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의 ‘아름다움의 세계’를 체계화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보는 고대 그리스의 ‘美’와 예술론!


그리스 미학: 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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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존 깁슨 워리 지음|김진성 옮김
  인문|신국판(152×224mm)|232쪽|18,000원|2012년 12월 15일 발행
  ISBN : 978-89-7682-392-2 93100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학적 관념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통해 정리해 낸 미학 입문서이 다. 저자인 존 깁슨 워리는 낭만미와 조화미, 예술 창작, 미메시스와 리듬, 카타르시스, 비극과 희극 등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목한 다양한 미학 개념을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의 아름다움(미)에 대한 관념, 예술에 관한 원초적 사유를 밝혀내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들, 『대 히피아스』, 『향연』, 『국가』, 『이온』, 『파이드로스』 등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창작술), 『수사학』 등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 고대 그리스 고전에 접근하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각 대화편들의 특징과 등장인물의 성격, 소크라테스의 변론술 등을 고려하며 신중하게 고대 그리스의 미학적 특징들을 정리해 나감으로써 일관적이지 못한 플라톤의 미학적 사유를 체계화한 그리스 미학에 관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이 둘은 절친한 사이였지만 그림에 관해서는 경쟁자였다. 어느 날 둘은 그림 솜씨를 겨루었다. 먼저 제욱시스가 그림을 가린 막을 거두었다. 그것은 포도넝쿨이었다. 마침 지나던 새가 그림의 포도송이를 따 먹으려고 달려들었다가 부딪쳐 떨어졌다. 새의 눈을 속일 만큼 감쪽같은 그림이었던 것. 제욱시스는 의기양양해하며 파라시오스에게 막을 걷으라 했다. 그러자 파라시오스는 “잘 보게. 자네가 나보고 걷으라 한 그 막이 바로 내가 그린 그림일세.” 제욱시스는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나는 새의 눈을 속였지만, 자네는 새를 속인 화가의 눈을 속였군, 허허.”

오늘날 사람들도 감탄을 자아낼 만한 이 일화는 최대한 실제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학적 태도를 잘 보여 준다. 근대 미학에서도 중요한 원천이 되는 ‘모방’ 혹은 ‘재현’ 같은 개념이 고대인들에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학적 관념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통해 정리해 낸 미학 입문서이다. 낭만미와 조화미, 예술 창작, 미메시스와 리듬, 카타르시스, 비극과 희극 등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목한 다양한 미학 개념을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의 아름다움(미)에 대한 관념, 예술에 관한 원초적 사유를 밝혀낸 책이다.

이 책의 목적은 오랫동안 논의되고 계속해서 다듬어진 아름다움에 관한 개념들을 다시 알아봄으로써 현대의 딜레마(예컨대 삶과 예술의 문제 등)와 대면하게 해주며, 가장 순수하고도 원초적인 형태의 사유를 보임으로써 새로운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고대 미학은 고립되어 제시되어서는 안 되며 오늘날의 문제들에 과감히 응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미학에 관해서 아직은 척박한 국내 상황에서 미학사의 출발점을 보여 준다는 의의 또한 갖추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두 철학자의 ‘아름다움’에 관한 진솔하고도 논리적인 사유는 그 자체로도 음미할 만하며, 탈근대의 미학으로 가는 입구에서 반드시 두드리고 가야 할 기본이 되어 준다. 흡사 현대 철학을 이해하고자 할 때 다른 무엇보다 그리스 철학이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들, 『대 히피아스』, 『향연』, 『국가』, 『이온』, 『파이드로스』 등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창작술), 『수사학』 등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 고대 그리스 고전에 접근하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각 대화편들에서 그 특징과 등장인물의 성격, 소크라테스의 변론술 등을 고려하며 신중하게 미학적 특징을 찾아 나감으로써 일관적이지 못한 플라톤의 미학적 사유를 체계화한 그리스 미학에 관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대화편’들로 보는 고대 그리스의 미의식

“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플라톤은 눈과 귀, 심지어는 후각을 매개로 한 ‘순수한 즐거움’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순수한 즐거움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기술하는 색깔들과 형태들에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의 냄새들과 소리들에, 그리고 있으면 느껴지고 섞이지 않은 즐거움으로 가득하지만 없더라도 이목을 끌지 못하고 고통이 없는 모든 것들에 집중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대 히피아스』).
플라톤은 다양한 감각들의 권리들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 미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인상들의 선명함과 뚜렷함이다. 왜냐하면 선명하고 뚜렷한 인상들을 토대로 했을 때에만 지성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각은 우리에게 진리의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에서 우리가 갖는 즐거움은 미에 대한 기초적이고 객관적인 파악이다. 그래서 시각이 가장 탁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선천적인 감수성 또는 경험으로 얻은 섬세한 기호들을 거쳐 지식과 만족의 근원을 발견한다. 포도주에 대한 미각, 치즈에 대한 감식가의 판단이 그러한 감수성인 것이다. 플라톤은 비체계적이긴 하지만 낭만적인 미와 냉정한 지성미 모두에 집중한다.
그리고 오감에 의해 파악되는 다양한 미들은 조화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 예컨대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아름다운 암말의 사례에서처럼, 전차를 끄는 것과 같은 목적을 위해 잘 적응된 네 다리의 배치, 외피, 그리고 윤택이 본질적으로 하나로 묶임으로써 힘과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야말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미학적 원리였던 것이다. 다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미’와 ‘예술’은 전혀 다른 종류의 주제였다. 현대인들에게 예술이란 아름다움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어서 ‘예술미’와 같은 개념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들은 자연미와 예술미의 구분에 관한 어떠한 물음도 없었다. 그래서 플라톤은 예술을 삶의 대체물이라며 비난했는데, 그것은 예술이 삶의 진리와 삶의 도덕을 곡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


플라톤은 아름다움이 예술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와 달리 예술에 대해서는 폄하한다. 그는 “앎에 의해서도 추측에 의해서도 모방자(작가)는 자신의 모방과 관련하여 아름다움과 나쁨 사이를 구별할 수 없다”(『국가』)라며 예술 작품이 이데아의 세계에 부합하지 않음을 비판한다. 플라톤에게 예술은 거짓이고, 얄팍한 눈속임이며, 진리의 왜곡이다. 작가의 창작적 영감 또한 주관적일뿐더러 그의 예술품은 모방의 모방에 불과한 것이다(현실이 이데아의 모방이라면 그 현실을 그리는 행위는 모방의 모방이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플라톤적인 미 개념의 반향을 발견할 수 있으면서도, 그와는 달리 모방(미메시스)의 인식적 가치를 강조하고 모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창작은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는 두 가지 원인으로부터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미메시스는 어렸을 적부터 인간 존재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간은 바로 이러한 미메시스 능력의 면에서 다른 모든 동물들을 능가한다. …… 우리는 조화와 리듬에서뿐만 아니라 미메시스에 의해 재현된 것들에서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얻는다.”(『창작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모방은 능력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연의 암시, 자연의 안내를 따른다. 현실보다 더 나은 어떤 이상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제욱시스는 예술 작품이 현실보다 우월하고, 화가의 모델은 보통의 경험을 초월해야 한다고, 또는 화가는 모델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하며, 급기야 헬레네 그림을 그릴 때 다섯 명의 모델을 동원하기도 했다(본문 76쪽의 그림 「선발된 5명의 처녀」 참조).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 예술가들을 모독하면서 끌어내렸던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하였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예술 장르 중 극작을 주목한다. 그는 극작이 “역사보다 더 고상하고 더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극작은 생각, 성격, 언어, 외관, 음악, 플롯을 포함하고 ‘개연성과 필연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작은 한편으로는 동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정적인 매체이다. 음악을 포함하고 있고, 관객의 마음속에서 이미지들과 그림들을 산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극작의 본질이 단순히 이야기를 쓰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통일되고 예술적인 전체로 엮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은 사람의 감정을 극도로 흥분시킴으로써 오히려 감정을 진정시키고 정화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사람들은 비극(적인 장면)을 봄으로써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리고 후련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역설을 설명하는 개념이 ‘카타르시스’이다. 이 책은 카타르시스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공통 경험은, 그것이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곳에서조차, 다른 보다 고양된 요소들과 연결됨으로써 승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비극적인 고귀함을 위해서 비극적인 고난을 수용하도록 유도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행할 수 있는 최악의 것과 일시적으로 화해한다. 그리고 이것이 창작이 지닌 카타르시스의 본질이다.”(본문 187쪽) 이 책은 이렇게 ‘카타르시스’가 ‘미메시스’와 ‘리듬’과 더불어 음악 예술과 문학 예술을 설명하는 그리스 미학의 중요한 원리임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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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aesthetica)이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인식과 그 예술 형태에 관한 연구를 이르는 말로,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며 18세기 바움가르텐(A. G. Baumgarten)이 이름 붙인 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름다움에 관한 관념과 예술 이론이 있어 왔는데, 그리스 미학은 고대의 미학 중 가장 핵심적이다. 
그리스 미학은 미에 관한 서양인의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예컨대 로마시대의 조각들은 그리스 조각에서 동작과 자세를 따온 모작이다(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조각 중 상당수가 로마인들의 모작이라 한다). 플라톤이 제창한 초월적 가치로서의 미에 관한 고찰은 전통적 미학 원리로서 끊임없이 도전받아 왔다. 미메시스와 재현의 원리는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개념이다. 그리스 미학은 서양 문화와 예술에 튼튼한 뿌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이러한 그리스의 미학 사상을 잘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미와 예술이 이성적 측면과 비이성적 측면을 모두 지닌다는 입장,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미학 관련 설명은 체계화/재구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일관되게 서서, 여러 작품들에 흩어져 있는 두 철학자의 생각들을 모아서 몇 가지 대립적인 분류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관련 서적이 얼마 없는 열악한 현재 상황에서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미학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아울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으로의 안내자 역할을 해낼 것이다.

플라톤은 체계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극작가이자 종교적인 열의에 불탄 전기 작가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좀처럼 완전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더러는 함축되어 있는 체계를 그의 작품에서 뽑아내는 일을 더욱더 힘들게 만든다. 체계는 또한 진리 문제와 논리 문제에 동시에 달려드는 그의 습관에 의해 모호하게 된다. 이 점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확연히 구분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작업의 상당한 부분을 논리학에 바침으로써 ‘오르가논’을, 또는 진리에 접근하여 이를 해부할 수 있을 도구를 창조했다. 하지만 플라톤은 그가 접근한 거의 모든 새로운 문제와 더불어 새로운 ‘오르가논’을 발명했다. _ 본문 16쪽.

소크라테스는 아주 예술적인 ‘도기’, 즉 도기제조술의 진정한 걸작을 내세운다. 그러나 히피아스는 그러한 대상이 아름답다고 인정하면서도, 도기는 소녀에 견주어 보면 아름답지 않다고 대꾸한다. 이걸 기회로 삼아,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소녀는 아름다운 여신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소녀가 여신과 비교되는 것은 도기가 소녀와 비교되는 것과도 같다. 다른 정의들이 이제 시도된다. 히피아스는 황금은 항상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황금과 상아로 된 페이디아스[그리스 조각가, 기원전 약 480~430]의 아테네 여신상은 눈알이 돌로 되었다는 점을 그에게 기억시킨다. 황금이 항상 아름다운 거라면, 왜 그 상은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히피아스는 황금은 적합할 때에만 아름답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 점을 강조하며, 통속적인 사례에 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화과나무 국자는 황금으로 된 국자보다 [요리의] 작업에 더 적합하고, 그래서 그것이 더 아름답다는 인정을 끌어낸다. _ 본문 24~25쪽.

사랑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설명은 『파이드로스』에서 추락한—말 그대로 추락한—본성의 비유를 언급함으로써 공들여 마무리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배우기 때문이다. 즉, 혼은 한때 하늘에서 신들과 함께 살았다. 그곳에서 혼은 신들처럼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갖췄고, 신들의 경로를 따라 창공을 통해 하늘 천장의 바깥 면으로, 그곳의 유리한 위치로부터 보이는 이상적인 진리와 미에 대한 숭고한 통찰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그들을 따라갔다. 그러나 신들의 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있고 그것을 열망하지만, 인간의 마차는 기댈 수밖에 없는 말들 중 한 마리한테 배신을 당한다. 이 짐승은 마부가 일러주는 대로 곧잘 반응하는 고상한 동료 말(馬)에 어울리지 않게 버릇이 나쁘고 다루기 힘들다. 그래서 인간의 혼들은 결코 완전한 전경 또는 자신들의 말들이 방목되는 ‘진리의 평원’에 좀처럼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그들이 한 번 잠시 누렸던 숭고한 경험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을 가진 채 다시 땅위로 떨어진다. 그 기억을 조금 더 따뜻한 빛으로 부추기는 데 쓸모가 있을 뿐인 무의미한 현상들의 세계에 어리석은 상태로 머문다. _ 본문 43~44쪽.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를 삶과 예술에서 으뜸 가치로 인정했다. 이와 동시에 미는 결코 그것이 플라톤 철학에서 얻는 독립성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얻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미는 항상 합리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저술에는 플라톤이 미를 사랑과 연결하고 사랑을 통해 ‘광기’와 연결하는 것에 상응하는 내용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성과 앎을 향한 비이성적 충동은 그것이 플라톤에서 강조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강조된다. 우리가 『필레보스』에서 보았듯이, 미는 단순한 감각들과 추론들에서 느낀 즐거움으로 규정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이 추리 과정에서 얻는 본능적인 기쁨에 대해, 결코 실제로 그러한 즐거움을 미에 대한 지각과 동일시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동일시하지 않는 것은 단지 용어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미가 합리성과 연결되어 있고 합리성 자체가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의 산물이자 추리되지 않은 욕구의 충족이라면, 우리는 미에 대한 지각이 이러한 모호한 충동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_ 본문 129~130쪽.

워리는 미와 예술이 이성적 측면과 비이성적 측면을 모두 지닌다는 입장, 그리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그리스 미학 사상에 관한 설명은 체계화, 재구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일관되게 서서, 여러 작품들에 흩어져 있는 두 철학자의 생각들을 모아서 독자들의 기억에 잘 남도록 몇 가지 대립적인 분류를 통해 그리스의 미학사상을 잘 정리하여 설명했다. 그의 책은 관련 서적이 몇 가지 안 되는 열악한 현재 상황에서 고대 그리스 미학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아울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으로의 안내자 역할을 독특히 해내리라 믿는다.  _ 「옮긴이 후기」 중에서, 본문 212쪽.

지은이/ 옮긴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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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8 09:00 2012/12/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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