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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심경고백!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편집, 그 이후

이 남자를 보라!

이 모(某)1)씨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 이후 헛헛한 웃음을 지을 일이 많으셨을 거라 사료되는 가운데 중간중간 “굿모닝” 같은 빅웃음도 뻥뻥 터진 까닭에, 이 사람이 정말 ‘개그’를 하고 있는 건가 잠시, 진심으로 고민했었던 분들도 적잖이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웃음이 넘치는 시대입니다(비웃음을 포함해서요). 웃기다는 말로 넘기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힘든 몰상식과 무뇌적 시대이기도 하죠. 하지만 어쨌거나 이某씨가 현충원 방명록에 ‘-읍니다’라고 쓴 일이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잔잔한 ‘재미’를 준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이 쓰는 대로 한글 맞춤법이 ‘읍니다’로 바뀌는 것 아니냐고 말뿐인 걱정들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니다. 어쩌면, 예, 정말 어쩌면 만약에 말입니다. 이 분이 치밀한 개그적 두뇌로, 그리고 내가 비록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큰웃음을 줄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하네, 하는 심히 감동스러운 살신성인적 마인드로 국민들을 널리 보우하시는 거라면 우린 정말, 시대의 전환이라고 하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이미 Hi, Seoul도 충분히 웃겼는데……. 어쨌거나 정말 이분, 몸 바쳐 개그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편집후기 본론으로는 아직도 안 들어갔군요. 그러니까 연암을 보면서 저는 자꾸 우리의 ‘오늘’을 떠올리게 되어서 말이죠. 깝깝한 걸로 치자면 돈으로 칠갑해 놓은 청계천을 견뎌야 하는 지금이나, 고문(古文)을 쓰지 않는 연암을 두고, 개인의 글쓰기 스타일까지 어찌하려 했던 조선이나 매한가지. 어떻게 해서든  ‘국회의원’이 되고, ‘시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로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어리가 미어터지는 작금의 현실이나, 그 옛날 100살이 넘어서까지 과거에 급제하려 애를 썼던 현실이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관건은 선택이란 말입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 결국 그것밖에 없는 거라는 생각. 조금 무책임한가요? 어쨌거나, 결국은 그 어디에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고 제 스스로 앙가슴을 치던 연암은 자신의 삶을 자기 멋대로 사는 선택을 하고, 우리도 역시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반작용이죠. 웬만해선 자신감 같은 건 갖지 않고, 되도록이면 조용히 사는 게 꿈인 김병욱 PD의 시트콤에 대한 열광이 바로 그것입니다. 라고 하면 너무 개인적 취향의 발로가 되겠지만 읽기 싫으시면 다른 글 읽으시죠! 라고는 할 수 없고 그래도 읽어 주세요. 바로 그러한 이유로!(어떤 이윤지 아시겠죠?) 저는 최선을 다해서 관직에 오르는 것을 피하고, 억지로 끌려간 시험장에서는 그림만 그리고 나오는 연암을 보면서 열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에 가서도 진짜 장관은 똥과 기와조각이라고 말하는 남자, 시종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몰래 놀러 나가고, 노느라 먹지 못한 밥이 식자 그것을 시종에게 주고 자기는 맛있는 걸 사먹는 남자, 사람들에게 자신의 필치를 자랑하면서 스스로 도취되는 이 남자, 친구들이 우주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는 졸면서 듣다가 막상 중국에 가서는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썰을 풀어대는 이 남자, 항상 자신에게 감탄하는 이 남자, 점방의 작자미상 글을 베껴 적으며 고국에 돌아가 사람들을 웃길 생각으로 밤새 즐거워하는 이 남자. 제가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눈치채셨죠? 『열하일기』는 소극(笑劇)입니다. 하찮은 여행의 기록입니다. 여기서 하찮다고 하는 것은 사소하다는 말인데, 사실 세상 모든 일이 사소하지 않은 게 없다고 할 때의 사소함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실제적이고 중요하다는 뜻의 하찮음입니다. 사사롭고, 하찮고, 유치한 소극의 세계입니다. ‘정치’만이 남자가 응당 걸어야 할 길이고, 큰 일을 하는 것이 사대부의 도리였던 바로 그 때 우리의 연암 박선생은 끊임없이 탈주하고 미끄러진 사람입니다. 열하에 가서도 사행단이나 통관과 어울린 게 아니라 점방 주인들, 마을 사람들, 거리의 행인들과 어울렸던 아저씨의 그 하찮은 여행의 기록을 읽으며 저는 시트콤을 떠올렸습니다.

「순풍산부인과」와 「똑바로 살아라」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거침없이 하이킥」을 사랑했던 분들이라면, 김병욱 PD식 소극을 좀 아실 겁니다. 웬만해선 집조차 떠나지 않는 김병욱의 '작은' 코미디는, 이를테면 라면에 계란을 두 개나 넣어 먹는다는 잔소리를 하거나 그것도 모르냐는 잘난 척을 하는, 차마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에 대한 것들입니다. 항상 먹을 걸로 치사하게 굴고(나에게는 매일 있는 일인데 저런 걸 굳이 텔레비전에서까지 봐야 하나, 할 정도로 리얼한 이야기들이죠), 거짓말이 들통날까 조마조마하고, 이건 해도해도 너무 심하게 어이없는 일들의 연속이죠. 그러나 어쨌거나 사람들이 그 어이없음에도 불구하고 영규나, 장인어른이나, 야동순재나, 식신준하에 열광한 것은 통념을 거부한 리얼리티와 자유로움, 좌충우돌 스탠다드 몸개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믿기지 않으실 테지만) 『열하일기』와 연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고전은 먼지 쌓인 ‘세계문학전집’과 동급이었던 저에게, 닥치고 본방을 사수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기쁨이었던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따라서, 기쁨이고 웃음이고 개그였습니다. 200년도 훨씬 넘은 텍스트가 펄떡펄떡 살아서 저에게 개그를 치고 있는 이 상황 자체도 시트콤이고, 연암의 삶 자체도 시트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말입니다. 아무리 똑바로 살라고 해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해대는 그를 웬만해선 막을 수 없었던 18세기 조선, 청나라 견문의 기록『열하일기』와 연암을 읽어야 할 때입니다.

너 지금 니가 편집했다고 이렇게 자꾸 열하일기 재밌다고 할 거냐고 키보드 앞에서 분노의 댓글을 달까말까 하고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흥이라.2)


1) 모는 아무개라는 뜻으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하권 「태학유관록」 8월9일자를 보면 연암이 박명원의 이름을 밝히면서 자신의 삼종형이므로 이름을 직접 쓰지 않고 ‘모’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어른이면 ‘기휘’라고 표기하지요. 여기서는 그냥 저보다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에 붙인 ‘모’입니다.

2)
콧방귀 아닙니다. ‘흥’(興)은 시가 형식 가운데 하나로서, 노래와 주제와 유사한 다른 일을 먼저 읊은 다음, 본래 주제를 읊는 방법입니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하권 「호질」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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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 17:06 2008/02/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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