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내지 않고 나 자신과 만나기                                        

요 며칠 동안 나는 홍대 주변의 부동산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계약 만기일이 임박했기도 하고, 남자친구와 살림을 하나로 합칠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주말에도 아침 일찍부터 나와 집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해가 지고 하루 내내 보았던 매물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어느 집이 어느 집인지 점점 분간이 안 될 지경에 이른 우리는 더 이상 보는 것은 무리겠다 싶어 미리 약속을 해둔 부동산에 마지막 남은 한 집을 보러가기 위해 앉아있던 부동산에서 나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 두 분은 우리를 계속 붙잡아두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10분 전에 이미 마신 차를 또 다시 타준다고 하질 않나, 지금 보러 가는 곳이 어디냐, 어떤 조건이냐 등을 캐물으시더니 그 집은 우리도 보여줄 수 있다며, 우리가 보여주겠다며 무서울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시는 것이었다. 겨우 어찌어찌 거절을 하고 도망치듯 그 부동산을 뛰쳐나왔는데, 그 순간부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다물었고, 우리가 싸운 것도 아닌데 마치 싸운 것처럼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2주째 집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초반에 맘에 들어 했던 몇 집은 망설이는 사이에 놓쳐버리고 그 후로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우리는 심신이 너무나 지친 상태였고, 점점 임박해오는 날짜 때문에 초조함만 커져가고 있었다. 커피숍에 가서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내내 살벌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자 답답해진 나는 뭐가 그리 짜증나냐고 대뜸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상황이 너무 짜증난다"는 거였다. 상황이 잘 안 풀린다고 짜증만 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 어찌됐든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은 내뱉었지만, 잔뜩 움츠러들고 피폐해진 마음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또한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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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도달해야 할 것으로서의 '자기', 그 '자기'와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인식하고 정신과 신체가 분산되지 않도록 하는 훈련이 자기 배려인 것이다."
─이수영, 『권력이란 무엇인가』, 152쪽

세미나 막바지에 이르러 '자기배려'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저 그렇게 씁쓸하게 흘러가버렸던 며칠 전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 일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와 번뇌를 남겼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 앞에서 화만 내고 불안해하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그 상황에 종속된 노예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사건들은 허다하게 일어난다. 우리의 일상은 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과 사고, 문제투성이이며, 누구의 탓인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모르는 불안, 우울함, 걱정, 컨트롤 안 되는 감정들 때문에 늘 스스로를 괴롭히곤 한다. 생각해보면 언제 마음먹은 대로, 계획했던 대로 일이 술술 풀렸던 적이 있던가? 그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실제 하루하루의 삶에서 우리는 마음의 평정조차 오래 지속시키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관계와 환경들은 언제나 다채로운 사건들로 일상의 고요함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상을 괴롭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나의 마음이 끌려 다니지 않게 하려면, 내면에 그만한 힘을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번뇌는 결코 나의 외부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루는데 서툴고, 나 자신과의 관계 맺음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내 내면의 미성숙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원래 상황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여서 보통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생각하고 판단하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달리해보려 애써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관성, 그 익숙함의 무게만큼 우리의 가슴 한켠에는 삶의 번뇌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 또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것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관계를 확립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의 노예도 아니고, 자기 욕망의 노예도 아니며 타인의 노예도 아니다.

─이수영, 『권력이란 무엇인가』, 134쪽

자기 배려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은 점차적이고 끈질긴 노력에 의한 것이지 갑작스럽게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그런 이원론적 도약과는 관련이 없다. 자기 배려의 실천에서 구원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항구적 행위”였으며 자신을 구원했다는 것은 부패나 악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부정적인 가치보다는 모든 사건과 공격, 노예나 지배 상태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독립성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
따라서 자기 자신의 구제는 평생에 걸쳐 전개되어야 하며, 그 유일한 실행자는 주체 자신이 된다.

─이수영, 『권력이란 무엇인가』, 147쪽

노년은 “자아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지점, 자기가 자기를 만나는 지점이며, 또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완숙하고 완결된 지배 및 만족의 관계를 설정하는 지점”이다. 젊다고 해도 늙어야 하는 까닭은 죽음으로 하여금 습격하게 하는 게 아니라 죽음이 오기 전에 생을 완성 단계에 도달하게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배려의 실천 속에서 주체는 진리에 대한 인식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진리를 자신의 신체 속에 각인시키고, 매번 운명적 사건 속에서도 노년의 안정감을 갖고 의연히 실행적으로 대처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수영, 『권력이란 무엇인가』, 145쪽)

번뇌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그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나와 만나는 것이고, 내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평생에 걸쳐 장기적인 실천과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는 자기수련의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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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요한 신체 부위가 처해 있는 상태를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다."
─에픽테투스, 『성의 역사 3: 자기배려』에서 재인용, 나남, 77쪽

나는 무엇을 욕망하고 왜 그것에 욕망하는가?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왜 그것에 분노하는가? 지금의 나는 어떻게 형성되어온 것인가? 어떤 역사적 조건과 배치 속에 있어왔는가? 이러한 무수한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올바르게 사유할 수 있고, 그러한 욕망의 지점들을 앎으로써,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선택과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터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삶의 작은 순간,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체 속에 각인시켜 흔들림 없는 진리의 장비를 구축해갈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잘 욕망하고, 더 잘 꿈꾸고, 더 잘 분노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디자인팀 지은미
권력이란 무엇인가 - 10점
이수영 지음/그린비

2012/03/08 09:00 2012/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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