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어떻게 영화로 변주되는가
- 각색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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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위의 소설들』
시리즈명 : 사이 시리즈 05
송기정 지음
영화‧문학|신국판 변형(140×210mm)|200쪽|9,800원
2013년 4월 15일 발행|ISBN : 978-89-7682-603-9 03680

소설과 영화라는 두 예술 형식은 독자적인 미학을 통해 발전해 가는 와중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흡수함으로써 지평을 넓혀 왔다. 그 여러 양상 가운데서도 이 책은 ‘각색영화’에 초점을 맞춘다. 1장에서는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와 세 편의 각색영화, 즉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와 로제 바딤의 <위험한 관계>, 이재용의 <스캔들>을 비교 감상함으로써 텍스트가 영상으로 재현되는 방식에 대해 알아본다. 2장에서는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과 자크 리베트의 <누드모델>을 통해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존으로 나아가려는 예술(가)의 욕망을 보여 준다. 3~5장에서는 한국 문단의 거목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모았다. 김기영의 <이어도>, 임권택의 <서편제>, 이창동의 <밀양> 세 편의 영화가 이청준의 문학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재창조했는지를 살핌으로써 ‘좋은 각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설과 영화라는 두 예술 형식은 독자적인 미학을 통해 발전해 가는 와중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흡수함으로써 지평을 넓혀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의 영화화’는 오늘날 만화·게임·뮤지컬 등으로까지 확장된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가 대중화되면서 문학사의 수많은 고전 명작들이 스크린 위로 옮겨졌다. “서사를 필요로 하는 영화에 있어서 스토리와 플롯이 탄탄한 소설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보고와도 같기 때문이다”(6쪽). 고전뿐만이 아니다. 2010년 이후만 보더라도 『완득이』, 『도가니』, 『은교』, 『상실의 시대』, 『파이 이야기』,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등 국내외 유명 소설이 영화화되어 관객들을 만났다. 물론 관객들의 평가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원작을 화면 속에 재현해 내고픈 영화작가들의 욕구는, 원작과의 비교라는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큼 강렬한 것이었나 보다.

『스크린 위의 소설들』은 이렇게 태어난 각색영화들을 원작과 비교하면서 읽어 보려는 시도이다. 텍스트로 서술된 소설이 영상으로 재현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1장에서는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와 그것을 각색한 세 편의 영화, 즉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와 로제 바딤의 <위험한 관계>, 이재용의 <스캔들>을 비교 감상한다. 세 영화의 각기 다른 시공간 배경 속에서 서간체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과 사교계의 방탕함이라는 파격적인 주제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편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과 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자크 리베트의 <누드모델>을 다룬 2장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존으로 나아가려는 예술(가)의 욕망을 보여 준다. 발자크의 소설 자체가 ‘영혼이 있고 피가 흐르는, 화폭 속에 갇히지 않을 불멸의 명작’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는바, 이 모티프를 차용한 <누드모델>은 소재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스크린 속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영화’가 되려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지루할 만치 그대로 보여 주는 등 영화 속 시간과 실제 시간을 최대한 일치시키려 함으로써 상영시간이 네 시간에 육박하는가 하면, 배우들과의 공동 창작을 통해 창작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부에 속한 이 두 개의 장을 통해 독자들은 서술에서 재현으로, 그리고 재현에서 현존으로 이동하는 예술의 꿈을 음미하게 된다.

한편 2부는 한국 문단의 거목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모았다. 김기영의 <이어도>, 임권택의 <서편제>, 이창동의 <밀양>이 그것이다. 웅숭깊은 이청준의 문학세계에서는 주술, 한(恨), 용서 등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추상 개념이 빈번히 등장하는데,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철학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세 감독이 이것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결하면서(혹은 회피하면서) 그것을 스크린 위에 구현해 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충격적이고 강렬한 이미지(김기영), 판소리라는 청각적 재료(임권택), 사실주의적 캐릭터(이창동) 등 각자의 개성을 살린 각색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이 영화들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줄뿐더러 우리에게 ‘좋은 각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한다.

매체의 차이 및 자기 예술 자체의 미학과 적극적으로 대결하지 않는 각색, 기계적인 재현으로는 관객들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앙드레 바쟁의 말처럼 “좋은 각색을 위해서는 영화 고유의 표현 수단인 영상과 소리를 가지고 언어로 표현한 것의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14쪽). 이 책은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활자와 영상 사이에서, 시간성과 공간성 사이에서 스스로의 예술을 향해 분투했던 작가들의 고민과 실천을 통해 ‘사이’가 제약인 공간인 동시에(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의 공간임을 잘 드러내 보여 준다.

문학과 영화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으며, 문학 역시 영화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실험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누보로망은 영화의 표현 기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외적 시점과 내적 시점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전지적 능력을 가진 전통 소설의 화자와 달리, 누보로망 작가들은 문학적 글쓰기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내적 시점을 의도적으로 버리고 카메라의 렌즈가 그러하듯 작가의 시각과 청각에 포착되는 정보들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표현한다. (6쪽)

자신의 책 서문에 『신엘로이즈』 서문의 한 구절을 인용할 만큼 루소의 열렬한 애독자였던 라클로는 『위험한 관계』에서 사랑의 유혹자가 고도의 전략을 통해 거둔 승리를 대중에게 과시함으로써 명성을 높이는 ‘사교계의 유희’로 전락한 리베르티나주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 발몽과 메르테유 부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감각적인 쾌락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육체적 쾌락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대상의 정복을 통해 느끼는 쾌락은 단순한 감각적 쾌락이라기보다는 정복을 통해 자기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자만심에 대한 만족이다. (46쪽)

발자크는 「미지의 걸작」에서 회화, 즉 이미지에 생명과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19세기 사실주의 예술론을 피력한다. 문학은 언어라는 기호의 표현이므로 발자크는 언어로 예술론을 피력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의 「미지의 걸작」은 사건이나 인물들의 행위보다는 관념적인 예술론에 대부분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발자크의 소설이 보여 주듯 19세기 사실주의의 꿈, 즉 그림(이미지)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의 출현은 회화가 행하지 못했던 움직임, 소리, 그리고 시간의 재현을 통해 이미지에 영혼을 불어넣는 꿈이 어쩌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했다. (79쪽)

용서와 화해를 통한 한의 극복이 이청준의 관념론적이고 철학적인 소설의 주제라면, 임권택의 영화는 음악을 영상으로 번역하면서, 영화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지에 판소리를 입힘으로써”, 판소리의 미학을 강조하는 동시에 독창적이고도 탁월한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역설한다. 그 점에서 5분이 넘게 지속된 롱테이크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힐 만하다. 함께하던 약장수들과 불화로 갈라
선 뒤 산 아래 펼쳐진 들판과 나지막한 황톳길에서 벌이는 소리 한판, 즉 넓은 들판을 따라 걸어가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비와 오누이가 벌이는 판소리 장면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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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7 09:00 2013/04/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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