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서문


지식에 기반을 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호가 들려온 지 오래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축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제적인 활동의 강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학제적인 연구자를 양성하거나 스스로 학제적인 연구자가 되려는 노력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혹자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부르짖는다. 그런데도 이른바 통섭을 구현했다 할 만한 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정밀과학과 인문학을 갈라 놓고 과학과 문학을 분리하는 대학 제도의 굴 속에서 편안하게 구호만 외쳐 대고 있는 듯하다.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한국 기독교가 누군가의 말대로 ‘성전 건축 교회’인 것처럼, 대학 역시 발전기금을 마련하고 거대한 건물을 새로 짓고 기존의 시설을 ‘깨끗이’ 정비하는 등 아직도 외형만 키우고 다듬는 데 열심이다. 영성과 소통, 가르침과 배움의 상호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예전에는 자본이 교육의 영역을 기웃거리기만 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교육이 전적으로 자본에 휘둘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꼭두각시처럼 자본을 그저 추종한다거나 히스테리의 반응만을 내보이다가는 대학이 지식의 전달을 보조하기는커녕 긍정적인 미래의 도래에 걸림돌로 작용할지 모른다.

세계화는 신석기 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도도한 흐름이다. 이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다. 문제는 다만 이 흐름을 영악하게 이용하는 나쁜 세력에서 비롯된다. 어느 시대에나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삶의 여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했고, 오늘날에도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의 직업, 세계적인 인터넷 망, 갈수록 팽창하는 대도시를 만들어 내는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의, 가혹한 기아와 전쟁, 참을 수 없는 불평등 또한 초래하고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해 견해가 갈리기는 하나, 우리의 눈앞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 세계에 걸친 현 시대의 변화는 질적으로 산업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보다 더 근본적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로 말하자면 근대화 과정보다 더 중차대한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들 중 하나를 우리는 백과전서적인 정신의 소유자 미셸 세르에게서 들을 수 있다. 미셸 세르는 오늘날의 세계를 정확히 진단하고 미래의 세계를 예측한다. 그는 환경의 보호나 세계화에 대한 반대를 외곬으로 외치는 ‘불안의 상인들’과는 달리,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세계화를 낙천적인 태도로 즐겁게 맞아들이면서도 그 폐해를 소상하게 지적하는 균형 감각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균형 감각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뜻 깊은 대화, 과학과 문학에 대한 폭넓은 앎에 토대를 둔 개방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에서 기인할 것이다.

미셸 세르의 다른 책들처럼 『천사들의 전설』 또한 해박한 자연과학적 지식, 풍부한 이미지와 세 편의 문학 작품의 독특한 해석, 정보화 사회에서의 윤리와 교육에 대한 깊은 생각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복합적인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서 의료센터의 의사로 일하는 피아와 항공사의 기내 보안담당자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팡토프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기본 줄거리이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은 대단한 지적 수준을 자랑하며, 중간에 자신의 딸과 함께 대화에 끼어드는 자크(피아의 오라버니)도 미술에 일가견이 있다. 이 인물들은 모두 미셸 세르의 분신이다. 역으로 미셸 세르는 이 인물들의 혼합이다. 이 점에서 그는 자신이 육체와 함께 ‘백색’의 표상으로 즐겨 내세우는 익살광대(아를르캥)이다. 익살광대는 다양한 색깔의 헝겊 조각들을 이어 붙인 옷을 입는데, 미셸 세르는 이 익살광대의 형상에서 모든 타자성으로의 열려 있음, 많은 타자가 한 인물에 섞여 있음을 읽어 낸다. 이러한 열림과 뒤섞임은 교육의 이상으로서, 그가 주장하는 ‘사람됨’의 구체적인 내용인 보편인의 기본 조건이다. 다리-인간, 인터체인지-인간인 미셸 세르 자신이 앞으로 지식의 세계화에 의해 양성될 유쾌하면서도 치밀한 보편인의 본보기로 간주될 소지는 충분해 보인다.

일찍이 1970년대에 주류 철학에서 벗어나 생산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 인류에게 더 중요해지리라고 확신한 이 통로와 소통의 철학자가 『천사들의 전설』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사회를 넘어 ‘페다고지’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천사라는 은유에 의해 표상되는 온갖 인물과 사물 중에서도 선생은 특히 윤리의 측면에서 주목을 끄는데, 그 요점은 천사들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메시지 자체를 위해 개인으로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천사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메시지의 발신, 전달, 차단, 해독에 의해 유지되는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메시지에 길을 내주고 사라지는 것이 메신저의 윤리라는 미셸 세르의 혜안은 이처럼 선생의 경우에 유별나게 뜻 깊은 암시를 발산할 뿐 아니라, 메시지 전달망의 주요한 경로에 자리하고서 정보를 가로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출하거나 왜곡하여 내노라하고 나섰던 사람이 참으로 많은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깊은 정치적 함의도 갖는다 하겠다.

『천사들의 전설』을 읽은 독자들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 굉장한 지적 충격을 받았으나 그 충격의 내용을 한참 동안 구체적으로 풀어 내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들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해할 것은 없다. 그러한 느낌 또는 상태는 오히려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소중한 증거이다. 창의성은 바로 거기에서 생겨날 것이다. 거기란 언어 이전의 잡음이 들려오고, 모든 사유의 원질이 놓여 있고, 모든 색깔을 함유하는 백색이고, 하나의 개념을 파악하려는 정신의 기본 자세가 이루어지는 시원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2008년 봄
이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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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녁_바람
아침_천사들의 도시
밤_지품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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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전설
미셸 세르 지음, 이규현 옮김|갈래 : 인문, 철학

발행일 : 2008년 3월 15일 | ISBN : 978-89-7682-307-6
국배판 변형 양장|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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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4 18:50 2008/04/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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