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와 "여행"을 주제로 지난 3월 6일에 그린비 출판사에서 열린 고미숙·한비야의 대담을 옮긴 것입니다. 기사는 경향신문 2008년 3월 13일자 문화면에 실렸습니다. (경향신문 바로가기)

“떠나라, 앞에 길이 있고 다른 세상이 있다”

1780년 5월25일 연암 박지원은 길을 나섰다. 청 건륭제의 칠순 축하 사절로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가게 된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하게 된 것. 결코 녹록하지 않은 여정. 압록강을 건너 연경과 열하를 오가는, 3000리가 넘는 6개월간의 대장정이었다. 그러나 연암은 오히려 더 왕성하게 관찰하고 사유하고 기록했다. 그에게 삶과 여행은 하나였다. 여행은 ‘나’를 새롭게 만나고 ‘세상’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 여행의 기록이 바로 ‘열하일기’다. 최근 나온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고미숙·길진숙·김풍기 옮기고 엮음, 그린비)도 이 같은 연암의 ‘여행’에 초점을 맞췄다. ‘열하일기’ 가운데 여정의 흐름을 따라간 편년체 방식의 글들을 오롯이 살리고 독립된 기사체 글들 중 주요한 대목을 여정에 맞게 재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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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출간을 맞아 지난 6일 그린비출판사에선 이색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스스로 ‘『열하일기』폐인’이라 일컬으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등의 저서를 통해 연암과 『열하일기』의 가치를 설파해온 고미숙씨(48·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사진 왼쪽)와 최근 100쇄를 돌파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저자 한비야씨(50·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오른쪽)가 처음 만났다. 늦었다고 말하는 30대 중반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다는 점, 그리고 ‘길치’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이날 ‘열하일기’를 놓고 여행과 도전, 책읽기와 삶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비야  여행은 농축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의 1년이 보통 생활 10년이에요. 자기를 만나는 기회가 훨씬 많아지고 객관적으로 자기를 보게 되잖아요. 내가 몰랐던 것, 감춰졌던 것을 재발견합니다. 또 여행은 만남이에요. 새로운 무엇을 만날 뿐 아니라 오래됐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만나죠. 저는 ‘집 안에 있는 빠꼼이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났다’고 말하고 싶어요.

고미숙  『열하일기』를 보면 연암도 여행하면서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킵니다. 그리고 놀라운 관찰력으로 기록하지요. 어떻게 저 어려운 여행을 하면서 낱낱이 기록을 해나갔는지 미스터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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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관심, 호기심이죠. 전 무섭고 두렵지만 뭐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많아요. 도대체 뭘까 하는 거예요. 낯선 것도 낯익은 것도 매일 새롭게 보이니까요.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올 때 오토바이 먼지를 보고 ‘저게 밀가루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는 적어야 해요. 감정의 디지털 카메라 같은 것이죠. 감정도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뼈다귀만 남거든요. 어떤 때는 울면서도 적었어요. 연암이 힘든 여행을 하면서 조목조목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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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연암은 붓으로 순간을 기록했는데 현대의 디지털 카메라보다 훨씬 섬세하고 치밀한 데 놀라게 됩니다. 한 선생님은 여행이 ‘자기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에겐 ‘나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일상과 신체적 동선으로부터의 떠남, 제 용어로는 ‘유목’이지요. 해외여행객 1000만 시대라지만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바뀔까 싶어요. 바뀌지 않으면 여행은 소비와 상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암이나 한 선생님 같은 분의 메시지가 중요해요.


한비야  1000만이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겠죠. 일단 떠나보는 겁니다. 야구도 5할 타자가 드물듯이 10명 중 5명만 그렇게 느껴도 사회 전체로는 중요한 동력이 될 거예요. 일단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자기를 만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여행이라는 거죠.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열하일기』같은, 제대로 여행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가는 방법이 있겠다’라는 걸 아는 겁니다.

고미숙  저는 공동체를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났어요. 제도 안에서 만날 수 없는, 세대도 성격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저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됐어요. 공동체를 한다는 건 넓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한비야  제 일상은 긴급구호, 산, 책의 세 가지 축으로 돼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열하일기』를 권하는 이유는 마당에서 본 것과 담 위에서 본 것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마당에선 집 안과 담까지만 보이지만 담에 올라가면 집 안과 담 밖이 보입니다. 담 안에서 세상을 고르지 말고 담 밖으로 못나가면 적어도 담 위에서라도 보라는 거죠. 그게 고전을 읽는 이유입니다. 부모에게 받은 유전자가 제 하드웨어라면, 소프트웨어는 모두 책에서 얻은 겁니다. 사회적 유전자인 셈이지요.

고미숙  책은 저한테도 우주입니다. 나로부터 떠날 수 있는, 내가 나를 벗어날 수 있는 최대치가 책에 있어요. 그 시공간이 내가 살아서 구성할 수 있는 매트릭스의 전부입니다. 어떤 직업을 갖든 책을 통하지 않고 자기 삶이 확장되는 건 불가능해요.

한비야  저는 어릴 때 말을 꽤 재미있게 잘하는 꼬마였어요. 지금까지 뭔가 스토리텔링을 계속 해온 거지요. 친구를 사귄다는 건 관심이고 호기심인데, 이 친구가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지금 무슨 얘기를 궁금해 하는지를 잘 알았던 것 같아요. 저도 무슨 얘기를 하거나 듣는 게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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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연암 박지원 이김천 作

고미숙
  연암도 어딜 가나 이야기합니다. 하인이든 장사꾼이든 이야기하고, 얘기를 들으면 완전히 매료돼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습니다. 특히 공부하는 사람은 친구가 없으면 안됩니다. 지식은 자꾸 고립시키는 힘이 있어서 거기 빠지면 이 지식을 자기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거든요. 한 선생님 글에서 감동을 받았던 대목이 “허명을 얻는 일이 가장 두렵다”입니다. 지식인은 이름과 실재가 안 맞고 자기가 생산하는 지식과 삶이 괴리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또 그 괴리 자체를 스스로 통찰하지 못해요.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지식이 전혀 도움이 안되지요. 그러면 다시 교회나 절에 가서 엎어지는데 그건 적절하지 않지요. 지식이 삶의 지혜라면 당연히 거기서 구해야지요. 이 간극을 없애려면 자기 혼자 있어선 안됩니다.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가, 우월감 아니면 열등감, 지식에 대한 소유, 이런 것만 갖고서 세상을 가르치려 하면 안되는 것이죠. 그래서 반드시 인간관계 속에서 앎과 삶과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비야  서로 연대하고 위안 받고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고미숙  한 선생님은 삶이 글보다 훨씬 더 크고 역동적인데, 지식인들은 먼저 글과 지식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삶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죠. 이것이 지금 대학이나 지식인이 처한 문제입니다. 이것부터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50대 중반이 되면 전세계 지식인들과 지구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요.

한비야  저도 혼자서 긴급구호를 하는 건 아닙니다. 같이 일하는 동지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방향으로 같이 가는 친구, 일종의 러닝메이트라고 할까요, 친하면서도 경쟁의 대상인 사람이 있으면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고미숙  지금 청소년들은 너무 화초처럼 자라서 지도 밖은 고사하고 엄마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한비야, 너무 멋있어’로만 보지 말고, 어떤 삶의 기술을 배울지를 생각한다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한 선생님도 ‘꿈은 한꺼번에 오지만 이루려면 한걸음 한걸음 가야 한다’고 쓰셨더군요.

한비야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현장에서 보는 것을 제대로 전해서 사람들의 인생을 확장시키는 겁니다. 제 책이 살 빼는 얘기나 돈 버는 얘기가 아닌, 외면하고 싶은 얘기인데도 많이 읽히는 것을 보면 희망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아이들이 머리만 있고 손은 없다고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과연 아이들한테 밑그림을 제대로 그려주고 있는지 회의가 들 때가 많아요.

고미숙  한 선생님의 활동이 글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그 기운을 느끼는 겁니다. 똑같은 걸 써도 실제 활동이 거기에 못 미치면 수사학으로 느껴질 수밖에요. 좋은 말은 세상에 허다하지만 거기서 감동을 못 받는 것은,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게 없기 때문이에요. 요즘 지식인들은 ‘어떤 종류의 글을 쓸까’보다 스타일을 더 고민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앎’이라는 것을 ‘몸’과 간극 없이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떻게 포장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한비야  저는 제가 본 것만 제대로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굉장히 메시지가 있는데 반도 못 전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고미숙  그 마음이 행간 속에서 전달되는 게 중요하죠. 중요한 건 활동의 인텐시티(intencity·강도)가 전달되는 겁니다.

한비야  지금 세대에 필요한 건 세계 시민의식인 것 같아요.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가 끝나고 우리의 울타리에서 벗어났어요. 하지만 세계화가 우리를 지배하고 이용하는 식으로 가고 있다는 게 너무 불안해요. 그건 절대 세계화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물론 정글의 법칙이 있지만, 한쪽 날개에는 세계 시민의식이라는, 세계를 한 무대로 보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고미숙  지금 청소년 세대는 잠재력이 굉장히 많은데 그걸 하나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있는 곳에서 한 걸음만 내디뎌라, 그럼 또 길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한 걸음 없이는 만리 길도 갈 수 없어요. 지도 밖에, 또는 주어진 선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서 갈 수 있으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고 거기에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그것이 연암이 ‘열하일기’를 통해 현대의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글 김진우/사진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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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13:23 2008/03/1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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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정웅 2008/03/13 17:40

    고미숙씨가 쓴 책을 보면 정말 짜증난다. 되도 않는 프랑스 문예/철학이론 용어들이 아무런 설명없이 돌출한다. 용어에 대한 설명없이, 그 따위로 되도않는 지식을 노출시키는 것에 화가 많이 났다. 정말 그러한 것들을 노출시키고 싶다면, 최소한의 이론적 정리나 시점정도 제시한 뒤에 쓰도록 해라. 먹물근성이 너무 나서 싫다.

    • 未來 2008/03/13 15:51

      '되도 않는' 프랑스 철학 용어들 몰라도 잘 이해되던데요?
      책에 '되도않는' 지식에 대한 설명도 없는데 님은 '되도않'다고 하시는 걸 보니 잘 아시는 분이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