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시대에 꽃핀 경계의 문학
― 혼종사회의 윤리학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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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들의 목소리』
시리즈명 : 사이 시리즈 6권
이선주 지음
사회과학‧문학|신국판 변형(140×210mm)|204쪽|9,800원
2013년 4월 15일 발행|ISBN : 978-89-7682-772-2  03330

전 지구적인 ‘이주’가 국경의 강고한 벽에 균열을 내고 있지만, 이주자들이 ‘시민’의 지위에 다다르기 위한 여정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시민권’에의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시민권을 취득한다 하더라도 타국에서 소수자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배반 또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경계인들의 목소리』는 이들 디아스포라라는 존재에 주목한다. 이들이 직접 쓴 문학작품을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들의 삶과 고민을, 이들이 취하는 전략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 등을 폭넓게 고찰함으로써 ‘시민’이라는 경계선의 의미를 되묻고 우리 자신의 폐쇄성을 성찰할 것을 요청한다.


바야흐로 ‘이주의 시대’다. 사실상 국경이 봉쇄된 이 작은 대한민국 땅에도 10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고,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교민도 700만 명이 넘을 정도니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이동은 실로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아르준 아파두라이가 『고삐 풀린 현대성』에서 현대성의 핵심 인자 중 하나로 꼽은 ‘전 지구적 이주’는 이처럼 국경의 강고한 벽에 균열을 내고 있지만, 이러한 무수한 이동에도 불구하고 이주자들이 ‘시민’의 지위에 다다르기 위한 여정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특정 공동체에 귀속될 수 있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자격 증명인 ‘시민권’에의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시민권을 취득한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타국에서 소수자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배반 또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경계인들의 목소리』는 이러한 이주자의 존재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이주자’ 혹은 ‘비(非)시민’이 아닌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로 포지셔닝한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보다는 “세계화 속에서 가장 주변적 존재로 부각되는 이주자들이 각기 고유한 민족적 속성을 담지하면서 자기와 동병상련하는 다른 소수집단과 어떠한 점에서 서로 지향을 같이할 수 있는지도 함축할 수 있는 용어”를 원했기 때문이다(8쪽). 모국과 이주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으며 문화적 경계 위에 선 이들 디아스포라들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 책은 이들 디아스포라들이 직접 쓴 문학작품을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들의 삶과 고민을, 이들이 취하는 전략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 등을 폭넓게 고찰한다. 2장에서 다루는 존 오카다의 『노노 보이』는 진주만 공습 이후 자국 내 일본인들을 강제 수용/입영시켰던 미국 정부의 부당한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이들 일본인들이 ‘사이에 끼인 존재’로서 겪는 무력감과 내면화되는 폭력을 잘 보여 준다. 가장 성공한 한국계 미국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창래 리의 두 편의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3장)와 『제스처 라이프』(4장)는 무비판적 동화를 통해, 심지어는 패싱(passing, 다른 인종/민족인 척하기)을 통해 거주국 사회에 통합되고자 열망하는 인물들의 좌절과 깨달음을 치밀하게 그려 낸 작품들이다. 특히 『네이티브 스피커』는 뉴욕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계 정치인을 등장시켜 소수민족의 정치화와 초(超)민족적 연대 가능성이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까지 포괄함으로써 작품의 층위를 풍부화한다.

한편 한국계 1.5세 작가 수키 김은 미국 법정에 고용된 한국인 통역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통역사』를 통해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로 번역되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5장). 이 장에서는 문화번역에 대한 레이 초우, 테자위니 니란자나, 호미 바바 등의 문화이론을 끌어들여, 소외되는 존재들을 위한 적극적인 번역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6장에서 다루는 일본계 3세 작가 카렌 테이 야마시타의 『오렌지 회귀선』은 다인종 사회인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다양한 민족과 인종에 속한 7명의 주인공이 번갈아 가며 서술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소설은 멕시코식 민중 서사, 미디어의 작동 양태와 자본의 생리, 탈중심성에 대한 천착 등 다양한 소재를 녹여 혼종사회의 거대한 지도를 그려 낸다. 이 책 『경계인들의 목소리』는 이처럼 디아스포라들의 삶이 가진 다층적인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 내는 동시에, 관련된 사회학적 개념들을 적절히 호출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우리에게 ‘시민’이라는 경계선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인권’을 실현하는 실질적 수단이 되었던 ‘시민권’이 차근차근 확장되어 오는 과정의 이면에는 테두리 바깥 타자들의 배제와 희생이 차폐되어 있었다. 아니, 그 확장 자체가 이 타자들의 치열하고도 집요한 문제 제기에 의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지구화시대의 디아스포라는 ‘역사의 피해자’라는 과거의 일차원적 심상을 넘어 다양한 정체성을 하나의 신체에 체현한 능동적 주체로서 바로 그 시민의 경계에 도전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의 폐쇄성을 성찰하고 삶과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이 책은 주장한다.

시민권은 군주제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그 보편적 가치가 절상한 단어이다. 절대군주 시대에는 귀족만이 자유와 평등과 재산권을 가지는 시민으로 상정되었기 때문에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많은 평민들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였다. 자유와 평등이 현실과는 관계없는 요원한 일이었기 때문에 시민이라는 말도 통용되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일명 ‘인권선언’)은 시민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권리를 공식화하였다. ‘인간이면 시민이어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진 자’가 시민이라는 이해가 파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22~23쪽)

자본주의가 낳은 불균등 발전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적인 디아스포라를 유발하고 이들 디아스포라들의 산포 덕택에 미국은 적시에 다량의 노동력을 공급받아 국가 발전을 이룩한다. 노동력의 갈증을 일단 해소한 다음 미국은 아시아인들을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배척하는 일련의 작업을 실시한다. 자본주의와 디아스포라의 산포,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노동력으로만 인정하고 시민이 될 수 없게 배제하는 역사는 비단 20세기 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는 을이 아닌 갑의 입장에서 한국도 이주노동자들에게 똑같은 패러독스를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45~46쪽)

초국가 시대라 불리는 현재에도 시민과 비시민, 입국과 추방의 경계를 결정짓는 국가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가 부각된다. 주류 사회가 존 강에게 드러내 보인 ‘앙심’은 자신들이 용인하는 선을 넘어오는 소수민족계 사람에 대한 원시적 분노이다. …… 『네이티브 스피커』는 이민자들이 이민 온 초창기에는 고국의 사람들과의 결속에서 힘을 얻는 경향이 있다가 점차 자기 민족의 틀을 벗어나 미국 내의 다른 민족들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으며 함께 뭉쳐서 정치적 힘을 키우려는 움직임을 그리고 있다. 주류 사회의 비열한 응징에 의해 디아스포라들의 정치 세력화가 비록 좌초된 것으로 끝나지만, 이 소설은 민족을 가로질러 공통분모를 찾는 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그것은 이미 시대적 흐름임을 전하고 있다. (84~85쪽)

『통역사』에서 문화번역은 일방통행이다. 주류 문화는 변화하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따라야만 하는 원본으로 인식된다. 주류 사회는 이민자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그것을 이해할 필요성도 잘 느끼지 못한다. 이민자들은 주류 사회에서 제대로 번역되지 못하는데, 심지어 가장 정확하게 번역되어야 할 법정에서도 그렇다. 간이법정에 소환되어 나온 한국 이민자들은 대개 야채가게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법정임금이나 노동시간을 어긴 죄목으로 갑자기 법정에 불려 온 이들은 자기 말을 영어로 통역해 줄 통역사가 꼭 필요하며, 같은 민족인 통역사에게 심정적으로 의지한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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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보기

2013/04/19 16:30 2013/04/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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