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작년에 대선이 끝났지만 미국은 올해 대선이 시작합니다. 미국 대선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국제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세계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이라크의 경우와 같이 한 나라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래서 미국 대선과 관련한 기사들은 실시간으로 한국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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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대선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것은 힐러리와 오바마 중 누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까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바마가 두각을 드러내긴 했지만, 힐러리의 든든한 조직과 정계의 후원세력에 밀려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경선이 절반 넘게 진행된 지금, 오바마가 힐러리를 앞서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지도 모릅니다(물론 본선에서 승리해야겠죠). 도대체 무엇이 오바마의 힘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오바마의 승승장구를 보면서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삼인, 2007)가 떠올랐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왜 민주당을 포함한 리버럴이 패배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책 등을 비교해 보면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이 훨씬 국민들의 이익을 고려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유권자들은 공화당에 투표를 하는지 답답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런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기존의 리버럴들이 의제와 안건 중심의 비판을 해왔다고 지적합니다. 공화당이 선점한 문제설정의 틀 내에서 비판을 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조지 레이코프가 그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 바로 ‘프레임’ 중심의 운동입니다.

프레임은 간단히 말해 ‘생각의 틀’입니다. 한국의 상황에 맞춰 한번 생각을 해 봅시다. 한미 FTA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왜 대다수의 국민들이 FTA를 찬성하는지 의아해 합니다. 한미 FTA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과 근거들을 내밀어도 사람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틀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한국 보수세력의 프레임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평등’보다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의 틀’이 꾸준하게 성장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세력은 지난 10년 동안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프레임을 강조해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이러한 경제적 무능을 해결해 줄 정당은 자신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인지시켜 왔던 것이죠. 실제로 드러난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노무현과 김대중 정권 때 딱히 경제성장이 더디었던 것도 아닙니다. 노무현 정권은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해 왔기 때문에 아마 이명박 정권은 큰 틀에서 이전 정권과 경제정책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지난 10년 동안 경제 불안에 대한 담론을 선점해 왔습니다. ‘좌파 정권’ 때문에 경제가 불안해졌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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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 조지 레이코프는 새로운 프레임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수 세력이 설정한 틀 내에서 사고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닌, 진보 진영에서 새로운 틀과 사고방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오바마의 승승장구 소식을 듣다 조지 레이코프의 책이 떠올랐던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오바마의 정책이 민주당 내 다른 후보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힐러리나 다른 민주당 후보보다 좀더 진보적으로 보이는 것은 오바마의 아버지가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점, 이라크 전쟁에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드러냈다는 점 정도에 연유합니다. 실제로 오바마의 정책은 다른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반하고 있으며, 대외 정책 역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에게 희망을 느끼는 것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아마 그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금만 바꿔도 우리 아이들이 품격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택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는 분명 보다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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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은 지난 클린턴과 부시를 거치면서 두 가지 담론의 변화를 겪습니다. 클린턴이 대선 때 내세웠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지나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까지, 미국은 처절한 현실과 직면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오바마는 “품격 있는 인생”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고용불안과 테러에 시달려온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 것이죠.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선점하고 있는 ‘불안의 정치’와는 다른 프레임의 가능성을 오바마는 미국의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오바마의 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오바마의 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모호하고 새롭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이미지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바마가 이야기하는 ‘품격 있는 인생’은 테러와의 전쟁, 경제 불안에 지친 미국인들의 마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 편집부 진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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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14:07 2008/03/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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