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 안준범(성균관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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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관념이 그렇게 스피박의 질문에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것은 되풀이되는 시작이었다. 말할 수 있는 자들로 인정받지 못하는 피지배자들을 무어라 부르든, 그들이 하나의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의 조건과 형식에 대한 질문은 해묵은 것이었으므로. 게다가 굳이 그들을 서발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시도는 이미 그람시가 시작했고, 구하와 그 동료들 역시 막 재개했던 터였기에. 그래도 그것은 엄연히 말 그대로 시작이었으니, 스피박의 질문에 와서야 비로소 역사주의와의 이론적 단절이 비가역적으로 수행되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그대로 서발턴 개념은 그람시가 처음 도입했다. 이탈리아라는 국민국가에 내재하는 탈구의 시공간인 ‘이탈리아 남부’를 사유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으면서 혁명의 (불)가능성을 천착하던 그람시에게는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프롤레타리아트 혹은 계급동맹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을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고, 상하 위계 관계에서 종속적인 하층을 가리키는 단어인 ‘서발턴’을 사용하여 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등등의 계급적 대중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면서 그는 자신의 고민과 모색을 풀어갔다. 그러나 모든 새로움의 생산이 그렇듯, 이 새로움에도 낡음과의 교착이 있었다. 서발턴은 왕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랬듯 여전히 역사의 진보를 구현할 자율적인 의식적 주체이며 도래할 역사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역사주의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서발턴 개념의 시작을 우리는 스피박의 질문에서 보게 된다.

저 견고한 역사주의의 덫에서 벗어나려는 이론적 분투는 스피박과 동시대에 구하에 의해서도 시작된다. 역사에는 연속적이고 동질적인 시간의 발전 방향/의미가 있으며 그러한 방향 의미를 구현하는 자율적인 의식적 주체가 그 역사의 중심이라고 상정하는 역사주의가 정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파산한 국면에서, 장 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에서 발리바르와 랑시에르를 비롯하여 바디우까지 일련의 철학자들이 정치의 새로운 실천을 사유하고자 분투할 무렵, 역사가인 구하도 식민지 인도의 농민반란을 연구하면서 서구적 근대의 이데올로기적 형식인 어떤 정치 개념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다기한 적대들의 복합적 과잉결정의 정치 개념을 사유하기 위해 그람시의 서발턴 개념을 전유하여 서발턴 정치 개념을 정식화함으로써 저 사유의 지평에 선다.

구하를 비판적으로 정정하는 스피박이 자신의 질문에 내놓은 답은,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서발턴의 침묵이란, 숱한 오해와는 달리, 우리가 읽어야할 모종의 말 혹은 말의 징후였다. 혁명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징후. 그래서 그녀의 이 획기적 에세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그녀보다 앞서 침묵과 그 징후를 읽어내려 했던 20세기 유럽의 어떤 전통을 탈유럽의 방향으로 급진화하는 기획의 일환인 것이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의 역간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저 기획이 시작된 장면을 목도하고, 저 침묵 안에서 해방의 직물을 짜온 재현의 바느질들을 접한다. 과연 한국어의 세계 안에서는 어떤 바느질이 이루어질 것인가?
2013/06/07 10:50 2013/06/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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