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와 불안을 넘어선 새로운 동아시아를 예측한다!!
- 이주와 월경이 만들어 내는 접촉지대의 다양한 문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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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접촉지대: 교차하는 경계와 장소들』
시리즈명: 아이아 총서 108
성공회대동아시아연구소 기획 | 윤영도, 이정은, 조경희 엮음
사회 | 신국판 변형(150×220mm) | 328쪽 | 20,000원
2013년 8월 10일 | ISBN: 978-89-7682-779-1 93300

 『아시아의 접촉지대: 교차하는 경계와 장소들』은 식민지와 냉전, 그리고 탈냉전의 시대를 거치며 이루어져 왔던 중층적인 월경 이동들이 중국, 러시아, 북한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글로벌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국의 청도, 상하이, 홍콩, 그리고 일본의 도쿄와 교토 등의 공간들 속에서, 어떻게 근대 국민국가를 벗어나 초국가적 사회공간을 형성하고 어떻게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드는 실천을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이 책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현재를 비롯하여 다양한 체제의 국가들이 맞부딪히면서, 어떠한 이동과 정주, 경계와 틈새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동아시아의 접촉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은 최근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되비춰 볼 수 있는 중요한 다면경의 역할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회공간들 모두가 어느 하나의 중심으로 잡고 읽어 내기가 불가능할 만큼 서로 얽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적대와 불안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이웃하기’의 시선으로 동아시아 질서의 새로운 해법을 바라보며, 아시아의 접촉지대의 양상에 관해 우리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한, 중, 일 모두가 유례없는 이상 고온으로 시름하는 2013년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천재(天災)만이 동북아에 악몽을 드리운 것은 아니다. 2012년 남, 북한을 위시하여 동북아의 주요 국가들의 수뇌부가 새롭게 선출되었을 때 우려했던 것처럼, 각국의 정부는 자국 내의 정치 역학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동북아의 국제 정치를 볼모로 잡고 퇴행시키고 있다. 미국과 북한, 남한과 북한의 계속되는 대립은 6자회담을 무망한 것으로 만들었고, 개성공단을 중단 위기로 내몰았다. 일본의 우경화는 정치적 소동을 넘어 그네들의 시민 의식을 의심할 만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으며, 중국은 국내의 문제만으로 벅찬 듯 이 모든 문제에 수수방관하는 태도다. “지구화된 경제가 전 세계의 하나의 광대한, 제조된 정글(앤서니 기든스)로 뒤엉켜들게 하고 있다는 구미(歐美) 식자들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는 양”, 남북한을 둘러싼 동북아의 국지적 냉전은 이제 가히 중세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지역적 후진성의 빙하는 점차로 그 위용을 잃고 있다. 최근의 경색 국면이 당분간 동북아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축소시킬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동아시아의 이동과 접촉은 늘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도 엄혹해 보였던 미소의 냉전 시기에도 양 진영 사이로 끊임없이 교류가 이어졌던 것처럼, 삶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동과 접촉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작열하는 지구화의 태양 앞에서 현재 동북아의 고착화된 국제 질서는 결국 녹아내릴 한 조각 얼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록 과거 식민지와 냉전의 상처가 우리에게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제 경계를 넘어선 이동과 접촉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들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지구화는 흔히 경제 문제로 치환된다. 동북아는 흔히 정치적 후진성이 경제적 발전의 발목을 쥐고 있는 지역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지구화는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구화는 생활 및 주거 환경, 교육, 질병, 가족의 이별, 사회적 유대의 약화, 경제적 불확실성과 개인의 불안이 점철된 총체적인 삶의 문제이다. 정치경제적 통합의 가능성을 조망하는 것과 아울러, 동북아의 접촉지대를 수놓을 주체들의 다양한 삶의 국면을 세밀한 시선으로 살피는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당대1팀’은 동북아시아 각국 사이에 위치한 변경의 접촉지대, 혹은 각국 내부의 글로벌 도시에 해당하는 몇 개의 장소들에서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문화적 갈등과 교섭(negotiation)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모아 봤다. 이 책은 한반도, 중국, 베트남, 러시아, 일본 열도로 구성된 동아시아의 하위권역(subregion)에서 지난 20년 동안 발생했고 현재 가속화되어 진행되고 있는 삶의 이동성(mobility)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이 책의 1부 ‘경계(警戒)하면서 경계(境界) 넘기’는 국민국가의 임계공간이 교차하는 두만강 권역이나, 중국-베트남 접경 지역 등의 국경 지대에서 일어나는 이동과 접촉을 다루고 있으며, 2부 ‘초국가적 사회공간과 월경(越境)하는 주체들’은 상해, 홍콩, 도쿄 등과 같은 동북아의 국제도시에서 글로벌화된 주체들이 벌이는 다양한 문화정치적 실천들을 다루고 있다. 국민국가들의 경계가 맞닿은 접경지역이든 아니면 수많은 이국적(이민족적) 존재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글로벌 도시들이든, 이 책은 월경이 만들어 낸 삶의 풍경이 동아시아 도처에 편재해 있으며, 앞으로 ‘평평해진 동북아’의 도래할 미래를 생생한 현실로서 예측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경계와 경계 사이, 이동과 생성의 운동

1부를 여는 이고르 사벨리에프의 글은 과거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에서 어떻게 러시아계 고려인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는지, 특히 구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계 고려인들의 이주 패턴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러시아의 동쪽 국경 지대인 연해주(Primorsky Krai)에 방점을 두고, 이들이 이주를 결심하는 데 있어 이 지역이 수행하는 역할과 러시아계 고려인들의 “고향”이라는 관념에서 연해주 지역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와 위치를 살펴보고 있다. 두번째 글에서, 장쥐안은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 지대 무역의 새로운 양상을 슬라보예 지젝이 주장한 ‘이웃하기’(neighboring)라는 개념을 통해 읽어 내고 있다. 지난 중국-베트남 국경 전쟁 이후 중국과 베트남은 여전히 긴장관계를 늦추지 않고 있지만, 중국 윈난(雲南)성 허커우(河口)와 베트남 라오카이(Lao Cai) 사이의 국경 지대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형성과 사업가들의 성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우발적으로 벌어졌던 과거 국경 전쟁에 대한 기억으로의 회귀는, 베트남 정부와 중국 정부의 충돌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중국과 베트남의 서로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원활한 비즈니스를 위해 다시 망각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고, 이것이 비즈니스를 위한 필수 요소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망각의 정치학은 국경 지대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는 동아시아 내부의 이동과 월경이 단순히 이동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 맥락의 요소를 함께 읽어야만 하는 것임을 잘 보여 준다.

두만강 권역 개발에 대한 신현준의 글 역시 장쥐안과 마찬가지로 ‘이웃하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두만강은 중국, 러시아, 북한이라는,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했었고, 지금도 유지 중인 국가를 지나는 강이다. 이런 두만강의 독특한 지리적 위치는 두만강과 인접해 있는 세 국가의 합의되지 않는 동상이몽을 실현하기 위한 장소가 되었다. 중국은 차항출해(借港出海)의 통로로서, 북한은 선적 시설 현대화의 장소로서, 러시아는 남시베리아 권역의 연안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계기로서 두만강 권역에 접근해 왔다. 이들의 착종된 실패는 국민국가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국경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창출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되어 버렸지만, 두만강 권역의 변화 과정을 통해 조선족 커뮤니티는 문자 그대로 초국가적 성격을 갖게 되었고, 여러 나라들 및 지역들에 분산되어 있는 이 네트워크의 파워는 이 지역의 사회자본과 교섭 능력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그 잠재력은 국제정치 관계의 제약으로 인해 충분히 개화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이동의 선들을 만들어 내면서 생성의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순환과 마주침, 초국적 사회공간의 형성

이 책의 2부는 ‘글로벌 시티’라는 이름으로 이미 초국가적으로 변모된 동아시아의 사회 공간과, 해당 지역의 주민들의 삶이 만들어 내는 중층적인 문화정치학적 갈등과 교섭, 다양한 실천들을 살펴보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2부의 첫 글에서 구지영은 청도 한인 집단거주지에 대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지구화 시대 한국인의 이동과 초국적 사회공간의 형성 및 변용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단순히 비용과 편익이라는 요소 외에, 이주 동기에 초점을 맞춘 신선한 각도에서 이민연구를 바라본다. 종래의 이민연구에서 이주는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 조건의 지역 간 차이와 비용-편익에 대한 계산을 통한 경제적 행위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비용-편익의 셈법만으로 ‘이주’라는 삶의 실천을 이해할 수 있을까? 청도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중국의 도시가 된 것은 이주가 단순히 편익의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 준다. 청도에서 한국인들은 모국에서 누릴 수 없었던 투자자의 위치를 보장받으며, 한국에서 쉽게 입학하기 힘든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아이들이 교육을 받도록 해줄 수 있다. “뭘 해도 외국인이니까 좋게 보이고, 한 발짝씩 늦는 중국보다 자신들이 더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앞서 갈 수 있다는” 차이나드림은 이들이 청도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주자들의 주관적 인식과 실천이 이주의 주요한 국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미란은 중국의 개방 이후 대륙으로 대거 이주해 온 타이완상인이 과연 중국 대중 매체의 보도처럼 ‘성공한 중산층’으로 자리 잡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2000년 이후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화동 지역으로 이주한 타이완상인의 일상생활, 특히 가사노동자 고용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조사 결과는 타이완상인의 경우 대륙인들에게 부유한 중산층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 부유한 타이완상인은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이 물가상승의 압박을 느끼고 있음을 설명해 준다. 실제로 최근 들어 적지 않은 타이완상인들이 도산하고 있음에도 중국 정부의 정보 차단은 현실을 가리고 있었다. 이 글은 가사노동자 고용문제를 통해, 대륙으로 이주한 타이완상인의 생활 양상의 한 단면을 확인하고, 초국적 공간을 재현하는 미디어와 현실의 간극을 드러낸다.

윤영도는 홍콩 식민지정부가 중국 내지로부터의 불법 입국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던 1974년 무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륙으로부터의 내지인들의 월경 이동이 야기한 정체성 갈등을, 홍콩의 영화나 드라마, 인터넷 영상물과 같은 대중매체의 이미지 변천 과정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특히 영화 속의 주인공 인물들이나 감독이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홍콩 반환과 경제적 변동의 혼란기에 홍콩인들이 자기정체성 확립을 위해 이주자라는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 왔는지 보여 준다.

조경희는 패전을 전후해 도쿄 우에노(上野) 지역과 그 주변부로 유입한 조선인들의 이동의 경로와 정착 과정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오늘날의 대도시의 중층적인 로컬리티 형성과 그 경계의 재편과정을 하층민들과 소수자들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특히 우에노가 미술관과 공원으로 둘러싸인 천황의 은사공원이기도 하면서, 하층민들의 텐트촌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한 공간의 장소성을 분석하는 데 흥미로운 지점들을 제공한다. 또 이동하는 하층민들의 끊임없는 순환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우에노만의 특징들은 다양한 인구들의 접촉지대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더욱 잘 드러낸다.

이정은은 교토 히가시쿠조 지역의 재일조선인 거주공간을 중심으로, 1993년부터 시작된 민족축제 ‘히가시쿠조 마당’이 어떻게 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새로운 문화로 변화시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분석하였다. 특히 ‘히가시쿠조 마당’이 만들어지는 상황과 ‘다문화공생’에 대한 논의들, 장애인들의 축제 참여와 같은 이야기들은, 축제가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와 전혀 다른 누군가와 접촉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그 계기야말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공생”의 시작이 됨을 보여 준다.

경계 넘기와 이웃하기, 새로운 동아시아의 질서를 향하여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아니 삶이 있는 곳이라면, 이동과 접촉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북한에 대한 고사정책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단동 지역을 통해 중국과 더 활발한 교류를 하며 활로를 찾아나갔다. 국지적 경색은 세계를 마치 빗장이 걸린 문처럼 열리지 않는 곳으로 생각하게 하지만, 오히려 그 닫힘이야말로 다른 곳에서의 분출과 접촉을 촉진하곤 한다. 남북한을 둘러싼 현재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적 고착이 결국 더 급격하고 혼란스러운 개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게 되는 이유이다.

근대의 국민국가는 사람의 이동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냉전 질서는 국경 지대들의 접촉을 철저하게 통제했으며, 월경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북한의 그렇듯, 이동으로 인한 이익은 종종 엘리트들만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광풍 이후, 글로벌 질서에 대한 전 지구적 사고는 경제적 수익 창출뿐 아니라 지역적인 삶의 개선을 위해서도 필수적이 되었다. 이동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으로 변했으며,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대변했던 저개발 국가의 여성 가사노동자들조차 이제는 ‘세계화의 하인들’이 되어, 유럽과 영미권과 동아시아로 흘러 다니고 있다. 또한 폐쇄된 군사지역으로 여겨지던 국경은 초국적 자본이 집중되는 이윤창출 영역이 되고 있다.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초국가적 사회공간은, 중국 고전의 개념을 빌리자면, ‘호장기택’(互藏其宅)에 비유할 수 있다. 음과 양이 서로 갈마들고 뒤얽혀 서로가 상대편의 터에 뿌리를 대고 그곳을 자신의 집으로 삼는 형국을 가리키는 이 말은, 수많은 긴장과 갈등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품고, 함께 생존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지구화된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이 점에서는 동북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랜 정치적 반목과 지역적 불안정성을 물려받은 우리는 여전히 적대적 불안 속에 살고 있다. 그것은 실로 위협적이다. 하지만 삶이 있는 곳에는 분명 이동이 있다. 경계를 넘어 이동과 이주를 수행하는 순간, 접촉은 곧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 낼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생활을 막론한 총체적인 초국가적 삶의 양상 속에서 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이웃하기’가 절실해지는 지금, 이 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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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엮은이 소개 보기


2013/08/16 09:34 2013/08/1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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