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의 시대, 어떻게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인가!!
- 자유주의자의 눈으로 분석한 한국정치의 현실과 새로운 민주주의의 비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치가 떠난 자리』
김만권 지음
사회과학/한국정치비평|신국판 변형(145×210mm)|280쪽|13,000원
발행일 : 2013년 2월 25일|ISBN : 978-89-7682-770-8 03300

『정치가 떠난 자리』는 민주적 가치가 홀대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고 정치가 시민들의 손을 떠나 다시 제도권 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남은 것은 절망과 환멸뿐인 듯 보이는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정치와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현재 뉴욕 뉴스쿨 정치학과에서 정치이론 및 법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자유주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해온 김만권은 이 책에서 다섯 가지 ‘상실’(민주주의의 상실, 자유주의의 상실, 진보의 상실, 소통의 상실, 유토피아의 상실)로 한국정치를 진단하면서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는 보수세력뿐만 아니라 그 앞에서 무력하거나 혹은 스스로가 민주적 원칙을 저버리고 있는 진보세력의 모습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총체적인 ‘상실’의 현실을 극복하여,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확립하고 그것을 보장할 바람직한 민주정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들(the well-informed public)이 정치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민주적 가치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확장하고,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가지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이런 활동들이 제도권 정치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일들을 누군가의 시혜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2012년 18대 대선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 가치’가 부차적인 것이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권력기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권력의 언론장악 등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간 동안 민주적 가치들을 둘러싼 수없는 잡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유권자들은 다시 보수세력에게 표를 던졌다. 게다가 그 세력의 대표가 군부권위주의 정권의 생물학적·정치적 계승자인 박근혜 후보였다는 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치열했던 이번 대선이 끝난 후, 진보진영을 지지했던 많은 이들이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실망과 환멸로 빠져들었다. 이 책 『정치가 떠난 자리』는 이렇게 민주적 가치가 홀대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고 정치가 시민들의 손을 떠나 다시 제도권 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남은 것은 절망과 환멸뿐인 듯 보이는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정치와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현재 뉴욕 뉴스쿨 정치학과에서 정치이론 및 법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자유주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해온 김만권이 이 책에서 주로 비평하고자 하는 것은 보수세력의 비민주성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섯 가지 ‘상실’(민주주의의 상실, 자유주의의 상실, 진보의 상실, 소통의 상실, 유토피아의 상실)로 한국정치를 진단하면서 주로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오히려 보수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강한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못한, 혹은 그러한 노력을 등한시한 진보세력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 촛불집회를 둘러싼 진보적 지식인들의 갑론을박, 통합진보당 사태, 18대 대선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진보진영의 논의들을 살피면서, 어떻게 진보진영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이 외면을 받았는지, 자유주의가 뭉뚱그려져 매도되었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어떻게 자유로운 시민들이 만드는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이 상실되었는지를 진단하고 있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역행시키는 보수세력과 그 앞에서 무력하거나 혹은 스스로가 민주적 원칙을 저버리고 있는 진보세력의 모습을 진단하면서,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확립하고 그것을 보장할 바람직한 민주정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들(the well-informed public)이 정치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정당정치에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거나(촛불집회에 대한 정당주의자들의 비판), 한두 명의 정치지도자에게 의존하는 것(안철수 현상)은 설령 그것이 바람직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인민을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것이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민주적 가치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확장하고,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가지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이런 활동들이 제도권 정치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일들을 누군가의 시혜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도망자 민주주의’와 진보의 재구성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이 책은 지금의 현실이 끝이기를, 그리고 이 책이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에필로그’에서 시작해 ‘프롤로그’로 끝맺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망자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와 ‘자유로운 시민게릴라’라는 개념을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두 개의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 ‘도망자 민주주의’는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셸든 월린(Sheldon Wolin)이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내보인 표현으로, 오늘날 민주정체에서 시민의 참여란 혁명 혹은 시민적 저항이라는 일시적인 순간에만 존재할 뿐이고, 이런 모습은 정치가 일상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재빨리 모습을 감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이론가들이나 철학자들은 이렇게 민주주의가 도망쳐 버린 자리에 남은 시민들의 모습을, 자신이 뽑은 정치엘리트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거나, 때로는 정치 자체에 무관심한 ‘구경꾼’으로 그려 낸다.

시민들을 이렇게 바라보는 시선이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일부 대항민주주의자들이 2008년 촛불집회에 비판을 가했던 일을 들 수 있다. 정당정치를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촛불집회라는 참여 열망의 분출을 현실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무의미한 것으로 폄훼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것으로 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자들이 참여민주주의의 분출로부터 ‘도망치는’ 기형적인 모습을 지은이는 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Elmer Eric Schattschneider)의 ‘책임정당모델’과 버나드 마냉(Bernard Manin)의 ‘청중민주주의’ 개념을 끌어와 설명하고 있다.

샤츠슈나이더의 ‘책임정당모델’은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세력들이 이론적으로 의지하고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모델로서, 유권자들의 정당에 대한 충성을 전제로 정당이 유권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한편 마냉의 ‘청중민주주의’ 모델은 미디어를 통한 의사소통과 이미지 관리에 능한 정치엘리트들의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통치로, 2012년 한국정치를 뒤흔들었던 ‘안철수 현상’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는 한국의 진보적 정당주의자들이 이 두 모델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대항세력이 이끄는 민주주의 모델이 엘리트주의에 서 있는 현실, 참여의 욕망을 드러내는 시민들을 향해 직접적인 참여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고 에둘러 변명하는 현실이 ‘민주주의의 상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의 진보정치 내에서 ‘민주주의의 상실’을, 그리고 ‘진보의 상실’을 더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통합진보당 내에서 부정경선 시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였다. 진보의 와해를 불러 온 폭력사태의 아수라장속에서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는 진보의 정체성을 지키기보다는 자기 당파의 이익을 지키는 데 몰두했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투명성과 민주성을 벗어던졌던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현상의 한 원인이 진보세력이 여전히 운동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운동세력이라면 장점이 되었을 수도 있는 구성원 간의 강력한 결속력과 깊고 넓은 감성적인 유대는, 정치세력으로 도약하는 데에는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운동보다 더 큰 틀이 필요하고 신념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시민게릴라가 만드는 새로운 민주주의

당연하게도, 이러한 ‘정치의 상실’의 모습들은 제도권 정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부터 시작된 급속한 신자유주의적 사회 개편과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 사회에도 ‘가치다원주의’를 확산시켰는데, 우리 사회에서 ‘가치다원주의’는 ‘신념의 사유화’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신념의 사유화’는 두 가지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첫째는 ‘서로의 신념을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는 발상’이고, 둘째는 첫째와 아주 상반되는 것으로, 타자의 신념을 비판할 때 오로지 나만이 가진 신념을 기준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의 사유화’의 두 경향이 시민들 간의 ‘소통의 상실’을 낳고 있으며, 이런 소통의 상실이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정치로부터의 철회를,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분파주의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권 정치와 시민사회를 망라하는 이러한 ‘정치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은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유로운 시민게릴라’의 형성이다. 지은이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해방된 관객’이라는 논의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 ‘자유로운 시민게릴라’의 상을 그리고 있다. 랑시에르는 구경꾼을 무지하고 수동적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인식 자체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구경꾼을 ‘스스로 바라본 것을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런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비판적 존재’로 인식할 때, 시민들이 스스로 해방된 관객으로 변모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랑시에르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 사회가 상실한 ‘정치’를 되찾을 주체로 ‘자유로운 시민게릴라’를 제시하고 있다.

자유로운 시민게릴라들은 개개인이 “독자적인 정치적 존재로서 자신과 공동체와 관련된 사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민주적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며 사안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연대하며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또한 “정치적 자유가 이제 안정된 민주정체의 필수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를 확장하는 시민게릴라’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자유로운 시민게릴라’의 모습을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와 희망버스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2011년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나꼼수 열풍’은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디지털 민주주의의 가능성으로 보여 주었으며, 제도권 정치에 시민들이 엘리트들의 정치적 조작을 무심코 받아들이는 무지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 주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시민게릴라들이 중요하게 참조해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점차 ‘나꼼수’의 멤버들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고 이들에 대한 무비판적인 지지자들이 생겨나면서 ‘나꼼수’의 ‘자유를 확장하는’ 효과는 제약을 받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시민들이 특정한 지도적 인물이나 단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수평적인 정치적 주체로 활약했다는 점에서 ‘나꼼수’의 팬들보다는 희망버스의 참여자들이 ‘자유로운 시민게릴라’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들의 활동 중심에는 지도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행위자로서 스스로의 선택이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다른 모든 구성원들을 평등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존재로 대하는 자세, 다른 이들에게 가해지는 잔인함을 견디지 못하는 감성,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과 협력하는 일을 자신에 대한 배려로 공감하는 합리성,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여 움직일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세, 감성, 합리성, 용기를 지닌 시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동료 시민들과 협력하고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지어 나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역행과 정치의 상실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적 현실 속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개인들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서로 다름’이 함께 공유하거나 협력할 수 있는 공통의 공적 현실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는 바로 이런, 각자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적 현실을 짓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공적 현실 짓기의 상실을 목격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정치가 이런 공적 현실을 짓는 모든 노력인 이상 이를 ‘정치의 상실’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_ 20~21쪽.

사실 공정한 절차가 반드시 공정한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를 모아 최대한 공정한 절차를 만든다면, 그 절차의 과정 자체가 반드시 옳아서 혹은 결과가 항상 옳아서가 아니라 관련 당사자들이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어서 공정성을 담보하게 될 것이라는 롤스의 지혜는 절차주의와 연계해 발달한 민주주의의 정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케이크 하나를 자른다고 상상해 보자. 롤스는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이 맨 마지막에 고르도록 하면 케이크를 최대한 공정하게 자를 것이라 말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해석하면,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이 혜택을 마지막에 누리도록 만든다면 제도가 최대한 공정하게 만들어질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근대민주주의의 진화가 이런 절차화와 맞물려 있었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문재인 후보의 슬로건,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바로 이런 공정한 기회와 절차가 공정한 결과를 만든다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신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_ 33쪽.

한편, 마냉의 청중민주주의 모델은 미디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능숙한 새로운 엘리트들, 다시 말해 이미지 관리에 탁월한 미디어 전문가들이 된 정치엘리트들의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통치를 말한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2012년 한국정치를 뒤흔들었던 안철수 현상을 떠올려 보면 된다. 안철수 씨는 성공한 사업가, 청년 멘토, 도덕적이고 참신한 인물이란 탁월한 미디어 이미지를 통해 기존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며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이들, 특히 청년층에게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 잘 관리된 미디어 이미지로 정당의 뒷받침 없이도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 모델은, 미디어 시대의 유권자들이 정당에 기반을 두고 투표하는 경향을 벗어나 인물을 두고 투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_ 42쪽.

겉으로는 그 누구도 평범한 시민들이 비판적 모습을 갖추고 정치의 전면에 참여하는 일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부 영향력 있는 대항민주세력이 시민들을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보는 관점에 입각한 모델에 민주주의의 기반을 두고 그것을 은연중에 지지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선거·절차·제도’ 속에만 가두는, 민주적 상상력의 빈곤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를 지지한다고 외치면서도 실질적으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일은 은연중에 꺼려하는, 이중적 모순에 갇힌 우리 민주주의의 자화상이다. _ 61쪽.

반신자유주의가 진보의 정체성이라는 주장은 한때 그리고 지금도 유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진보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다. …… 이런 규정이 진보의 정체성을 계급 기반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상당히 모호한 가치 기반으로 옮겨 놓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식의 단일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기준으로 삼는 일은 개념적으로 오랫동안 다져져 온 진보 정체성의 확고한 기반인 계급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17대 대통령 후보로서 진보진영과 연정까지 고려됐던 자본가 계급의 문국현 후보가 대표적인 예다. 문국현 후보를 두고 자신 있게 진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이런 방식의 규정은 진보의 외연을 확장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진보가 오랜 동안 강조해 왔던 계급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올바른 규정인지는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_ 104~105쪽.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아래서 이루어진 인권의 향상, 언론의 자유 보장, 여성 권리의 향상 등과 같은 정치에서 만들어진 커다란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런 정치적 자유는 예전부터 당연히 보장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이 10년이 만든 정치적 자유의 정도 차이는 막대한 것이며, 이 10년 외에 이런 정치적 자유가 단 한 순간도 당연히 보장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자유주의자들은 다 똑은 신자유주의자들이다’라는 비판 칼럼을 쓴 필자도 단 한 번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알 일이다. 경제정책이 본질적으로 똑같으면 정치적으로도 다 똑같다는 식의 논리는 경제의 우선성이 정치를 바라보는 눈을 가려 버린 일부 진보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_ 212쪽.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떠나, 시민사회가 자유주의자들과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을 믿는 이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무대인 이유는 시민사회야말로 지금껏 강조해 온 정치적 자유에 근거한 가치의 다양성을 실험하고 차이의 인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도권정치와 행정보다는 시민사회야말로 각 개인이 가치의 다양성을 창조하고 실험하는 주체가 되는 데 더 바람직한 환경인데, 예를 들어 정당정치는 정당의 의사가 개별 구성원의 활동을 제한하고 규제하기 때문이다. 제도권정치의 또 한 축을 이루는 정부 관료들의 자율성에 대한 제한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_ 216쪽.


목차 보기


지은이 소개 보기



2013/02/26 11:13 2013/02/26 11:13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789

  1. Subject: climbing wall

    Tracked from climbing wall 2014/05/26 18:14  삭제

    Some of such are snow tires which are too badly worn for snow use, however have plenty of tread for usage on roads within the hotter countries where these are recycled as used tires. While some playground planners desire to range from the traditional s...

  2. Subject: halloween iphone 4s case

    Tracked from halloween iphone 4s case 2014/09/13 06:10  삭제

    그린비출판사 :: ‘역행’의 시대, 어떻게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인가!!-『정치가 떠난 자리』책 소개

  3. Subject: animal videos

    Tracked from animal videos 2014/10/18 09:11  삭제

    그린비출판사 :: ‘역행’의 시대, 어떻게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인가!!-『정치가 떠난 자리』책 소개

  4. Subject: African Safari videos

    Tracked from African Safari videos 2014/10/21 05:34  삭제

    그린비출판사 :: ‘역행’의 시대, 어떻게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인가!!-『정치가 떠난 자리』책 소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