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네 집도 아들 낳으려고 용쓰다가 실패한 집이구나”
학보사 수습기자 시험을 포기하고 참석한 여성학 동아리 첫 모임 때, 우리집에 딸이 셋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했던 99학번 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 속에 묻어 뒀던 뭔가가 주욱하고 찢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오늘 학보신문 수습기자 시험을 접고 사람도 얼마 없는 동아리에 갔던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나에게 언어를 주고 싶다라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에 생채기가 났지만, 그러면서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것들이 언어를 얻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장남이신데, 장손한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저희 어머니는 무쟈게 구박받았습니다. 참 세련된 구박이었습니다.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잘 느낄 수 없었고, 오직 저와 제 동생들, 엄마, 아빠, 가족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의 폭력이었습니다. 그것은 명절이면 진행되는 친척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시였습니다.
전 참 싫었습니다. 비록 “혜진이 엄마”라고 불리긴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이름을 갖고 있고, 나름의 희망이 있었고, 저희에겐 그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도 든든한 존재였지만, 친척들에겐 그게 아니었습니다. 뭐랄까요. 한 여성이 하나의 아기집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아닌 것으로 변하는 상황을 전 몇 십 년 내내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당차던 엄마가 그런 발언 앞에서는 또 아무 말 못하는 것이 전 답답했습니다. 왜 우리는 대를 잇는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한 여성의 삶을 무시하는 것일까요? 왜 그녀가 먹는 것들은 그녀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아기주머니로서의 기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대해지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담배를 피는 여성들에게 그러면 ‘너의 건강이 나빠져’가 아니라 ‘나중에 낳을 아이를 생각해’ 라고 밖에는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여성은 축복 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 늘 그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우리 여성에게는 자궁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건가 싶었습니다. 우리의 건강은 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관리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만 느껴졌습니다. 99학번 언니의 이야기는 동아리결정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재생산의 도구로 살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 아마 언니들 틈바구니에서 그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줬던 그 한 마디였습니다.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사실, 저 이야기는 성폭행을 당한 여교수가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기 위해 쓴 책 제목입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책 제목만 봐도 콧물 눈물 흘려대는 그런 헤픈 인간이긴합니다만 저 책 제목은 저에게 던져 주는 화두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이 책 제목, 아니 책에 앞서 저 말이 얼마나 제게 힘이 됐는지 이야기를 함 시작해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99학번 언니의 쇼킹 발언을 계기로 여성학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여성학’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처럼 예민하더군요. 어딜 가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동아리에 있다고 하면 십중팔구 저와 신나게 대화를 하다가도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몸짓에서 저를 피곤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졌지요. 심지어, 저와 사귀던 어떤 친구는 제가 여성학 동아리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보기에도 여성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게, 아니,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좋아보이지는 않았던 것이겠죠.
한동안, 저 역시도 저 자신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학’이라는 말만 해도 남들이 나를 얼마나 피곤해 하는지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전 유머감각 넘치는 괜찮은 인간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도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야. 24일이 젤 잘 팔리고, 그 이후부턴 그냥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가’하며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할 때도 꾹 참아야 했습니다. 주먹을 휘둘러서 합의 보상금 받느니 참는다 뭐 요런 맘이었지요.
그래서 우울했습니다. 내가 느끼는 것들을 말할 수가 없어서요. ‘노총각 히스테리’라는 말은 없지만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은 넘쳐나는 이 세상에 한 방 날려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고, 모든 명사에 ‘여-’라는 접두사를 붙이지 않으면 여성이 언어의 표상 한구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요 넘의 가부장제에 똥침도 쏴주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멋진 형님들의 이야기를 읽어도, 제 답을 찾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들의 이야기를 여성적으로 해석한 글을 읽어도 잘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19세기 20세기 초반의 형님들은 왜 그렇게 페미니스트를 싫어한 건지..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해 봐도 답이 잘 나오지 않더군요. 마치, 거대 주체에 함몰되어 버린 작은 인간이 되었다는 느낌이라고 하면 대충 감이 잡힐까요?
그래서 다시 언니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왜 관계 속에서 여성들만 감정 노동을 해야 하는 건지. 정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 건지 궁금했거든요. 그러면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캐롤 길리건 언니의 『기쁨의 탄생』을 읽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양성성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정희진 언니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으며 무뎌졌던 감수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우울함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목이 멘 듯 응어리졌던 감정들이 언어를 얻기 시작하면서, 좀더 날카로워지고, 좀더 섬세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됐거든요. 형님들과 만날 때와는 다른 새로운 기쁨이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 아직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강제로 여성 할례가 행해지고(아무런 의학적 조치도 없이 행해질뿐더러,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완전 부정하는 행위지요) 남성과 눈만 마주쳐도 가족들이 한 여성을 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지위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여성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조차 어려운 곳들이 많지요. 저 역시도 관심 범위를 지금의 저의 위치에서 꾸준히 넓혀 나갈 생각입니다. 언니들이 많은 만큼 언니들의 고민도 다양하다는 것을, 순간순간 다른 질문들과 맞닥뜨리게 되는 저를 보면서 느끼고 있거든요.
아. 결론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나는 왜 언니를 만나는가를 한참 신나게 쓰다가 뭐라고 해야 할지 갑자기 난감해져, 오래 전에 썼던 일기장을 뒤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글로 마무리를 이번 이야기의 마무리를 대신할까 합니다.
“마치 내가 아닌 양, 세상이 원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지겹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태도나, 말투,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지적하는 것이 너무 싫다. 그들이 말하는 여성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왜 나는 여성학 공부를 하고 있을까? 왜 나는 여성학이라는, 말만하면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주제들에 관심이 많은 걸까? 나도 디테일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그냥 말하자면, 난 나대로, 지금 생긴 그대로 살고 싶다. 여성,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세상이 아니라 생긴 그 자체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난 여성학은 그런 면에서 세상의 폭력성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스스로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그런 공부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이다.”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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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역시 좋군요. 사실 이런 분야의 책을 읽으려하여도 하도 넘처나는 책들에 파묻혀서 어떤 것을 선택을 하여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댓글은 안 달고 있었지만, 열심히 구독중인 독자라는 사실 잊지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올 감사함따~`그나저나 업데이트가 불규칙적이라..좀 죄송스럽네용.
언제 이 언니를 만나다에서 우선적으로 만나 볼 언니들 목록도 함 작성해 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구요. 더 욜심히 쓰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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