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는 어제 발행된 "자살은 질병인가?"의 2편입니다.
제가 경험하는 이 한국 사회에서의 자살은 케이 언니가 말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물론 케이 언니가 말한 패턴의 자살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뒤르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을 지켜 주던 규범이 무너졌을 때 자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그의 ‘아노미적 자살’이라는 개념, 또한 개인의 문제처럼 보이는 자살 역시도 사회적 요인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건 다 맞는 말입니다. 전 그런 이야기들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요인들이 있는 것도 분명하긴 한데, 한국 사회에선 경제적인 곤란에 처했을 때 자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아직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떤 가족이 아이들을 태우고 물속으로 돌진해 모두가 사망한 사건입니다. 처음엔 사고인 줄 알았는데, 조사를 해보니 의도적인 자살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런 사건들이 IMF 때 많았던 것도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엔 혼자 살던 할아버지가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자 자살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어른들만 자살하는 게 아닙니다. 곤란을 겪는 사람만 죽는 게 아니죠. 부모가 죽어 버린 아이들, 게다가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라면 그 아이의 미래는 뻔하기에 아이도 같이 죽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케이 언니나 뒤르켐이 말하는 자살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살 관련 보도의 헤드라인들>
한 사회에서의 자살은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이유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시대와의 불화’, ‘유전적 요인도 이유에 해당하겠죠.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자살과 연관되어 있는 가장 큰 사회적 요인은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우선은 시선의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은 연민이나 함께 고민하고 나누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게으름’ ,‘나태함’ 같은 단어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가 가난한 이유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살면 살 수 있다’라는 식이죠. 하지만 이곳의 물가는 정말 그것만으로 살아가기엔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전 가끔 자살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볼 때마다 묻고 싶어집니다. 정말 ‘나태’하고 게을러서 자살한 것일까요? 아니 정말 나태하고 게을렀다면 자살도 못하지 않았을까요?

한 발짝만 더 내딛어 보겠습니다. 자살한 이들은 어쩌면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마저도 박탈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자본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상황에서, 자본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것, 혹은 그 자본의 세계 안에서 퇴출당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꽉 짜여진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본은 산소호흡기처럼, 당장이라도 떼어버리면, 호흡을 정지시키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필수요소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스스로 호흡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런 여유조차도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그러기에 그들에게 ‘자살’은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탈을 쓴 강요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내용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넌 딴소리냐 싶겠지만, 전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한국 사회에서 자살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절하게 리튬이나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자신이 갖고 있는 병을 이겨 낼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릴 땐 그렇게 재미있었던 책이, 지금의 현실과 대비했을 때 씁쓸하게만 느껴졌던 것은 단순히 제 시각의 일그러짐 때문만이었을까요?
저는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가족들의 동반자살, 혹은 아무런 출구가 보이지 않아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자살자들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리고 잠깐 한숨 한 번 쉬고 잊어버리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거기에다, ‘자살할 기운이 있으면 막노동이라도 하지. 게을러서 가난한 거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누군가를 퇴출시키는 문화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자살은 가난한 자들의 당연한 ‘사회적 퇴출’처럼 생각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우리는 우리에게 맞게 자살을 좀더 다른 시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사회복지사를 늘리고 얼마나 가난한가, 부양가족은 있는가를 조사하는 수량적 방법에서 떠나,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들까지 살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돈을 주는 직접적인 방법도 좋겠지만,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조금의 여유를 줄 수 있는 것까지 고려해 준다면 더욱 좋구요.
다소 씁쓸한 기분으로 이번 글을 마치겠습니다.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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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절대 공감합니다..
콧끝이 찡하네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한국 사회가 미쳐가고 있다는 겁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