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
: 「명사」 어떤 장소를 차지하여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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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랜드, "우리는 99%다"

고병권: 언제까지 점거를 지속할 생각인가요?
라마티: 그런 걸 정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계속할 겁니다.
 ―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41쪽

만약 월스트리트 점거 이야기로 다큐를 찍는다면, 다큐의 시작이어도, 끝이어도 좋을 것 같은 장면. ‘우리는 계속할 겁니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여운은 지난 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읽었던 한 대목을 나에게 상기시켰다. “민주주의는 영원하다. 그것은 시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시대는 자신의 한계로서 민주주의를 품는다”(고병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20쪽).

문득 고병권과 라마티의 대화에서 ‘점거’의 자리를 ‘민주주의’라는 단어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A: 언제까지 민주주의를 지속할 생각인가요?
B: 그런 걸 정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계속할 겁니다.

물론 언제까지 민주주의를 지속할 거냐고 묻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극우의 성향을 가졌더라도,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고 지켜가야 하는 것이라고들 하니 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불법’이라 명명하고, 중단시키려 하는 일들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광장을 점거하던 우리에게 “물대포를 쏠 테니, 선량한 ‘민주시민’들은 어서 자리를 피해달라”던 경찰의 경고방송,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점거하던 시민들에게 막대한 벌금형을 내려 생존권을 배로 위협하는 정부의 행동들. 이들이 과연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생각은 있는 것일까. 한계에 몰린 우리의 삶, 거기에 ‘점거’가 있고 ‘민주주의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있다. 불법으로 점거해서라도 이어가고 싶은 우리의 삶이 거기에 있다. 점거를 멈추라는 목소리는 민주주의를 중단하라는, 우리의 삶을 중단하라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2011년,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점거’의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펼쳐졌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삶이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월스트리트에 모인 이들은 ‘이게 진짜 삶이고, 진짜 민주주의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함께 먹고, 떠들고, 노래하고, 공부하며 말이다.

점거 공동체는 사람들이 구축하고 싶은 삶의 다른 방향이다. 온갖 탐욕적인 경쟁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 부와 권력, 정보 등을 독점하는 사회가 아니라,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삶을 꾸려 가는 사회를 원한다는 걸 대중 스스로 확인하는 작업이며, 그것을 모두에게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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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드림'이라고 불러 온 삶의 지향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삶의 지배 유형들이 거기서 타도되고 있었다.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머리말」중

그렇기에 삶의 요구들을 내건, 지금 이 시간에도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점거’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일 것이다. 이런 점거를 저지하는 공권력의 조치들은 그들이 실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모두가 평등하게 먹고 마시는 것, 일하기보다는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것, 서로를 대가 없이 돌보는 것, 정보를 공유하는 것, 모여서 토론하는 것……. 점거를 멈추는 순간, 우리가 질서에 순응하는 순간, 우리가 원하는 삶 역시 동시에 멈추게 될 것만 같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대체 뭐였지? 그리고 그 삶을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점거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은 우리가 원하는 삶에 대한 질문들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A: 언제까지 원하는 삶을 지속할 생각인가요?
B: 그런 걸 정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계속할 겁니다.

- 편집부 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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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 10점
고병권 지음/그린비

2012/04/25 15:00 2012/04/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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