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오기 전부터 "이 책을 만수 님에게 권합니다"라는 담당 편집자의 추천이 있었습니다. 제가 홉스봄의 책인 『미완의 시대』와 『혁명의 시대』를 모셔두고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된 것도 같습니다.^^; 여하튼, 홉스봄의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를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격동의 20세기를 통과한 역사학자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홉스봄은 현재 93세! ^^)

소리와 종이에 둘러싸여 침대에 누운 몸으로 나는 2002년의 세계에는 어느 때보다도 역사가가, 특히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늙은 역사가의 평생에 걸친 편력을 읽으면 젊은 역사가가 21세기의 어두운 전망에 그에 합당한 비관주의만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한 눈,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 감각, 현재의 열풍과 장사판에서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가지고 맞서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여기서는 유리하다. 통계상으로도 나는 드문 축에 들어간다. 1998년에 여든 살이 넘는 사람의 수는 66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약 1퍼센트였다. 남들은 책으로만 아는 역사가 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일부가 되고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에릭 홉스봄, 『미완의 시대』, 이희재 옮김, 민음사, 663~664쪽

홉스봄은 자신이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겸손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홉스봄은 열여섯살 때부터 역사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도 자신의 활동(기록)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홉스봄, 역사와 정치』는 이러한 에릭 홉스봄의 지적·정치적 여정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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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술 대상의 '희귀함'과 '이해할 수 없음'에서 뭔가를 잡아내려고 노력해 그를 좀더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표현하되, 그래도 그의 희귀성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 독특하지는 않을지언정 회고록을 쓴 그의 동료들과는 꽤 다른 홉스봄의 회고록은 좌파 관점에서 쓰였지만 좌파를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균형을 맞춰 가면서 1장은 1917년부터 56년까지를 다루되 홉스봄 자신의 '20세기 삶' 묘사를 보충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하면서 전투적인 공산주의자이자 맑스주의자인 역사가의 형성을 탐구했다. 2장은 성숙한 역사가로서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다룬 세 가지 핵심 주제에 관심을 돌렸다. 그 주제는 그의 역사 '진보주의적' 개념, 1956년 이후 국제 맑스주의와 공산주의 발전 양상에 대한 그의 관찰, 영국 노동운동을 둘러싼 논쟁 참여다. (…)

홉스봄은 언젠가 "역사가의 일은 칭찬과 비난이 아니라 분석"이라고 썼다. 이는 자기 부정적인 규정이다. 그는 이를 따르고 지키는 것 못지않게 위반해 왔기 때문이고, 더 나은 측면을 거론하자면 명쾌한 삽화적 판단이 그의 언제나 즐거운 트레이드마크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적 역사를 다룬 것으로서 이 책의 제목(Hobsbawm: History and politics)은 종합과 분석에 우선 순위를 둔 루이 알튀세르의 몽테스키외에 관한 작은 보물 같은 책에 대한 사후 헌사 차원에서 붙인 것이다.

─그레고리 엘리어트 지음, 『홉스봄, 역사와 정치』, 「서문」, 신기섭 옮김, 7~8쪽

홉스봄의 시대 4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은 20세기 역사적 사실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 교과서라 할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고 공부합니다. (저도 그래서 『혁명의 시대』를 샀었지요!) 또한 홉스봄은 "활동하는 최고의 맑스주의 역사가"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역사와 정치, 현실에 관한 홉스봄의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우리도 『홉스봄, 역사와 정치』를 통해 '홉스봄의 지적 연대기'와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함께 읽어요! ^^

<책 소개>

다시 주목해야 할 역사가, 에릭 홉스봄― 20세기를 증거한다

많은 책을 썼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의미 있는 저작이다. 공적 지식인 자격으로 곳곳에 초대받아 당대의 쟁점에 대해 늘 발언을 했고, 그의 ‘짧은 20세기’에 대한 역사서 『극단의 시대』는 “교육받은 좌파라면 누구나 읽을 것이고 또 확실히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분류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에릭 홉스봄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썼던 글에 대한 개별 비평은 수없이 많지만 그를 전적으로 다룬 작품은 전무하다. 저자 그레고리 엘리어트의 지적처럼 “홉스봄의 정열적 저술 활동과 명성을 고려할 때, 그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글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점은 눈길을 끈다”.(본문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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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그린비 인물시리즈 he-story>의 제3권, 『홉스봄, 역사와 정치』는 본격적으로 홉스봄의 정치적‧사상적 흐름을 좇는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90세가 넘도록 세상과 치열하게 대결하고, 역사가로서의 사명감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분주했던 그가 보여 준 인류와 세계에 대한 주목과 관심에 비해 기이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한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그러나 진보에 대한 믿음,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격변의 20세기를 몸으로 견디며 맑스주의 역사가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공산주의의 최후까지 대의에 충실했고 여러 면에서 아주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위대한 작가로 불리지는 않는 인물, 전투적이고 실천적인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가명으로 재즈 관련 책을 출간할 정도로 관심분야가 많았던 특이한 인물. “희귀한 것뿐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에도 흥미가 있다”는 홉스봄 자신의 말처럼 관심분야가 비(非)전형성을 띠었지만, 바로 그런 특이함 덕분에 그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 20세기를 일반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기 쉽도록 많은 글과 자료를 남긴 것은 아니었을까.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혁명의 실패 이후에도 여전히 공산주의자로서 맑스주의 역사가의 관점을 놓지 않았던 것 역시 10대 시절 형성된 이래 변하지 않았던 그의 ‘맑스주의자’로서의 정체성 덕분이었다.

에릭 존 어니스트 홉스봄, 키 크고 모난 데다 축 늘어지고 못난 금발의 열여덟 살 청년…… 혁명가가 되고 싶으나 아직까지 조직화에 재능을 보여 주지 못한다. 작가가 되고 싶으나 소재를 형상화할 열정과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산을 움직일 믿음은 없고 그저 희망만 품고 있다.

─그레고리 엘리어트 지음, 『홉스봄, 역사와 정치』, 신기섭 옮김, 23쪽

홉스봄 자신이 스스로를 묘사한 자화상에서 우리는 자책에 가까운 그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 저자 그레고리 엘리어트의 지적처럼 “학생 홉스봄이 어른 홉스봄의 아버지”였다면, 우리는 이 글에서 유대인 소년의 자기비하만큼이나 행복에 대한 믿음과 혁명에의 희망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 『홉스봄, 역사와 정치』는 홉스봄의 유년시절부터 케임브리지 대학시절까지를 살피는 동시에 그가 남긴 여러 개인적인 글들과 편지글, 모임에서의 발언까지도 확인함으로써 그가 어떻게 맑스주의 역사가로 성장하게 되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때로는 웃음을 살 판단과 발언을 하고, 후회할 법한 정치적 결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공산주의의 탄생과 몰락을 자신의 온 생애를 거쳐 함께하고, 영국 정치현실은 물론 전세계 정치지형에 폭넓게 관심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해 온 20세기의 산증인으로서의 홉스봄의 면모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것은 더 이상은 늦춰지면 안 될 일이다.

맑스주의 역사가는 무엇을 하는가― 끝나지 않는 지적 투쟁

1880년대 이후 맑스주의에 귀의했던 상당수의 지식인은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과 더불어 세계 변혁을 꿈꿨다. 여기에 역사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집단의 대다수가 맑스주의의 영향하에서 대중적인 정치세력이 되어 갈 무렵 민중사, 노동사 등은 원래 맑스주의적 역사 해석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의 변혁을 바라는 역사가는 정치운동과 참여를 통해 ‘맑스주의적 역사학’적 관점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갔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을 기점으로 맑스주의와 관여된 지식인들이 다시금 등장하게 된 것은 홉스봄의 맑스주의 역사가로서의 성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고,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공산권에서 탄생한 (공식적) 맑스주의 역사관은 파시즘 시기에 때맞춰 반체제투쟁의 기본이 될 수 있었다. 로드니 힐튼, 크리스토퍼 힐, E.P.톰슨, 모리스 돕 등 유명한 맑스주의 역사가들과 함께 1946년에 시작한 ‘공산당 역사가 모임’(Historian’s Group of Communist Party)은 홉스봄의 문제의식인 정치 행동주의와 자신의 직업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이었고, 56년까지 이어진 이 모임의 조직적 유산은 스스로 “과학적 역사학술지”라 칭한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로 남았다.(본문 40쪽)

현재 세대는 역사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의 가능성 그 자체를 거부하는 19세기 초 낭만주의의 반합리주의 세계관에서 직·간접적으로 물려받은 특정 사상 조류가 다시 발호하는 걸 보고 있다.…… 우리는 이성과 과학의 방법이 적어도 지질학, 고생물학, 생태학 또는 기상학에서처럼 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과거와 현재』 창간호 사설 중에서)

맑스주의 역사학의 출발점은 개별 ‘사실’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의식’에 있었고, 자신이 경험하게 된 전쟁이나 혁명 등의 낱낱의 사실들에 대해 발언할 때에도 홉스봄은 비난받을지언정 맑스주의자로서의 아이덴티티와 신조를 저버리지 않았다. 공산주의가 쇠락하고, 맑스주의와 반맑스주의가 번갈아 등장할 적에도 말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역사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면서 인간의 이해 능력을 벗어난 것은 물론 인간의 사회·정치 제도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도 확실히 넘어선 상황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아마 20세기 인간 집단의 기획이 가져온 예상 밖의 원치 않는 결과를 이해한 경험이 있는 맑스주의 역사가들은 적어도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본문 152쪽)이라는 그의 소박한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맑스주의에 몸담았던 많은 지식인들과 역사가들이 몇 차례의 위기를 겪고 대를 지나면서 사회혁명가이길 그침과 동시에 맑스주의도 내다버릴 때 홉스봄은 그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공산당을 떠나지 않았고, 공산당을 떠나면 얻을 수 있었던 물질적 풍요와 보장된 성공을 거부함으로써 대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정절을 지켰다.

물론 제가 받아들인 대의가 실패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공산주의를 선택하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상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류를 위한 유일한 이상이 물질적 풍요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언젠가 멸종하고 말 것입니다.(홉스봄의 인터뷰 중에서)

그러나 홉스봄은 “미래는 더욱 낫고, 더욱 정의로우며 더욱 활력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자. 구세기는 좋게 끝나지 않았다”(『극단의 시대』) 말하며 아직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끔찍하고 별난 세기, 20세기를 통과한 그가 보여 주는 낙관이기에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는 그의 말을 무조건 믿고 그의 계속되는 지적 투쟁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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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그레고리 엘리어트(Gregory Elliott)
영국의 옥스포드 발리올 칼리지(Balliol College)에서 루이 알튀세르를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85). 이후 저술 및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Althusser : The Detour of Theory(국역본 『알튀세르 : 이론의 우회』, 2009), Perry Anderson: The Merciless Laboratory Of History(1998), Ends in Sight: Marx/Fukuyama/Hobsbawm/Anderson(2008) 등이 있다.

옮긴이 | 신기섭
1990 년 초 학교를 졸업하고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하여 2012년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2000년부터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당대, 2000), 『싸이버타리아트』(갈무리, 2004), 『탈근대 군주론』(갈무리, 2005) 등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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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 - 10점
에릭 홉스봄/한길사
자본의 시대 - 10점
에릭 홉스봄 지음, 김동택 옮김/한길사
제국의 시대 - 10점
에릭 홉스봄 지음, 김동택 옮김/한길사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상 - 10점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까치글방

2012/05/15 09:00 2012/05/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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