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을 버리고 논어·맹자의 길을 추구한 일본 유학!!
 ― 이토 진사이의 ‘고의학’(古義學) 대표서 『동자문』(童子問) 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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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문』(童子問)
시리즈명 : 이토 진사이 선집 1
이토 진사이(伊藤仁齊) 지음/ 최경열 옮김
인문 고전|신국판(150×220mm)|520쪽|23,000원
2013년 1월 25일 발행|ISBN : 978-89-7682-398-4 94150, 세트 978-89-7682-397-7

『동자문』(童子問)은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가 쓰고, 그의 사후 1707년에 그의 아들 도가이가 편찬한 ‘유학의 길(道)’에 관한 문답서이다. 이토 진사이는 도쿠가와 막부의 관학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던 주자학을 비판하면서, 주자의 주석을 배제하고 직접 『논어』, 『맹자』의 본문을 해독해서 성인의 원뜻을 구하자고 주장한 ‘고의학’(古義學)의 창시자로 이후 일본 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동자문』은 고의학의 종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이토 진사이의 대표 저서이자 일본 유학의 고전으로, 『논어』와 『맹자』,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 인(仁), 효(孝), 충(忠), 왕도(王道) 등의 유학 개념, 이학(理學)과 노불(老佛) 비판 등등에 관해 동자(어린아이)가 묻고 스승이 대답하며 그 뜻을 밝혀주고 있다.


조선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있었다면 일본에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가 있었다. 이 둘은 주자학이 강력한 이념으로 작용하던 시대에 이를 비판하거나 창조적으로 혁신하고자 노력한 유학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일본이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여 계승했지만 이토 진사이에 이르러 주자학을 버리고 『논어』의 참뜻을 이해하고자 시도했고, 거꾸로 조선의 다산은 이를 통해 유학에 관한 새로운 영감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근세 유학의 중요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이토 진사이의 저서를 국내에 처음으로 완역하여 선을 보인다(이 책 『동자문』 외에 그의 주요 저서인 『논어고의』, 『맹자고의』, 『어맹자의』 등을 ‘이토 진사이 선집’으로 구성해 2015년까지 완역하여 펴낼 예정이다).
『동자문』(童子問)은 이토 진사이 사후 2년 뒤인 1707년에 그의 아들 도가이가 편찬한 ‘유학의 길(道)’에 관한 문답서이다. 『논어』와 『맹자』,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 인(仁), 효(孝), 충(忠), 왕도(王道) 등의 유학 개념, 이학(理學)과 노불(老佛) 비판 등등에 관해 동자(어린아이)가 묻고 스승이 대답하며 그 뜻을 밝혀주는 책이다. 여기서 문답의 핵심은 『논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주자학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관학으로 지정될 정도로 위세를 확장하고 있긴 했지만, 이토 진사이가 보기에 주자학은 초월적인 리(理)를 강조하여 인간의 자연스런 관계 형성과 내면의 욕망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현실과 괴리된 주자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맹의 말을 직접 보고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토 진사이는 공자와 『논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 알기 어렵고 행하기 어려우며 굉장하고 광대해 살펴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은 모두 없애 버리고,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우며 영원히 바뀌지 않는 진리를 세워 백성들의 삶의 표준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를 제자들에게 전해 주시고 후세에 알려 주셨지. 그러므로 『논어』 한 권은 실상 가장 지극한, 우주 제일의 책인 것이다.”(『동자문』 상권 5장) 주자의 주석을 배제하고 직접 『논어』, 『맹자』의 본문을 해독해서 성인의 원뜻을 구하자는 진사이의 이런 유학 사상을 ‘고의학’(古義學)이라 부른다. 『동자문』은 고의학의 종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이토 진사이의 대표 저서이자 일본 유학의 고전이다.

일본 사상사의 변곡점, 이토 진사이

이토 진사이는 일본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자학의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 유학을 다른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 일본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주자학을 통치의 이념으로 삼았고,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 야마자키 안사이(山岐闇齎 1619~1682) 등의 걸출한 주자학자를 배출해 내기도 했다. 교토에서 꽤 상층에 속하는 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이토 진사이 역시 11세 때 『대학』을 읽고 감명을 받아 주자학에 뜻을 두었다.
그러나 그는 현실과 거리가 먼 고원한 논의에 의문을 품고 불교와 도가의 학문에도 기웃거리다가 종국에는 유학의 가르침을 찾아 나선다. 즉, 『논어』와 『맹자』의 본문을 자세히 읽고 이곳에 있는 내용만이 성인의 원뜻을 전달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 뒤 36세 때 교토에 고의당(古義堂)이라는 강습소를 열고 성인의 학문 연구와 유학의 보급에 힘쓰게 된다.
이토 진사이의 이러한 탈-주자학적인 행보와 사유는 일본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일상적인 관계에 성인의 도가 있다는 발상은, 나아가 정치적인 문맥에서 발전되어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후세에 남겨 준 것이다. 그 결과, 예컨대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의 고학(古學)은 정치적 측면(공적 세계)을 중시해 예악형정과 제도문물을 통해 국가를 다스리는 도를 추구했고, 더 나아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일본 중심의 국학(國學)을 진흥하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일본 사상사의 측면에서 이토 진사이는 ‘유학의 일본화’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주자학을 넘어선 복고 유학, 고의학

『동자문』은 송대의 주석을 버리고 『논어』와 『맹자』 원문을 숙독하고 계속 완미하면 스스로 터득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을 논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송대 유학에 이르러 왜곡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본래의 가르침이란 이렇다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예컨대, 주자학에서 말하는 리(理)는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리로서 기(氣) 혹은 사물 이전에 리가 먼저 있고, 리가 없으면 사물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토 진사이가 보기에 리는 그저 ‘기 안에 있는 조리’에 불과할 뿐 초월성이나 근원성을 담지하지는 않는다며,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비판한다.
더구나 이런 리 중심의 세계관이 현실의 문맥으로 확장되었을 때에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과 관계를 억압하고 지나치게 엄숙한 도덕만이 강조되어 일용에 필수적인 도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주자학이 실용적 측면 내지는 윤리적 가치를 결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보기에 주자학은 ‘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그 폐단이 작지 않다. 이토 진사이는 “모든 일을 오로지 리에 의지해 결단하면 잔인하고 각박한 마음이 많아지고, 관대하고 인후한 마음은 적어지지. 위의 덕(德)이 박절하면 아래에는 반드시 상처를 입어 사람들도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중권 65장)라며 ‘리’에 대한 편협한 강조를 경계한다.
이에 비해 이 책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는 성인, 즉 공자와 맹자의 말씀이다. 공자가 한 말과 그가 주목한 일이 고의학이 추구하는 학문적·윤리적 가치를 결정한다. 예컨대, 한때 주자학에 심취했던 이토 진사이의 호가 교사이(敬齋)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주자학에서는 경(敬) 공부를 강조하지만, 『동자문』에서는 이를 비판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서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된 본성을 밝게 드러내도록 하는 이런 경 공부는 공자의 관심사와는 멀다는 것이다. 공부에는 여러 가지 방도가 있는데, 마치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여러 방법과도 같다, 그런데 경만을 위주로 삼는 것은 단방에 온갖 병을 다스리려는 것과 같아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동자문』은 공자와 맹자의 올바른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동자에게 전해주는 일상적 윤리로서의 유학, 『동자문』
- 일상일용의 강조

『동자문』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고원한 논의가 아니라 비천한 일상생활에 쓸모가 있는 실질적인 덕성이다. 일례로 인의예지를 강조하는 방식을 보자면, 그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를 엮어 주는 바람직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도(道)는 고원한 것이 아니다. “도는 대지와 같은 것이다. 천하에 땅보다 낮은 것이 없고, 사람이 밟는 것은 땅 아닌 게 없어 땅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상권 24장) 이토 진사이에게 도란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대우하며 처자 사이의 정이 좋고 뜻이 맞으며 형제간에 화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유학의 참된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동자’를 등장시킨 것도 성인의 도가 대단히 형이상학적이고 알기 어려운 논의가 아니라 일상에 있는 친근하고 가까운 것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 사랑으로서의 인(仁)

현대 유학에서 인(仁)은 ‘인함’, ‘어질다’, ‘사람다움’ 등 다양한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토 진사이는 인을 사랑(愛)으로 해석한다. “인은 사랑에서 그친다. 사랑은 실질적인 덕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 덕을 볼 수 없다.”(상권 45장) 예컨대, 오륜오상이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외적 규범이라면 사람은 위선에 빠지기 쉬우며, 자칫 남에게 잔인하고 각박하며 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랑이란 곧 참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오륜오상의 도덕도 사랑에서 나오지 않으면 거짓일 뿐이다. 성인 공자의 문하에서 인을 덕의 으뜸으로 삼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이토 진사이는 주장한다.
그에게 인은 인간의 참된 덕성에 다름 아니며, 성인의 도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은 박애와도 통한다. 여기에 가지고 있으면서 저기에서 행하지 않는 것은 인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베풀면서 열 사람에게 미치지 않으면 인이 아니다. 마음은 사랑과 떨어지지 않고 사랑은 마음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큰 덕이 없고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이 있어야만 ‘완성된 덕으로서의 인’을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동자문』에서 말하는 성인의 도는 사랑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고 인의로써 세상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진사이의 사상 내용은 고의학의 보편적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 무가 권력에 대한 긍정이나 국가주의적 색채가 없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 * *
일본에 유학 전통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답할 만한 것이 많지는 않으나, 『동자문』을 비롯한 이토 진사이의 저서들은 다른 동아시아인들이 읽어도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이 그의 글을 읽고선 일본이 군사력에만 의존해 이웃나라를 약탈하는 미개한 나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유학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여 예의를 알게 된 개명된 나라로 여겼다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토 진사이의 『동자문』은 동아시아 지성사·유학사에서 함께 거론되어야 할 중요한 정신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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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8 08:38 2013/01/2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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