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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회운동, 한국 사회운동과 접속하다

2005년 겨울, 우연히 홍콩에 있는 ‘WTO 각료회의’ 반대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운동도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교수님의 생각 덕분에 몇몇 학생들이 함께 홍콩 집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쌀개방과 같은 아시아 대중들의 이해관계가 논의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사회운동 단체들과 회원들이 참가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농민 분들과 사회단체 회원 분들이 참가하셨고요.

홍콩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이 인상 깊었지만,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구치소에서 이틀 동안을 함께 보낸 일본인 활동가였습니다. 정확하게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는 일본에서 홈리스 지원활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천막을 치고 공원에 살면서 활동한다고 하더군요.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단체를 통해 홍콩으로 간 한국인들과는 달리, 그는 혼자서 홍콩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홍콩에서도 독자적으로 행동을 했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도 그가 우리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대규모로 홍콩에서 잡혀가는 초유의 사건이었는지라, 해당 국가의 영사관 직원들이 석방을 위해 홍콩 경찰과 협상을 한 모양입니다. 그때, 일본 영사가 구치소를 방문해 그와 면회를 했습니다. 면회를 끝나고 돌아온 그에게 우리는 “언제 나갈 수 있다더냐?”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국가(일본)가 나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는 알아서 하겠다”라고 말하고 왔다더군요. 구치소 안에서 “왜 한국 영사는 우리를 안 꺼내 주는거야?” 라고 불평을 하고 있던 저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본인 활동가의 행동은 일본의 사회운동이 얼마나 폭넓고 깊이가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예인 것 같습니다. 흔히 일본의 사회운동은 한국보다 폭발력도 없고, 대중동원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일본 활동가들이 많이 부러워 한다는 이야기도 하죠. 대중동원력의 측면만 본다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다양성과 깊이를 본다면, 아직 한국은 일본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부커진 『R』 1.5호는 일본과 유럽 사회운동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일본글들을 보고 ‘일본의 사회운동이 정말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팩션』과 『현대사상』과 같은 일본의 진보잡지들에 실린 글들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운동 간의 연대(물론 한국도 최근 세계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만)를 고민하고, 무엇보다도 국제연대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2006년 2월 우카이 사토시를 비롯한 일본 학자들이 모여 진행한 「대담-프랑스폭동,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글은 2005년 프랑스 방리유에서 벌어진 폭동을 일본의 학자들과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어떻게 보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이 ‘대담’은 한국과 일본 사회운동의 차이점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2005년 프랑스 폭동이 일어나자 한국에서는 CPE법(최초 고용법)에 반대하는 집회라는 측면을 부각시켰습니다(민주노총을 비롯해 노동단체들이 이러한 해석에 앞장을 섰습니다). 방리유에서 일어나는 폭동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일본의 학자들은 방리유에서 벌어지는 폭동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방리유 사태에는 프랑스 내의 식민주의 문제, 인종차별 문제, 종교 문제, 청년 실업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평가합니다(한국에서 방리유 문제를 분석하는 책이 비교적 최근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똘레랑스의 나라로 알려져 있던 프랑스에도 심각한 문제점들이 많았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그동안 너무 국내의 문제에만 매진해 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 국내에도 시급한 현안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외국 사회운동 단체와의 연대를 고민한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외국의 운동과 연대하는 것은, 단순히 ‘함께 한다’라는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들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부커진 『R』을 통해, 외국에서 벌어지는 대중들의 저항을 좀더 많이 소개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운동들은 한국의 사회운동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부커진 『R』 1.5호 편집을 담당한 편집자로서, 이 책이 세계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준다면, 그래서 새로운 길찾기를 위한 바탕이 된다면 최고의 영예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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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18:24 2008/03/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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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콘칩 2010/01/25 14:13

    부끄럽게 책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이 시리즈 표지 디자인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린비 2010/01/25 15:22

      콘칩님, 안녕하세요.
      2호까지 나왔고, 지금 3호 출간을 위해 기획 강좌가 운영 중이랍니다.
      저도 이 표지 참 좋아하는데 통했네요. 후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