국의 포로고문이야기를 했습니다)요런다. 글고 너네 나라도 이슬람 애들 막 싫어해서 사르코지 지지한 거 아니냐? 알고 보면 극우파와 우파가 구별이 없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럴 때 사회민주주의를 외치는 너네 당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 거냐?

세번째, 넌 지금 세계화를 인정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너의 논리가 성립하질 않는다. 기술 개발과 국제 노동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자는데, 신기술이 개발되면 실업이 증가하고, 수출을 강조하다보면 모두가 수출만 하려고 할 뿐, 수입은 어느 나라도 안하려고 할 것이다. 과연 이게 타당한 말이긴 하냐? 게다가 그러다보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 문제는 오케하려고 하냐?

조스팽의 이야기가 참 재미났습니다.(비하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재치 있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첫번째에 대한 대답.
사회민주주의자인 자기(조스팽)가 공기업을 사영화(민영화)한 이유는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산업의 요구였다고 했습니다. 에어버스와 에어 프랑스를 자본에 개방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에어버스와 에어 프랑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느 정도는 산업의 측면에서 사영화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는데, 뭐 이해는 갔습니다.(동의한단 말은 아니구요)

두번째에 대한 대답.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야기는 분리해 달라고 하더군요. 아프가니스탄은 자기가 대통령이었어도 파병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보의 문제는 중요하다고 말하더군요. 40%의 임금 노동자들이 사회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안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그의 이야기는 정치가로서 당연한 입장이라고 봅니다. 아마 이슬람계 사람들과 방리유 청년들에 대해 프랑스 다수의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으니,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고 했던 게 프랑스 ‘총리’의 당연한 반응이라고 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조스팽이 말하는 40%의 임금 노동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방리유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책임으로 봤었던, 조스팽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일까요?

세번째에 대한 대답.
‘마르크스가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도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 대목에서 사람들 크게 웃었습니다. 자기가 지금처럼 움직이는 세계화에 완전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은 대안이 있는 세계화라는 거지요.(조스팽은 한때 교수님이 셨다는데 ‘대안 있는 세계화’란 말 모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김수행 교수님의 뒤의 질문 신기술과 인플레이션 증가, 실업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소견,
사실, 전 조스팽이 그날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방리유 문제’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다룰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기대도 잔뜩 했었지요. 신자유주의가 세련된 방법으로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기에, 사회민주주의는 뭔가 다른 의미를 갖고 움직일 거라고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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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프랑스에선 ‘방리유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린비의 책 『공존의 기술』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프랑스 국민들의 안보<sécurité>에 대한 요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사르코지가 당선된 이유도, 우파가 이슬람계 혹은 방리유 청년들에게 가혹한 입장을 보낼 때, 좌파 쪽에서는 적절한 이론적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공존의 기술』에서도 나오지만 조스팽 총리는 ‘방리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안보 불안<insécurité>문제에서 다수의 의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지요. 전 이번 강연을 들으면서 그런 점들이 정치가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조스팽은 강연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전 들으면서 그 대화가 과연 어떤 방향인지, 사실 실용주의를 말하면서 사회민주주의가 좀더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베트남 언니들과 농촌 총각들이 애를 낳고 성장하는 시기.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대로 정착하기 시작하는 시기,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10년 후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을까요? 전 10년 후, 지금 프랑스가 겪고 있는 ‘방리유 문제’가 고스란히 한국사회에서도 재현될 것 같다고 감히 예견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프랑스에서 발생한 ‘방리유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거죠.

조스팽은 소수만을 위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소수는 누구이고, 다수는 누구입니까? 『공존의 기술』에서도 나타나듯, 정말 방리유 청년들이 문제였던 것일까요? 치안담론을 생성하며 그들에게 낙인을 찍던 구조의 문제는 아니었을까요?

‘안보(안전)’를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적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설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안보’라는 이유로 누군가들에게 낙인을 찍게 되는 사회.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진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시간은 세련된 야만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이번 강연에 대한 후기를 마칩니다.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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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9 11:50 2008/02/1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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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0년대에 프랑스에 살았던 이 2008/02/19 17:20

    죠스팽씨가 한국엘 왔군요.
    뭐 그리 쉬운 주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읽고 갑니다.
    벙리유 문제는 꽤 심각한게 사실입니다. 당시에도 벙리유엔 가난한 북아프리카 이민자가 무쟈게 많았습니다.
    당연히 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지만, 적어도 국가에선 내 외국인을 가리지않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지원이 많았습니다. 그게 참 놀라웠고 존경스러웠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진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시간은 세련된 야만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자식들이 살아내야 할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대목입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이후 자본주의만이 살 길인것처럼 전세계가 한쪽으로만 달려가고있습니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미국이나, 다들 도덕이나 양심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가 '잘사는냐 못사느냐' 혹은 '성공하는냐 실패하느냐'가 삶의 목적이 되버린것 같습니다.
    인간의 정신이 피폐해져가는 이때에 새로운 시대이념이 탄생할른지 모르겠습니다.

    • 글쓴 사람 2008/02/20 13:40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시대이념(?)은 언제 나타날까요? 댓글 달아주신 분이 말씀하시는 시대이념은 다른 체제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화하려는 실천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2. foog 2008/02/20 08:55

    조스팽이 한국에 왔었군요.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한때 유럽의 유력좌파정치인이었었는데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한국의 좌파 교수와 대화하는 모습도 또 어떻게 보면 약간 '좌파'스러운데가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

    • 글쓴 사람 2008/02/25 11:07

      ㅋㅋ그르게요~~그나저나 조스팽 아저씨 한창 날릴 때랑은 많이 다르더군요. 슬몃 나이드신 기운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언제 진정한 좌파들끼리 내공으로 겨루기 한 판 하는 걸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있기만 해도 에너지가 파파박 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