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을 거부하라』 편집후기

보통 편집 과정에서 원고를 읽을 때는 긴장상태에 있기 때문에 내용에만 몰입하며 보기가 쉽지 않다. 편집을 어떤 과정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 전체 구성과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잘 어울리는지, 내용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오탈자는 없는지 등등 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원고를 보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검색도 하고, 사전도 보고, 원고도 보니 같은 양이라도 그냥 책을 읽을 때보다 내용 흐름이 끊기기도 쉽다. 순간적으로 연구자의 입장이 되기도 하고, 이 책 같은 글을 처음 보는 독자의 입장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편집자는 일반적인 독자와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원고를 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고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데 비해 내용 자체에 푸욱 빠져 읽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 『망각을 거부하라』는 연구서임에도 나의 마음을 여러 번 흔들었다. 이례적으로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훌쩍거리기도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당황스럽기조차 했다(누가 볼까 두려워 고개를 수그리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이 책은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와 같이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고, 역사 문제, 그것도 1957년 중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그곳은 현재의 나와는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그곳의 문제가 내게 쉽게 다가올 만하지는 않다). 핵심적인 사건은 사상해방을 기치로, 베이징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5.19민주운동’과 이를 빌미로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 민주인사에 대한 탄압이 자행된 ‘반우파운동’이다. 문화대혁명으로 연결되는, 군중운동을 통해 수많은 우파를 양산하고 처단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그 ‘역사적 거리’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당시를 복원하고 폭로하는 성격을 지닌 연구서이니 감성적으로 만나기도 쉽지 않은 텍스트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싶다.
 
그러나 저자 첸리췬(錢理群)은 이 거리를 극복할 가장 적절한 연구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회고록’을 집중적으로 인용하며 우파인사들의 체험을 직접 발화하듯 활용하는 것이다. 당시의 전체를 재구성하기 이전에 단편의 기억을 하나씩 복원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충실히 하여 그때의 감정과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역사의 무게를 함께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편과 함께 우파로 몰린 허펑밍(和鳳鳴)의 체험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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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펑밍(和鳳鳴)의 가족 사진

“‘우파 우파, 요괴귀신!’, 한때 유행했던 이 노래가 골목마다, 투쟁대회 때마다 군중들에 의해 불려졌고, 방송이나 축음기에서 울려 나왔다. …… 얼마 안 되어 우리는 모두 요괴귀신이 되었다. 공공장소나 투쟁대회에서 우파분자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고 침묵하면서 자신들이 진짜 요괴귀신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첸리췬 지음, 『망각을 거부하라』, 402쪽

“잘 알고 지냈던 친한 친구들 앞에서 갑자기 죄인이 되어 심판대에 올려져,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비판투쟁을 받았다. 친구와 동지, 한때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들의 냉담하고 증오에 찬 눈길은 정말 공포스러운 것이다.”(같은 책, 405쪽)

“필사적으로 서로를 지키려 했던 허펑밍과 왕징차오 부부는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 대재난 중에 함께했던 두 영혼이 산 채로 각각 동서로 찢어졌다. 이것은 너무도 잔혹한 것이었다.”(같은 책, 406쪽)

우파로 몰려 노동개조대에 수용되고 남편과 생이별한 허펑밍은 아이들과 남편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개조대 생활을 버텨 간다.

“우리는 우파라는 오명을 벗어 내기 위해서, 곤경으로부터 걸어 나와 다시 당과 인민의 품 안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천진하게 불굴의 의지가 있기만 하면 각고의 노력으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같은 책, 411쪽)

“난 필사적이었다. 왜냐하면 난 이중적인 고난, 나의 것과 그의 것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처지를 더 빨리 바꾸기 위해서, 또 그를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했다. 그래야, 우리 두 아이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쌍한 아이들, 다른 아이들처럼 걱정 없이 즐겁고 활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하는데, 그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아주 오랫동안 부모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아이들도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늘 마음에 새겨져 있다. 나는 미련하게 온 힘으로 개조하고 싶어 했고, 개조해야만 했다. 필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정말 우습고도 미련한 짓이었다. 그때에 이 모든 것은 진실이었다. 무겁고 가혹한 고난은 내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 아이들아, 나의 아이들아, 너희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완전히 우리의 잘못이다. 너희들 앞에서 우리는 정말 죄인이다.”(같은 책, 413쪽)

허펑밍의 말이 점점 커지면서 내게도 그들의 고통이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우파인사들의 이러한 고통을 저자 첸리췬은 지옥으로 묘사한다. ‘혁명 지옥’. 그는 허펑밍의 회고록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책을 내려놓으면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정말 지옥을 헤매고 다닌 것처럼”이라고. 그것은 단테가 묘사한 지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루쉰이 ‘사람 잡아먹는 연회장’으로 그렸던 중국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같이 참혹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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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울비치의 '방콕의 정치폭동' 사진 중 일부분, 원본을 보려면 클릭☞
_ 우파/좌파의 경계가 극에 달하면서, 폭력은 일상화되었다.

“어느 우파분자가 극도의 배고픔 속에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남겨진 부인과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계속해서 자신이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해야 했다.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찬송의 노래를 썼고, 굶어 죽는 순간에도 당에 충성하고 마오 주석에게 충성한다고 했다. 이렇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겨 부인과 아이들의 상황이 조금 더 좋아지기를 희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같은 책, 414쪽)
[노동개조대의 농장장은] 위풍당당하게 큰 말 위에 앉아 있었다. 긴 창을 들고서는, 그의 이유 없는 질책에 조금 변호를 했던 우파의 가슴에 겨누어 잔인하게 찔렀고, 붉은 선혈이 웃옷에서 줄줄 흘러 나왔다. 이 무고한 희생자가 팔로군이었거나 지원군의 전사 또 전쟁 영웅이었다 해도 그때는 이미 ‘무장해제된 우파’였기에, 그를 개조하는 사람이 가하는 폭력적 상해를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위해 말해 주거나 변호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같은 책, 422쪽)

50년대 말 중국의 대기근은 수많은 우파인사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물론 그것은 기근이라는 천재가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한 무리한 생산 계획과 우파 탄압이라는 인재라 할 수 있다. 허펑밍과 왕징차오 같은 순진하고도 선량한 혁명가와 보통 사람들은 1957년 혁명 제단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남편은 단지 죽었을 뿐이다. 배고파 죽었을 뿐이다. 난 걸상에 앉아 울었다. 그들은 한참을 침묵한 후에 자신들의 일을 하며, 이야기를 했고, 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통곡하는 나와 그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였다. 나도 그들에게 어떤 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모든 일을 설명해 달라고, 정확하게 말하라고 할 수 있을까? 난 감히 그러지 못했다.”(같은 책, 440쪽)

“몇십 년 동안 배고파 죽은 남편을 위해 우는 것은 당에 원한을 품은 것이라고 생각되어 허락되지 않았고, 극우분자인 남편이 죽었다고 우는 것은 심각한 계급 입장 문제라고 여겨져 나의 삶과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비통해하는 것도 죄가 되다니! 난 생사이별의 고통을 내내 눌러놓고 참았다. 가족 앞에서도 참으며 침묵으로 이 모든 것을 삼켜야 하는가? 나의 통곡을 저지하지 말라, 저지하지 말란 말이다!”(같은 책, 440~441쪽)

난 이 책을 보며 프리모 레비가 말해 줬던 아우슈비츠가 떠올랐다. 나 혹은 나의 역사와 거리가 먼 것 같지만, 마음속 심상에는 강하게 자리 잡은, 일종의 ‘기억’이 된 것이다. 비통해할 수도, 억울해할 수도 없는 시대, 비통해하는 것도 죄가 되는 시대가 점차 저물어 가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기억’이 점점 ‘망각’으로 변하는 이때에 ‘지옥에서의 비명 소리’를 마음 한 자리에 새겨 놓는다.

- 편집부 주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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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중국 사회를 관찰하려면, … 밑바닥층, 민간사회에서 묵묵히 분투하는 자, 희생자를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깨우침이 중국에 관심을 갖는 한국 친구들에게도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첸리췬, 『망각을 거부하라』, 「한국의 독자들에게」, 13쪽
망각을 거부하라 - 10점
첸리췬 지음, 길정행.신동순.안영은 옮김/그린비

2012/04/19 09:00 2012/04/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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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봉봉 2012/04/19 09:41

    천하의 주기자님이 눈물이 맺혀서
    "누가 볼까 두려워 고개를 수그리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니;;;
    현장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 아쉽...;;

    • 그린비 2012/04/19 10:06

      주기자님이 후기 올린 저 부분이 저도 특히 마음이...'거시기' 했습니다. 흑!
      현장 급습(?)은 다음 기회로~~~ 잡으면 제보해주세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