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병역거부운동, 한 걸음 더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2008/03/14 11:35
이 글은 '평화바닥'에서 활동 중인 평화운동가 염창근씨가 그린비의 책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관해 작성해 주신 글입니다.

그래도 2003년 겨울 영장심사 담당 판사가 한 마디 심문도 하지 않고 구속재판을 결정해서 이미 한 차례 짧게나마 수감되어 본 경험 때문에 조금은 감옥이 만만해졌다는 자신감(?)이 있었음에도 여유를 찾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책은 다른 책들이 쌓인 곳으로 직행했고 오히려 저의 병역거부가 이해되지 않았던 다른 수감자들이 먼저 읽곤 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책을 펼쳤습니다. 맨 먼저 다가온 느낌은, ‘이런 책을 내면 이 출판사는 무사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워낙 병역거부 사안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라 걱정부터 일었습니다. 저 역시 험한 말을 많이 들었고 (그렇다고 실제 신변의 위험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언어적 폭력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책을 접했을 자칭 애국주의자들과 군사마니아들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참새들처럼 출판사를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모르고 출판사 걱정 역시 금방 사라져 이후로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이야기한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언어들은 낯간지러울 정도여서 저를 부끄럽게 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세상을 변혁한다는 거창한 구호는 더 이상 믿어지지 않던 때 자신의 변혁만이라도 이루어낸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는 회의적 마음이 오히려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만들었는데 여기에 너무 큰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런 소소한 시민불복종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마침 이라크, 아프간,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고, 공감은 형성되기 어려웠고, ‘대안이 없다’는 답답한 마음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은 처음으로 감옥이라는 곳을 들어갈 때의 심정을 연상케 합니다. 감옥에는 한밤중에 도착했습니다. 듬성듬성 전등 하나씩만을 켜놓아 가라앉을 것만 같은 어둠의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버린 육중한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지급받은 수의와 고무신 차림으로 켜켜이 쳐진 철문들을 넘고, 길고 긴 복도와 수많은 감옥방 철문과 쇠창살들을 지나 배정받은 방 앞에 섰을 때는 왈칵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철커덩’ 철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이 좁은 방에 먼저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감자들과 어떻게 인사를 하고 앞으로 살아갈지 초조함과 두려움만이 저를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545일의 밤을 보내야 한다는 아주 현실적인 사실 앞에 끝없이 가라앉던 마음은 마치 이 건물 속에 묻히는 것만 같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려는 지금 시작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병역거부권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대체복무를 시행하겠다고 말한 그 즈음부터 병역거부운동은 마치 좌표를 잃은 대오처럼 우왕좌왕. 애초 목표가 ‘감옥 대신 사회봉사를’이었기에 ‘병역거부운동=대체복무 도입’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병역거부운동은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평화만들기에 대한 문제이고, 군대와 무기에 대한 문제제기인데 개인의 ‘양심의 문제’로 국한시키고 이를 위한 제도 개선만 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병역거부운동이 내재해 있는 본연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이 시작되고 6년이 흐르는 사이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하나의 단기 전망은 그 시기의 것이고 해당 시기가 지나면 의미가 사라지거나 변하는 것일 터. 즉, 지난 6년 동안의 전망, 바로 거기에서 한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부나 국회 같은 국가기구와의 협상이고 타협이었기 때문에 ‘병역거부의 본연의 의미 - 총을 들지 않는다’를 풍부화하지 못했고 의미들을 단일화시켰고 혹은 탈각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정한 ‘탈정치화’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의 당위로 가게 되면 자연스레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배제적으로 되고 효율성을 찾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에 주목하게 만들어냅니다. ‘국가와의 협상’이라는 귀결, 혹은 ‘제도’로의 귀결은 한편 (충분히 의미있는)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바로 그 지점에서 운동의 의미가 탈색될 수 있기도 합니다. 병역거부운동 6년의 끝은 바로 이 지점에 와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국가차원에서의 ‘대체복무 도입’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화될 것입니다. 제도 도입과 설치, 안착시키는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하고, 그 자체로 견고한 군사주의에 틈새를 만드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제도 도입과 설치’ 문제는 여전히 놓칠 수 없는 하나의 주제인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운동은 이 의제로 한국의 ‘병역의무’라는 견고한 성역에 문제제기를 하는 역할을 했고, 쉽게 언급조차 되기 어려웠던 군제도와 병역에 대해 논란의 장을 열고, 사회적으로 토론하게 했으며, ‘평화’가 이에 도전케 한 것은 인정받을 만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체복무제도 도입’만으로는 어떤 새로운 운동의 전망을 찾아내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구체적인 발걸음이 필요할 때가 된 것이지요. 여전히 병역(강제징병)의 문제를 둘러싸고 각종 위계와 차별들이 존재하며 특히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도입하고 있는 사회복무제는 소수자를 더욱 차별하는 제도라 도입될 필요가 의문시될 정도입니다. 특히 군대와 군사주의를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많고 ‘무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제기가 없습니다. 시민불복종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운동은 이 모든 문제를 포함하는 운동인데 고민은 좀처럼 깊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태도와 자세, 세상에 대한 새로운 마음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언제나 문제는 모색하지 않는다는 점,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병역거부운동은 이제야 겨우 이제까지의 것들을 잘 정리하고 다음 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정리를 위해 병역거부자들이 수감 때의 기록들을 모아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전망을 위해 총회 마당을 꾸려가려고 하지요. 이 책을 다시 펼칠 이유가 생겼습니다.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의 틀을 넘기 위한 또 한 걸음이 시작되는 지금, 관심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호소해 봅니다.
- 평화바닥 활동가 염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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