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총파업을 바랍니다

최근 점거자들은 서로에게 총파업을 촉구하고 있다. 총파업은 현 체제에서 더 나은 지위,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하나의 위협용 수단으로 사용되는 그런 파업이 아니다. 총파업은 거래의 메시지가 없는 일종의 체제 중단 선언이다. [……] 현 체제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것, 현 체제의 부분이기를 그만두겠다는 탈퇴인 셈이다. 현 체제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 누구도, 체제의 일원이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그 누구도 총파업에 참여할 수가 있다.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머리말」, 8쪽

사실, 파업은 익숙하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파업 소식을 접하면, 아… 또? 이번엔 어디지? 하고 나도 모르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아빠가 다니시던 회사 노조 아저씨들이 파업을 해서 공장이 생산 가동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마다 심심찮게 들어 왔고, 학교에 다닐 때는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도서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시는 아저씨들이 파업을 하시는 동안 알바생이던 내가 대신 땜빵으로 그 자리에 투입되기도 했다. 그리고 물론 의식 있는 대학생이고 싶었던 나는 그 모든 파업들을 ‘지지’했다. 마음속으로.

월스트리트 점거 현장을 전달하고 있는 책을 읽다가, ‘총파업’이라는 단어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익숙하다 생각했던 ‘파업’을 나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 같은 ‘익숙한’ 구호들이 적힌 피켓들과 깃발을 들고 학교 선후배, 친구들과 우르르 ‘집회’라는 곳에 나가 보기는 했지만,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그 ‘현장’의 경험은 매번 별로 새롭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너무 당연하다. 나는 어느 편이 옳은지를 따져서, 그 편에 서서 지지와 동의를 표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것은 내 삶의 지점에서 조금쯤 비켜서 있었고, 나는 나대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나의 삶을 평온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새로 쓰고 있었다. 매일 그렇게 수십 개의 피켓들이 만들어지고 또 갱신된다. [……] 이처럼 민주주의란 이미 만들어진 의견에 지지/반대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 내는 힘 자체일 것이다.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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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리로서의 총파업이 될 수 있길!

총파업.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사소한 습관 하나 끊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일상적으로 행하던 모든 일들을 중단하겠다고 결심, 선언한다는 것. 그리고 점거한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 피켓에 손글씨로 단호하게 적은 No Fear라는 말에 한동안 시선이 꽂혀 있었나 보다. 하지만 총파업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나는 또 책을 읽으며 짱구만 굴리기 시작했다. 총파업. 나는 내 삶의 무엇으로부터 파업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어떤 체제 안에서, 어떤 체제를 공고히 하며 살고 있고, 어떤 체제에 중단을 선언할 수 있을까?

책에서 들려오는 월스트리트 점거자들의 목소리는 정말 다양했다. 그들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모으는 지점이 있다면, ‘모든 것을 점거하되,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자꾸 곱씹어 보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니. 내가 그토록 익숙하다 여겼던 다른 파업들은 보통, ‘임금 인상, 노동 시간 준수, 쉴 권리’ 등의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요구가 있었고, 모두가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파업이 장기화되곤 했던 이유는 그 요구들이 쉽사리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서 점거를 지속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합의를 이루어 내는 과정은 정말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점거자들은 서두르지 않아요. 그리고 어떤 이슈들에 대해 합의를 이뤄 내면, 며칠을 걸려서 말이에요, 그때의 감동이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크죠. 대단한 응원의 힘이 스퀘어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열정이 가득한 시위자들, 어떤 것에 대해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창조적인 그 수백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은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점거자 슈나이더의 말,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111쪽

일상용어라기엔 조금 딱딱한 이 ‘점거’라는 단어가 내게 준 첫 느낌은 별로 설레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민주주의를, 새로운 거번먼트를 실험한다고 해도, 그것은 점거한 그 장소 안에 갇혀 있을 뿐, 그 바깥의 체제는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전해오는 그 현장의 열기와 팽팽한 에너지가 말해주었다. 이들은 주코티 공원을, 그 장소를 점거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장소 자체는 어디라도 상관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코티 공원이라는 하나의 장소 안에 있었지만, 어쩌면 그들 각자는 서로 다른 공간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랍에서, 유럽에서, 2008년 서울에서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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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점거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점거 자체가 우리의 경험이고, 우리의 삶이기에!

눈으로 보이는 사실은 주코티 공원을 많은 사람들이 점거했다는 것뿐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공간 그 시간의 주름 사이에서 사람들이 경험한 것들일 테다. 내가 힘들다고 내 삶의 얘기들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고, 그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그 경험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지금 당장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이미 사람들의 몸 안에 어떤 변화의 씨앗을 심어 주기에는 충분했을 거라고 믿는다. 결국 99%의 사람들이 점거한 것은 현장의 경험, 그 시간 그 공간에서 그들이 겪은 그 모든 것, 그러니까 삶 자체일 테다.

그러니까, 점거하자고 말하는 것은, 지금 당장 어떤 목표를 함께 달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함께 점거하는 그 경험을 통해 각자는 서로 다르게 변화할 테니까. 삶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하나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변화들이 꿈틀대며 생성되는 경험을 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한 걸음 내딛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포기하지 않고 다음 발을 내딛는 것.

그래서 나는 바란다. 총파업이 어떤 가치에 대한 집단적 지지나 동의를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기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자기 삶의 그 무엇으로부터 파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 편집부 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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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 10점
고병권 지음/그린비

2012/05/01 09:00 2012/05/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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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도 2012/05/01 10:02

    '좋아요' 마음속으로 꾸욱 누르고 갑니댜...*=_=*

    • 그린비 2012/05/02 09:56

      저도 꾸욱 눌렀습니다. ^^
      글쓴이는 메이데이에서 리코더와 오카리나를 연주하며 숨은 실력을 드러내셨지요! ㅎㅎㅎ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