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복잡한 슈퍼히어로 캐릭터, 철학과 접속하다!
- 철학과 배트맨은 서로에 관해 무엇을 알려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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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철학: 영혼의 다크 나이트』
마크 D. 화이트(Mark D. White), 로버트 아프(Robert Arp) 엮음
남지민, 신희승, 이해림, 차유진 옮김| 김민훈 감수인문‧철학
신국판(152×224mm)|360쪽|17,000원|2013년 3월 10일 발행|ISBN: 978-89-7682-399-1 03100

배트맨은 가장 유명한 동시에 가장 복잡한 만화 캐릭터 중 하나이다.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배트맨은 한 명의 인간이다. 고담 시 범죄를 소탕하는 배트맨의 모험에는 언제나 결정과 딜레마가 뒤따르며, 이는 철학적 해명의 주제가 된다. 이 책은 ‘배트맨은 왜 조커를 죽이지 않을까’, ‘로빈을 만드는 일은 옳은 일일까’, ‘왜 배트맨이 슈퍼맨보다 더 나은 슈퍼히어로일까’ 등의 흥미롭고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여러 철학 사상을 이용해 답하는 20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철학의 문제들에 조금 더 친숙해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길잡이 역할도 해준다. 배트맨 이야기를 사례 삼아 윤리학, 존재론, 논리학 등 철학 분야의 주요 이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 조커 한 명만 죽이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도 배트맨은 왜 조커를 죽이지 않을까?
‣ 어린 소년을 ‘로빈’으로 만들어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것은 정의로운 일일까?
‣ 배트맨과 슈퍼맨 중 누가 더 나은 슈퍼히어로일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 조커는 정신병자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조커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 알프레드는 왜 집사 일에 만족하며 사는 걸까? 그는 어떤 종류의 기사(knight)일까?

1989년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아 처음 개봉한 이래 20년 이상 여러 감독과 배우를 거치며 진화한 영화 <배트맨>. 팀 버튼에서 조엘 슈마허를 거쳐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에 이르러 <배트맨>은 영화사상 가장 대중적이면서 컬트적인 시리즈로 자리 잡았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 영화 <배트맨>은 ‘배트맨’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1939년 『탐정 만화』(Detective Comics) 37호에 배트맨 캐릭터가 처음 등장한 이래, 만화 『배트맨』은 DC 코믹스의 대표작으로서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번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발간되고 있다(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배트맨』 만화의 대표작들이 번역 출간되고 있다). 또 만화의 성공에 힘입어 <배트맨>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실사 TV 시리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배트맨은 슈퍼맨과 더불어 가장 사랑받는 만화 캐릭터이며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상징이다. 상황이 이 정도이니 배트맨을 다루는 철학책 한 권 나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배트맨은 다른 슈퍼히어로에게는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이해하려면 철학이 필요하다! 그린비출판사에서 펴낸 『배트맨과 철학: 영혼의 다크 나이트』(Batman and Philosophy: The Dark Knight of the Soul)는 바로 이 독특함을 둘러싸고 있는 수수께끼들을 풀어 보려는 철학적 모험들을 담은 책이다. 그렇다면 배트맨의 무엇이 그렇게 독특한가? 배트맨의 미스터리는 그가 한 명의 인간이라는 데서 시작된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브루스 웨인은 특별한 힘을 부여받은 초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결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그리고 상속받은 유산의 도움을 받아) 배트맨이 된다. 그는 여타 슈퍼히어로들보다 더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가 내리는 결정들은 철학적 해명의 주제가 된다.
『배트맨과 철학』은 미국 와일리(Wiley) 출판사가 기획한 ‘블랙웰 철학과 대중문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 책이다. 이 시리즈는 철학과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인물을 접속시킨다는 아이디어로 출범했으며, 『사우스파크와 철학』, 『메탈리카와 철학』, 『해리 포터와 철학』, 『스파이더맨과 철학』 등 현재까지 30종 이상이 이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철학을 좀더 재밌게 만들자’라는 시리즈 취지에 따라, 『배트맨과 철학』은 영미권의 소장 철학자들을 ‘탐정’으로 초빙해, 배트맨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철학의 근본 주제들과 이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20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한국어판 『배트맨과 철학』만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옮긴이가 네 명의 고등학생이라는 점이다. 철학을 공부한 감수자와 함께 영어 공부를 하다가 재밌는 영어 책을 읽어 보기로 하면서 고른 것이 『배트맨과 철학』이고, 그 계획이 확장되어 이렇게 한 권의 번역서까지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옮긴이들은 2년여에 걸친 번역 과정을 통해, 번역이 매우 힘든 작업이고 영어 실력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번역이 뜻 깊고 뿌듯한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갈수록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 현실이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 독자가 아니라 저자로서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반가운 모습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획들과 함께 『배트맨과 철학』 출간 역시, 전문 지식이 필요하며 분량도 적지 않은 책을 고등학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번역해 낸 신선한 시도로 기억될 것이다.

배트맨, 철학자 탐정들의 조사 대상이 되다! : 브루스 웨인은 대체 왜 배트맨이 되었을까?

배트맨은 누구인가? 고담 시는 어떤 곳이며 배트맨이 상대하는 악당들은 어떤 인물인가? 무엇보다도 브루스 웨인은 왜 배트맨이 되었는가? 70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작가와 감독이 창조하고 재창조한 배트맨은 웬만한 철학자의 작업보다 더 풍부한 철학 주제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수천 년에 걸쳐 정교한 체계를 갖춘 철학 사상들을 통해 우리는 배트맨의 성격과 모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배트맨이 철학의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철학은 이런 평범함에서 시작된다. 배트맨이 인간이라는 것(비록 그가 백만장자이고, 탁월한 능력들을 지니고 있으며, 집념과 끈기까지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이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배트맨의 본질적인 차이이며, 이 차이가 『배트맨과 철학』이 던지는 질문들의 근간을 이룬다.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배트맨에게는 ‘왜’가 ‘어떻게’보다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놀라운 능력을 얻었다. 반대로 배트맨은 어릴 적에 부모가 살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았고, 부모를 죽인 살인마와 고담 시의 범죄를 소탕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여기서부터 철학적 질문이 시작된다. 엄청난 부자인 브루스 웨인이 자신의 손으로 고담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결정한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할까? 거기에 쓸 돈으로 자선 사업을 벌여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더 좋은 일 아닐까? 배트맨은 조커 한 명을 죽이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도, 살인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조커를 죽이지 않는다. 이런 배트맨의 결정은 철학적으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던 소년을 집으로 데려와 ‘로빈’으로 만들어 정의로운 임무에 합류시키는 것은 얼핏 보면 훌륭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미성년자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폭력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이 책의 글들은 이처럼 배트맨의 결정들에 윤리학적 질문을 던지고, 아리스토텔레스, 제러미 벤담, 임마누엘 칸트,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같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빌려 와 배트맨을 지지하거나 비판한다.
물론 배트맨은 윤리학 외에도 여러 철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배트맨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이냐는 ‘존재론적’ 질문을, 배트맨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느냐는 ‘인식론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또한 정부와 경찰이 있는데도 ‘사적’으로 악을 제거하는 배트맨의 모험이 정당하냐는 ‘정치철학적’ 질문, 배트맨과 슈퍼맨 중 누가 더 훌륭한 슈퍼히어로인지 증명할 수 있느냐는 ‘논리학적’ 질문도 있다. 나아가 배트맨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조커는 그 기행 때문에 종종 정신병자로 여겨진다. 그런데 만약 조커가 정신병자(insane)라면 우리는 조커가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임’이라는 개념은 제정신(sane)을 전제하는데, 조커가 제정신이 아니라면 그가 도덕적 책임을 질 필요도 없지 않을까? 알프레드는 어떤가? 그는 왜 반평생을 배트맨을 보필하는 데 바치며, 집사라는 변변치 않은 직무에 만족하는 걸까? 배트맨이 어둠의 기사(dark knight)라면 알프레드는 어떤 종류의 기사일까?
이렇게 『배트맨과 철학』은 우리가 재밌는 만화‧영화로만 알고 있었던 배트맨의 이야기를 철학 사상에 접속시킨다. 브루스 웨인의 선택, 그가 고수하는 원칙, 다른 캐릭터들의 성격 모두가 철학적 성격을 띠고 있고, 좋은 철학들이 으레 우리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듯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배트맨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철학, 박쥐 복장을 하고 배트모빌에 탑승하다!: 철학의 모범 사례로서 배트맨

여러 철학 이론들은 배트맨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역도 참이다. 배트맨의 이야기들은 갖가지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그리고 여기서 배트맨은 친숙하고도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조커를 죽이지 않겠다는 배트맨의 원칙은 대표적인 윤리학 이론인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대립을 드러내 주는 탁월한 사례다. 배트맨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에 따라 조커를 죽여야 할까, 아니면 ‘살인하지 말라’라는 의무론의 명령을 지켜 조커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그를 죽이지 말아야 할까? 배트맨의 사례는 이 두 이론의 주장 및 장단점을  명확하게 확인시켜 준다. 또한 어린 소년을 로빈으로 만들어 악과 대적시키겠다는 배트맨의 결정은 공리주의로도 의무론으로도 정당화되기 힘들지만, 반대로 이는 최근의 주요 윤리학 사상인 덕 윤리학(virtue ethics)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사례가 된다. 덕 윤리학은 규범적으로 어떤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행위 주체의 성격이나 환경,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로빈을 훈련시키는 이야기는 행위자가 훈련을 통해 미덕(virtue)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덕 윤리학의 강점을 보여 준다.
『배트맨과 철학』은 윤리학뿐 아니라 여러 철학 분과 및 사상을 넘나든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어느 한 범주(예를 들어 게임)에 포함되는 모든 개체가 동일한 ‘하나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같은 범주로 묶이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가족 유사성’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그리고 배트맨이야말로 이 개념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사례다. 배트맨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작가에 의해 여러 번 새롭게 창조되었기에, 각각의 시리즈에 등장하는 배트맨‘들’이 모두 공유하는 본질적인 속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배트맨‘들’은 모두 배트맨이다.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속성 따윈 없지만, 각각의 배트맨들이 ‘유사한’ 속성들을 지니면서 끝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배트맨은 ‘본래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결단’을 강조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범례적으로 실현한 캐릭터다. 배트맨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운명임을 분명하게 자각하며, 자기가 처한 조건에서 타인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결단을 내리며 실존한다. 이처럼 배트맨이 철학적 인물일 수 있는 것은 그가 단순히 슈퍼히어로여서가 아니라, 내면을 지니고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그 자신의 선택을 해나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배트맨은 공리주의와 의무론, 실존주의, 양상 논리학, 도교 사상 등의 주요 개념을 예증해 주는 모범 사례가 된다.
철학은 논증을 통해 원리를 찾아 가는 학문이며, 그러므로 과학과 달리 ‘사고’ 실험이 필요하다. 때로 이런 사고 실험은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에 적절한 사례를 들어 독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풍부한 텍스트를 보유한 대중문화 작품들은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추상적인 철학적 사고 실험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더불어 인류의 지적 유산이 집약된 유수의 철학 사상들은 어떤 작품이나 현상이 담고 있는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해 준다. 『배트맨과 철학』은 철학을 대중문화에, 대중문화를 철학에 접속시키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배트맨 시리즈가 그저 재밌기만 한 오락물이 아님을, 철학이 딱딱하며 우리 삶과는 무관한 고담준론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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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1 09:00 2013/03/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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