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영웅적 행위에서 절망과 광기의 소산까지,
16~18세기 유럽 사회가 바라본 자살의 모습을 탐구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살의 역사: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 사회』
조르주 미누아 지음 | 이세진 옮김
인문ㆍ역사 | 신국판 변형(150x220) | 516쪽 | 29,000원
발행일: 2014년 3월 5일 ISBN: 978-89-7682-530-8 03920

『자살의 역사』는 크게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로 구분되는 16~18세기 유럽 사회의 계급적․철학적․개인적이었던 자살 원인과 수단의 실례를 이야기하며, 당시 자살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심판되고 평가되었는지를 추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살에 대한 서양의 의식구조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각한 중세 유럽에서 자살은 신이 주신 삶을 거부하는 비겁행위이자 범법행위였다. 이에 귀족들은 계급의 특권을 이용해 자발적인 순교나 죽음이 의도된 결투 등으로 자살을 대체하였고, 결국 평범한 방식(목을 매거나 물에 빠지는 등)으로 자살을 선택한 피지배계급만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시체에 행해지는 가혹행위나 사망자의 유가족에게 내려지는 재산몰수라는 형벌 뒤에서 자살은 광기의 소산이라는 평가만이 남았다. 그러나 근대성이 싹트던 17세기에 이르자,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는가’를 자각하기 시작했고 자살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후 이러한 의식은 고뇌 뒤에 따르는 개인의 의지를 존중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의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고,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살을 좀더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문제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자살의 역사』는 과거 유럽에서의 자살의 모습과 의미를 추적하며 개인 목숨에 대한 자유의 문제를 성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안락사 등 생명윤리와 더불어 ‘죽음윤리’를 고민하는 현재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서구 사회에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자살은 신의 섭리에 대한 불복종이자 사회에 해가 되는 행위라는 그리스도교적 입장과 개인이 불행을 무릅쓰면서까지 사회의 이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개인주의적 입장이 상충되어 온 것이다. 이에 『자살의 역사: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 사회』는 자발적 죽음에 대한 성찰이 각별했던 16~18세기 유럽의 자살에 대한 의식변화를 살펴보며 자살이라는 고전적인 주제가 오늘날 안락사와 존엄사라는 문제로 되돌아왔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크게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로 구분되는 유럽사회의 계급적·철학적·개인적이었던 자살 원인과 수단의 실례를 이야기하며, 당시 자살이라는 행위가 어떠한 평가와 심판을 받았는지 추적한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앙시앵레짐 종교사 전문가인 저자 조르주 미누아(Georges Minois)는 당대의 신문, 소설, 희곡, 논문 등에서 발췌한 기록을 참고하여 사실적이고 생생한 자살과 단죄의 실례를 들고 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신이 주신 삶을 거부하는 비겁행위이자 범법행위였던 중세,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왜 자살을 하는가’를 자각하기 시작했던 인본주의 르네상스, 자살의 의학적·사회적 측면을 이성에 빛에 비추어 고려하려는 시도가 고개를 든 18세기까지 『자살의 역사』가 소개하는 다양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자살에 관한 서양의 의식구조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자살, 절대적 죄악에서 개인의 자유 문제로 ― 시대별 자살 의식의 변화

중세 : 자살을 절대적인 죄악으로 단죄하다
『자살의 역사』는 중세에서 18세기까지 서양 사회가 ‘자기살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어떻게 사회적 구성물로 만들어 왔는지 조명한다. 사실 자발적인 죽음은 거의 언제나―물론 지금까지도―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중세는 서양사에서 이 사회적 지탄이 본격화된 시기로 자살을 신에 대한 모욕, 더 이상 혐오스러울 수 없는 범죄와 동일시했다. 고해성사를 통해 신께 사죄하고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거부하는 이들에게 교회법뿐만 아니라 세속법 역시 엄격했다. 백성들은 신의 피조물인 동시에 국가의 재산이기도 했으니까. 자살한 자들은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미 목숨이 끊어진 시체에 행해지는 끔찍한 처벌을 통해 일종의 퇴마의식을 치러야 했다.
“검으로 자기 자신을 찔러 죽은 자는 머리통에 나무토막을 박았다. 물속에 뛰어들어 자살한 자는 물가에서 5피트 거리의 모래사장에 파묻었다. 높은 데서 뛰어내려 죽은 자는 시신의 머리, 배, 발에 커다란 돌 세 개를 올리고 산 아래 매장했다. 릴과 아베빌에서처럼 시신을 창문에서 던지거나 ‘문지방 아래 구멍을 뚫고 얼굴이 땅을 향하게 하여 짐승처럼 질질 끌고 나오는’ 풍습은 불길한 자살자의 망령이 자기가 살던 곳을 알아보고 돌아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기원했다.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시체를 말에 끌고 다니다가 꽁꽁 묶은 채로 목을 매달고 그 자리에 썩을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대개의 경우, 시체는 뒤집힌 자세로 끌려다니다가 교수대에 거꾸로 매달렸다. 영국에서는 자살자를 큰길 아래, 그것도 가급적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 밑에 매장했다. 시신을 엎어 놓고 등에 말뚝을 박아 가슴으로 튀어나온 말뚝이 땅속에 단단히 박히도록 했다.” ― 본문 64~65쪽
자살자의 유가족에게도 조처가 내려졌다. 그들은 가문 전체에 수치가 되는 이 구경거리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을 뿐 아니라 재산몰수라는 이중의 형벌을 받고 산 자들의 자살을 억제하는 살아 있는 본보기로 남아야만 했다.

르네상스:자살의 원인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다
대부분 법정의 짧은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중세의 자살에 비해 르네상스 시기의 자살은 일기, 문학, 비망록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주제가 되었다. 특히 16세기 후반 피에르 드 레스투알의 일기는 당대의 자살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주로 사건 분석과 그에 대한 판결에 관심을 두며 자살에 관한 명사들의 평균적인 의식구조, 자살자의 사회적 출신에 따른 차별 등을 잘 반영하고 있다(본문 100~102쪽). 이뿐만이 아니다.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갖고 고대 영웅들의 명예로운 자발적 죽음을 칭송하는 문학작품이 늘어나면서 자살은 은밀하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중세부터 이어진 자발적 죽음에 대한 엄격한 단죄를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대신 자살을 둘러쌌던 공포와 수치의 베일이 조금씩 걷히고 그 자리에 루크레티우스, 카토, 브루투스, 세네카 등의 존경할 만한 인물들의 이미지가 자리하게 되면서 ‘왜 자살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신에 대한 반항이라는 일방적인 단죄에서 벗어나 비로소 개개인에게 닥친 상황을 분석하는 것으로 자살의 원인에 귀를 기울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자살이 씻을 수 없는 죄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자살처벌법은 여전히 확고했고 더욱 강력해진 퇴마의식에 자살자와 유가족이 치러야 할 형벌도 가혹해졌다.
그러나 자살에 관한 르네상스의 의미는 개인의 자발적 죽음을 좀더 공공연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다수의 견해는 여전히 자살에 적대적이었지만 이 주제에 대한 발언과 글이 늘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살에 대한 의식변화가 시작된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도덕주의자들의 여전한 반대와 탄압으로 자살이라는 행위는 끝끝내 자유의 문제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역시 하나의 개인행동이라는 의식만큼은 싹틀 수 있었다. 몽테뉴, 피에르 샤롱, 유스투스 립시우스, 존 던, 뒤베르지에 드 오란 등은 (가명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죽기 전까지 저서를 비밀에 부친 경우도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 자살이 합법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을 정도였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많은 작품에서 “사느냐 죽느냐”를 울부짖는 인물들을 그려 냄으로써 생과 사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되풀이해서 보여 주었다.

계몽주의:자살을 이성의 빛에 비추다
17세기 후반까지 자발적 죽음은 ‘자기살해’(meurtre de soi-même) 등으로 표현될 뿐(본문 281~282쪽) 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자살’(suicide)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18세기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위층의 저항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자발적 죽음은 차츰 공개적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고 어떤 이들은 담대하게도 이 문제에 답할 자유가 각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계몽주의 시기의 자살은 ‘영국병’으로 통했다. 일찍이 언론과 통계가 발달한 영국은 매주 ‘사망 내역’을 실은 신문을 발간했는데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 기록물로 인해 사람들이 자살을 다른 유럽 국가보다 영국에서 두드러진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 ‘사망 내역’에 게재된 자살 중 흥미롭거나 기이한 사건에는 그 정황과 원인을 추측하는 기사가 따라붙었다. 자연히 자살은 당대의 시사적인 문제와 연결되었으며 독자들은 자살을 사회적·심리적 정황의 결과로 보는 데 차츰 익숙해졌다. 게다가 이 시기에 유행처럼 번진 유서는 자살의 일반적인 이유가 실연, 가정불화, 강간, 수치, 회한 등 일반적인 인생사의 불행이라는 것을 확인시켰다(본문 443쪽).
16세기까지 자살은 악마와 죄인인 개인 사이의 문제였다. 당시의 자살은 순전히 종교적 도덕의 문제로 세속과 교회의 권력에 처벌받았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자 이제 사람들은 세속화된 사고방식, 즉 자살을 사회와 개인 심리 사이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종교색을 벗어던진 인간적인 시각으로 자살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로써 그 원인의 규명과 단죄 역시 현실적으로 변해 갔다. 18세기에 말에는 자살처벌법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디서나 사라져 가는 중에 놓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몽테스키외와 볼테르, 데카르트, 토머스 홉스 등은 여전히 자살반대론을 피력했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살의 원인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었다. 비로소 자살이 일방적인 반대와 단죄에 갇혀 있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원인 규명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타적 미덕인가 이기적 악덕인가? ― 자살의 계급적 차별

이렇게 자살이 개인의 의지와 관련된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고 그 단죄가 점차 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까지 유럽에서의 자살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살자들에 대한 산 자들의 태도가 늘 이중적이었다는 것이다. 자살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귀족과 사교계의 자살은 주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지적 성찰에서 비롯한 삶의 회한을 이기지 못해, 사랑 앞의 격정적인 마음과 불행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괴로워 발생했다. 특히 17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집사 바텔의 자살은 명예를 중시한 자살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 준다.
“콩데 공의 집사 바텔이 자살을 했다. 니콜라 푸케 저택에서 근무한 바 있는 이 사내는 왕이 콩데 공의 샹티이 성을 방문하는 동안 연회상 두 곳에 구이요리가 빠지고 주문한 생선이 제때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겨 목숨을 끊었다. …… 바텔은 자기 방에 올라가 칼을 문고리에 끼우고 칼날이 심장을 관통하게 했다. 그러나 처음 두 번은 치명상이 되지 못했기에 세번째 시도에야 쓰러져 사망했다. 생선요리는 그새 전부 나왔다. …… 콩데 공에게 달려가 알리니 공은 비탄에 빠졌다. 공작도 눈물을 흘렸다. 공은 매우 슬퍼하며 이 일을 왕에게 고했다. 그 사람 나름대로 명예심이 남달라 빚어진 일이었기에 모두 그를 칭찬했다.” ― 본문 227쪽
사실 유럽 사회에서 사회고위층의 자살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자살은 기껏해야 절망이나 광기 때문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거나 철학적·낭만적 자살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숨겨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대신 대부분의 고위층은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이용해 마상 시합, 사냥, 전쟁, 십자군 원정 등의 자살 대체행위로 자기살인을 사고사나 자발적 순교로 포장했다(본문 33~34쪽). 이들의 자살은 언제나 물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문제 삼는 듯 보였기에 당사자의 책임은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서민의 자살은 비참하고 지난한 현실의 결과였다. 서민들은 더는 살아갈 도리가 없어서, 학대에 못 이겨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차라리 죽는 게 낫기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 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끝장낼 수단으로 밧줄로 목을 매거나 물에 뛰어드는 직접 자살만을 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대의를 위한 이타적 자살이든 사랑·분노·광기에서 비롯된 자살이든 귀족의 자살은 언제나 사회적 행위이자 어떤 면에서는 명예로운 것이기까지 했지만, 서민의 자살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채 몰래 목을 매단 이기주의자, 비겁자의 고립된 행위로 치부될 뿐이었다.
생활고와 신변 비관이라는 고통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은 채 갈수록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 시대,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말이 유독 공허하게 들리는 듯하다.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입은 한국 사회에 『자살의 역사』는 자발적 죽음에 관한 새로운 시각과 현실적인 대응책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말을 건네고 있다.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고도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지켜보며, 우리는 이제 또 다른 의미의 생명윤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목차보기


지은이/옮긴이 소개보기




2014/03/07 10:15 2014/03/07 10:15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822

  1. Subject: FIFA 15 Coins

    Tracked from FIFA 15 Coins 2015/03/22 17:26  삭제

    Proud of you .

댓글을 달아 주세요

« prev 1 ... 2 3 4 5 6 7 8 9 10 ... 794 next »

  • Total :
  • Today :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