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리는 여성영화제에서 「페르세폴리스」란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줄 알았는데,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여성영화제에서 좋은 영화들이 많이 상영되지만, 저는 그중에서 특히 「페르세폴리스」를 꼭 보고 싶습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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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라는 영화는 동명의 『페르세폴리스』라는 만화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 바로 만화 판본의 『페르세폴리스』입니다. 한국에도 1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새만화책). 마르잔 사트라피는 14살 때까지 이란에서 살다 스위스로 유학을 갑니다. 그 이후 쭉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일러스트 작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페르세폴리스』1권은 마르잔이 이란에서 산 14살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란… 최근 우리에게 이란은 어떤 면에서 낯설지 않은 나라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이란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공격 대상으로 북한과 이란을 쿡 집어서 다음 ‘적’으로 지목했습니다. 북한은 우리 바로 옆에 있는 국가이고 한때나마 같은 정치체제로 묶여 있던 곳이라 익숙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란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낯선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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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호메이니, 카터, 부시, 아흐마디네자드_

물론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이란의 극단적인 신정체제와 이란-이라크 전쟁의 참사, 강남과 자매결연을 통해 이름이 익숙한 ‘테헤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가 딱 제가 알고 있던 ‘이란’입니다. 현대 정치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아마 70년대에 있었던 이란 미대사관 인질 사건도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강력한 반미 정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힘을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억압국가로 생각되기 쉽습니다.

마르잔의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이란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물론 『페르세폴리스』는 역사책도 아니고 누군가를 ‘계몽’하려는 책도 아닙니다. 마르잔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겪었던 이란생활을 ‘강렬한 흑백 이미지’(실제로 만화를 보시면 ‘강렬한 흑백 이미지’의 의미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로 그려 내고 있습니다.

마르잔이 어렸을 때, 팔레비 왕이 통치하던 이란은 친미-친서방적인 정책으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국가였다고 합니다. 팔레비 왕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감옥에 가두는 등 독재정치를 폈습니다. 마르잔의 삼촌도 사회주의 운동으로 감옥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혁명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곧 그 희망이 터무니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는 종교 지도자로서 이란을 통치합니다. 이런 호메이니의 정책은 보수적 이슬람 정책으로의 회귀를 뜻하며 팔레비 왕이 도입한 서구식 교육과 정책들을 모두 옛날로 돌려놓습니다. 그 결과 마르잔은 나갈 때마다 차도르를 두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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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페르세폴리스』중에서>

『페르세폴리스』는 한참 사춘기 때 호메이니의 통치를 경험한 마르잔의 경험에 대한 내용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만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이란의 현실에 대한 ‘고발’에 있지 않습니다. 그 감동의 원인은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재구성해 내는 마르잔의 연출력에 있습니다. 알라딘 서재의 ‘나귀’ 님이 평가하신 것처럼, 『페르세폴리스』는 기존 한국의 정치만화들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만화 박정희』와 같은 고발성 책들은, 단순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예술적 감동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와 그리고 『쥐』와 같은 만화들은, 단순 비판을 넘어 만화를 구성하고 연출하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만화책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올바른 사실’을 전달한다는 ‘명분’을 뛰어 넘는 예술적 노력이 필요 합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페르세폴리스』는 흑백의 대비 효과를 효과적으로 사용합니다. 가는 펜선으로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깊이가 느껴지는 검은 색을 사용합니다. 마르잔이 사용하는 흑백은 이란 사회의 답답함과 억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만화책 첫 장에 나오는 차도르를 두르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그림은 묘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이런 효과가 강렬했는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페르세폴리스』도 흑백입니다. 흑백이 갖는 강렬한 효과는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상영 일정을 적어 놓으려고 여성영화제 홈페이지를 방문했는데, 아쉽게도 상영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작년에 각종 영화제에서 워낙 평이 좋았고, 한국에서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떤 형태로라도 개봉될 것 같습니다. 함께 개봉을 기다려 보죠.

- 편집부 진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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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3 12:36 2008/04/0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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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페르세폴리스-밤하늘에 빛나는 별빛같은 책

    Tracked from marcion 2008/05/02 15:40  삭제

    페르세폴리스는 이란혁명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소녀가 이슬람 여성으로서 자아와 사회에 대해서 발언하는 성장을 다룬 만화책이다. (근사하게 표현하면 그래픽 노블이다.) 조 사코 의 "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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