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에서 써내려 간 새로운 저항의 계보학!!
- 언더그라운드에서 싹튼 프리터 세대의 ‘사상’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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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의 사상 : 거리를 되찾아라!』
시리즈명 : 트랜스소시올로지 17
지은이 : 모리 요시타카(毛利嘉孝)
옮긴이 : 심정명
사회|신국판(152×224mm)|256쪽|16,000원
2013년 1월 15일 발행|ISBN : 978-89-7682-390-8 03330

9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홈리스나 외국인 노동자 등을 지원하는 새로운 운동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이라크전쟁 반대에서 프리터의 투쟁까지의 다양한 운동들이 활기를 띠고 이루어졌다. 이 책은 음악, 댄스 등을 아우르는 하위문화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네그리·하트의 ‘제국’론이나 들뢰즈·가타리의 자본주의 사회 분석 같은 해외의 사상이 생생한 현장과 결합해 만들어 낸 새로운 정치운동의 연원을 탐사한다.
인디문화로 대표되는 80년대의 기저에서 흐르던 움직임이 90년대 신자유주의화 및 해외의 현대사상으로 추동된 ‘지식의 지각변동’을 거쳐 2000년대에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는 이색적인 사상사(思想史). 약 30년에 걸친 지성계와 대중문화계의 흐름을 단번에 횡단 주파하는 속도감 넘치는 문장이 돋보이고, 한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인 경향(현실과의 접점을 잃은 사상, 시장 논리에 의한 대학사회의 잠식, 사회운동의 다변화 등)을 대비해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일본에선 지금 사회운동의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데모를 할 수 없는 사회’라고까지 불리던 현대 일본이 언젠가부터 다양하고 기발한 시위문화가 출현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유명한 ‘아마추어의 반란’은 물론이고, 탈핵·반원전이나 빈곤 해소 등을 외치는 시위도 통상 ‘데모’라고 말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한참 동떨어진 개성 넘치고 유쾌한 모습으로 벌어진다. 누군가는 이런 변화를 반기고 또 누군가는 당혹스러워 하겠지만, 이 지각변동의 연원은 과연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이 책 『스트리트의 사상 : 거리를 되찾아라!』의 저자로서 처음 국내에 소개되는 문화연구자 모리 요시타카는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돌출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함께 예비된 것이라고 말한다. 대개 대학 제도에 몸담고 있는 지식인들이 ‘데모를 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 가는 일본을 한탄하는 동안, 그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형식이 무수한 실험적 실천들 속에서 개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품경기가 붕괴하는 80년대 일본에서 출발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종 인문학 담론과 정치적 현장, 언더그라운드·인디 문화, 대중문화를 광범위하게 참조하며 수집한 실험적 실천의 사례들을 『스트리트의 사상』 안에 빼곡히 담았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실천들 가운데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연속성을 ‘스트리트의 사상’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 새로운 사상의 담지자로서 불안정 고용 시대의 프리터 세대를 호명한다. 대표적 변혁 이데올로기였던 맑스주의가 포스트모던한 정치·경제·사회의 변용 속에서 힘을 잃어가자, ‘다중’(multitude), ‘프레카리아트’(불안정 고용 노동자), ‘코그니타리아트’(인지노동자) 등 자본 권력의 새로운 대항 주체를 지시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했다. 저자는 조금씩 다른 의미망을 갖는 이 용어들이 일본의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 양태를 ‘프리터’에서 찾은 것이다. 본래 정규 직장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조어인 ‘프리터’(free+arbeit)는, 포스트모던의 변화한 산업구조(63쪽 이하,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으로’)에서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재편하는 일반적 조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거 노동운동에서는 산업화가 추동한 노동계급의 형성을 역이용하는 계급투쟁이 핵심 아이디어였듯, 프리터적인 것이 일반화된 시대에도 자본 권력이 추동한 변화에서 양면성을 찾아 저항의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 책에서 독자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 권력이 강조하는 유연성과 자발성, 소통 능력을 멋지게 역이용한 저항적 실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일본이라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에서 빈곤 문제까지를 아우르는 의미에서의) ‘프리터적인 것’이 등장해 확산된 과정을 탐사하는 이 책은, 동시에 프리터 세대가 속속 개발해 낸 저항의 양식들로 엮이는 새로운 저항의 계보가 된다.

무엇이 ‘스트리트의 사상’인가?

이번 한국어판 『스트리트의 사상』 출간을 맞아 저자가 보내온 「한국어판 서문」에는 지난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원전 반대운동의 소묘가 담겨 있다. 얼핏 퍼레이드를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알록달록한 색으로 치장된 피켓이나 풍선 따위를 들고 행진하는 가운데로, 음향장비를 실은 트럭(‘사운드카’)이 지나가며 음악 연주나 디제잉을 시작하자 즉석에서 춤판이 벌어진다. ‘사운드데모’라고 불리며 오늘날 프리터 운동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는 이런 시위 문화는, 특유의 축제성으로 도덕주의적 경도를 보였던 기존 시위 문화와 현격히 구분된다. 그렇다면 이 축제성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스트리트의 사상’에의 입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그 재기발랄함으로 급속히 대중의 이목을 끌게 된 프리터 운동은 마쓰모토 하지메(192쪽 이하, ‘가난뱅이의 반란’), 유아사 마코토 등 유명 활동가를 탄생시켰다. 저자 모리 요시타카 역시 이들의 활동을 오늘날 ‘스트리트의 사상’의 전범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대중매체에 의해 소비되는 방식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매스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의 현저한 기능 중 하나가 리얼리티의 전달이 아니라 리얼리티의 소거”라는 문제의식의 발현이다(210쪽). 사실 오랜 기간 우경화 일변도인 일본 사회이지만, 대중의 정치적 감수성을 뒤흔드는 사건은 산발적으로나마 계속 있어 왔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들이 종종 현실 변혁의 계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회적 이벤트로 그쳤던 것은, 사건이 정치 지형에서 갑자기 돌출해 나온 ‘점’(點)으로서 파악될 뿐, 보다 긴 연원을 갖고서 이어져 온 ‘선’(線)으로서의 사상의 한 표현임을 놓치기 때문이다. 가령 08/09년 연말연시에 각종 매체의 보도가 줄이었던 노숙·일용직 노동자 지원활동 ‘새해맞이 파견마을’(촌장 유아사 마코토)은 90년대 중반 신주쿠 요요기 공원에서 시작된 노숙자 지원단체 ‘이노켄’(‘생명과 권리를 쟁취하는 모임’의 약어)에까지 맥이 닿아 있는데, 특히 월동 준비나 식사 제공 활동 등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노하우 없인 불가능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138, 208쪽 이하). ‘스트리트의 사상’은 이렇게 시간과 영역을 횡단하는 선을 그을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운드데모’가 보여 주는 하위문화(sub-culture)와 대항정치의 접합 역시도, 그 맹아는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인디 문화까지 거슬러 올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스트리트의 사상’의 다른 중요한 특징으로, 그것이 사람들을 움직이려는 목적으로 구상된 사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율적 움직임(실천) 속에서 발견해 내는 사상임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리트의 사상가’들은 전통적 의미의 엘리트적 지식인과는 아주 다르다. 물론 언론 등을 통해 특정한 이름이 리더로서 부각되는 일도 있지만, 말이나 글 같은 언어적 실천 못지않게 음악, 영상, 댄스 등 비언어적 실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트리트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이름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수(複數)와 익명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스트리트’, 자본 권력에의 새로운 대항 거점

저자는 ‘스트리트의 사상’을 구성하는 세 개의 축으로 정치(미시적·일상적 사회운동), 문화(대항·하위문화), 사상(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제시한다. 각각의 역사와 원리를 가진 이 세 개의 축이 교차하는 곳이 곧 ‘스트리트’이며, 따라서 스트리트는 단지 시위대가 행진하는 실제 거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스트리트는 프리터,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가 한데 어울려 레이브 파티(rave party; 빠른 템포의 전자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벌이는 파티)를 벌이는 공원일 수 있으며(139쪽 이하, ‘교차점으로서의 요요기 공원’), 예술 창작자들이 박스하우스 주민들과 함께 그들의 주거공간을 예술과 결합시킴으로써 자본 권력에 항의하는 강제퇴거 지구(213쪽 이하, ‘246표현자회의’)일 수도 있고, 시위 정보가 유통되고 자료와 의견을 공유하는 블로그나 SNS 등의 온라인 공간일 수도 있다.

• 대학에서 스트리트로
‘스트리트’가 자본 권력에의 새로운 대항 거점으로 출현한 데에는,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을 교환하는 장(場)이었던 대학과 미디어의 공공성 축소라는 전개가 배경으로 놓인다. 80년대 일본, 거품경기를 배경으로 사회 전반에 ‘포스트모던’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하게 유통되었고, 이는 특히 사상 영역에서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의 수입 열풍을 불러왔다. 이것이 이른바 ‘뉴아카데미즘’이다(54쪽 이하 참조). 국내에도 아사다 아키라나 나카자와 신이치 같은 당시 뉴아카데미즘의 기수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저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들이 중심이 되었던 일련의 움직임에서 저항 담론의 산실이었던 대학의 몰락을 발견한다. 본래 68혁명으로부터 낡은 좌파 이론의 갱신으로서 등장했던 포스트구조주의가 ‘뉴아카데미즘’의 이름으로 일본의 문맥 안에 도입되며 탈정치적 문화산업화했다는 것이다. 68년은 일본에서도 학생운동이 정점에 달한 시기였고, ‘대학 해체’의 슬로건 아래 대학 및 대학에 근간을 둔 공적 지식인들의 권위가 맹렬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68년 학생운동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후, ‘대학 해체’는 거품경기의 붕괴와 함께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친 급속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대항적 정치영역으로서 권위를 인정받던 대학을 기업사회 인력 양성소로 탈바꿈시켰고, 급진성을 희석시키고서 대학 제도에 입성한 ‘뉴아카데미즘’은 인문학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이루어진 ‘대학 해체’가 곧 저항의 소멸을 뜻하는 건 아니며, 오히려 저항이 거점을 바꿔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의 80년대 문화라고 하면 흔히 거품경기가 추동한 소비 지향 문화를 떠올리지만, 그런 지배적 분위기의 ‘아래’, 즉 언더그라운드에서 DiY 정신으로 대표되는 대안적 대항문화(counter-culture)가 싹트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엔 고용 불안정화와 맞물려 음악이나 연극 등 표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표현자가 증가한 것과 같은 시대적 변화가 뒷받침되었다. 실제로 ‘스트리트의 사상가’들 가운데엔 이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인디 문화의 세례를 받아, 그로부터 문화적 자원을 취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대표적으로 래퍼 ECD. 182쪽 이하 참조). 전통적으로 대항담론 생산을 담당해 온 대학의 붕괴,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싹튼 대항적 실천들, 저자는 이 상이한 방향에서의 변화들이 이후 ‘스트리트의 사상’이 출현하기 위한 토양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 자본의 스트리트 VS 자율의 스트리트
저자는 1990년대 중반을 ‘프리터적인’ 삶이 일반화해 ‘오늘날 우리의 기본적인 조건’을 이룬 시기라고 파악한다. 국내적으로는 일본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완성하는 하시모토 내각의 ‘6대 개혁’(재정·사회보장·금융·행정·경제·교육)이 발표되었고, 동아시아에서는 미군의 군비 재편이 이루어졌으며, 글로벌하게는 WTO가 설립되어 전 세계 노동자를 항구적 고용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스트리트의 사상’이 비로소 구체적 형태를 갖추고서 출현한 시기이기도 했다.

80년대부터 진행되어 90년대에 완수된 대학의 사유화·기업화는 새로운 공공영역, 즉 스트리트로서의 공원을 부상시켰다. 예컨대 도쿄 최대의 공원인 요요기 공원에서는 앞서 언급한 ‘새해맞이 파견마을’의 전신(前身), ‘이노켄’이 출현했다. 또 DJ인 세이노 에이이치는 요요기 공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자, 젊은이들이 어울려 춤추는 무료 레이브 파티를 기획해 일본에 레이브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이때의 참여자들은 이후 2003년 이라크 반대시위에 결합해 ‘사운드데모’ 형식을 고안해 내는 데도 기여했다고 한다. 여기서 요요기 공원이라는 ‘스트리트’를 통해 90년대와 2000년대가, 반빈곤부터 반전까지의 정치적 주제가 접속되는 것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137쪽 이하).

또한 대학 해체 이후 대표적인 공공성의 보루로 떠오른 곳이 공원인 만큼, 가장 생생한 ‘스트리트의 사상’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곳도 ‘스트리트’로서의 공원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2008년 여름, 스포츠메이커 나이키에 명명권을 판매하는 것을 상정한 시부야의 미야시타 공원 유료화 계획이 보도되자 ‘우리 모두의 미야시타 공원을 나이키화 계획으로부터 지키는 모임’이 발족되어 공원 사유화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미야시타 공원은 시부야의 몇 안 되는 공공영역으로, 근방에서 집회가 열릴 때 거점이 되는 장소이자 불황 속에서 살 곳을 잃은 노숙자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저자는 특히 공원 명명권의 구매자로 나이키가 등장했다는 사실의 상징성에 주목하길 요구한다. “스포츠 CM을 통해 이른바 ‘스트리트 감각’을 재빨리 패션 속에 거둬 넣”음으로써 거리의 생생한 감각을 소비하기 쉬운 상품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대표적 기업이 나이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야시타 공원은 오늘날 ‘스트리트’를 둘러싸고 생활자들의 자율과 소비지향적 문화자본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으로 부각된다.

거리에서 거리로 이어지는 글로컬 저항사상

한국에서도 2000년대에 출현한 촛불 시위가 시위대 구성의 다원성이나 탈권위·탈이데올로기적 성격, 건강권이라는 미시적 주제와 강대국에 대한 정치적 종속이라는 거시적 주제의 교차 등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희망버스를 통해 대중운동이 노동 이슈와 만나는 장면을 연출했고, 이런 과정 속에서 모바일·SNS 기술이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도시정비계획에 의해 철거 위기에 몰렸던 명동의 카페 마리, 홍대의 두리반 칼국수에서는 시낭송이나 인디밴드 공연이 열리는 등 사상·문화·정치가 교차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운동이 점점 더 선명한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는 것도 관찰된다.

‘스트리트의 사상’은 글로벌한 범위로 이루어진 자본 권력의 변용과 팽창이, 일본이라는 로컬의 구체적 현실과 교직하는 가운데 출현한 글로컬(global+local) 저항사상이다. 특히 일본이라는 로컬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고도의 포스트모던적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특수성을 갖고 있어, 그 표현 형식이 다른 로컬에서도 똑같이 나타날 것이라고 추측하는 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그런 글로벌과 로컬의 긴장 관계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이 제시하는 사례와 자기 주변에서 발견되는 사건들이 얼마나 유사하고 또 다른지를 단순 대조해 보는 데서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실천의 사상인 ‘스트리트의 사상’을 다시금 이론의 사상으로 환원시켜버리는 일이 될 것이며, 또 거리에서 발견된 생생한 실천들을 ‘점’적인 수준에 가두는 일이 될 것이다. 점들을 선으로 잇는 실천 속에서 떠오르는 게 ‘스트리트의 사상’임을 기억하며 지금 여기의 로컬로부터 출발하는 선을 새롭게 이어 보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일례로 도시교통계획으로 폐쇄될 예정이었던 홍대 앞 서교지하보도를 대안적 문화공간으로 바꿔 내는 데 일조한 한받(자립음악생산자조합원)은 마리와 두리반에서 공연하며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인디 뮤지션이다. 그가 도시교통계획 때문에 지하보도가 폐쇄되는 것을 보며 “시민들의 자율적인 공간을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고 말할 때(『주간 경향』 1000호, 「[특집] "대안미래 일구는 사람들" 문화예술: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음악 유통 꿈꾼다」 참조), 그 인식은 이 로컬에서 출발하는 ‘스트리트의 사상’을 예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곳에서 출발하는 ‘선’은 어디로 뻗어 나갈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품고서 읽어 나갈 때, 『스트리트의 사상』은 무수한 가능성의 도구상자로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은이/옮긴이 소개 펼치기




2013/01/15 11:33 2013/01/1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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