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를 지탱하는 어떤 믿음들에 관하여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날, 내가 지지하고 있는 몇몇 단체로 후원금이 들어간다. 은행에 가지 않아도 자동으로 빠져  나가게 되어 있어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참 편리하다. “후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을 때가 되어서야 새삼 그 단체의 활동들을 생각한다. ……‘지지한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런가 하면 읽지도 않고 쌓여만 가는 후원단체의 소식지들이 책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뭐든 돈으로 다 해결하려 드는’ 사람들(기업들)을 보며 혀를 차곤 하는 나. 책상 한 귀퉁이에 읽지도 않은 채 쌓여 가는 소식지들이 나에게 뜨끔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그러는 너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나의 무능을 돌아보게 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금전적 후원’이라는 방법 외에 내가 했던 적극적인 행동으로는 뭐가 있었을까. 집회에 나가는 것도 지속적으로 이어갔던 적이 드물다. 이런 나에게 그 다음 목표는? (조금 자조적이긴 하지만) 열심히 돈 벌어서 더 많이 후원하기 정도가 되려나? 나는 화폐를 통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화폐를 통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나에게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폐로 표현된 부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전환될 수 있는 어떤 힘을 느낀”(고병권, 『화폐, 마법의 사중주』, 225쪽). 나 역시 이 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에 화폐로 교환될 수 없는 중한 것들이 많다고는 믿지만, 동시에 화폐의 어떤 위용—다른 어떤 것으로도 전환될 수 있는 힘—에 대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적인 생각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의 생각은 쳇바퀴 돌듯, 돈보다 중요한 게 더 많아, 그렇지만 돈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냐, 이 속에서 맴돌고만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생각의 준거점은 언제나 ‘돈’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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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에 눈을 빼앗기면 화폐를 볼 수가 없다”(고병권, 같은 책, 23쪽). 『화폐, 마법의 사중주』의 저자 고병권 선생님은 화폐를 화폐이게끔 하는 사회적 관계와 사회 구조, 이론적 실천 등 그 모든 것이 ‘화폐’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역사적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약 7주 동안 (주간님, 그리고 아영씨와 함께) 이 책을 통해 화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읽고 배웠다. 공동체가 산산조각 나고,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탄생하고, ‘민족’ 구성체를 기반으로 한 전쟁이 일어나는 한가운데에서 근대적 의미의 화폐는 탄생했다. 모든 특이성과 구체성들을 소거시키면서 말이다. 우리는 마치 역사적 필연성 속에서 화폐가 탄생했다고 여기고 있지만(화폐는 교환 과정을 좀더 편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사물이다?), 화폐는 더 많은 추상적 부를 축적하려는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인위적 사물이다. 화폐가 편리하다는 생각도 사실은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상식이고 말이다.

“밀튼 프리드먼은 화폐에 대해 재미있는 정의를 내렸다. 화폐제도란 우리가 믿는 만큼 그 진실성이 커지는 허구라고”(고병권, 같은 책 22쪽). 이는 화폐제도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털어 넣고 있는 보험, 펀드, 주식 등등은 은행에 대한 신뢰, 국가 금융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다. 돈에 대한 믿음, 나의 경우를 비추어 말하자면, 결국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이 이 모든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믿음만으로도 그걸 진실로 만들 수 있다니. 나도 결국은 공범자이다.

바느질을 하는 어떤 남성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이 세계를 지탱하는 제도(화폐)에 대항하기 위해, 생태를 지키기 위해 면생리대를 직접 만들고, 직접 토마토를 키운다고 했다. 면생리대를 팔기도 하느냐고 묻는 내게 그는 “그래도 되긴 하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직접 바느질로 생리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땐 그게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화폐에 대항하는 방법이냐고 묻고 싶었다. 또 어떤 분은 “자보를 붙이기 위해 떼는 스카치테이프, 딱 그 면적만큼 세상이 바뀐다”고 했다. 마음이 심하게 동요했다. 이곳저곳 후원금은 보내고 있지만, 정작 움직이고 있지 않은 나는, 나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화폐가 필요하지 않다고,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불안하게 하고, 힘겹게 하는 화폐에 대한 믿음은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게 쉽게 다른 어떤 것(활동이든, 물질이든)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믿음, 그걸로도 충분히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버리겠다고, 지금부터라도 버릴 수 있도록 움직이고 노력하겠다고 함께 공부한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함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 편집부 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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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마법의 사중주 - 10점
고병권 지음/그린비
2012/05/23 09:00 2012/05/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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