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새로운 사건을 보도한다는 의미이지만 일본의 뉴스는 7시 뉴스든 9시 뉴스든 같은 내용을 반복합니다. 재해지의 영상을 아침부터 밤까지 보냅니다. …… 뉴스가 이동수단에서 거주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즉 보도가 아닌 것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감동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보고 있자면 비통한 내용이 많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세계를 향한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고 있습니다.

─가토 노리히로, 『사상으로서의 3·11』, 「미래로부터의 기습」, 131~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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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13일 당시 촬영된 이 사진은 대지진의 참상을 알리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연락이 두절된 아이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미디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한국의 미디어들도 무슨 일만 났다 하면 하루 종일 같은 내용을 반복합니다. 같은 자료화면이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고, 더 이상 전할 뉴스도 없는 아나운서들은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면서 시간을 ‘때웁니다’. 역시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흘러나옵니다. 이웃을 돕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는 ‘온정의 손길’…. 그리고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흘러가 버립니다. 정권의 비리도 흘러가고, 억울한 죽음도 흘러가고, 힘겹게 싸우고 있는 목소리들도 모조리 그냥 흘러가 버립니다. 모두가 스펙터클에 압도당하고 소소한 감동들에 눈물짓고 있는 사이에, 물러날 뻔했던 비리 인사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죽음은 잊혀지고, 싸움은 고립됩니다.

일본의 신문은 ……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이번 원전 재해에 관한 보도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을 문제 삼으려면 광고 문제가 걸리니까 신문들은 그 문제에 관한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입장을 밝히지 못한다면 미디어는 그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대체 어떤 생각으로 국가의 전쟁 정책에 부합하는 보도를 내놓고 대본영 발표를 그대로 베꼈는지, 그걸 앞으로 어떻게 고쳐 갈 것인지를 묻지 않고 묻어 두는 식이 됩니다. 당시도 감동적인 이야기야 많았죠. 한 가지 없었던 것이라면 제대로 된 정부 비판이었습니다. 신문은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 4월 초순, 일본의 미디어는 없었습니다. 안전권에서 전화로 취재하면서 기사에는 그걸 기록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하면서도 그걸 밝히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독자를 속이고 있습니다. 정부와 함께 권내에서 도망쳐 있으니까 정부를 제대로 비판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그건 실체를 감추기 위한 위장술 같은 것이죠. …… 요는 미디어에서 유기된 시민, 주민의 집단이 있다면 공공의 미디어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디어가 공공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부가 문제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그걸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가토 노리히로, 『사상으로서의 3·11』, 「미래로부터의 기습」, 134~135쪽

‘공정보도’를 위한 방송 3사의 공동파업이 진행 중입니다. 낙하산 떨구고, ‘조인트’ 까서 깔때기 대게 하는, 무슨 ‘박통’ 같은 언론 상황에서 당연하고 이겨야 하는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전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방송사들이 ‘유기된 시민이나 주민의 집단’ 편에 선 적이 있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무언가 불타거나 누군가 죽기 전에, 다시 말해 그들이 보기에 ‘스펙터클’이 되기 전에, 이 ‘유기된 시민·주민 집단’의 목소리는 보도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펙터클’이 된다고 해도, ‘목소리’는 역시 보도의 대상이 아닙니다(이명박 정권 동안의 일이긴 합니다만, 2009년 용산 참사 당시 방송사들의 관심은 ‘불이 어디서 붙기 시작했는지’였지 ‘그들이 왜 거기에 올라가야 했는지’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충격에 무디어지고 ‘가해자’들은 적반하장으로 나서기가 일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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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마추어의 눈에도 이런 익찬체제의 실태가 훤하게 드러난다. 사실을 전해야 할 매스컴도 뉴스 해설을 하는 학자나 평론가도 오히려 우리 눈에서 진실을 숨기는 가림막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아주 뚜렷이 폭로되었다. 확실히 이것은 그들에게 큰 오산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비판적인 판단력을 가장하고, 적어도 중립적 입장을 내보이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신용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것을 무척 잘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자클럽의 평안한 나날 속 접대가 딸린 일상사에 너무나 젖어든 나머지 관료와 비슷한 정도로 돌발적 사건, 곧 뉴스에 대한 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얼마나 크고 시급한지를 판단하는 데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여전히 그들은 ‘대본영 발표’를 타전한다. 위험하다고 떠벌리려는 자에게는 “공연히 불안을 부추기지 말라”는 으름장마저 마련해 둔다. 실제로 한때는 이런 위협이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의 수소폭발이 그것들을 일소하기 전까지는.

─다지마 마사키, 『사상으로서의 3·11』, 「시작도 끝도 없다」, 145쪽

‘예의 수소폭발’이 ‘으름장’을 일소했지만, 한동안 폭발 장면만을 틀어주는 뉴스에 다시 익숙해지고, ‘이제 안전하니, 공연히 불안을 부추기지 말라’라는 위협이 다시 등장합니다. 하지만, 후쿠시마에서 그리고 어쩌면 도쿄에서(어쩌면 서울에서) 피폭은 실제의 위협입니다. 이 실제의 위협이 ‘스펙터클’과 ‘감동’만을 좇는 저들의 공허한 위협들을 일소해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 편집부 박순기
사상으로서의 3.11 - 10점
쓰루미 순스케 & 사사키 아타루 외 지음, 윤여일 옮김/그린비

2012/03/14 09:00 2012/03/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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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d 2012/03/14 11:10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가요~

    • 그린비 2012/03/14 11:24

      저도 박부장님 글을 읽고 난 후, '징~'하는 울림이 있었답니다.
      자주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