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은 장자의 사상에 대한 세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 장자라고 하는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봉우리는 「장자와 철학」에 대해, 두 번째 봉우리는 장자가 이야기한 「해체와 망각의 논리」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세 번째 봉우리는 「삶의 강령과 연대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장자의 실철적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이 세 봉우리를 넘으면서 잠시 쉴 수 있도록 「인터메조」라고 불리는 작은 휴식처가 두 곳 있습니다. 첫 번째 「인터메조」에서는 그 동안 우리가 장자에 대해 알아왔던 오해와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고, 두 번째 「인터메조」에서는 장자의 사유에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인터메조」에 등장하는 양주(楊朱)라는 사상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내 몸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겠다!” 

양주(BC 440? ~ BC 360?)만큼 우리의 흥미를 끄는 고대 철학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양주의 사상은 맹자와 한비자를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양주의 급진 사상이 국가체제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가와 법가에 의해 은폐되고 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주사상의 어떤 부분이 지배자들에게 위협으로 작동했던 것일까? 양주는 천하보다 자신의 몸에 난 털 하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길 정도로 ‘위아’(爲我)의 입장을 펴고 있었다. 그러나 양주를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한비자의 논의를 참고해 보자.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위태로운 성에 들어가지 않고 군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의롭게 여겨서 천하의 큰 이익 때문에 정강이에 난 털 하나라도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세상의 군주들은 그를 따르고 예우하며 그의 지혜를 귀하게 여기고 그의 행동을 높이면서 외물을 가볍게 여기고 삶을 중시하는 선비라고 생각한다. 대저 윗사람이 좋은 땅과 커다란 집을 진열하고 작록을 베푸는 것은 백성들의 목숨과 바꾸기 위해서이다. 지금 윗사람이 ‘외물을 가볍게 여기고 삶을 중시하는’[輕物重生] 선비를 존중하면서도, 민중이 목숨을 던지면서 윗사람의 일을 위해 죽는 것을 중하게 여기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한비자』「현학」)
 
한비자에 의하면 양주는 삶의 소중함을 강조한 철학자였다. 군주, 혹은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삶 자체를 긍정적으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했던 철학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주의 이러한 사상은 전국시대 당시 유가와 법가에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백성이 군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국가(특히 고대의 왕정체제가)가 유지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양주의 사상은 아나키즘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양주는 개체의 삶보다는 공동체의 유지를 중요시 한다면 우리 삶이 단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절대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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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004
강신주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철학), 고전

출간일 : 2007-08-10 | ISBN(13) : 9788976823045
양장본 | 296쪽 | 205*140mm


2007/08/16 14:43 2007/08/1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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