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의 문제적 개인들을 만난다!!
- 작가들의 내면을 지배한 다섯 유형의 ‘라이벌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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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김윤식 지음
문학 비평|신국판 양장(152×224mm)|368쪽|20,000원
2013년 8월 30일 발행|ISBN : 978-89-7682-156-0 03800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은 원로 비평가 김윤식이 ‘라이벌 의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문학사의 주요 장면과 한국문학사에 ‘창조력’을 공급한 문제적 개인들을 그려내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다섯 유형의 ‘라이벌 의식’을 그려낸다. ①경성제국대학의 아카데미시즘에 맞선 무애 양주동과 도남 조윤제의 라이벌 의식, ②김수영과 이어령 사이에서 벌어진 1960년대의 ‘불온시 논쟁’, ③『한국문학사』(1973)를 공동집필한 이후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린 ‘실증주의적 정신’(김윤식)과 ‘실존적 정신분석’(김현)의 관계, ④『문학과 지성』과 『창작과 비평』 사이의 라이벌 의식, ⑤마지막으로 스승 김동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넘어서고자 했던 이문구와 박상륭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알게 모르게 작가들을 짓눌렀던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이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이들이 한국문학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은 원로 비평가 김윤식이 ‘라이벌 의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문학사의 주요 장면과 한국문학사에 ‘창조력’을 공급한 문제적 개인들을 그려내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다섯 유형의 ‘라이벌 의식’을 그려낸다.
① 경성제국대학의 아카데미시즘에 맞선 무애 양주동과 도남 조윤제의 라이벌 의식, ② 김수영과 이어령 사이에서 벌어진 1960년대의 ‘불온시 논쟁’, ③ 『한국문학사』(1973)를 공동집필한 이후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린 ‘실증주의적 정신’(김윤식)과 ‘실존적 정신분석’(김현)의 관계, ④ 『문학과 지성』과 『창작과 비평』 사이의 라이벌 의식, ⑤ 마지막으로 스승 김동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넘어서고자 했던 이문구와 박상륭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알게 모르게 작가들을 짓눌렀던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이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이들이 한국문학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다섯 유형의 라이벌 의식 중에서도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4장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일 것이다. 저자 자신의 표현처럼 “김윤식이 김현에 바치는 찬사”(163쪽)인 이 글에서 저자는 김현의 문학적·비평적 궤적을 추적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과 김현이 서로에게 느꼈던 라이벌 의식을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김현의 유고인 『행복한 책 읽기』에서 “제일 많이, 또 집중적으로 비판의 화살을 쏜 곳”(157쪽)이 자신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김현의 비판에 대한 “때늦은 변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비판이 바로 “김윤식 자신의 글쓰기의 참모습”(160쪽)이었다는 것, 김현의 비판을 통해 김윤식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자신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실증주의적 정신’이라고 불린 김윤식 안에 ‘짐승스러운 영역’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김윤식의 내면을 김현은 죽음의 시기에 와서야 분석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지속적으로 ‘실증주의적 정신’ 곧 김윤식의 궤적을 추적해 온 것은 김윤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진솔한 고백을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문학사의 라이벌’이라는 표제로 계간지 『문학의 문학』에 발표되었던 22편의 글들 중 다섯 편을 골라 엮은 것으로, 각 글은 두 사람씩을 묶어 부제로 삼았고,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마주보는 의식”을 엿보고자 했다. 하지만 두 편의 글에서는 예외를 두었는데, 그 하나가 저자 스스로의 라이벌 의식을 다룬 4장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과 비평』의 초기 위상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5장 「‘논리’로서의 문학, ‘해석’으로서의 문학」이다. 『창작과 비평』의 활동과 그에 대한 『문학과 지성』 쪽에서의 라이벌 의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이 글은 저자가 직접 이 두 계간지의 활동을 “관찰 또는 구경”한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한국문학사의 중심에 있었던 이 두 계간지의 역사에 대한 사료적 가치의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경성제국대학 vs 양주동/조윤제

이 책에서 처음 다루고 있는 문인들은 경성제국대학의 아카데미시즘에 맞선 무애 양주동과 도남 조윤제이다. 일제가 식민지에 두번째로 세운 경성제국대학은 조선문화의 연구를 통해 중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연구에 빛을 줄 수 있는 ‘동양학 연구의 중심점’이 될 것을 그 설립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러한 설립 목표를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내 준 것이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1929)였다. 이는 국문학 연구의 학문적 원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동양사적 사건성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중국의 고대시가집에 『시경』이 있고, 그에 준하는 것으로 일본에는 『만엽집』이 있다면, 조선에는 신라의 『삼대목』이 있었으나 유실되어 조선의 고대시가만이 공백으로 남은 형국이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삼대목』의 발굴 및 해독에 준하는 오구라 신페이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로 『시경』, 『삼대목』, 『만엽집』의 위치가 확보될 수 있었고, 따라서 오구라의 연구가 동양사적 사건성을 지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성제국대학의 아카데미시즘을 대표하는 오구라의 연구에 도전한 것이 바로 무애 양주동과 도남 조윤제였다.
시인이자 비평가이며 와세다 대학 영문과 출신인 무애는 「향가의 해독, 특히 ‘원왕생가’에 취하여」를 통해 오구라의 연구에 도전했는데, 이 논문은 한문에 대한 판독력, 조선인만이 가질 수 있는 생리적 능력, 시적 자질을 기반으로 되어 있어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 중 가장 무애다운 자질은 ‘시적 직관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향가 연구가 겨우 출발하는 시점에서 무애는 동시에 그 해석을 시도했으며, 이는 학문과는 별개인 창조적 문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도남의 경우, 경성제대의 아카데미시즘으로부터 배운 근대적 학문의 방법론을 기반으로 하여 오구라에게 도전했다. 근대적 학문의 방법론을 통해 조선고대시가의 형식을 분석하여 향가에서 시조에까지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체계, 곧 ‘반절성’과 ‘전절대 후절소’ 이론을 정립했던 것이다. 하지만 도남은 개개의 작품 연구나 시가의 형식론을 훨씬 넘어선 영역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민족주의와 ‘정신과학으로서의 국문학 연구’였고, 해방공간에서야 비로소 간행될 수 있었던 『국문학사』에서 그 학문적 위업이 드러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불온시 논쟁 : 김수영/이어령

이 책의 3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평론가 이어령과 시인 김수영 사이에서 벌어진 ‘불온시 논쟁’이다. 이 논쟁은 4·19가 가져온 문화사적 현상 중 하나로, 화려한 겉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논쟁에 뛰어든 두 논자가 4·19를 대표하는 문단의 총아였으며, 『사상계』와 『조선일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벌어져 대중적 관심을 끌었기 때문인데, 저자는 이 논쟁이 화려한 겉모양에 비해 그 결과는 매우 미미한 말꼬리 잡기 식 논쟁이었다고 평가한다.

논쟁은 이어령이 1967년을 두고 ‘에비’가 지배한 문화계라고 비판한 데서 시작되었다(「‘에비’가 지배하는 문화」). 있지도 않은 ‘정치 에비’, 있지도 않은 ‘상업주의의 에비’, 있지도 않은 소피스티케이트(sophisticate)해진 ‘대중의 에비’를 설정해 놓고 그것에 겁먹고 주눅들어, 이런 반문화적 풍토와 싸워 그 ‘에비’의 가면을 벗기지 않고 주저 앉아버렸다는 것이 이어령의 진단이었다. 이에 대해 김수영은 5·16군사혁명이 일어나 군부독재가 7년이나 강제한 언론통제 속임을 염두에 둔다면, 창작의 빈곤을 문화인 자신 쪽으로 돌리는 것은 일방적이라는 내용의 「지식인의 사회참여」(1968)를 『사상계』에 발표했다. 이 이후에도 많은 글들이 오고 갔지만, 사실상 처음 발표된 두 글의 부록 또는 보충설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이어령이 문인의 내면의 치열성을 문제 삼으며 창작의 내부문제를 거론했다면, 김수영은 창작의 외부문제에 기울어져 있었는데, 참된 창작이란 이 둘이 결합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면에서 양쪽 모두 일면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쟁을 통해 이어령이 잃은 것이 많았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저항의 문학’의 기수로서 비평가적 힘과 권위를 발휘하고 있었던 이어령이 이 논쟁 이후 간판 격인 ‘저항의 문학’에서 벗어나 보수주의자로 후퇴한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김수영은 이 논쟁에서 전위주의적인 뚜렷한 깃발을 잃는 대신, 시와 시론의 발전에서 새로운 진전을 가져올 수 있었고, 그 성과물이 「시여, 침을 뱉어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 ‘샤머니즘의 세계화’와 ‘샤머니즘의 움막 짓기’ : 박상륭/이문구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 라이벌 의식의 유형은 바로 박상륭과 이문구 사이에서 작용했던 것이었다. 앞서의 네 가지 유형의 라이벌 의식 또한 당대의 ‘장관’ 혹은 ‘기적’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지만, 박상륭과 이문구 사이의 그것은 다른 라이벌 의식과는 그 사상적 무게나 깊이에서 별개의 유형이라 할 수 있으며, 가장 극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었다. 서라벌예대 동급생으로서 전북 장수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상륭과 한산 이씨의 터전인 관촌 마을에서 지식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문구. 이들 사이의 라이벌 의식은 스승인 김동리를 꼭지점으로 하는 이등변 삼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박상륭이 『칠조어론』에서 『잡설품』에 이르는 작품들을 통해 스승 김동리의 ‘자기 동네식 샤머니즘’을 ‘샤머니즘의 세계화’로 밀고 나갔다면, 이문구는 『관촌수필』을 통해 스승의 ‘지방성’ 샤머니즘을 더욱 ‘지방성으로 특권화하기’로 나아간 것. 이로써 샴쌍둥이의 모습을 한 서라벌예대의 두 수제자가 스승을 배신하면서 스승을 빛낸 결과를 빚었다는 점에서 ‘기적’이고 ‘장관’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에 단독으로 입학하고 졸업한 제1회 졸업생 도남의 포부는 보다시피 참으로 비장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민족독립운동의 일환”이 그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해보니 사정은 판이했다. 독립운동이란 만주벌판에서나 하는 것,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었다. 이 객관적 사실이야말로 대학생 도남이 봉착한 첫번째 관문이자 시련이었다. 물을 것도 없이 경성제대는 근대적 학문의 연구와 전수를 전문으로 하는 교육제도이며 당연히도 어느 국가나 민족에 토대를 두면서도 이를 넘어선 곳에 닿아 있었다. 보편성이 그것인 만큼 어떤 대학도 이를 비껴갈 수 없었다. 학문, 곧 과학인 만큼 어느 특정지역이나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일 수 없는 것이다. 도남은 이 사실을 제일 잘, 그리고 바로 몸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은사 오구라 신페이 교수를 통해서였다. _ 37쪽.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이어령의 문제 삼은 곳은 4·19 이후 문학의 무력 및 무능이었다. 그 무력, 무능의 이유를 이어령은 문인의 창조력의 부족, ‘탓으로 돌리는 것’, 곧  문인의 태만으로 돌렸다. 5·16 군사쿠데타 이래, 문인들은 “가상적인 어떤 금제의 힘”에 질려 창작에 무능, 무력한 꼴을 보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에비’란 없는 것인데도 아이들은 이 에비라는 괴물이 무서워 울음을 그치는 꼴에다 이어령은 비유했다. 있지도 않은 ‘공포의 대상’을 미리 내세워 놓고, 창작을 못하는 유아기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이 나라 문인을 독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 이어령이 그 글을 썼겠지만, 이를 읽는 『사상계』측 독자 김수영의 처지에서 보면 어불성설이다. 이어령의 논법은 자칫하면 일제 시대의 그 탄압 속에서도 명작이 나왔다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5·16 이후 아무리 언론탄압이 심해도 작가들은 능히 이를 극복, 명작을 낳아야 한다는 논법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다. 탄압이 심해도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군부독재의 탄압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조차 아주 없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_ 92~93쪽.

위에서 본 김현의 저러한 견해가 여기에서 왔지 않았을까. ‘짐승스러움’, ‘자연’을 ‘정신’으로 착각한 것. 김윤식의 그 내면 속엔 까마귀와 메뚜기에로 되돌아가기 위한 지향성이 숨어 있어 틈만 나면 분출해 오르고자 했다. 이것은 굳이 말해 김윤식의 실존적 위기감이 아니었던가. ‘문체의 서정성’이 그것이며 ‘열정=재능’의 도식이 그것이다. 김현은 죽음의 시기에 와서야 김윤식의 내면을 분석해 냈다. 그 방법은 ‘실존적 정신분석’이 아니라 김윤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랑하지 않고는 저토록 지속적으로 ‘실증주의적 정신’의 궤적을 추적해 왔을 이치가 없다. 외국 문학자인 김현의 아킬레스건이 ‘실증주의’였던 증거치고 이보다 솔직한 것은 따로 찾기 어렵다. 실상 김현이 한동안 라이벌인 『창작과 비평』에 우위를 잡고자 한 한국문학사에의 도전에 절대적으로 실증주의가 요망되었는데, 자신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김윤식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까지의 겉모습만 보았고 김윤식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자연’, 곧 짐승스런 까마귀와 붕어를 못 보았던 것이다. 아무 이론도 공부한 바 없는 김윤식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열정뿐이었다. 유년기의 서정적 외로움뿐이었다. ‘열정=재능’이라 우길 수밖에 무슨 방도가 있었으랴. ‘서정적 문체’ 이외에 무슨 방도가 있었으랴. _ 162~163쪽.

구원은 여기에서 올 터이다. 자이나교도 카인은 다시 밴쿠버 동굴로 되돌아갔고, 깊은 명상에 빠져 있을 터이다. 그 명상 속에 꿈인 듯 생시인 듯 청진동 바닥을 헤매는 충청도 한산 이씨 후손 조용한 양반 이문구의 모습이 어른거렸으리라. 식민지적 상상력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 겁 많은 관촌 마을의 소년이 서라벌예대에 들고, 『장한몽』 타령을 하고 금호동 강변 술청에서 한강수를 굽어보며 맞수 박상륭과 막걸리를 퍼마실 때 이따금 관악산의 키 큰 비평가도 끼어들어 저도 모르는 고담준론을 펴고 있지 않았던가. 밴쿠버 동굴 벽엔 관촌 마을의 소년의 모습이 스크린으로 펼쳐져 있었다. _ 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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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09:00 2013/09/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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